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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딤후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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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딤후 1:3-14)
    
작년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토크쇼는 ‘오프라 윈프리 쇼’였습니다. 25년간 브라운관을 지배해온 오프라 윈프리 쇼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초청인들과 인생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최종회의 ‘초대 손님’은 어느 누구도 아닌 그녀 자신이었습니다. 그녀가 종종 방송을 진행하면서 자동차를 선물로 주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말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차를 얻거나 치료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 저의 삶을 지탱할 수 있도록 도와준 교훈을 드리고 싶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마지막 선물을 공개했습니다. 신실한 기독교 신자이기도 한 윈프리는 ‘소명’이라는 주제를 던지며 누구에게나 소명이 있고, 삶에서 진짜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소명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지 말며 스스로에게 주어진 삶을 끌어안고 그 삶을 세상을 섬기는 데 쓰라고 조언했습니다. “스스로의 삶에 책임지세요.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사생아로 태어나 14세에 미혼모가 되었으며 그가 낳은 아이가 2주 후에 죽는 고통의 시절을 보낸 윈프리는 과거와 상처에 갇혀 지내지 않았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의 선택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그는 소명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선택하고 예수님께 초점을 맞춘다면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펼쳐질 수 있습니다. 

그가 남긴 명언들이 있습니다. “현재 상태로 머물러라. 당신이 원하는 바를 결코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픈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아라. 지혜를 얻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말합니다. “미래를 바라보았다.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뜰 수 없었다.”라고 합니다. 우리도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너무 눈부셔서 눈을 뜰 수가 없었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사도를 들어보라고 하면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사도들입니다. 이 분들은 사도바울이 말씀하신 것처럼 교회의 기둥과 같이 여기는 일꾼들입니다. 

갈2:9에 “또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의 야고보는 예수님의 동생 되시는 야고보로 예루살렘 교회의 초대 감독을 지내신 분입니다. 게바라는 분은 베드로입니다. 베드로의 본명이 시몬인데, 우리 주님은 시몬을 반석이라는 뜻의 게바, 베드로라고 부르셨습니다. 

게바란 아람어로 반석, 바위라는 말이고, 베드로라는 말은 헬라어로 반석, 바위라는 말입니다. 당시 헬라세계에는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유대 사회에는 게바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사도요한을 말합니다. 베드로를 따르는 많은 속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속사도라고 하면 사도들의 후계자로 후에는 교회의 감독이나 교부들이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수제자라고 하면 마가라는 분이 있습니다. 바울의 수제자라고 하면 디모데가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위대한 것은 많은 인물들을 양성하였고, 바울 주변에는 사람들이 항상 모여들었습니다. 디모데, 실라, 아볼로, 브리스길라, 아굴라, 디도, 두기고, 누가, 에라스도, 에바브라 등등 당대의 아주 많은 주의 종들이 사도바울을 통하여 양육을 받았고, 속사도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사도바울을 가장 훌륭한 사도로 인정하는 것은 사람들을 많이 세워놓았습니다. 지금도 사람을 세우는 교회가 좋은 교회요, 앞장서서 일하는 주의 사역자들이 일어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사도바울은 1차 전도 여행에서 마가라는 사람과 사이가 좋지 않아졌습니다. 마가라는 분은 본명이 요한 마가인데, 예루살렘 교회가 모였던 다락방 집 마리아의 아들로 바나바의 생질 조카였습니다. 바울의 친한 동역자였던 바나바가 마가의 외삼촌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전도단이 구부로 섬의 바보에서 배를 타고 터키의 밤빌리아를 거쳐 버가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에 요한 마가는 전도단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일로 후에 바나바의 함께 전도여행을 나오지 못하고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선교에 나섰습니다. 이 때 제2차 전도여행 중에 만난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 이르렀을 때에 거기 디모데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였고,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예수 믿는 형제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던 청년이었습니다. 

