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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계시록에 나타난 재림 예수(1) (계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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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계시록에 나타난 재림 예수(1) (The Characteristics of 2nd-Coming Christ) 
성경 : 계 1:9-16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 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기록입니다. 계시록의 핵심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선언은 전 우주적인 선언이고, 역사적 생명적 선언입니다.
 
계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은 세상의 윤리나 도덕 정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사상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재림 신앙은 생명이 있기에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복음 증거 때문에 유배되어 있던 밧모 섬에서 본 환상을 기록한 계시록의 초반부입니다. 요한은 주의 날(일요일)에 성령에 감동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매우 엄중한 목소리로 요한이 보는 것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써서 보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의 주인공을 알아보려고 뒤로 돌이켰고, 거기 일곱 금 촛대를 보았고, 촛대 사이로 부활하신 예수님 즉 이제 곧 재림하실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여기 ‘일곱 금 촛대’는 구약 스가랴서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반면에(슥 4:2), 본문에서는 수신자들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와 나아가 전세계의 보편적인 모든 교회들을 나타냅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재림 예수님의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사랑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1. 촛대 사이에 계심 (= 종말교회에 임재, 교회 사랑하심) 
 
13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

요한이 일곱 금 촛대를 보았을 때 그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었습니다. 요한은 매우 의도적으로 자신이 발견한 이를 ‘인자 같은 이’(호모이운 휘온 안드로푸)라고 묘사했는데, 이 표현의 출처는 구약 다니엘 7:13절이 분명합니다. 
 
단 7: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요한은 다니엘서의 환상으로부터 ‘인자 같은 이’란 표현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를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으나, 사도 요한은 이미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거쳐 승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18에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이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합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의 눈에 들어온 예수님의 모습은 ‘촛대 사이에’ 운행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이 종말 교회에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촛대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장식용입니까? 고풍스런 자태를 뽐내면서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촛대 본연의 역할입니까? 아닙니다. 
 
촛대는 빛을 비추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느로 교회의 사명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어떤 빛입니까?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입니다(요 8:12, 빌 2:15). 

성경은 본문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촛대 사이에 예수님이 거니신다는 것은 재림 예수께서 이처럼 귀한 사명을 가진 종말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건지시고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재림 예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고 중히 여기시는 교회는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 라고 했습니다. 재림 예수님은 이 귀한 교회를 붙들고 계시고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가슴으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또한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라고 말씀합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이처럼 교회는 예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고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천국 열쇠를 주시며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며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주님의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받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곳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오직 천국 열쇠를 쥐고 있는 교회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 예수님은 교회 촛대 가운데 서 계십니다. 자신의 피를 뿌려 세운 교회, 그 교회를 지키시며 키워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주의 종들을 붙들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성도는 행복한 분입니다. 할렐루야! 


2. 발에 끌리는 옷을 착용하심 (=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권위와 위엄 상징) 
 
13절=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

‘발에 끌리는 옷’은 ‘발에까지 치렁치렁 끌리는 긴 옷’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이곳에서만 사용되었는데, 구약의 여러 용법을 보면(출 28:4, 29:5, 겔 9:2, 단 10:5 등) 이것은 제사장들이 착용한 예복으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권위와 위엄을 시사합니다. 

그 해의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에 나아갑니다. 그가 만일 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 즉시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의 모습은 예수께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 앞에 나갈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재림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대제사장의 옷을 입고 계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나같이 흉측한 죄인을 대속하여 주실 대제사장으로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실패자이지만 주님이 대제사장 되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사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다는 사실은 특히 당시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던 성도들에게 더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신앙의 위기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움과 고독이 아니겠습니까? 

죄인의 신분으로 유배된 요한에게 예수님이 보이셨듯이, 주님은 일곱 교회 곧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대제사장이란 사실입니다.  
 
위기의 상황이 와서 ‘나는 혼자다’라고 느낄 때도 성도 곁에는 대제사장이 계신다는 것이며 그 대제사장은 그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흑인 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7년 11월 5일 에버니저 교회에서 전한 말씀을 되새기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필요하다면 감옥에 갈 때도 있겠지만 그곳에서도 혼자가 아닙니다. 옳은 것을 위해서 분연히 일어서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는 아닙니다 ··· 저는 번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천둥 소리도 들었습니다. 범법자들이 위세당당하게 걸어다니면서 제 영혼을 정복하려 들때마다 저는 계속해서 싸우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절대로, 저를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로부터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영혼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주님을 알게 될 때 산보다 높은 파도가 몰아치고 폭풍우와 같은 은혜와 감격이 여러분의 영혼을 휘감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3.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심 (=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 
 
13절=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촛대 사이에 있는 인자 같은 이는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이 묘사는 다니엘 10:5절과 연관된 듯 보입니다.
  
