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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에 대한 지식 (시 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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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지식 (시 23:1)    
 
“행복하게 살려면 단순하게 살아라.” 는 말이 있습니다. 특별히 요즘처럼 복잡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것이 simple mind 즉, 단순한 마음입니다. 이미 10여 년 전에 [베르너 티키 퀘스틴마허] 라는 사람이 <단순하게 살아라> 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을 살지만 마음은 단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단순하게 살아야 건강하고, 때로는 단순하게 살 때 능력도 생기고 지혜도 얻을 수 있고 성공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에는 비결이 있습니다. 단순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많은 것을 버려야 합니다. 버리지 않고는 단순해질 수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만족할 수 있는 한계를 100으로 봅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에게는 120%를 가지고 싶어 하는 욕망이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100%를 가지지 못하면 못살 것 같지만 사실은 75%만 가지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조금 모자라게 사는 것이 오히려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집에 있는 물건들도 가만히 보면 버릴 것들이 많습니다. 다 쓸 것도 아니고. 다 입을 것도 아닌데 얼마나 많은 것들이 쌓여있습니까? 이게 120%를 가져야 만족하겠다는 사람의 욕심입니다. 좀 줄여도 됩니다. 75%만 가져도 살아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기억해야합니다. 

아무튼 단순함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날마다 하나님을 보십니까? 아니 더 정확히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십니까?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만나려면 그 하나님만 생각하고 그 하나님만 바라보면 되는데 하나님을 보려다가 정작 하나님은 보지 못하고 매일 매일 엉뚱한 것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까?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 가 어느 날 아침식사를 하는데 자신의 집에서 키우는 개가 앞에 앉아서 루터가 빵을 집으면 빵을 보고 고기를 집으면 고기를 보고 입으로 올라가면 입을 보고 올라갔다 내려갔다 열심히 쳐다보는 겁니다. 몇 번을 반복해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쳐다보다가 고기 한 조각을 찢어서 주었더니 얼른 물고 갑니다. 

이것을 본 루터가 무릎을 탁 치면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개가 고기조각을 쳐다보는 것 같이 내가 하나님을 쳐다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 개는 이 고기조각을 쳐다보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오로지 고기만 바라보는구나.” 때로는 단순함에서 깨달음이 옵니다. 그리고 의외로 단순을 통한 깨들음이 큰 깨달음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무엇에 대해서 알아 가는 것을 지식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지식이란 하나의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의 방법을 통하여 얻게 됩니다. 

먼저는 논리적 지식이란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성의 기능을 통해서 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른 이성을 통해서 비판하고, 추리하고, 분석하고, 통합하면서 논리적으로 이해가 될 때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생각으로 봅니다. 

유명한 과학자 [아인슈타인] 은 과학적 지식에 의한 하나님을 설명합니다. 그는 만물의 근원을 Energy즉, 보이지 않는 어떤 힘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힘이라는 것이 물질이냐 인격이냐를 두고 생각하다가 물질로부터 물질이 나올 수는 없고 인격적 생명체로부터 물질이 온 것인데 그 인격적 생명체란 바로 하나님이라는 얼마나 멋있는 논리적지식입니까? 

유명한 신학자 [칼 바르트] 는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의 주체” 라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계시하시는 것만큼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맑은 이성으로 그 능력을 따라, 그 기능을 따라서 논리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성이 병들면 이것이 문제입니다.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성이 건강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는 감성적 지식이 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감성으로 사랑을 말합니다. 가슴으로 아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아기가 울 때에 무엇이 필요한지 엄마는 압니다. 배가 고파서 우는지, 기저귀를 갈아 달라는 울음인지를 어머니는 압니다. 이것을 가슴과 가슴으로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기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지만 그 사정을 어머니는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감성 중에 최고는 사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 가슴이 열리고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지만 미워하게 되면 가슴이 닫히고, 가슴이 닫히면 아무것도 모르게 됩니다. 즉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의 문이 꽉 닫히고 만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감성 중에 의심이란 것도 있습니다. 의심하게 되면 가장 먼저 생기는 것이 오해입니다. 의심이 이미 마음에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도 오해가 됩니다. 이래도 오해하고 저래도 오해합니다. 그러므로 감성이 깨끗하고 마음이 깨끗해야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특히 하나님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감성적 지식이라는 것도 중요합니다. 

