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너는...그는... (눅 7:36-47)

첨부 1


너는...그는... (눅 7:36-47)
   
 
36.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37.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38.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9.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4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41.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42.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43.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4.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누가복음 7장 36~47절> 


할렐루야! 
우리나라 여름은 너무 덥고 겨울은 너무 춥습니다.
그런데 봄인가 해서 좋아할 시간 없이 여름이 오고,
가을이 되어 좋다고 느낄 여유 없이 겨울이 다가옵니다.

요즘 날씨가 참 좋습니다. 
비가 와서 날씨가 변하겠지만 … 덥지도 춥지도 않은 좋은 계절에 
여러분의 얼굴표정도 밝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사시기 바랍니다.
옆 사람이 내 얼굴을 봤을 때 기분 좋아지도록
미소를 지시고 자신이 있을 때 옆의 분과 인사합니다.
“참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다른 사람이 
기분 좋은 날이 되기를 … 기분 좋은 삶이 되기를 …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먹고 마신 예수님

저는 1977년도에 군에서 제대를 했습니다.
그때 쟀던 몸무게와 허리 사이즈가 30년 동안 유지되었습니다.
그런데 5~6년 전부터 점점 허리 사이즈가 늘어나고 
배도 살짝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집에서 먹을 것을 잘 안주고 다이어트를 하라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 남성의 25%, 여성의 45%가 수시로 다이어트를 한답니다.
한 해 미국인들이 다이어트에 쓰는 비용만 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60조원에 이른답니다.
구체적인 수치는 밝혀져 있지 않지만
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세계 선교보다 다이어트에 돈을 더 많이 쓰고 산답니다.
< 팀 체스터,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상』 (서울: IVP, 2013), pp.12~13. 참조. >

많은 사람들이 비만을 염려하고, 
다이어트에 관심을 갖고 산다는 것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먹는 즐거움이 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도 먹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아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34절에 보면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눅 7:34)

예수님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먹고 마시는 것을 트집 잡아 비난할 만큼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성서학자 로버트 캐리스(Robert Karris)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늘 식사 하러 가는 길이셨거나, 
식사 중이셨거나,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 중이셨다.”
< 팀 체스터,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상』 (서울: IVP, 2013), pp.16. 참조. >

예수님에게 있어 밥상은 
복음을 전할 사람을 만나는 자리, 공동체를 형성하는 자리 
하늘의 사랑을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저는 앞으로 몇 주간 누가복음에 있는 말씀을 통해
먹고 마시는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을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 좋은 가을에, 말이 살찐다는 계절에 …
우리도 잘 먹어 건강할 뿐 아니라 
영혼을 살찌우는 하늘 백성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향유 한 병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기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41절)

당시 바리새인들은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가장 엄격하게 지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되기 위해서는 바리새 회의 규칙을 지킬 것을 맹세해야 했는데, 
그 규칙은 :
- 일주일에 두 번(월, 목요일) 금식을 할 것.
- 같은 바리새인이 아닌 제사장에게는 십일조는 내지 말 것.
- 바리새인이 아닌 사람과는 식사를 하지 않는 것 … 등이 있었습니다.
< 『비전 성경 사전』 (서울: 두란노서원) 참조. >

예수님은 바리새인이 아니셨습니다.
그러므로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식사 자리에 초청한 것은 대단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에 살던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당시 향유는 향수나 방향제로 쓰거나
불면증이나 통증을 완화시키는 약으로 쓰였습니다. 
< 『비전 성경 사전』 (서울: 두란노서원) 참조. >
그런데 여인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 사회에서 
여인들이 머리카락을 늘어뜨리는 것은 침실에서나 하는 행동이었습니다.
< 팀 체스터, 『예수님이 차려주신 밥상』 (서울: IVP, 2013), pp. 58. 참조. >

의문스러운 점은 “죄를 지은 한 여자”라고 소개된 여인이 …
감히 바리새인의 집에 … 식사 자리에 어떻게 들어갔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죄가 있는 여인이라면 당연히 바리새인들이 멀리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식사 자리에 함께 있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여인의 행동은 상식적인 눈으로 보면 무례했고 … 낭비까지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변 사람들은 여인의 행동에 크게 당황했을 것입니다.

