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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피성 (수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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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성 (수 20:1-9) 

  
성경은 인간의 존귀함을, 확실히 가르친다. 인간이 존귀한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헤친 자는, 하나님의 형상을 헤쳤기에, 반드시 죽이라고 했다. (출21:12-14)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 만일 사람이 고의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사람을 그 손에 넘긴 것이면, 내가 위하여 한 곳을 정하리니, 그 사람이 그리로 도망할 것이며, 사람이 그 이웃을 고의로 죽였으면, 너는 그를 내 제단에서라도, 잡아내려 죽일지니라.” 하나님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갚을 수 있다는 율법을 주어,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지켜주었다. 

인간의 역사는 ‘복수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철저한 복수를 일컫는 말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엔, 그를 보호하기 위해, 하나님은 도피성을 만들라고 했다. 이렇게 도피성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피할 수 있는 은총의 장소였다. 

1. 누가 왜 도피성을 만들었나?(1-2).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모세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들을 너희를 위해 정하여” 도피성의 제도는, 여호와가 만들었다. 
도피성(이르 함미클라트, ט󰗚󰙓󰗴󰕘 רי󰘟)은 ‘피난처, 도피처, 수용소’를 말한다. 도피성 제도가 갑자기 만들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광야시절 모세를 통해 기록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기 전부터, 도피성 제도를 마련했다. 

(3) 부지중에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를 위해 피의 보복자를 피할 곳이니라.” ‘피의 보복자’(고엘 핫담, ם󰕏󰕘 ל󰔞󰕄)’이다. 보복자(ל󰔞󰕄)는, לאַ󰔿(다시 사다, 무르다,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다.)에서 나온 말로, 법적으로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고, 속량하는 구속자를 말한다. 
그래서 사람을 죽인 죄인은, 피의 보복자가 쫓아오기에, 그를 피하기 위해, 하나님은 그들을 위하여 피신처, 곧 도피성을 만들어 주셨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피의 복수를 한다. TV를 통해서, 이스라엘 지역에서, 행해지는 보복행위를 보았는가? 지금도 그들은, 보복의 원리를 지키고 있다.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아랍인에게 테러 당하여 죽었다면, 이스라엘 정부는 반드시 ‘피의 복수’를 한다. 이는 마땅히 정부가, 마땅히 보복해야 할 일이다. 저는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피의 복수를 하는 장면을, 여러 번 보았다. 
도망한 사람은, 절대로 도피성을 나와서는 안 된다. 만일 도피성 밖으로 나왔다가, 피의 보복자를 만나서 죽임당해도, 정당한 법이기에, 할 말이 없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떠나면, 사망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는, 배교의 무서움을 알자. 하나님의 정의는, 죄인에게 죽음이다. 

이단은 예수님을 떠나게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로, 죄인이 죽음의 선고로부터, 피할 길을 허락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다. 다른 사람을, 죽인 일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크게 해한 일이 없어도 죄인이다. 
(요일3:15)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마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의 법으로 볼 때 죄인이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피난처를 주었다. 그 은총의 장소는, 도피성 되는 예수 그리스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보복자가 되어,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내는 분이다. 
동시에 우리가 피해야 할, 피난처이다. 우리 죄를 대속하신, 구속의 주가 된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롬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여호와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심을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다. (시14:6下) “…오직 여호와는, 그의 피난처가 되시도다.” 
하나님은 밖으로 나타난 행동보다, 마음의 동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사람은 외적으로 나타난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사는, 그가 어떤 동기로 죄를 지었나? 예를 들으면, 도끼질을 하다가, 도끼날이 빠져나가 사람을 죽인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신19:5). 

의도적으로 해치기 위해서, 지은 죄인가?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는데, 죄를 짓게 되었는가를 본다. 사업하는 사람이, 최선을 다했는데 부도가 나면,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엄청난 피해를 겪게 된다. 이런 경우에는, 용서해 줄 수 있다. 

그러나 고의로 부도를 내고, 돈이 있으면서도, 갚지 않고 도망 다니면, 용서할 수 없다. 하나님은 아무 원한이나 미움 없이, 단지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가, 죽은 자의 가족에게 복수 당해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하여, 하나님은 도피성 제도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속에, 복수심을 가득 품은 채, 또 다른 사람을 살인하지 못하도록,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피할 수 있도록, 도피성 제도를 만들어 주셨다. 그러니까 도피성은 피해를 입힌 사람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당한 사람이 또 다른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배려하신 제도이다. 

