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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올바른 선택 (신 30: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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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선택
신명기 30:15-20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마을에 태어나서 함께 성장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아주 친하게 지내던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 둘은 언제나 함께 다니고, 함께 먹고, 함께 자기도 할 정도로 가까이 지냈습니다. 그런데 청소년 시절에 정확한 삶의 목표가 없이 방황하면서, 바르지 못한 생활에 빠져서, 어리석은 길을 가게 되면서 본인니 원치 않는 죄를 많이 짓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저녁에도 죄를 짓는 곳을 향하여 가다가, 마침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게시판에는 ‘죄의 값은 사망이다.’라는 그 주일 교회에서 선포될 설교의 제목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게시판을 바라 본 한 친구는, 갑자기 놀러 갈 마음이 없어져서, 두 친구는 가거니 말거니 하다가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 다툼의 결과로 두 사람은 그 날 서로 갈라져서, 한 청년은 자신이 원하던대로 놀러 갔고, 다른 청년은 교회로 들어가서 예배당 뒤에 앉아서 목사님이 전하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결국 이 청년은 그 날 저녁 그 자리에서 자신이 지은 허물과 죄를 회개하고, 이제부터는 자신의 삶을 주님께만 헌신하기로 다짐을 합니다. 

그 후에 그 청년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한 다음에는 정치가의 길을 가서 마침내 미국의 대통령이 됩니다. 어느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했다가 회심을 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서 미국 대통령이 된, 이 대통령의 취임기사가 신문에 대서 특필이 됩니다. 바로 그때 미국의 어느 교도소 감방에 늙은 죄수가 한 사람있습니다. 대통령 취임 보도를 신문에서 보면서, 그는 혼자서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그러면서 이 늙은 죄수가 하는 말이 ‘이 사람이 30년 전에 내 친구였는데, 그 어느 날 갈라져서 별로 만나보지 못했는데, 이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고, 나는 종신교도소에 있게 되었으니, 이런 분한 일이 어디 있느냐?’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이 바로 프린스턴 대학 출신인 클리블랜트 대통령입니다.

참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길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결국은 두 가지 길 뿐입니다. (1)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습니다. (2)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3) 복을 끌어당기는 길과 화를 불러오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 아래 사는 사람은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기를 꿈을 꾸지만, 삶이란 것이  꿈을 꾼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꿈은 땀과 눈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도 같습니다. 언제인가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서 엉엉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중계하는 아나운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사나이의 눈물인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제 속으로도 자연스럽게 ‘참 적절한 표현이다.’하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선수가 ‘금메달을 따기까지 지나온 모든 과정이 자기에게는 행복했다.’고 말할 때에 가슴이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강요에 의해서 해야 한다면, 그것은 기쁨이 아니라 괴로움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쉬운 일일지라도 의미가 없으면 힘이 듭니다. 반면에 아무리 힘든 일도, 의미만 있으면 힘들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그 살인적이라는 어려운 훈련과정을 행복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과 판단으로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될 때에, 나중에는 땅을 치면서 후회하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래서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아가는 인생길이 좁은 길 같고, 좁은 문 같아도, 생명으로 가는 길이 분명하다면, 그 길을 벗어나서는 안됩니다. 당장에는 넓어서 편하고 좋아도, 나중에 파멸의 낭떠러지를 만나게 된다면, 낭떠러지에 떠밀려 떨어지면서 ‘아뿔싸! 이게 아닌데!’하면서 부르짖을지라도 이미 때는 늦은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본문 신명기 30:15-20절의 말씀을 가지고, 올바른 선택에 대하여 몇 가지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본문에 보면 야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에게 선택의 자유를 줍니다. 그래서 모세는 본문 15-16절에서 이스라엘 회중에게 말하기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언약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성경에 보면 야훼 하나님께서 하시는 약속은 두 가지 계약이 있습니다. 하나는 일방적인 계약입니다. 그러니까 나 너희의 하나님 야훼가 이렇게 하겠다는 계약입니다. 이런 형태의 계약을 ‘종무적 계약’이라고 합니다. 이런 계약은 상호의견의 교환이 전혀 없이 일방적으로 위에서 아래로, 힘이 있는 편에서 힘이 없는 편으로 내려오는 계약입니다. 에를 들면 야훼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인 족장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같은 경우입니다. 순종하기만 하면 인간의 행위가 어떻든 그냥 하나님께서 다해주시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쌍무적인 계약’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계약 당사자가 어떻게 처신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이렇게 하면, 나도 너희에게 이렇게 해 주겠다.’라는 것입니다. 