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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명절 규례 (고전 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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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명절 규례 (고전 5:6-8)
 
 
6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8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고린도전서가 쓰여 진 중요한 2가지 동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글로에’라는 고린도 교회의 여성도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분쟁과 당파에 관한 소식을 듣고서, 둘째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들, 이를테면 분쟁 문제 외에도, 불륜사건, 소송 사건, 혼인 문제, 우상의 제물 먹는 문제, 집회 시 부인의 수건을 쓰는 문제, 성찬 문제, 헌금 문제, 부활문제 등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쓰여 졌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교회는 1)하나님의 말씀을 잘 가르치는 구변과 2)복음 진리를 이해하고 깨닫는 지식이 풍족했고 3)모든 은사에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풍성한 교회였으며 4)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대망하며 살았던 귀한 교회였습니다. 이토록 축복을 많이 받았고, 감사할 일이 많았던 고린도 교회였으나, 지상교회요, 유형한 교회인지라, 문제도 많았습니다. 그 많은 문제 중에서도, 사도 바울이 맨 먼저 다룬 문제가, 고린도 교회내의 분쟁 문제였습니다. 그 같은 분쟁의 초점이 무엇이었습니까?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가 쟁점이라기보다는, 나는 바울에게, 아불로에게,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는, 시시하고 지엽적이고 가소롭고 부질없는, 당파 싸움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두 번째 문제는 불륜 사건이었습니다. 고린도 교인 중에 어떤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물론 자기 아버지의 아내란, 생모가 아닌 계모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계모일지라도 아버지가 한 동안 아내로 취했던 여자를, 그 자식이 동시에 취하는 일은 인륜에 반하는 큰 죄악으로서, 그러한 죄악은 이방인 중에도 없는 패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사도 바울을 충격에 빠뜨리게 한 것은, 그러한 죄악을 보고서도 통한히 여기지 않은 고린도 교인들의 태도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그러한 태도를 통분히 여기면서, 어찌하여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 라고 책망하며, 밖에 있는 사람 곧 교회 밖에 있는 불신자들의 범죄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고 단호하게 지시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음행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대하여 이같이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은, 죄의 오염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죄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죄는 놀라운 전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고 난후, 많은 젊은이들에게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게 되었고, 동성연애자로 알려진 레이디 가가의 한국 방문 이후, 동성애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같은 죄의 강력한 전염성 때문에 6절에서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라고 깨우쳐 줍니다. 여기서 말하는 누룩이란, 죄를 의미합니다. 죄를 누룩에 비유한 것은 죄의 전염성, 부패성이 누룩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죄가 들어오면, 그것이 비록 적은 것일지라도 곧 점점 파급되어, 온 교회가 부패해지는 경향이 많습니다. 

현재 미국 교회의 대부분이 소위 자유주의 신 신학으로 기울어졌으나, 처음에는 신신학 사상이 프린스톤 신학교와 유니온 신학교의 몇몇 교수를 통하여 들어왔는데, 그 신신학 사상이 학생들에게 점점 퍼져서, 지금은 보수주의 신학자보다 신신학자가 더 많아졌다고 합니다. 적은 누룩을 시초에 제거해 버리면, 온 덩어리에 퍼지지 않을 것입니다. 가라지가 자라면 그 세력이 곡식보다 더 강하기 때문에, 곡식이 힘을 못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라지가 자라기 전에 뽑아 버려야, 곡식이 잘 자라날 수 있게 됩니다. 적은 누룩이 들어올 때 제거하지 않으면, 마침내 교회공동체를 썩게 할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7절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최대의 명절은 유월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사 드라마에서 제 1막은 구약이고, 제 2막은 신약인데, 구약에서 제일 중요한 사건은 출애굽사건이고,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 구약에서 복음의 진리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장자 재앙으로부터 구원하는데 필요한 유월절 양에 대한 조건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어린양 가운데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이어야 했습니다. 병들었거나 온전치 못한 것은, 결코 유월절 양이 될 수 없었습니다. 유월절 양에는 완벽한 상태의 어린 양이 요구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했습니까? 유월절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출애굽 사건은, 죄인이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어 구원받는 것을 예표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사건의 토대가 된 장자 재앙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유월절 희생양이 요구되었듯이,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영적 유월절의 희생 제물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적 유월절의 희생 제물은, 유월절 어린 양이 흠이 없고 완벽해야 했듯이, 죄와 허물이 없어야 했습니다. 그 분이 바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예수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애급 전역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밤이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유월절 양을 잡아,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피를 뿌리고 발랐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 애급의 전역에, 번개 불과 같이 임하는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양의 피가 뿌려져 있는 이스라엘의 집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그 누구의 집이든 목동의 집이던, 강도의 집이던, 창녀의 집이던 상관없이, 양의 피가 발라져 있는 집안에는 구원이 있었습니다. 유월절 양의 피를 볼 때에, 죽음의 사자가 넘어 갔습니다. 유월절 양을 통해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 유월절의 양의 피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장차 이 땅에 오셔서 흘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잡수시면서, 잔을 가지 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말미암아, 마귀와 죄와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세례 요한의 말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 양이 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유월절 양 예수님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유월절 절기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유월절을 통하여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사하여, 일주일 동안 절기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 절기가 바로 무교절입니다. 무교절은 유월절인 정월 14일부터 21일까지 칠일 동안 지키는 절기로, 누룩을 넣지 않은 떡인 무교병만을 먹어야했습니다. 무교절에 누룩이 없는 떡을 먹게 하신 것은, 누룩은 죄와 부패를 상징하는바,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결하고 거룩한 삶으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교훈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에서 이끌어 내사, 가나안 땅으로 들여보내시려는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그의 백성들도 거룩하게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르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교절의 규례를 정하여 주시고, 부패와 죄악을 상징하는 누룩이 섞인 유교 병을,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고전 5:8절에 보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명절의 방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하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명절의 방법은