본문 말씀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식사하시던 자리의 분위기는 그리 편한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용서와 용납의 공동체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눅 7: 47)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그 여인은 함께 식사도 나눌 수 없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을 그 여인의 마음을/정성을/행위를 받아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여인의 사랑이 누구보다 많다는 것도 인정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공동체, 교회 공동체는 
바리새인들처럼 사람을 구별하여 
가까이 할 수 있는 사람과 멀리해야 할 사람으로 나누면 안됩니다.
예수님께서 죄 많은 여인의 마음과 정성을 받아주셨던 것처럼 …
교회는 죄 있는 사람도/허물 있는 사람도 받아주고 이해하는
용서와 용납 그리고 덮어 주고 하나 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 일서 1장 3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요일 1:3)

그리스도인의 교제와 사귐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모인 교회에 고향이 같은 사람, 출신학교가 같은 사람, 
취미가 같은 사람이라서 모였습니까?
물론 교회에서 선교활동을 위해 취미가 같은 사람들을 묶어줍니다.
어떤 특정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들을 묶어서 활동을 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교를 위해, 친교를 위해서이지
그것 때문에 모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모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우리는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었음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주일에 교회에 모이는 것이고, 사귀는 것이고,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었으면 옷깃 한번 스치지 않고,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날 가능성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믿었기 때문에, 기둥교회 출석했기 때문에
지금 만나는 것이고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만나면 
예수님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함께 예수 이름으로 손을 잡고, 
함께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함께 귀히 여기고, 함께 예수님을 만난 삶의 간증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도의 교제(koinonia)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교제의 방법은 
예수 믿기 때문에 라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이 뒤로 숨겨지면 
그것은 코이노니아(성도의 교제)가 아닙니다.

우리들이 만나고, 체험하고, 간증하는 예수님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주신 분이십니다.
죄의 댓가는 반드시 죽음으로 치루어야 합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 주셨고,
우리의 죄 값을 치루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죄 값을 치루신 예수님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허물 많은 우리를 용납하시고 받아주신 
그 예수님의 사랑이 귀하고 감사하여 
예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 13절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골 3:13)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와 용납(받아들여 줌)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각 지체인 우리들은
우리들의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처럼 용납하고(받아들이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단, 무질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고전 14:33)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이고 
그래야 교회가 교회다운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서받고 용납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질서 속에 들어가야(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 큰 죄인

우리들이 용서하고 용납해 주어야 하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자신이 더 큰 죄인 일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누가복음 7장 44절부터 46절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바리새인 시몬과 향유 부은 여인을 비교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44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46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눅 7:44-46)인

-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는 
초청한 손님이 왔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
샌들을 신고 다니는 그들에게 발 씻을 물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바리새인이 아닌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한 것을 보면 … 
그가 큰 결단을 한 것 같아 보이지만 … 
사실 그는 예수님께 
발 씻을 물도 주지 않는 무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죄 많은 한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을 발을 적셨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습니다. 

- 예수님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서는
애정과 존경을 표시할 때 입을 맞추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무슨 이유로 예수님을 청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께 대한 애정도 존경의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죄 많은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애정과 존경의 입맞춤을 했습니다. 
< 『비전 성경 사전』 (서울: 두란노서원) 참조. >

-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름 중에는
‘감람유’, 즉 ‘올리브기름’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올리브기름을 요리에 사용했지만
머리에 바르거나 상처에 바르는 약으로도 사용했습니다.
< 『비전 성경 사전』 (서울: 두란노서원) 참조. >

제 방에도 올리브기름이 있습니다.
설교 하고 나서 올리브기름을 먹으면 목을 보호할 수 있습니다.
노래를 많이 하는 사람도 올리브기름을 사용한다고 합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 해 놓고 
그 흔한 올리브기름조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죄 많은 그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었습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죄 있는 여인 중 
누가 더 예수님을 극진히 대접하였습니까?
누가 더 예수님께 무례한 사람입니까?

우리는 때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는 믿음 생활을 잘 하고 있지, 
나 정도는 되야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쉽게/자연스럽게/거리낌 없이 … 
남을 향해 비난과 정죄의 화살을 날릴 때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3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 7:3)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어찌하여 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작은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나무토막은 보지 못하느냐?”(마 7:3 쉬운 성경)

