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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믿음으로 (히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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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를 무너뜨리는 믿음으로 (히 11:30)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 신앙생활 초기에 우리는 종종 믿음이 우리의 모든 고통을 예방하고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를 합니다. 혹은 내가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내 인생의 노정에 장미꽃과 같은 아름다운 삶이 펼쳐질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의 그 기대와 좋은 믿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여정에는 때때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예측하지 못했던 고난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힘과 지혜로 극복할 수 없는 난관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실상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할 때에라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됩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서도 나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과 약속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고난은 환경의 장애이지 생각과 의지의 장애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복음송 가운데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고통 가운데 계신 주님 변함없는 주님의 크신 사랑 영원히 주님만을 섬기리."

그렇습니다.  고통 가운데서도 변함없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셔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면 나에게만 이런 고통이 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더구나 그 고난 때문에 이렇게 불행하게 산다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물들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다시 일어섰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고난이 가져다주는 고통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에 따라 그 고난이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여정에는 때때로 우리의 생각으로는 예측하지 못하고, 우리의 힘으로 극복할 수 없고, 우리의 지혜로도 뚫고 나갈 수 없는 난관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인생의 실상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는 우리들의 여리고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으로 이 여리고를 뚫고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저들 앞에 거대하게 우뚝 서 있던 여리고는 무너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혹은 민족적으로 여리고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개인과 가정의 삶에 어려운 여리고, 내 힘과 지혜로 뚫고 나갈 수 없는 어려운 난관을 마주 대하고 계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경제의 여리고, 질병의 여리고, 불신의 여리고, 환경의 여리고 ….  그런데 성경은 이런 여리고의 벽도 무너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그렇다면 인생의 도상에서 여리고를 경험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배워야 할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는 믿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져야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까?

첫째로,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여호수아 6장 1절과 2절에 보면 하나님의 약속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앞에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여호수아 6장 1절과 2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로 말미암아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가 없더라.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으니."

여기 1절 말씀에 보면, 여리고는 굳게 닫혔다고 했습니다.  굳게 닫힌 여리고성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문이 굳게 닫혔다는 표현은 당시 가나안 땅으로 행진해 들어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 여리고 성이 얼마나 공략하기가 불가능한 성이었는가를 심리적으로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높은 여리고 성, 그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여리고 성의 상태에 관해서 신명기 1장 28절에 보면 당시 가나안 땅에 들어가 40일 동안 정탐을 했던 정탐꾼들에 의해서 이렇게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한 마디로 말해서 이 성이 얼마나 견고성과 위엄성을 가지고 있었던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3장 5절에도 보면, "그 모든 성읍이 높은 성벽으로 둘려 있고 문과 빗장이 있어 견고하며."

인간적으로 보면 이 성읍의 점령은 처음부터 전혀 승산이 없는 불가능한 도전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성읍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넘겨주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성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그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견고한 성읍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여리고 성은 여전히 그들 앞에 우뚝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눈앞에 보이는 높은 여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주께서 약속하셨다. 저 성읍을 우리들 손에 넘겨주시겠다고."  이 성읍이 그들의 손안에 있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그들이 더 이상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천지는 변해도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할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변해도 우리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는다면, 그 약속이 나에게 있다면, 그리고 그 약속을 붙들 수가 있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성경은 성경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특성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특성은 이 성경은 약속의 책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은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의 약속이고, 신약은 예수님이 오신 이후의 약속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성경은 약속의 책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 번 하신 약속은 천지가 변해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에게 이 약속을 주셨다.  그 약속을 붙들 수 있다면,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만큼 달라질 수가 있을까요?

미국에 흑인 교육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부커 와싱톤(Booker T. Washington)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나고 링컨의 노예 해방이 선언된 후에 자기를 고용하고 있었던 백인 주인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동안 밀려있었던 빚을 모두 갚습니다.  해방 선언 이후에 흑인들은 자유였고, 그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러나 부커는 주인 앞에 나타나 자신의 빚을 다 갚습니다.  주인이 놀라면서 부커에게 묻습니다.  "아무도 다른 흑인들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없는데 자네가 이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때 부커는 유명한 두 가지 대답을 합니다.  첫째는, 빚을 갚지 못하면 제가 자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를 때에만 내 인생이 진정으로 자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던 부커 와싱톤의 믿음, 이것이 그로 하여금 "흑인은 교육이 불가능하다"는 당시의 신화를 깨버리고 흑인들을 교육하고 그들의 새로운 인생을 여는 지도자로 일어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흑인들은 결코 미래도 없고, 교육될 수도 없다는 견고한 신화의 벽을 깨트리는 도전과 새로운 인생이 그의 앞에 펼쳐졌습니다.  왜냐하면 약속의 말씀을 믿었던 그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이 동일한 믿음으로 여호수아와 그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견고한 여리고의 벽을 무너뜨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 땅을 너에게 주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그들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도성을 깨뜨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가운데 지금 내 인생이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벽 앞에 서 있다고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혼자 조용히 성경을 펼쳐보십시오.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열어보십시오.  그리고 이 음성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인 것을 믿으십시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을 수 있다면, 그리고 붙들 수가 있다면, 그리고 그 약속의 말씀에 의지하여 일어나 걸어갈 수가 있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내 앞에 견고하게 서 있는 저 여리고의 벽이 무너져 가는 광경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의지하여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진다면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믿음, 그것은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상황, 어떤 처지에 있다고 할지라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그 말씀 앞에 조금도 의심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마십시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기만 한다면 내가 원하는 내 때보다 더 정확하신 하나님의 때에 여리고성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여리고를 경험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배워야 할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는 믿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두 번째,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약속의 말씀을 알고 믿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행동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을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 하나님의 지침에 순종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행동을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셨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말씀 앞에 오직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지침이 때로는 내 이성으로 판단했을 때 매우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으로 보여도 순종하시겠습니까?  아니 순종을 명할 바에는 이성적인 순종을 요구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비이성적인 순종을 요구하실까요?