1. 누룩과 같은 죄악을 버려야 합니다.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고 했는데, 묵은 누룩,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과 같은 죄악들이 무엇입니까? 고전 6:9-10에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 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 묵은 누룩,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과도 같은 죄악 목록을 정리해 보면, 첫째 음행입니다. 이는 각종 성범죄를 가리킵니다. 

둘째 우상 숭배입니다. 곧 성도가 점을 친다든지, 굿을 한다든지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셋째 탐욕입니다. 세상으로 말하면 경제 사범을 가리키고, 교회로 치면 헌금을 유용한다든지, 성도들 끼리 신앙적 목적이 아닌, 재산 증식의 목적으로 교회를 이용하는 행위 등을 말합니다. 넷째, 모욕입니다. 이는 타인에게 욕설이나 비방을 하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다섯째, 술 취함입니다. 이는 술을 먹고 만취하여 주정을 부리는 행위를 뜻합니다. 여섯째, 토색입니다. 이는 착취하고 강탈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만일 우리 교회 안에서 위의 여섯 가지 유형의 일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난다고 해보십시오. 성도들이 성범죄에 빠집니다. 청년들이 방탕하고 미혼모가 속출합니다. 남전도회 여전도회가 모였을 때 음담패설이 난무합니다. 교인들이 십일조를 속입니다. 헌금이 들어오면 담당자들이 서로 유용합니다. 교인들이 점을 보러 다닙니다. 굿을 합니다. 교인들이 서로 헐뜯고 욕하고 비방을 합니다. 집사들이 술을 마시고 술에 취합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폭력으로 해결합니다. 생각을 해보십시오. 이런 일이 교회에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러한 자들이 있으면, 교회에서 내어 쫓으라고 합니다. 곧 출교를 하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무교절 기간 동안에 “유교 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그쳐지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여기 ‘그쳐지리라’라는 말은 ‘잘리다, 베어지다, 추방되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애급을 떠나 아무런 삶의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해 광야로 쫓겨나는 것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도 죽임을 당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누룩이 상징하는바, 우리가 믿는다고 하면서도 죄로부터 떠나지 않고, 그것을 사모하여 반복적으로 죄를 짓는 자는, 마침내 구원의 대열로부터 제거를 당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에는 필수적으로 동반하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즉 죄에서 떠난 거룩한 삶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누룩이 발견되어지면, 즉 내가 집안에 누룩이 있는지 찾을 것인데, 발견되어지면 그는 이스라엘 회중에서 그쳐지리라고 하신 바로 그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보다 우리의 죄악을 더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삶 속에서 철저하게 누룩과 같은 죄악을 제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일생을 순전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본문 8절에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라고 말씀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소극적으로는 죄를 멀리하고 살면서, 적극적으로는 순전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결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성결은 말 그대로 깨끗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물건을 고를 때도, 우리는 깨끗한 것을 고릅니다. 옷을 입어도 깨끗한 옷을 입습니다. 이왕이면 깨끗한 자리에 앉고 싶어 합니다. 음식을 먹어도 깨끗한 곳에서, 정갈한 음식을 먹고 싶어 합니다. 

