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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권위(막 1: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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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위(막 1:21-3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29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30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31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 종드니라” (막1;21-31)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주로 활동하신 곳이 ‘가버나움’ 도시인데... 성경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會堂)에 들어가 가르치셨다고 기록합니다.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왜 회당에 들어가서 가르치셨을까요? 회당에는 어떤 사람이 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오는 곳이 회당입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이 오는 곳이 시장이고,  배가 고픈 사람은 음식점으로 가고,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은 술집으로 갑니다.   회당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찬송하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오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하는 사람,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도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드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교회가 지금 보다 훨씬 더 좋아지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십니다. 

(23)“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그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 회당에 귀신들린 사람이 있다니 참 말세다’ 하고 생각하시나요? 본래 ‘귀신’은 회당, 즉 예배당을 멀리합니다. 

(막5;5) “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이 사람은 회당이 아니라, 무당 집이나 절(寺)이나 병원, 무덤이나 산에 있는 것이 맞지요.   그런데 이 사람은 회당에 있지요. 이 사람이 스스로 그랬던지,  이 사람의 가족이 억지로 라도 데리고 왔던지 이 사람은 지금 하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그가 비록 귀신이 들려서 정신이 고통을 당하지만...  고침을 받고 싶어서 회당으로 나온 것이며, 주위사람들이 그를 고치려는 마음으로 회당으로 데리고 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회당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 고침을 받습니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어쩌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만나시러 일부러 회당으로 오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심지어 귀신이 들려서 고통을 받을 때 예수님을 만나서 고침받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 예수님을 만나겠습니까? 회당으로 나오십시다. 회당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어려울 때 더욱 회당으로 나가기로 결심하고 행동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회당에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교훈은 권위가 있었습니다.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랐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했기에, 율법에 박식했고, 그래서 율법사라 불리기도 했고, 백성들에게 랍비(많이 아는 자, 선생)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서기관들은, 예수님처럼 권위 있게 성경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이름난 랍비들의 견해를 인용해서.. 이 구절을 ○○랍비는 이렇게 보고, △△랍비는 저렇게 보았다는 식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예수님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하지 아니했으며, 언제나 권위 있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말씀을 선포합니다.  성경의 주인공이 예수님이시오, 성경의 저자가 예수님의 영 곧 성령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5;39) “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이 말씀이요 복음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권위와, 절대적 확신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습니다. 
‘권위’란 반드시 능력을 통해서 증명이 됩니다.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예수님께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바로 떠나가고 건강해 졌습니다.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예수님이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실 그 때,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 그 사람 속에 있던 귀신이 소리를 지릅니다.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왜 갑자기 소리를 지르느냐? 두려움에 떨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경을 가르치자, 더러운 귀신은 정체를 드러내고, 가면을 벗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 더러운 귀신이 떨며, 소리 질렀는가요? 예수님이 성경을 읽으시며, 예수님이 성경을 가르치실 때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똑 같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이 바르게 선포될 때... 귀신은 두려워 떱니다. 목사의 목소리가 커서 그런 것이 아니라, 말씀이 능력이 있고, 권세가 있기 때문에, 말씀만 바르게 선포되면 어두움의 세력은 두려워 떨고, 물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세상이야기, 돈 이야기, 자기 자랑이나 체면 이야기나 한다면.. 귀신들은 좋아라 합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향기가 나지 않고, 세상냄새가 물씬 나기 때문에 박수를 치며 좋아합니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도여러분, 예수님은 말씀으로 병을 고치고, 귀신을 떨게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떨게 만들겠는가요? 세상의 학문이 아닙니다. 신비한 체험도 아닙니다. 열심 있는 봉사나, 특별한 은사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병을 고치고, 더러운 귀신을 떨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언제나, 성경만 순전하게 전파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병이 낮고, 더러운 귀신들이 사람에게서 내쫓깁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가득한 교회.. 기도가 뜨거운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3가지 일을 하십니다.

첫째는 ‘마음건강’ 입니다. 

성경말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교훈 하셨습니다. 
(딤후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이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기에 유익한 책입니다. 나와 자녀들, 다른 사람들을 성경으로 교훈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성경의 권위로 사람들을 교훈하시는 것이 최고의 교훈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희안한 것으로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고 바쁩니다. 명상도 하고, 숲속 길을 걷기도하고, 템플스테이도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그런 것으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인간의 마음에 참된 변화를 일으킵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둘째는 ‘육신건강(肉身健康)’입니다. 

(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  

이것은 기도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바라보는 생각이 바뀌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보고 예수님은 고칠 수 있으시다. 예수님은 능력이 많으신 분이시다. 예수님께 말하면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이런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꾸지람하니까 베드로의 장로의 열병이 떠나갑니다. 