2. 도피성은 어떤 역할을 하는 장소인가?(4-8)
 
(1) 생명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4).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성읍에 받아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주하게 하고” 이처럼 도피성은, 살인자가 보호받는 안전한 장소이다. 실수로 살인한 사람은, 재빨리 도피성으로 달려와, 입구에 서서, 그곳 장로들에게, 사건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면 장로들은 그를, 도피성에 머무르게 했다. 복수하려는 사람들이, 그곳까지 따라와서, 그를 내어 달라고 할 때에 (5) “피의 보복자가 그의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의 이웃을 죽였음이라.” 
이렇게 도피성은 철저하게,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한 곳이었다. 사람을 죽이고, 도피성을 찾아온 사람은, 성 입구에서 장로들에게 말했을 때, 그가 실수로 살인했는지 아닌지, 회중들 앞에서 재판을 받아야만 했다. 재판을 받기까지는, 그 누구도 살인자를 처벌할 수 없다. 

재판 결과, 거짓이 아니라, 분명히 실수로 살인한 것이 판명되면, 계속 도피성에서 지낼 수 있지만 고의로 사람을 죽인 사실이 발견되면, 그는 도피성에 머무르지 못하고 쫓겨나, 피의 보복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신19:12). 그의 고백이, 진실해야 됨을 말한다. 

(2) 자유롭게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6).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일단 도피성에 들어가게 되면, 이 사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고 새로운 대제사장이 나오게 될 경우에는, 자기 집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부지중 살인한 자가, 그리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자기 당대에 살고 있는 대제사장이 죽어야만 가능했다. 살인한 자는 그 전까지, 절대로 ‘도피성’을 떠나면 안 되었다. 생명을 보존하려면, 계속 도피성 안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민35:28) “이는 살인자가,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도피성에 머물러야 할 것임이라,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 살인자가 자기 소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느니라.” 구약시대 이스라엘 제사장의 죽음은, 속죄의 값을 대신해서, 치르는 모형이다.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고 죽음으로, 생명을 살렸다. 

구약에서 죄지은 사람은,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희생 제사를 드렸다.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양, 소, 비둘기 등, 희생 제사를 드렸다. 생명 있는 짐승을 희생하여, 자신의 죽음을 대신했다. 그렇지만 짐승들의 희생은, 온전한 속죄가 될 수 없다. 
완전한 대제사장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구원이 온전하게 되었다. 대제사장의 죽음으로, 도피성에 피난한 자들은, 모두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죄인을 구원하고, 자유롭게 했다. 히브리서에는 16번씩,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으로 오셨다고 말씀한다. 

(히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9:12)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 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않고, 예수님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단번에 이루셨다. 따라서 예수님 이외에, 다른 속죄는 없다. 다른 방법을 말한다면 이단이다. 우리는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었다. 

(3) 도피성은 어디에 있었나?(7-8). 
“이에 그들이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과, 여리고 동쪽 요단 저쪽,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 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 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구별하였으니” 하나님은 부지중에 살인한 사람이 어디서든지 쉽게 갈 수 있는 곳, 가나안 땅 동편과, 서편에 6곳을 ‘도피성’을 만들었다. 요단 서편에 3곳 (게데스, 세겜, 헤브론), 요단 동편에 3곳 (골란, 라못, 베셀)을 ‘도피성’으로 정해 놓으셨다. 

그래서 부지중에 살인한 경우, 각기 그들이 사는 지역에서, 쉽게 ‘도피성’을 찾아갈 수 있게 했다. (신19:3)을 보면, 도피성에 이르는 길을, 잘 닦아놓도록 말씀했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씩, 백성들은 ‘도피성’에 이르는 길을, 잘 닦아야 했다. 
그뿐 아니라 도피성을 향한 도로는, 폭을 14m 이상 되도록 넓게 포장하였으며, 길을 잃지 않도록, 갈래 길이 생기는 곳에는 ‘미클라트’(도피성)라는 안내판을, 곳곳에 설치해 놓게 하였다. 물론 글자도 크게 써서, 달리면서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은, 도망자가 가장 짧은 시간에, 도피성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한 조치였다. 그래서 누구든지 쉽게 도피성으로 피할 수 있도록 하셨다. 지정한 이유는, 살기 위한 방법은 반드시, 내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정한 방법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 위치의 의미는 무엇인가? 