야훼께서 시내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이 바로 그런 쌍무적인 계약입니다. 야훼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서 400여년간을 노예생활 하던 히브리 민족을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해방시켜서, 이 해방 받은 이스라엘을 홍해길로 인도하고, 파라오의 특수부대가 추격을 하자, 흑암과 어둠으로 파라오의부대의 추격을 저지하시고, 강한 동풍으로 홍해를 갈라서 바닥이 드러나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홍해 바닥을 걸어서 건너게 하시고, 파라오의 특수부대는 수장을 시킵니다. 그리고 야훼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여, 광야길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마라와 엘림이란 오아시스를 거쳐서 시내산까지 인도하고,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이 바로 시내산 계약, 율법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언약의 관계를 맺은 백성이 되는 것이, 사람이 해 아래서 누릴 수 있는, 가장 ‘귀중한 복’이라는 점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는 계약을 맺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섯 살짜리 아이와는, 그 수준에 맞게 ‘네가 이렇게 하면 엄마가 이렇게 해줄께요!’ 라고 약속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쌍무적인 계약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지도자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야훼 하나님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여정을 거의 마치고, 모압 땅 헤스본이란 곳에 주둔하고 있을 이스라엘 총회에게 한 말씀입니다. 당시의 상황은, 이제 이스라엘은 곧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으로의 진군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도자 모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이집트에서 나와서 40여년간의 광야유랑을 감당한 출애급 제 2세대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씀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적어도 출액ㅂ 제 2세대에게는 율법에 대한 집중교육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5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말하기를,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지도자 모세의 말씀은, ‘이제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복된 길과 저주의 길을 두었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 앞에 놓인 이 두 갈래 길 가운데서, 너희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귀한 선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선택의 자유입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자유가 있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은, 선택의 자유입니다. 선택의 자유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선택의 자유 가운데서도 더 귀중한 것은 올바른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선택을 바르게 하면 인생길에서 성공을 하고, 선택이 바르지 못하면 인생여정에서 실패를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자제품이나 자동차를 한번 선택하면 10년을 본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적인 세계에서는, 100년이 아니라 영원까지 좌우합니다. 그러기에 순간순간 내 지식, 내 경험, 내 판단을 앞세우기보다는, 성령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할리우드에서는 가끔 배우와 영화계에 종사자들이 함께 조찬을 하면서 유명인사를 초빙하여 간단한 연설을 듣는다고 합니다. 한번은 룩크라는 유명잡지에서 '미국의 최고 미인 열명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힌 일이 있고, 당시에 주급으로 이천 달러 이상을 받으며 영화배우로 일하는 여성이 연사로 나왔는데, 이 여배우가 나오자 박수와 휘파람 소리로 장내가 흥겨워졌습니다. 여배우가 말을 하기를, ‘여러분, 나는 사랑에 빠졌습니다.’라고 하자, 장내는 박수소리가 진동하면서, ‘도대체 그 운수 좋은 행운의 남자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이 나왔고, 여배우는 ‘네, 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분과 사랑에 빠졌습니다.’라고 합니다. 예상외의 대답에 장내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게 조용해졌는데, 여배우는 말하기를, ‘앞으로는 영화배우의 일을 포기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겠다.’라고 합니다. 이 여배우가 바로 ‘콜린 T. 에반스’로 후에 목사와 결혼을 했습니다. 한번은 빌리 그래함 목사가 이 부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콜린에게 묻기를, ‘당신은 할리우드의 그 별과 같은 성공을 물리치고, 예수님을 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라고 하자. 콜린은 ’저는 할리우드의 스타나, 영국의 여왕의 자리나, 미국의 대통령 자리와도, 지금의 나의 위치와는 바꿀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저에게 이처럼 귀한 분입니다.’라고 대답으 했다고 합니다. 이제 여러분도 콜린처럼 가장 귀한 것을 택한 사람답게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선택에는 여러 가지 유혹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17-18절에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말하기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너희의 날이 길지 못할 것이니라.’라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에 가려면 고속철도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비행기로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아니면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자신이 스스로 운전을 해서 갈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길을 가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결국은 두 가지 길로 모아집니다.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복의 길과 화의 길이 있습니다. 