지금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내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디모데는 외할머니 로이스라는 분과 어머니 유니게라는 분으로부터 신앙적인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입니다. 디모데의 집안은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가문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집안 청결한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디모데는 사람을 긍휼히 보는 성품이 있었습니다. 남의 아픔을 보면 함께 울어주었습니다.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믿음을 가진 집이 쉽지 않습니다. 외할머니 로이스가 믿음이 좋았는데 그의 딸 유니게도 믿음이 좋았고, 마침내 디모데라는 아들이 사도를 도와 수많은 교회를 돌아보고 문제를 해결하고 다녔습니다. 

바울 서신이 13권이 있습니다. 13권 서신에서 편지를 보내는 분은 분명히 바울이지만, 디모데라는 사람의 이름이 함께 기록하여 바울과 디모데가 편지를 보낸다고 하였으니, 디모데가 그만큼 교회에서는 알아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에 보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라고 하면서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공동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 후서,빌레몬서까지 6권의 책이 편지를 쓰는 공동저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그림자와 같은 인물이 디모데입니다. 바울의 수종자로 일하였는데, 후에는 에배소교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를 다 돌아보는 귀하신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자세히 읽어보면 디모데가 의기소침해지고 담대함이 떨어지고 사도바울이 장기간 감옥에서 나오지 못함으로 혼자서 고군분투하다가 탈진한 것이 아닌가 할 정도입니다. 3-5절의 말씀은 디모데를 칭찬하고 디모데의 훌륭한 점은 태어날 때부터 물려받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격려하시는 말씀입니다. 

6절 말씀에서부터 본격적으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듯 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로 하여금 그가 받은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이 일어나듯이 다시 뜨겁게 타오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불이 꺼져갑니다. 그런 꺼진 불을 가지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불이란 땔감만 넣어주기만 하면 되살아나고 활활 타오릅니다. 난로에 기름을 부어주면 불이 일어납니다. 전등에 전기를 공급해주면 실내를 환하게 밝힐 수 있습니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항상 뜨거울 수는 없습니다. 상승곡선을 그리며 올라가다가 조금 내려올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없이 내려가다 보면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젊은 디모데를 위하여 안수기도해줄 때에 큰 능력을 받고 성령의 사람이 되었던 것을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처음 주의 종으로 부름받았을 때에 사도바울을 포함하여 장로의 회에서 안수를 받았습니다. 

딤전4:14에 보면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처음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열심 내고 헌신하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목회자도 설교만 해서는 능력 있는 은혜 생활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다른 목회자의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말하는 데서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하셨습니다. 

롬10:17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지난 주간에는 명성교회 치악산 수양관에서 정책당회를 준비하면서 수요기도회를 맞이하였습니다. 명성교회의 수요기도회를 인터넷으로 중계합니다. 김하나목사님이 설교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김삼환 목사님의 아들 목사입니다. 젊은 목사님이신데, 설교를 아주 박력이 넘치고, 설득력도 있고, 자연스럽게 설교하시는데, 아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의 설교를 들으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위기를 위기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또 하나의 기회로 보라고 하는 말씀에 은혜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광야로 내몰아가실 바로 그 때가 하나님이 동행하시는 순간이고, 그러한 연단을 거쳐야만 가나안의 축복을 받는다고 외쳤습니다. 자신도 지금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고 하면서 잘 극복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부르심이었습니다. 

계2:4-5에서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하셨습니다. 

디모데는 처음 안수 받을 때에 감격이 있었습니다. 감동도 있었습니다. 자기와 같이 연소한 사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선교사의 일원으로 안수해주시고 성령충만을 주신 은혜가 있었습니다. 

우리들도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고 주의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나설 때에 감동이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을 위하여 죽기까지 헌신할 것을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습니다. 그 때 잘 부른 찬송이 “부름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라는 찬송이었습니다. 

“1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만 따라 가오리니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어느 누가 막으리까 죽음인들 막으리까. 

2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3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마침 그 찬송이 개편찬송가에 들어오면서 그 찬송을 부를 때마다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암송해도 롬14:8의 말씀을 즐겨 암송했습니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하셨습니다. 