여러분, 각종 병은 균, 세균에 의해서 생기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꾸지람하니까 열병이 떠나갔다는 말은 세균, 바이러스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은 능력 있는 말씀입니다. 세균, 바이러스도 순종하는 말씀의 능력입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여러분도 몸이 아프신 분이 대부분입니다. 안 아픈 부분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병원에 주는 돈을 합치면 어마 어마 할 것입니다. 이제는 내 몸을 향해서, 내 몸의 병을 향해서 성경말씀으로 선언합시다. “예수님 이름으로 명령한다. 모든 병은 물러가라. 나를 약하게 하는 각종 병균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나에게서 떠나가라. 약함은 물러가고, 고통도 물러가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내 몸은 건강하게 될지어다. 회복 될지어다” 아멘.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기도입니다. 당연한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가 매일 매일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믿는 것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믿음대로, 말씀대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열병이 어디로 떠나 갔을까요?  

(사53;4-5)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이 우리의 약함을 다 지셨습니다.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셨습니다. 열병은 예수님에게로 갔습니다. 우리가 건강(健康)해 진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병과 약함을 대신 짊어지셨기 때문입니다. 공짜가 아니라 예수님의 몸이 댓가로 지불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셋째는 ‘영혼건강(靈魂健康)’입니다. 

여러분, 귀신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제가 이런 엉터리같은 질문을 해야 할 정도로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어둡습니다.  무당 집에 가보십시오. 귀신이 있는지 없는지 분명히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진짜 무당이 있고 가짜 무당이 있는데, 진짜 무당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입니다. 가짜 무당은 ‘신내림’을 받은 것처럼 하는 무당입니다. 또 정신 병원에 가도 귀신들린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저도 여러 번 귀신들린 사람을 보았습니다. 눈동자를 보면... ‘아 이 사람 안에 뭔가 다른 것이 들어가 있구나’ 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의 사람들을 귀신들이 무서워합니다. 우리가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 때문에 귀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영혼을 건강하게 하시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내쫓기 위해, 더러운 귀신과 대화를 시도하거나,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의 몸을 밧줄로 단단히 묶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도구도 사용하시지 않았고, 어떤 주문을 외우지도 않았습니다. 안찰도 없었고, 안수기도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은 더러운 귀신을 향해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향하여 명령하시는 권세가 있으십니다. 모든 피조물은 예수님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할 따름이며, 예수님의 명령은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습니다. ‘잠잠 하라, 고요 하라’ 는 예수님의 명령에 바람과 바다와 물결도 순종하였습니다. 이처럼 더러운 귀신도, 예수님의 명령에 즉시 그대로 순종했다.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예수님의 명령에 더러운 귀신은 곧 그의 몸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지요. 나가기가 싫었지만, 예수님이 명령하시니 나와야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내 이름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는 것입니다. 아멘입니다.  
 
행19장 11-16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13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신 사람들이 아니라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속에는 예수님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귀신이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덤벼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말씀을 더 드립니다. 

(약2:19)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은 하나님을 알고 예수님을 압니다. 자신들을 영원한 불 못에 던지실 줄 알기에 예수님 앞에서 두려워 떱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 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이 말씀은 귀신들은 믿고 떠는데... 사람들은 안 그렇다. 특히 믿는 다 하는 사람들이 안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약2;18-20)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19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20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하나님을 믿는 다고 말은 하는데, 행동이 없는 사람. 귀신들도 믿고 떠는데... 믿는 다 하면서 전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앙의 실천이 없는 사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귀신보다 더 믿음이 없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아닌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마음건강’ ‘육신건강(肉身健康)’ ‘영혼건강(靈魂健康)’

이 세 가지가 예수님의 ‘권위’입니다. 권위, 권세는 능력으로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다 성령(聖靈)님의 능력(能力)을 힘입은 것입니다. 저도 또 예배드리는 여러분도 ‘권위’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권위’있게 될까요? 어떻게 하면 예수님처럼 될까요? 쉽고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꼭 같은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나타는 예수님의 ‘권위’는 성령(聖靈)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聖靈充滿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가 잘 기억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모아서, 군대를 조직하시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식민지로 고통 받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기적을 발휘하거나, 로마를 정복해서 유대나라를 세계 위에 우뚝 세우는, 전쟁이나 정치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사람안의 잘못된 부분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육신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쫒아내어 영혼을 치료하시고, 교훈을 통해 마음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안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시고, 사람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요한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서 나와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아들의 권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자녀입니다. 왕자요 공주입니다.  이제 우리도 권위(權威)있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처럼 성령님의 능력으로 육신을 고치고, 마음을 고치고, 영혼을 고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충만한 교회, 교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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