① 게데스(שׁ󰕋󰙐) : “거룩하게 구별되고, 성결한 것”을 말한다. 성도들은 거룩한 존재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εκλησια’로 밖으로 불러낸 무리들이다. 멸망하는 이 세상에서 불어낸 자들이 바로 교회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안으로 피하는 자는, 속죄함을 받아 거룩해질 수 있다. 

② 세겜(ם󰗒󰚉) : “어깨”란 말로, 힘과 능력을 상징한다(사9:6). 
세겜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구원 얻음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힘이요, 능력자체이다. 죄를 지으면 힘을 잃어, 약해지고 무능해지나, 죄 사함을 받아 성결해져, 새 힘을 얻게 된다(롬8:1). 

③ 헤브론(ןוֹר󰔮󰖒) : “연합, 동맹, 교제”를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죄를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교통함과 교제함을 뜻한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후 도피성으로 들어가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④ 베쩰(ר󰙀󰔳) : “보석, 요새”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보석이며, 견고한 요새지’를 뜻한다. 그래서 다윗은 (삼하22:2)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⑤ 라못(תוֹמא󰙜) : “높다, 영화롭다”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인이 의인이 되고, 진노의 자식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광스런 기업의 후사가 되었다(사53:4, 엡2:1-7). 

⑥ 골란(ן󰗚גּוֹ) : “흥분하며, 뛰놀며”를 의미한다(말4: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영원한 구원의 기쁨으로, 마치 외양간에서 나온, 즉 굴레 벗은 송아지와 같이 기뻐하며, 즐겁게 뛰게 된다는 말씀이다. 

3. 도피성은 보복 당하지 않도록 만드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다(9).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라.” 

(1)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일은, 도피성과 유사하다. 그래서 예수님의 모형이고, 그림자이다. 
그리스도가 하신 일과, 도피성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비슷한 점이 아주 많다. 

① 일단 도피성 안으로 들어 온 자는, 그 누구도 내쫓을 수 없었듯이, 예수님도 자기 앞으로 나오는 자를, 영접해 주시고 결코 내어 쫓지 않는다. (요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② 도피성이 보복자로부터 안전을 보장해 주듯이, 예수님은 (요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시면서 영원한 구원의 보장이 되어 주신다. 

③ 그 당시 모든 성들은, 밤에는 문을 다 닫아 놓았지만, 도피성만은 항상 문을 열어 놓았다. 이처럼 구원의 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모두 구원을 얻는다. (요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오늘도, 범죄 한 사람들을 기다린다. 어떤 죄인이든지, 예수 그리스도는 밤이나 낮이나, 항상 문을 열린 도피성이 된다. 도피성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고의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으로 제한이 되었다. 고의적으로 죄를 지었다면, 그 사람은 도피성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죄를 범하였든지,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신다. 우리가 알지 못하고 지은 죄 뿐만 아니라, 뻔히 알면서 지은 죄까지라도, 다 용서해 주신다. 예수님께 나아오면 과거에 어떤 죄를 범했을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다. 

(2) 예수 그리스도는 도피성보다, 더 탁월하신 일을 이루어 놓으셨다. 
도피성은 고의로 살인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희망의 장소였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소망이 되신다. 9절을 보면, 도피성은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민족이 다 들어갈 수 있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남녀노소, 빈부귀천, 피부, 인종, 유식과 무식에 관계없이 구주가 되심을 보여준다. 도피성은 죄인을 보호해 주는 곳이다. 성경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기에, 죄인은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도피성을 마련해서, 죽을 사람을 살려주셨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이 죽어, 심판 받을 죄인을 온전히 구원해주었다. 노아는 홍수심판이 있었을 때, 도피성역할을 했던, 방주 안에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심판 날에도 안전히 거할 수 있는, 피난처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도피성이시다. 
예수님을 찾으면, 비로소 영혼의 안식을 얻을 수 있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를 원한다면, 도피성이신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기 바란다. 예수님은 지금 이렇게 말씀한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안전한 피난처를 가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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