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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요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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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요 12:1-8)  

한 때 “인간아! 왜 사냐?”라는 말이 유행된 적이 있습니다. 차라리 이 땅에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저런 사람은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말도 돌았습니다.

“저런 것을 낳고도 네 어머니가 미역국을 먹었겠지.”

이렇게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꼭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있습니다.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후란시스 베이컨은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미 인간, 거미 인간 그리고 꿀벌 인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개미는 열심히 일합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위하여 일합니다. 있으나 마나한 인간입니다. 거미는 피해만 줍니다. 차라리 나지 않으면 좋을 뻔 한 사람입니다. 꿀벌 인간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향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 14:21)  

오늘 이야기로 들어 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귀한 습관이 하나 있습니다. 손님들이 그 집에 오면 환영한다는 표시로 그 몸에 기름을 발라 주는 풍습입니다.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을 인하여는 근심치 아니하는 자로다”(암 6;6)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  

만일 손님이 왔는 데 기름을 발라 주지 않으면 환영하는 손님이 아니라는 표시입니다. 빨리 가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돌아 가셨습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본문 <유월절 엿새 전에>라는 말씀은 죽음을 바로 눈앞에 두고 일어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나사로 집에 들렀습니다. 나사로는 죽었다가 예수님의 기도로 살아난 사람입니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이 말씀을 보아 죽었던 나사로가 너무나 기뻐서 자기를 살려 주신 예수님을 초청하여 예수님을 위한 잔치를 하였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말로는 나사로가 한 턱을 쏘았습니다. 

이 때 마리아가 향유 한 병을 가지고 왔습니다.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로 예수님의 발을 씻었습니다. 행유 냄새가 온 집안에 가득하였습니다. 이런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던 가룟 유다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유다는 예수님과 12 제자의 돈을 맡은 제자였습니다. 그는 도적이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돈을 착복하는 이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 할 날을 위하여 이를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그리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막 14:21)  

어째서 가룟 유다는 차라리 나지 않으면 좋을 뻔 사람이라는 책망을 받았을 가요? 
  

1. 수전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면 무엇을 주어도 아깝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에게 무엇을 드려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자기 오빠 나사로가 죽었는 데 살려 주었습니다. 3일 되어 냄새가 났는 데도 살려 주셨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그 은혜를 갚을 수가 없었습니다. 300 데나리온의 향유를 부어도 모자랄 것같았습니다. 1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에 노동자가 7만원 정도 받는다면 2,000만원이 넘는 향유입니다. 

그래도 아깝지 않았습니다. 나는 만일 죽은 우리 어머니를 예수님이 살려 주신다면 평생 20억원을 갚으라고 하여도 선뜻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는 이것이 너무나 아까웠습니다. 그래서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그토록 사랑하여 향유를 부은 것을 아깝게 여겼습니다. 가룟 유다가 이렇게 말한 이유를 요한은 분명히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돈이 목적이었습니다. 돈이 최고였습니다. 예수님은 돈만 좋아 하는 수전노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돈을 제일 좋아 하는 사람은 중국인입니다. 그래서 중국인을 떼국놈이라고 말합니다. 돈만 좋아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배가 파선하여 사람들이 물에 빠져서 허부덕대며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중국인 한 명이 허리에 돈 보자기를 차고 가라 앉고 있었습니다.

“그 돈중에 100만원만 주면 건져주겠다.”

이 말을 들은 중국인이 “50만원으로 깍자”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중국인은 빠져 죽어가면서도 50만원만 깍자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러면 안 건져 주겠다.”

이 말을 들은 중국인이 말했습니다.‘
“그러면 죽겠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중국인에 대하여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돈만 아는 이였습니다. 

돈만 아는 가룟 유다같은 수전노를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늙고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제자들이 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들려줄 가장 귀중한 진리 하나를 말씀하여 주십시요.”

이 말을 들은 소크라테스는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말했습니다.
“아테네 산꼭대기에 올라가 시민들을 향해 간절히 외치고 싶은 말이 하나 있다네.”

제자들은 소크라테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이여. 돈을 모으는 일에만 충실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물려 받을 어린아이들에게 더욱 사랑과 정성을 쏟으십시오”

사람들은 너무나 돈돈하기에 소크라테스가 외친 말입니다
  

네로는 폭군이었습니다.

8,000만원 짜리 왕관을 썼습니다. 자기가 타고 다니는 노새와 조롱말에게 은으로 장식된 신발을 신켰습니다. 한번 출타하려면 수많은 군사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낚시할 때에는 금으로 만든 낚시 바늘만 사용하였습니다. 한번 입었던 옷은 결코 입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행복을 맛보지 못 하였습니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닙니다. 