단 10: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왕의 예복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초림 예수님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 예수님은 가슴에 금띠를 띤 통치자로 오십니다. 

왕은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며 먹이고, 적군과의 전투에 총책임자입니다. 이것은 재림 예수님이 새하늘과 새땅에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악한 마귀의 모든 세력을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 재림 예수님은 어떤 환난과 마귀의 미혹 가운데서도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왕으로 오실 예수님, 우리를 보호해 주실 예수님 생각만 하여도 심장이 뜁니다. 주님이 계신데 내가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주님이 이제 왕으로 속히 오실텐데, 내가 어찌 주님을 배반하거나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십시오. 특히 계시록에서 재림 예수님의 왕적인 모습을 만나보십시오. 만왕의 왕이신 재림 예수님이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그분에게 지금 여러분의 삶을 모두 맡겨보십시오. 그분만을 여러분의 유일한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4.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음 (= 거룩한 승리자) 
 
14절=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본문 이하 16절에서는 요한의 눈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의 인상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머리에 대한 묘사에 집중됩니다.  
 
여기 ‘그 머리와 털’이란 말은 ‘머리와 털’로 양분된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리 곧 그의 털’이란 의미로서 다니엘 7:9절에서 인용한 표현입니다. 

거기서 다니엘은 옛적부터 계신 이의 머리털이 ‘깨끗한 양의 털 같고’ 옷은 ‘희기가 눈 같다‘ 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던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곧 그의 털‘을 묘사하는 데에 적용되었습니다. 이로써 요한은 자신이 목도한 승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머리털이 흰 것은 상징적으로 지혜와 위엄을 의미하며(레 19:32),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결과 영원성 혹은 그의 영원하신 신성을 나타냅니다(사 1:18). 즉 재림 예수님은 거룩한 승리자로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다시는 눈물이 없고 다시는 곡하는 것이 없는 영원한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죄와 싸우고 허물로 인하여 고통받고 살아 왔습니까? 그러나 주님 재림하시면 더 이상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받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의 성결로 우리의 죄악도 감추어지고 거룩한 몸으로 변하여질 것을 생각하면 그저 두 볼에 뜨거운 눈물만 흘러내릴 뿐입니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노래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계 4:8=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 

재림 예수님의 거룩은 단순히 악한 세상과 구별되는 차원 정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거룩은 세상의 어느 것도 비견할 수 없는 완전한 의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성도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구약시대에 성막과 거기에 사용되던 모든 기구들이 다른 물건과 뚜렷하게 구별되던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모든 세속적인 관습으로부터의 분리요 영원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거룩한 분리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의 탐심과 욕정의 쓰레게 더미 속에서 딩굴고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우리는 속히 죄악의 동굴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거룩하신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곧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흠도 티도 없는 순결한 모습으로 그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진 우리는 행복한 자입니다! 


5. 눈이 불꽃 같음 (= 공의의 눈, 그리스도의 심판) 
 
14절=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요한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대한 묘사로부터 그의 눈에 대한 묘사로 옮겨 갑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습니다. 이것은 다니엘 10:6을 반영한 것으로 그분의 전지성을 나타냅니다.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

불꽃 같은 주님의 눈은 모든 악을 꿰뚫어 아시는 날카로운 공의 눈을 상징하며 아울러 승리로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불의에 대하여는 남김없이 심판하시고 구원받는 자들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보호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나타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재림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심판하실 그 불꽃 같은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주님은 지금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의 얼굴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예배드릴 때는 주님이 여러분의 얼굴 표정 하나까지도 살피신다고 생각하고 마음 자세 뿐 아니라 얼굴 표정을 갖추어야 합니다. 목사나 주위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합니다.  

예수 진리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일시적인 것이요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떠나고 자식도 떠나고 친구도 떠나지만 예수님만은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 해 주십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승리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악의 권세를 이긴 자들입니다. 재림 예수님은 반드시 악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발견하는 보물 창고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사상을 가지고 예수님을 천 번 이야기 한다 해도 어떤 영적인 생명과 감동을 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본문의 의도가 파헤쳐질 때 생명이요 진리요 구속의 세계가 열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재림하실 예수님은 교회에 임재하시고 교회를 목숨처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금띠를 띠고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마귀와 적그리스도,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모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아마겟돈의 승리자이십니다.
  
거룩한 승리자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계시록은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을 이 예수님을 소망하는 자리로 인도합니다. 계시록의 말씀은 구절구절이 재림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고, 본문의 의도를 찾는 자들로 하여금 재림 예수님을 사모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교회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붙듭시다. 우리는 죽더라도 교회에 나와 죽을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나면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영혼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불 속에서 끄집어 낸 장작은 이내 불이 꺼져버리고 맙니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통하여 이 어두운 시대에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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