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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삭의 혼인과 복음전도 (창 2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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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의 혼인과 복음전도 (창 24:1-9)

창세기 23장과 24장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창세기 23장은 장례식이고 24장은 결혼식입니다. 창세기 23장은 이별의 슬픔이고 24장은 만남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결혼을 통해서 경건한 후손을 낳고 기르는 일도 중요합니다. 두 가지 다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가 140세 정도 되었습니다. 이삭을 100세에 낳았으니까 이삭의 나이도 40세가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보통 30세가 되면 결혼을 했는데 왜 늦어졌느냐? 이삭이 마마보이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만 있으면 아내도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남들보다 늦게 장가를 가게 된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창 24:67). 

40세가 넘은 사람이 장가를 가는데 자기도 장막을 따로 지어서 아내를 들이지 않고 모친의 장막에 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어머니에게 마음을 쏟고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은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마지막으로 행한 대단히 중요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4장은 성도의 육신적인 혼인의 원리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성도의 영적인 혼인 즉, 성도가 어떻게 복음 전도를 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복음 전도의 원리를 생각하면서 10월 13일에 있는 하반기 새생명 초청잔치를 준비해야 되겠습니다. 

Ⅰ. 성도의 결혼 원리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아버지로서 아들 이삭의 배우자 문제에 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아내를 맞이할 때 아버지도 큰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들이 아버지에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서 결혼하겠다는데 아버지가 무슨 상관입니까?” 이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아버지에게도 며느리가 누가 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불렀습니다. 이 늙은 종의 이름이 창세기 15장 2절에 보면 ‘다메섹 엘리에셀’이라고 나옵니다. 늙은 종이라고 번역되어있지만 사실은 종들 가운데서 가장 연장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이 탄생하기 전 이 사람을 자신의 상속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아브라함이 아꼈고 충성스러웠던 사람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엘리에셀을 불러 그의 손을 자기 환도뼈 밑에 놓고 맹세를 시켰습니다. 환도뼈 밑에 놓고 맹세를 했다는 것은 만약 이 맹세를 지키지 않으면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4:3~4). 

가나안 족속의 딸들은 내 며느리가 될 수 없으니까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데려오라고 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왜 배우자 문제를 아들에게 맡기지 않고 아버지가 강요하느냐며 아브라함이 잘못했다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는 ‘누구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가?’입니다. 알라, 부처, 삼신할머니, 여호와 하나님 중 누구를 나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인지가 첫 번째로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누구를 배우자로 택할 것인가?’입니다. 결혼을 잘못하게 되면 다시 무를 수도 없고 평생 원수로 고생하며 살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배우자 선택은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 24장은 자녀들의 혼인에 관한 성서적인 원리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자녀가 배우자를 맞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신앙을 갖고 있냐는 것입니다. 신앙이 다르면 결혼하지 말아야 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고후 6:14). 

의와 불법 그리고 빛과 어둠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성령을 모신 사람과 악령을 모신 사람은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외적인 조건에 이끌려서 살지 몰라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영끼리 충돌하게 되고 반드시 문제가 생기게 되어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성도는 성도와 결혼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위나 며느리 맞을 때도 절대 불신자를 맞아서는 안되겠습니다. 약간 모자라도 신앙을 가진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배우자의 조건은 인격입니다. 신앙이 같아도 인격이 다르면 가정이 망가질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결혼의 조건을 물어보면 잘 생기고 학력이 높아야 하며 돈이 많아야 된다고 대답합니다. 하지만 돈이 많고 학력이 높은 사람 중에도 아주 별 볼 일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잘생긴 사람 중에 바람둥이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보다 인격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가나안은 세상을 상징하기 때문에 가나안 족속의 딸들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여자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며느리를 맞이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가서 여자를 만나 따라오겠느냐고 물었을 때 거절한다면 데려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 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 24:8).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순종치 않는 성품을 가진 여자는 이삭의 배우자가 될 수 없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아브라함의 고향에 도착한 엘리에셀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창 24:14). 

여자에게 물을 달라고 해서 자신뿐만 아니라 약대에게도 물을 주는 사람을 며느리로 데려가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인격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삭의 아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인격을 보고 한 결혼은 평탄하지만 외적인 조건을 보고 한 결혼은 많은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코 외적인 조건만 보고 결혼해서는 안되겠습니다. 

세 번째로 배우자를 구할 때 중요한 것은 기도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 (잠 19:14). 

집과 재물은 조상이 물려줘도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슬기로운 배우자는 하나님이 예비하셨다가 기도할 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결혼하거나 며느리 혹은 사위를 얻을 때는 먼저 그 사람의 신앙이 무엇인지 물어봐야 됩니다. 그리고 인격을 점검해봐야 되겠습니다. 아무리 교회를 나와도 인격이 엉망인 사람은 안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Ⅱ. 본문에 나타난 복음 전도의 원리는 무엇인가? 

이삭은 신랑으로서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서 신부를 구하고 아버지의 종은 주인의 아들을 위해서 신부를 찾아 나섭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종들 그리고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교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인 엘리에셀은 먼저 믿고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어떤 책임이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고후 11:2).

 바울이 한 일은 중매입니다.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중매하는 일에 열심을 낸다고 한 것입니다. 먼저 믿고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이 택하여 예비하신 그리스도의 신부들을 신랑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중매해야 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엘리에셀은 어떤 단계를 거쳐서 리브가를 이삭에게 중매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명한 명령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에게 맹세를 시키고 명령했습니다.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4:3~4). 

이 명령을 어길 시에는 내가 너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9~20). 