문제는 자신이 지금 어떤 길을 가고 있는지를, 잘 모르고 간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조건 남보다 잘되고, 빠르면 되는 줄 압니다. 하지만 나사렛 예수께서는 이상하게도 인생길을 가되, ‘좁은 길을 택하라. 좁고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다.’고 말씀하면서, 남들이 어려워서 잘 가지 않는 좁을 길을 갈 것을 권면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간다고 다 좋은 길은 아닙니다. 사람은 우선 편안한 것을 좋아하고, 자극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 길을 가게 되면, 당장에는 탄탄대로를 달리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암초 같은 것들이, 가는 길 앞에 툭툭 튀어나옵니다. 그리고 결국은 그런 것들 때문에, 잘 가는 것 같았는데, 꽝하고 터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넓은 길은 찾는 사람이 많지만, 결국은 멸망의 길입니다. 영적으로 산다는 것은, 나사렛 예수께서 걸어가신 길만을 바라보고, 그 길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 사람에게 유혹을 받아서,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 여러분을 유혹하는 것은 세상의 즐거움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에는 여러분이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여러분을 이끌어가는 감당할 수 없는 유혹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여러분의 감성을 자극하는, 즐거운 것들과 쾌락적인 것들과 자극적인 것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고, 타락하도록 여러분을 이끌고 가는 부패한 세상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좁은 길, 생명의 길, 복된 길’을 선택하고, 그길을 달려가는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족장 아브라함이 그랬고, 지도자 모세가 그랬으며, 이방인을 위한 전도자인 바울 사도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스스로 불편하고 어려운 좁은 길과 험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외롭고 인기가 없는 길이었지만 소리없이 좁은 길을 달려가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출애급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수 많은 이방인을 구원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제부터는 오직 나사렛 예수의 말씀처럼 좁은 길과 험한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달려가는 신자가 되고자 정성을 다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미련한 인생은 미련한 선택으로 망합니다.
그래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본문 19절에서 말하길를,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라고 합니다. 
지도자 모세는 말하기를, ‘너희 하나님 야훼는 질투하는 하나님이다.’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야훼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다른 신에게 가서, 복을 얻으려고 기웃거리는 것을 보면 참지를 못한다는것입니다. 야훼께서는 당신의 자녀가 야훼보다 더 다른 것을 사랑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복된 길 생명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야훼께서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야훼께서 괜히 엄포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땅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실패한 역사의 기록이 ‘사사기’입니다. 사사기를 가만히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범죄, 야훼의 징계, 이스라엘의 회개, 사사를 통한 회복’이란 ‘신앙적인 주기’가 지속적으로 되풀이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비단 구약성경의 사사기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에 모여서 함께 그리스도 예수에게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가운데에도 사사기에 나오는 이들과 같은 믿음여정을 가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나사렛 예수께서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않고, 늘상 생명의 길에 서 있기를 원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당장 눈에는 뚜렷하게 표가 나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살아보면,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못하고,  그러니 자연히, 믿음대로 복음대로 산다는 것이, 답답하게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믿음대로 산다는 것이, 바보 같은 인생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왜냐하면 믿음대로 산다는 것은 곧 무엇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족장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가나안땅에 거주할 때, 땅이 좁아서 아브라함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양들에게 풀을 뜯어 먹이고, 물을 먹이려고 하다가 자꾸만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러니까 초지가 좁아서, 함께 살수가 없어서, 서로 갈라서기로 합니다. 그 때에 롯은 요단동편을 바라봅니다. 당시 그곳은 물이 넉넉해서, 이집트와 같고, 에덴동산 같은 땅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요단동편을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을 행하여, 큰 죄인이었다.’라고 평가를 합니다. 물질적으로만 본다면 물이 넉넉하고, 기름진 땅입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메마른 곳이고 악한 지역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과연 무엇을 택하였느냐? 하는 것입니다. 롯이 당장은 잘 선택한 것 같습니다. 족장 아브라함보다는 탁월한 선택같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결과는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그렇게 싸우면서 모은 모든 재산은 잿더미가 되었고, 사위들도 다 잃어버립니다. 롯은 세상에 속한 것을 택하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으로 만족을 했고, 그것을 삶의 의미로 여기고, 행복의 기준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서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 가운데 ‘나는 절대로 롯과 같은 인생은 아니지’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은 얼마나 될까요?, 한번 여러분의 신령상 형편을 가만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우리말에 ‘오해는 자유이고 착각은 즐겁다.’