위생적으로도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 합니다. 콜레라가 돌면 손발을 깨끗이 씻고, 음식물은 말끔하게 씻고, 완전히 익혀서 먹도록 하며, 주변 환경도 청결하게 유지하도록 홍보를 합니다. 요즘 환경오염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심각합니다. 오염이란 것이 무엇입니까? 깨끗하고 청결해야 될 것이, 더럽혀져 있는 것을 오염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세상살이에서 뿐만 아니라, 영적인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청결함, 다시 말해서 성결함은 매우 중요합니다. 

쉬운 성경을 보면 딤후 2:20-21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큰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무그릇과 흙으로 빚은 그릇 또한 있습니다. 그 그릇 가운데 특별히 귀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지만, 평범하게 쓰이는 그릇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누구든지 악을 멀리하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인이신 주님이 쓰기에 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좋은 일에 쓰일 수 있는 준비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볼 때, 신앙적으로는 금 그릇 은그릇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멀리하고 성결한 삶을 살면, 그 사람이 곧 금 그릇이라는 말씀입니다. 귀한 그릇은 귀한 일에 사용되듯이, 하나님은 성결한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고, 그를 가장 고귀한 일에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되느냐? 혹은 무엇을 하느냐? 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성도의 삶은 진실해야 합니다. 옛날 어떤 나라의 왕이 자기 딸의 사윗감을 찾는데, 꽃씨를 나누어 주고서 꽃을 제일 예쁘게 길러오는 사람을 사위로 택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후보자를 모집하여 꽃씨를 나누어 주고서, 일정기간을 주며 꽃을 길러 오도록 명령했습니다. 얼마 후에 많은 후보자들이, 저마다 아름답고 탐스럽게 핀 꽃 화분을 들고 왔습니다. 임금님이 그 가져온 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데, 너무 아름다운 꽃들을 피어 와서 감탄을 하며, 구경삼아 심사를 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맨 끝에 선 어떤 후보자는, 꽃이 피어있지 않는 빈 화분을 갖다 놓고 심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이 그 사연을 물으니, 그 후보자의 하는 말이 모든 정성을 다 했으나 꽃이 피지 않았다고, 그래서 그대로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그 사람을 얼싸안고, 많은 사윗감 후보자들과 신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 진실한 사람은 이 한 사람뿐이다. 내가 나누어 준 그 꽃씨는 꽃을 피울 수 없는 꽃씨였으므로, 꽃을 피워 온 후보자들은 모두 거짓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특징은, 그 안에 속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감춰진 것이나, 숨긴 것이나, 정직하지 못한 것이나, 위선적이고 외식적인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사실 그대로이며, 투명하고 명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실함 때문에 그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진실이 그에게 들어가 그를 사로잡기 때문에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너무도 진실치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12:1-2에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 도다”고 탄식한 말씀이 있습니다. 성도의 인격, 성도의 언행은 그 나라 그 사회의 양심의 척도가 되어야 합니다. 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불신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성도의 말 한 마디면 보증수표보다 더 신임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세상 사람들은 차치해두고라도, 성도들 세계에서도 불신풍조는 만연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떠한 오해나 억측이라도, 성도들 끼리 만나서 한 마디 해명하고 밝히면, 그 진실성 때문에 모든 오해가 풀어져야 할 텐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도대체 진실치 못한 사람들끼리의 만남에서 무슨 신뢰가 생기겠으며, 무슨 사랑이 싹트겠으며, 어떻게 단합된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겠습니까? 진실성이 없을 때 그 신앙은 생명력이 없는 죽은 것이고, 언행에 거짓이 많을 때, 그 인격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앙과 인격의 생명력은 진실한데 있음을 확신합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최대 명절은 유월절이었습니다. 곧 430년 동안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된 것을 기뻐하는 명절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에게도 지켜야 할 영적인 유월절이 있으니, 곧 우리의 유월절 양으로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귀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지켜야 명절입니다. 그 명절을 지키는 방법에 대하여,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을 합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교절을 일주일 동안 지켰습니다. 일주일은 성도의 일평생을 상징하는 기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두가,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 같은 죄악을 멀리하고, 우리가 즐겁게 명절을 지키듯,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명절을 지키듯이, 일생을 성결함과 진실함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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