저는 이것이 바로 믿음의 테스트라고 생각을 합니다.  믿음의 시험 말입니다.  우리에게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일을 하라고 하면 그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가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이성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명령에 관한 일들일 때, 그것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기독교 신앙을 비이성적이거나 반지성적인 신앙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독교는 이성과 상식을 지극히 존중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성에 묶인 종교는 아닙니다.  이성을 넘어섭니다.  굳이 말하자면 기독교는 이성을 뛰어넘는 초이성적인 종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파스칼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잘 이해하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신앙이란 이성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다."

내 이성의 한계를 알고,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께서 내 이성을 넘어서 말씀을 주실 때 그 말씀을 붙들고 순종할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믿음의 테스트입니다.  그래서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이성과 상식의 판단을 넘어서는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순종은 결국 시험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이 기억하고 있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모두가 이 믿음의 시험에서 승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순종을 요구하셨습니까?  앞에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여호수아 6장 3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너희 모든 군사는 그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그리고 그 다음 4절에 보면 제 칠일에는 일곱 번 돌라고 했습니다.  아니, 성을 향해 공격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을 매일 한 번씩 돌라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그렇게 돌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돌지 않고 돌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돈 사람이 아니고는 어떻게 그렇게 돌 수가 있습니까?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렇게 돌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을 돌았기 때문에 그 성이 무너졌습니까?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성을 돌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받아들이고 믿고 순종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믿음의 무너뜨린 것입니다.  저들의 순종이 무너뜨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때때로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우리의 삶의 행진의 어느 도상에서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원인이 무엇일까요?  내 삶에 무기력함이 엄습하게 되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축 쳐지고 맙니다.  이 무기력함의 원인이 무엇일까요?  내가 그리스도인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누구 못지 않게 성경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삶에서 무기력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을 몰라서 그럴까요?  아닙니다.

저는 다른 어떤 시대의 성도들보다도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성도들은 말씀에 관한 한 넘치는 정보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시대의 사람들보다 홍수처럼 넘쳐나는 말씀에 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할 것이며,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누구보다 더 잘 압니다.  내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지나치게 너무 많이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내가 알게 된 그 말씀 그대로 살려고 하십니까?  순종의 첫 걸음을 신실하게 걷고자 노력하십니까?

기억하십시오.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는 순종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생활의 길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해서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몰라서 신앙생활을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주의 제자들이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이것은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안 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시험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 앎이 단순히 지식의 획득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성경을 많이 알아서 머리는 커졌는데, 행동이 없는 그리스도인들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 한 가지를 아십시오.  내가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인생이 변하지는 않습니다.  내가 교회에 왔다는 그 한 가지 만으로 내 가정이 변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읽고, 성경을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좀 어려운 질문입니까?  그렇다면 쉬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밥을 먹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먹기 위해서 먹습니까?  살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밥을 먹는 중요한 이유는 먹고 삶의 에너지를 얻어서 힘있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가르치시고 기대하신 뜻대로 살고자 하십니까?  순종의 첫 걸음을 걷고자 하십니까?  문제는 순종입니다.  순종하는 행동입니다.  참된 믿음은 약속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 순종하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우리의 여리고는 무너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말씀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앞에 견고한 여리고의 벽이 그대로 있습니다.  내 삶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기력증이 나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혹여 순종을 거부하고 불순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다면 이제 그 불순종의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이 말씀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 순종의 첫 걸음을 걸어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제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 앞에 우뚝 서 있는 견고한 여리고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생의 도상에서 여리고를 경험하고 있는 저와 여러분이 배워야 할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는 믿음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세 번째로, 그것은 하나님을 바라며 침묵하는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리고 성을 도는 동안에 흥미 있는 한 가지 명령을 더 추가하셨습니다.  무엇입니까?  앞에 스크린에 띄워져 있는 여호수아 6장 10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외치지 말며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그리하다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외치라 하는 날에 외칠지니라 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명령하셨습니까?  너희들이 행진하는 동안에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너희 음성을 들리게 하지 말며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침묵의 행진을 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이런 침묵의 명령을 주셨을까요?  이 질문에 두 가지 가능한 추측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는, 만약 이 행진에 침묵이 명해지지 않았다면 이 성을 돌고 있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야, 우리가 돌았니?  이렇게 돌게?  이렇게 돈다고 글쎄 이 성이 무너지겠냐?  쓰잘 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일찌감치 관두자.  가자."