돈은 비료와 같아서 사용할 때에만 가치가 있습니다. 돈은 신발과 같습니다. 신발은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안 됩니다. 돈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안 됩니다. 적당한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한 이가 취직 자리를 찾다가 온실에 임시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두 주간만 일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너무나 가난하여 점심을 싸가지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다른 인부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식사를 할 때 그는 굶으며 혼자 나무 밑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 때 주인이 옆으로 와서 도시락을 펼치더니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이 놈의 마누라가 나를 코끼리로 아나? 점심을 이렇게 많이 쌌어. 여봐! 나 좀 도와 줘! 이것 좀 먹어줘!”

그는 주인과 같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이런 일이 매일 계속 되었습니다. 이제 일도 끝나고 떠날 날이 되었습니다. 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드리러 갔습니다. 주인은 외출중이었습니다. 여 사무원이 책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여 사무원에게 말했습니다.

“주인님에게 며칠 일 잘 하고 떠난다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사모님에게도 전해 주세요. 매일 점심을 많이 싸주셔서 나까지 잘 먹었다고요.”

여사무원은 놀라며 말했습니다.

“우리 사모님은 5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주인님은 5년 째 혼자 살고 계세요. 당신 자존심 때문에 점심시간에 그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그는 눈물을 흘리며 주인에게 평생 은혜를 갚겠다고 다짐하며 떠났습니다. 남보다 많이 가졌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 아니라 사명받은 것입니다. 돈만 아는 가룟 유다같은 수전노를 향하여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요즈음 500만원만 주면 청부살인까지 한다는 인테넷을 보고 놀랐습니다. 현대인들이 점점 돈의 노예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돈만 아는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얼마전에 <돈이 다가 아닙니다>라는 제목으로 글이 인터넷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아내는 파킨슨병을 앓던 남편을 요양원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두 분이 함께 해온 일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 그 동안 번 돈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분은 10억 저금을 목표로 저금하고 있었습니다. 그 돈을 모두 어려운 기관에 헌금하고 나오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아! 홀가분히다.”

평생을 근검절약하며 살아오신 분이었습니다. 장사해서 모은 전 재산 10억원을 죽기 직전에 헌금한 것입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려고 이름을 밝히지도 않았습니다.

남편은 지난 5월 28일 지병으로, 아내는 이틀 후 뇌출혈로 각각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밝혀졌습니다. 이들 홍 용희,한 재순 부부였습니다. 이들이 남겨놓은 통장에는 280만원이 남아있었습니다.

둘째 딸이 글을 올렸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다섯 남매의 학비를 빼고는 모든 것을 악착같이 아끼며 살아오셨다. 더운 날에 선풍기 한 번 덜 켜고, 먹고 싶은 반찬 안 먹고 모은 돈임을 잘 알기에 더 자랑스럽다."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입니다. 유다는 돈을 사람보다, 돈을 선생님보다 더 중요시여겼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 위선자이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2,000만원 정도되는 향유를 예수님에게 붓자 가룟 유다는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은 자기가 돈을 떼어 먹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도적이었습니다. 요즈음 말로 삥땅을 치려고 그런 것이지 진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였다는 기사는 성경에 단 한 마디도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구실을 삼은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철저한 위선의 사람이었습니다. 이름부터가 위선자였습니다. 유다라는 말은 <찬송>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이름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찬송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를 따라 다녔으나 예수를 믿지 않았던 제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 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요 6;63-71)  

또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얼마나 위선자인지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을 흘리시면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였습니다. 베드로 요한 그리고 야고보는 예수님 곁에 있었습니다. 비록 졸면서 기도하였을 망정 같이 옆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8명의 다른 제자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에 가룟 유다는 예수를 은 30냥에 팔아 버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잡으려는 사람들을 데리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입을 맞추는 자가 바로 예수님이니까 잡으라고 말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각본대로 그 곳에 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앞으로 와서 입을 맞추면서 말했습니다.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마 26;49)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마음을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마 26;50)

얼마나 위선적입니까? 가장 사랑하는 표시인 키스를 예수를 잡아 죽이는 신호로 삼은 가룟 유다의 위선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위선자 가룟 유다를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위선자란 어떤 사람입니까? 앞과 뒤가 다른 사람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사람입니다.
이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과 저 사람 앞에서 말하는 것이 다른 사람입니다.
밤과 낮이 다른 사람입니다.
혼자 있을 때와 사람들이 있을 때가 다른 사람입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입니다.
충신같은 데 배신자인 사람입니다.
제자로 있으면서 스승을 파는 사람입니다.
몸은 이리이면서 양의 탈을 쓴 사람입니다.