다시 말씀드립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는 
용납하고 용서해야 하고 손잡아 하나 되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누구 보다 더 내가 더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5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가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투는 장면이 나옵니다. 
무슨 이익을 위해 둘이 다툰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마가를 전도여행에 다시 데리고 가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 이유는 제1차 전도 여행에 동행하였다가 
마가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린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마가의 행동이 1차 선교 여행에 큰 차질을 주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당시 바울은 마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런 사람을 더 이상은 용납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마가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일로 인해 크게 다투고 각자 전도의 길을 나서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39절에 보면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때 바울의 말도 옳았습니다. 
한사람의 잘못된 행동으로 선교 전체가 망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때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 자신도 도무지 용납 받을 수 없었을 때 용납 받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용서받기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스데반 집사가 순교를 당할 때 거의 주동자 역할을 했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심하게 핍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바울은 자신이 마가보다 더 용서받고 용납되기 
어려웠던 사람이었음을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낸 글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예수 믿는 우리는 예수 믿는다는 이유 하나로
하나님께로부터 이미 용서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사는 사람들이고
그 사랑 때문에 구원 받았다고 말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우리가 있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지금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용서받지 못했다면 
우리 중에 감히 어떻게 고개를 들고 찬송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고 사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에 있는 기독교 분파 가운데 ‘아미시’(Amish) 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살 때 오하이오주의 애쉴랜드라는 지역에 있는
애쉴랜드대학교에서 공부를 했는데 그 주변에 ‘아미시’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미시’들은 이단취급을 받았었습니다.
예수를 믿기는 하는데 이단자들 같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잘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500년 전 중세 시대의 옷차림을 하고, 
<남자>는 턱수염을 기르고, <여자>는 보넷 모자를 쓰고
----- 보닛/보넷(bonnet)은 끈으로 둘러 턱 밑에서 묶게 되어있는 모자 
망아지가 끄는 마차를 타고 다니며, 
현대 문명(자동차, 전화, 텔레비전, 전기) 사용을 모두 거부하고 
밤에는 등불을 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20년 전 쯤만 해도 이단 취급을 받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 어디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평화로움을 느끼려고 
아미시 공동체 마을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뀌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2006년 10월 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니켈 마인스’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찰스 로버트라는 남자가 자기 딸이 태어나자마자 죽은 일로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행복해 보이는 아미시 학교 어린 소녀들을 
한 줄로 세워 놓고 총을 쏜 후 자기는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어린 소녀 다섯 명이 죽고 다섯 명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미시 마을에서 총격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는데 놀랐습니다. 
그러나 점차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아미시 사람들이 살인자와 그 가족들에게 보여준 사랑과 자비였습니다. 

『아미시 그레이스』라는 책은 
아미시 사람들이 끔찍한 살인자를 어떻게 용서했으며 
어떻게 살인자의 가족에게 자비를 표현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희생자의 가족들은
살인자 찰스 로버트의 가족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그 아내를 붙들고 함께 울었습니다. 
아미시 사람들은 / 피해자 가족들은
살인자 로버트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였습니다. 
남편과 아버지가 사라진 그 살인마의 가정을 위해 기금도 모았습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그들을 품고, 그들을 돕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때 그 아미시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아미시 그레이스』책에 보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기도문> 대로 살아온 
<주기도문>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
< 더널드 크레이빌, 『아미시 그레이스』 (서울: 뉴스앤 조이, 2008). p.35. 참조 .>

우리 중에도, 마음속에 
‘나는 그 사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나는 그 사람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고 싶지 않다’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그 사람과 얼굴도 마주치기 싫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 자신도 그들 보다 더 큰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회는 완전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죄 많은 사람들이 용서받은 기쁨과 감사로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병원에 병자들이 모이듯이, 교회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대방의 허물과 죄가 보이면 
주님께서 용서하시고 용납하신 것을 기억하며 
그 사람의 허물과 죄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오늘 설교는 제가 제 자신에게 하기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제게 불편한 마음을 갖고 계신 분 계십니까?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잘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가족 중에, 교회 성도 중에 … 
그런 분이 계십니까? 용서하시고 받아들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가정이 화목하고 평안하고, 
그래야 기둥교회에 은혜가 넘치고 사랑이 넘치고 간증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합니다>
“예수 믿는 내가 참는다, 예수 믿는 내가 용서한다.
잘 생긴 내가 참는다. 더 예쁜 내가 … 용서한다”

여러분이 용서해야 용서받은 증거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싸매고 덮어주고 참아주지 않고 파내고 쑤셔대면 … 상처는 더 커집니다.
여러분 모두 ~ 상처와 아픔, 허물과 죄를 가진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키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주인공으로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말씀을 전했고 들었습니다.
말씀을 가슴에 품고 머리에 기억하여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들 기쁨과 감사로 신앙생활 할 뿐 아니라 
우리가 가진 기쁨과 감사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해주는 믿음의 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신
그리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되어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