그리고 그의 선동은 순식간에 동조자를 얻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행진은 거기에서 그렇게 끝나버리고 말았을는지도 모릅니다.  이상한 것은 긍정의 이야기는 전파되는 속도가 엄청 느리고 힘이 듭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이야기는 그 전파의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고 강하다는 것입니다.  이 인간성의 연약함을 알고 계셨던 하나님은 어쩌면 그래서 침묵을 명령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침묵 때문에 할 수 없이 못하고 뒤에 있는 사람을 보면서 "돌았"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지만 꾹 참고 눈치만 보고 그냥 도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침묵을 명령하신 더 적극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침묵의 행진을 통해서 침묵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이미 주셨던 "이 성을 너희들의 손에 붙였다."는 약속의 말씀을 묵상할 뿐만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이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소원하신 까닭이었을 것입니다.  이 침묵의 행진은 쓰잘 데 없는 인간의 언어 대신에 하나님만을 바라보기를 원하셨던 하나님의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진지하게 영성을 추구한 모든 신앙의 선배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신앙훈련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침묵의 훈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런 진지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침묵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라 맥로린이라는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가는 패스워드는 침묵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가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귀에 들려오는 모든 인간의 언어를 막아버리고,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인간적인 말들을 닫고서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침묵으로 앉아 그분을 기다려보십시오.

우리 시대 영성 운동의 스승인 리챠드 포스터는 그가 쓴 '기도'라는 책에서 그가 만났던 어떤 믿음의 할머니의 말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침묵의 한 복판에는 매우 고요하고 매우 평화로우며 매우 침착한 주님이 계시다."

우리의 떠들썩한 삶과 떠들썩한 소리들 때문에 주님의 음성은 들려오지 않고, 주님의 임재는 경험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이 침묵을 명령하셨을 것입니다.  주께서는 바로 이런 침묵의 행진으로 주님을 경험하고, 주님과 동행함으로써 인생의 여리고를 깨트릴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충분히 침묵했을 때, 그리고 충분히 그분의 음성을 들었을 때, 마침내 주님께서 때가 찬 시각에 우리로 하여금 소리를 치라고 명령하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입에서 선포되는 소리야말로 믿음의 소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여리고를 깨뜨리는 믿음의 선포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는 얼마나 믿음의 소리일까요?  지나온 한 달, 아니 어제 우리의 입술에서 쏟아져 나왔던 그 수많은 말들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십시오.  어떤 말들을 하셨습니까?  얼마나 의미 있는 말들을 하셨습니까?  얼마나 무의미한 헛소리들이 스스로의 김을 빼고, 내 인생을 망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인생의 삶에서 김이 빠져버리면 남는 것은 절망과 허무와 무기력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침묵 속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침묵의 한 복판에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그리고 그 세미한 음성 속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일어나 믿음의 소리를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나님 안에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불가능한 이 어두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고 선언해 보십시오.  그러면 이 선언은 여리고를 무너뜨리는 기적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자기 소리를 내려고 하지 말고, 믿음의 소리를 내십시오.  자기 파장을 일으키려고 하지 말고, 믿음의 파장을 일으키십시오.  그러면 여리고의 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이 내 눈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선포가 기적을 낳습니다.  믿음의 파장이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인간의 쓰잘 데 없는 헛된 말들이 인생을 그르치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를 가로막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선포를 잘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은혜로 축복해 주십니다.  어떤 생명이든 고난과 역경의 삶이 있다고 하지라도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만 역사하면 단 번에 모든 상황을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간섭하시면 역경이 변하여 순경이 될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인생에 목자가 되신다면 내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큰 상을 베푸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가난과 굶주림과 저주받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복을 받은 사람들, 복을 받은 가문들, 복을 받은 백성들, 복을 받은 나라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들이 그냥 가만히 있었더니 어느 날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신뢰하고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서 순종했습니다.  때로는 내 이성과 판단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지만, 때로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조롱을 당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때로는 들려오는 인간의 소리에 귀를 닫고, 내 입에서 나오려고 하는 인간적인 말을 닫고 침묵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그 때에 그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선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가정의 복을 주셨습니다.  가문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가문을 통해서 민족이 일어나고, 세계 열방이 세워지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시작을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방향을 향해서 결단하고 달려가십시오.  그것이 나와 내 가정과 내 가문이 복을 받는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기어이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민족적으로 복 받는 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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