죄짓는 자가 위선자가 아니라 죄짓고 안 지은 척 하는 사람이 위선자입니다. 죄를 짓고 죄인이라고 통회 자복하는 다윗과 같은 사람은 위선자가 아니라 진실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같은 위선자를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3. 마귀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가룟 유다는 마귀의 종이었습니다. 세상에 종노릇 할 곳이 없어서 마귀 종 노릇을 하는 것은 비천한 것입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한 사람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판 것은 제 정신으로 판 것이 아니었습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서 판 것입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요 13;2)  

한번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열 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요 6:70)  

그 사람이 밤낮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그것의 종입니다. 밤낮 돈 생각만 한다면 돈의 종입니다. 밤낮 술만 생각한다면 술의 종입니다. 이성만 생각하였다면 성의 종입니다. 

늘 예수님만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종입니다. 가룟 유다는 밤낮 예수 팔 생각만 하였습니다. 마귀의 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귀는 원어로 디아블로스라고 합니다. 분리시키는 자라는 뜻입니다. 마귀의 속성은 분리시키는 자이기에 어디 가나 분리시킵니다. 유다 속에 마귀가 들어가서 예수님과 불리시켰습니다. 마귀의 속성이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강을 건너고 싶었던 전갈이 있었습니다. 강건너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개구리를 만나 부탁하였습니다.

“개구리야. 너 저 강을 건널 때 네 등에 나를 올려 다오. 나도 강을 건너고 싶다.” 그러나 개구리는 거절하였습니다. 

"안 돼, 우리가 중간쯤 갈 때에 너는 나를 쏘아댈 것이고 그러면 우리 둘은 모두가 물에 빠져 버릴 거야." 

전갈이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아. 너 죽고 나 죽는 것인 데 그럴 수 없지. 나도 그 정도는 알아.“

나도 그 정도는 너만큼은 생각할 줄 알아 말이야. 

전갈은 계속 개구리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개구리는 설득을 당하였습니다. 드디어 개구리는 전갈을 엎고 강을 건너기 시작하였습니다. 강 중간쯤 갔을 때였습니다. 개구리가 말한 대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살이 세어지자 전갈은 개구리를 쏘아대기 시작하였습니다. 개구리 온 몸에는 독이 퍼져 둘 다 물속으로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화가 난 개구리가 원망하며 말했습니다. 

"너는 나에게 그러지 않기로 약속 하지 않았니? 우리들은 다 죽게 되었잖아.“ 

전갈이 말했습니다.
"미안해 개구리야"

그리고 전갈이 슬프게 대답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쏘는 것이 나의 본성이라 나도 모르게 본성대로 하였다.“  

마귀의 속성은 분리입니다. 유다는 마귀의 종이 되어 마귀의 속성을 그대로 들어 내고 말았습니다. 악역을 맡은 이가 연극이나 영화에서 반드시 필요합니다. 없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이런 이는 불행합니다. 필요한 사람이나 불행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러 오신 분이십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죽으러 오신 분이시기에 누군가가 예수님을 죽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가룟 유다가 맡았습니다. 악역을 맡은 것입니다. 누군가가 해야할 일이지만 가룟 유다가 맡아서 예수님을 팔아 죽게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의 말로는 비참하였습니다.

자살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가룟 유다의 죽음을 상세히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팔았습니다.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이는 당시 종 한 명을 사고 파는 가격입니다. 요셉을 형제들이 팔아 버릴 때에도 은 30냥에 팔았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됨을 가룟 유다는 보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은 30냥을 도로 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도로 물러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물러 줄 리가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을 성전을 향하여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목매달아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비참한 최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향하여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 가요?

1. 가룟 유다는 수전노이기 때문입니다.

2. 가룟 유다는 위선자이기 때문입니다.

3. 가룟 유다는 마귀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렵니다.

어느 곳에 아주 가난한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순진하여 누구에게 돈을 꾸어 달라는 말도 하지 못 할 정도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을 정도로 어려워졌습니다. 그는 생각다 못 하여 하나님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하나님! 예수님이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믿습니다. 제게 500만원만 주시면 조그만 땅이라도 사서 농사를 짓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는 이 편지를 어디에 부칠지 몰라 고민하다가 나라에서 제일 높으신 분이 대통령이기에 <대통령 귀하>라고 주소도 없이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대통령은 이런 편지를 받고 웃으면서 250만원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기뻐하면서 하나님께 말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다음부터는 제게 직접 주십시오. 대통령을 통하여 주시니까 대통령이 반을 떼어 먹고 반만 보냈습니다."

정말 순진한 농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가룟 유다 같은 이를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다는 평을 듣지 않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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