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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구별된 성도의 모습 (민 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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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된 성도의  모습 (민 6:1-8)

오늘은 “구별된 성도의 모습”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본문의 민수기 6장은 나실인의 규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실인은 “구별된 자” “하나님께 바쳐진 자” “분리된 자”라는 뜻으로,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즉 이 시대 세상과 구별된 온전한 성도의 모습을 예표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의 여러 인물들 중에서도 사무엘이나 요한과 같은 인물들은 평생 나실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 시대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별히 오늘 세례식과 성만찬 예식을 거행합니다. 세례는 “죄를 씻는다”는 뜻으로 “성결, 구별”을 의미합니다. 이는 곧 영적인 나실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만찬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떡을 먹음으로 우리의 죄를 씻음 받고, 주님과 하나 되어 거룩하게 구별되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하여 세상과 구별된 나실인의 삶을 살아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합니다.

구별된 성도의 첫 번째 모습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실인으로서의 삶이 세상유혹을 이기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포도주와 독주는 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의 주석에도 이와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멀리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떠나라” “완전히 결별하여 살라”는 뜻으로 나실인은 세상과 구별되어 하나님 앞에 나와 서원하는 기간 동안은 철저하게 세상을 멀리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이 말씀은 성도들이 이 세상의 모든 유혹을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으로 무장된 성도가 말씀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나실인은 어떻게 보여지고 있습니까? 

고후 7:1절에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 했고, 엡 5:18절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살전 5:22절에서는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신약에서 복음적으로는 성령에 취하는 것이 나실인의 삶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약의 나실인은 하나님 앞에 철저이 삶이 구별된 자였고 이것은 즉 성령을 충만함을 받은 자의 모습의 대표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실인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요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람의 모습은 세상의 악한 모양도 본받지 않는 성령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솝의 우화 중에 "파리와 불나방"라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파리가 향긋한 냄새가 나는 꿀 항아리에 앉아서 꿀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것이라서 그야말로 꿀맛입니다. 처음에는 변두리에서 조금씩 빨아먹었는데 얼마나 맛이 있던지 꿀맛에 유혹 받기 시작합니다. 그래 나중에는 아예 꿀 항아리 속에 들어갑니다. 꿀 항아리 속에 들어가니까 이게 맘대로 되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날개가 꿀에 붙어 가지고 날 수가 없습니다. 결국은 꿀 속에 파묻혀서 꼼짝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때에 불나방 한 마리가 날아와서는 파리의 모습을 보고선 핀잔을 줍니다. 빈정되는 불나방 앞에 파리가 할 말이 없습니다. 잠시 후에 저녁이 되어 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기 시작합니다. 등불을 보고선 불나방들이 모여듭니다. 불나방들이 불 가까이에 모여들면서 좀 더 밝은 곳으로 모여들다가 그만 그 불에 타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꿀 속에 파묻혀 있던 파리가 "너는 나 보다 더 바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자기 몸을 구별하지 못하고 세상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일시적인 쾌락과 자기만족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파리와 불나방과 같은 신세가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운 일들이 부단히 우리를 유혹하고 있는데 이러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의 나실인의 모습을 통해 이 시대 우리도 나실인의 모습처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과 철저히 구별되어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의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는 이 시대 깨어있는 나실인의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별된 성도의 두 번째 모습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시체를 가까이 한다는 것은 부정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시체는 곧 죽음을 의미하며, 죽음은 죄악의 결과물입니다. 심판과 저주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7절은 부모 형제가 죽어도 몸을 더럽히면 안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구약적으로는 부모 형제 그 누가 죽었다 할지라도 그 시체와 접촉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의 죄성을 하나님께서는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하여 드린다는 것은 이 세상 더러운 죄악과 완전히 분리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8절에도 나실인은 거룩한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깨끗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속한 성도들의 삶이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결코 들어 갈 수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의 천국 복음을 듣고 이제 우리의 모든 죄의 문제가 해결되고 그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정결케 되었다는 사실 앞에 믿음으로 고백하고 나실인의 삶으로 거듭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대서양을 최초로 횡단한 챨스 린드버그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미국 사람인데 1927년 5월에 25살의 나이로 경비행기를 타고 뉴욕에서 파리까지 17시간에 횡단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어느 담배회사 사장이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린드버그가 자기 회사 담배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여주면 전 세계에 자기 회사의 담배가 선전이 되어서 장사가 잘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제안을 했습니다. 

"당신이 영국에 도착할 때에 우리 회사의 담배를 손에 들고 있어도 좋고, 입에 물고 있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당신이 담배 든 사진을 한 장만 찍으면 됩니다. 그렇게 하면 그 대가로 5만 불을 주겠습니다." 1920년대 말의 5만 불은 엄청난 액수입니다. 

그런데요 이런 이야기를 다 듣고 있던 린드버그가 말을 합니다. "저를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셔서 감사하긴 합니다만은 저는 세례교인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서 담배 선전하는 일은 하지 못하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세상과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구별된 사람들은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사람들이 구별되지 않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산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와 여러분은 구별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구별된 나실인의 삶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세상이 죄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물리치시고 언제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3.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해야 합니다.

구별된 성도의 세 번째 모습은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적으로 나실인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본문 5절에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머리를 길게 길러야 하는 것은 영적으로는 당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인식의 표시였고, 이것은 그야 말로 멀리서도 그 사람의 머리만 보아도 하나님 앞에 정결한 자의 표식이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실인의 모습은 언제 어디서나 누가 보아도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서의 향기가 나타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 앞에 구별된 성도의 삶은 세상속으로 들어가면 안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신약에 와서 오히려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 5:13-14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세상 속에서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죄악 세상에서 살아가라는 것이 아니라 죄악 세상 속에서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빛을 통해 어두움이 물러가게 됩니다. 소금을 통해 짠 맛을 내는 것처럼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빛을 내며 짠 맛을 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과 동화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구약의 나실인이 머리털을 깔지 않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표식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 속에서 빛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소금이 짠 맛을 내야 하듯, 빛이 어둠속을 비춰야 하듯 예수님의 영적자녀로서 우리의 삶 속에 예수님의 향기를 내뿜는 거룩한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외국 사람들이 종종 한국 사람들에 대한 표현을 할 때 마늘 냄새가 나는 것으로 구별한다고 합니다. 사실 마늘을 매일 먹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듣기에 따라서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이야기 이지만 우리도 반대로 외국 사람들을 말 할 때 느끼한 버터 냄새에 비유하곤 합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의 식생활에 따른 몸에 베어버린 냄새를 말하는 것이겠지요. 술을 마신 사람들에게서 술 냄새가 나고 담배를 피는 사람에게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담배를 피운 사람이 아무리 목욕을 해도 그 냄새가 가시지 않는 것처럼 예수그리스도의 자녀로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서 언제 어디서나 멀리서 보아도 우리의 삶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향기라 나야 합니다. 죄악에 물든 세상의 냄새가 풍기는 것이 아닌 예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어둠을 비추는 빛과 같이 짠 맛을 내는 소금과 같이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향기를 내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나실인의 삶이었고 이제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의 나실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데 있어서 철저히 자신을 정결케 하고 죄를 멀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자녀로서 나실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철저히 말씀으로 세상을 이기고 예수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을 살아갈 때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오늘이 말씀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자녀로 거듭나는 성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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