라는 말이 있는데, 참으로 많은 분이 오해하고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풍요롭고 넉넉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갖추어 놓고, 쌓아두고 살아도, 사람이 자신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이 시간 분명하게 깨닫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롯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외적으로 보이는 아름다움만 보았지, 그 성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악한 죄악을 보지 못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이는 것만을 보고, 생각을 하고, 말을 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닙니다. 그렇게 기름지고 아름다웠던 성읍인 소돔과 고모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결국은 소돔과 고모라에 사는 사람들이, 지은 죄가 야훼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하늘로부터 유황불이 비같이 쏟아져서 성읍과 거민이 다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습니다. 그 때마다 롯처럼 여러분이 보기에 좋은 대로 선택하기보다는, 더 많이 신중하고 겸손하게 기도하고, 여러분의 뜻보다는 나사렛 예수께서 원하는 길을 선택하려고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그러려면 항상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신중하게 생각을 하고, 판단해서 결정을 내려야만 합니다. 

롯처럼 여러분의 눈에 보이는 현실만 보고, 선택을 함으로써, 비극을 자초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나사렛 예수께서 원하는 것을 지혜롭게 선택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예비한 은혜와 복을 누리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으로 지혜로운 선택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립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본문 20절에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이시니,’ 너희의 하나님 야훼를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여러분의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구체적으로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가장 실제적인 방법입니다. 먼저 여러분의 입으로 나사렛 예수의 말씀을 거듭거듭 고백하고, 예수의 말씀대로 살아보세요. 그러면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어떻게 내 안에서 역사하는지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 체험을 가진 사람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게 되고,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런 삶은 강요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만이 자연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삶입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삶이 있는지 여러분의 신령상 형편을 겸손하게 살펴보기 바랍니다.  

남편이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상사에게 시달리고, 부하 직원에게 이리저리 눈치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다가, 집이라고 퇴근해서 들어왔더니, 집에서도 이래저래 잔소리를 하는 가족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심령형편은 어떠하겠습니까? 가족들 잔소리 들어주려고 일찍 집에 들어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사랑의 실체는 관심이라는 사실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진실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가장 예민하게 응답을 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사렛 예수의 생각과 삶에 대하여 뜨겁고 진실하게 관심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여러분 모두가 형통한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을 하고, 자기의 일에 몰두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의 하는 일이 하난미께서 자기에게 맡겨준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마땅히 자기가 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 기울입니다. 그런 사람이 빵을 굽는다면, 전쟁이 나도 동리 사람을 위하여 변함없이 빵을 굽습니다. 그런 사람이 음식을 만들면 만든 음식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 만드는 물건은 불량률도 적고,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정신과 혼을 넣어서 일하는 것과 대충대충 일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참으로 복을 받은 인생은, 일하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에게 복은 무엇인가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선택한다는 것에는 항상 잘못된 선택이 있을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특별히 여러분이 어리석은 선택을 하도록 사단마귀가 믿는 사람을 유혹하고 있다는점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아무리 믿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잘못 선택을 하면, 롯처럼 삶을 열심히 살았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이 망할 때에 같이 망하는 인생이 된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반대로 지혜로운 선택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누리게 합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의 생애가 이 세상에서 다하는 날까지, 지혜로운 삶의 선택을 하기를 원합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나사렛 예수를 진심으로 사랑을 해서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진지한 관심을 가지고, 아주 자연스럽게 예수의 말씀대로, 예수의 행함대로 살기를 사모하고 갈망하는 삶을 살아서, 성령의 도우심 아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와 바른 관계를 맺고 살고자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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