빌1:20-21 말씀에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이런 말씀을 암송하면서 소명감을 새롭게 다졌습니다. 

디모데는 담대하지 못하고 유약하였고, 의기소침하여 야전성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래서 소극적으로 주저앉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 옆에 있을 때에는 바울을 따라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던 사람이었는데, 열심을 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7절의 말씀으로 권면합니다. 

7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전투에 임하는 사람은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옛날 여호수아에게 모세가 남긴 말은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사사시대에 기드온의 300용사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8절에서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우리는 주님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므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신 복음을 증언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바울과 같이 주님을 위하여 감옥에 갇힌 그런 분들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고난 받는 것을 부담으로 생각하지 말고, 당연한 것으로 알고, 성숙한 사람으로 그런 고난은 내 몸으로 채운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합니다. 

골1:24에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하셨습니다. 

빌1:29에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주일 출석하는 정도의 신앙은 예수 믿는 사람의 가장 기본입니다. 기본적인 동작으로 만족하면 아직도 유치한 신앙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고난에 스스로 동참하고, 자신을 내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성숙한 사람, 고난도의 기술을 보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라면 능히 자신만을 위한 신앙생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시지 않고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귀하게 사용하시려고 거룩하신 소명으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고상하고 알아줄 만하여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르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우리의 인격이나 성품이나 행위가 하나님의 마음에 드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심히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고 부족한 중에 불러주셨습니다. 소명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합니다. 우리는 어느 자리에서 일하여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부름에 순종하면서 소명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구강외과 의사로 명성을 떨치는 ‘로버츠 에이몬’이란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오세올라 교회의 장로로서 세계 선교를 위하여 수입의 상당 부분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목사의 5째 아들이었던 에이몬은 학생 시절 목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기억하고 의사를 그만 두고 프린스턴 신학교에 뒤늦게 입학하여 후에 목사가 되었습니다. 바로 오랄 로버츠 목사입니다. 그는 유명한 부흥 설교자가 되었고 오랄 로버츠 대학교의 설립자로서 일하고 91세로 돌아가셨습니다. 

“나는 의사를 하든, 목사를 하든, 일의 종류와 관계없이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의사로 살았던 과거나 목사로서 살고 있는 현재나 저의 신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저는 언제나 하나님의 일꾼으로 산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합니다.”라고 간증합니다. 

그가 설립한 세계적인 오럴 로버츠대학교는 4,500명을 수용할 수 예배당이 있습니다. 채플실이 중앙기도 탑 옆에 지어진 것은 신앙 보다 지식이 우선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캠퍼스 중앙에는 크고 웅장한 기도탑과 아름답게 지어진 예배당이 있습니다. 이 건물 안에 이 학교의 목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건물 내부를 들어가면 건물 뒤쪽 벽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씌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랄 로버츠에게 말씀하셨다는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나를 위해 대학교를 세워라. 학생들을 일으켜 내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가르치며 내 음성이 작게 들리는 곳, 내 빛이 희미하게 비취는 곳, 내 능력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저들을 보내라. 이 세상 끝까지라도.” 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학교 출신 졸업생들이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씩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해외로 나가서 단기선교하고, 졸업 후에 장기 선교사로 사역하는 젊은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20세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세 사람을 말할 때, 빌리 그래함목사와 오럴 로버츠 목사, 그리고 교황 요한23세였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시시하게 쌀이나 축내다가 죽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다고 고백합니다. 사람은 자기의 할 일을 알고, 그 일을 위하여 태어났고, 구원받았고, 부르심을 받았노라고 확신해야 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아름다운 것이 있습니다. 부탁하셨다는 말씀은 위탁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위탁하신 아름다운 일들이 있습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 듯이 다시 일으키라고 하십니다.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십시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부탁하시고 위탁하신 아름다운 것을 잘 지켜나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셨습니다. 목적 있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필요로 하시고 꼭 사용하실 데가 있어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오직 충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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