이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성도들에게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엘리에셀은 아브라함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서 먼저 기도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이삭의 아내가 될 여자를 순적히 만나게 해주시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로써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했습니다. 전도는 기도 없이 안되는 일입니다. 이번 새생명 초청잔치에도 꼭 전도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에셀은 기도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 아브라함이 준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증거했습니다. 리브가의 온 가족 앞에서 말 한마디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증거해야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예수님을 믿으면 죄를 용서받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천국가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세요.” 

이렇게 있는 그대로 증거해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전도하는데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향한 훌륭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옳지 않은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접근합니까?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고 죄사함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갑니다.” 

이러면 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면 가룟 유다도 사랑하셨단 말입니까? 그가 예수님을 믿으면 사랑하시는 것이고 믿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메시지를 있는 그대로 전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영접하지 않으실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런 것은 20세기에 나온 복음입니다. 옛날 사도들은 그렇게 전한 바가 없습니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으라. 믿는 자는 구원받고 믿지 않는 자는 영원한 정죄를 받으리라.” 이렇게 전했습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다른 면으로는 엄청나게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가지만 믿지 않으면 불로써 소금 치듯하는 고통을 영원히 받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그대로 증거해야 됩니다.
 
우리가 메시지를 증거했는데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면 그것은 전한 종의 책임이 아닙니다. 그 책임은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만일 여자가 너를 좇아 오고자 아니하면 나의 이 맹세가 너와 상관이 없나니 오직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지니라” (창 24:8). 아브라함이 엘리에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건 네 책임이 아니니 내 아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데 그 사람이 믿지 않는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책임인 것입니다. 

또한 엘리에셀은 이삭의 신부를 구할 때 하나님이 사자를 앞서 보내셔서 자기의 일을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주인이 내게 이르되 나의 섬기는 여호와께서 그 사자를 너와 함께 보내어 네게 평탄한 길을 주시리니 너는 내 족속 중 내 아비 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 것이니라” (창 24:40).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면 주님이 사자를 먼저 보내주셔서 우리보다 앞서 행하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할 때 어렵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택한 영혼들에게 주님이 먼저 가셔서 마음을 예비하시고 전도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은 복음 증거에 방해가 되는 것에 일체 이끌리지 아니했습니다. 엘리에셀은 우물가에서 만난 리브가가 하나님이 택한 이삭의 아내라는 것을 확신하고 각종 예물을 주었습니다. 리브가가 예물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서 오빠 라반에게 보여주며 엘리에셀을 만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빠 라반의 눈이 확 뜨인 것입니다. 

라반은 야곱보다 한술 더 뜨는 사기꾼이었습니다. 엘리에셀을 데리고 자기 집으로 와서 음식을 주며 열흘만 쉬었다 가라고 합니다. 하지만 엘리에셀은 음식도 먹지 않고 쉬어가지도 않습니다. 라반이 준 음식은 순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뇌물이었습니다. 엘리에셀은 뇌물을 받지 않은 것입니다. 선물은 받아도 되지만 뇌물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엘리에셀은 뇌물에 이끌리지도 않고 열흘간 쉬었다가는 라반의 말에도 이끌리지 않았습니다. 주위를 분산시키지 않고 오직 주님이 주신 사명을 이루는 것에만 모든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교회에서 스피커를 구입하거나 건축할 때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뇌물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커피 한잔도 얻어 마시지 않습니다. 제가 대전에 있을 때 교회에서 스피커를 바꿨는데 스피커를 파는 사람이 제게 스피커 바꾼 사람을 사기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어봤더니 자기가 1억 원에 그 스피커를 공급했는데 영수증을 1억 2천만 원으로 써달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깎으려면 8천만 원까지도 깎을 수 있었는데 개인의 욕심 때문에 교회는 4천만 원을 손해 본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복음 전도의 사명을 받았습니다. 복음 전도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복음 전도의 사명을 흐트러뜨리는 다른 것에 이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불신자를 전도한다고 불신자와 같이 놀러 다니다가 불신자같이 되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은 주인의 사명을 다한 후에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먼저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인도해주셔서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성도의 기쁨 가운데 큰 기쁨은 기도가 응답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기도했는데 하나님이 응답해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그리고 우리가 전도하면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으시겠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 제가 믿겠습니다!”라는 대답을 듣는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리브가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네가 이 사람과 함께 가려느냐 그가 대답하되 가겠나이다” (창 24:58). 

제가 어느 날 전도를 하는데 열심히 전도한 사람은 거절했지만 그 옆에서 차를 나르던 사람이 듣고 믿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사람의 영혼에 임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입니까? 하늘의 천사들도 기뻐하고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우리 영혼에도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무엇보다 엘리에셀이 누린 가장 큰 기쁨은 자신의 중매로 인해서 주인의 아들이 기뻐하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모친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창 24:67). 복음 전도자에게는 주님이 기뻐하시고 영광 받으시는 것이 최고의 기쁨입니다. 


결론 

우리 성도들은 육신의 결혼도 잘 해야 됩니다. 자녀들의 결혼을 잘 시켜야 됩니다. 부족해도 신앙을 가진 사람과 시켜야 되고 인격이 온건한 사람과 시켜야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무엇보다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예비하신 신부를 중매하는 일에도 헌신이 되어야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영적인 결혼 즉,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는 일에도 헌신이 돼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이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해주시며 큰 기쁨으로 우리에게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반기 새생명 초청잔치 전도지를 드렸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이 전도지를 통해서 한 영혼이 구원받게 해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고 기도한 사람에게 가져다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게 되면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에게도 기쁨이 되겠습니까? 이번 10월이 큰 기쁨의 달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피영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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