또 하나는 경험적 지식입니다. 

말 그대로 몸으로 경험하면서 얻어지는 지식입니다. 그런데 이 경험이라는 것은 양면성이 있습니다. 때로는 유익한 것이지만 때로는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경험적 지식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자칫 이기주의나 자기우상 주의로 빠져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지식 위에 경험적 지식이 적절하게 더해져서 알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하겠습니다. 

또한 감각적 지식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특수하고 아주 고난도의 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별히 스포츠 선수들에게 필요한 지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습니다만 기본적인 자세가 가장 우선입니다. 

축구선수들에게는 기본적인 킥이나 슛의 자세가 발라야 공을 정확하게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가 있습니다. 골프 선수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세 연습을 시킵니다. 그 자세위에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정확하게 자기가 의도한 곳으로 공을 보낼 수 있도록 감각 화시키는 것입니다. 아주 몸에 익숙해지게 하라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신앙의 기본적인 지식은 무엇입니까? 어떤 어려움과 힘든 상황이 올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굳게 지킬 수 있는 감각 화된 신앙의 기본이 무엇입니까? 이제 우리는 이 모든 지식, 논리적 지식, 감성적 지식, 경험적 지식, 감각적 지식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을 알아야겠습니다. 결국 다른 모든 지식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하나님을 바로 알기 위한 지식을 가지기 위한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히 밝힙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천명하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게 하시는 분이라고 밝힙니다. 가장 기본적인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자, 그런데 이 시를 쓰고 있는 다윗은 정말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을까요? 아닙니다. 자기의 인생 중에 가장 곤고하고 어려운 시기를 지나면서 오히려 “부족함이 없다.” 고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합니다. 가장 결핍이 많은 인생의 시기를 지나면서 오히려 “모자라는 것이 없다.” 고 고백하는 다윗의 신앙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입니까? 

다윗의 인생을 돌이켜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볼 때 지극히 불행한 일생을 살아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사랑으로부터 소외 된 가운데 자라야했습니다. 다른 형들만큼 귀하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형제들에게도 살붙이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던 아내 미갈에게도 존중히 여김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기는 사울을 미워한 적이 없었지만 사울은 그의 생명을 노렸습니다. 어쩌다 낳은 아들은 왕위를 빼앗겠다고 칼을 들고 일어섭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다윗의 인생은 부족한 것투성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것은 미래에 대한 확신인 동시에 현재 그의 삶을 주관하고 있는 목자이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풍부한 환경이 그 고백을 만들어 준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의 신앙생활의 여건이 이런 불후의 고백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다윗으로 하여금 쉬지 않고 믿음을 흔들기 위하여 다가오는 모든 세상의 파도와 믿음의 시련과 유혹 앞에서도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지식이자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하나님을 목자로 여기고 그의 목양의 그늘아래 있는 것을 즐거워하며, 그의 음성을 들으며, 그와 함께 신뢰 속에서 살아가는 그 관계가 그로 하여금 이런 고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어려움과 신앙의 침체의 원인을 환경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우리들이 새롭게 깨달아야 할 말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고백을 가질 때 우리의 신앙이 가장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아시고 나는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길이 없다고 믿는 절대 의존적인 신앙만이 우리로 하여금 어둡고 힘든 세상을 믿음을 살아가게 만들어 줍니다. 다윗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다윗의 처지에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고백을 하고 있듯이 오늘 우리에게도 언제든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있습니까?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니다. 단순하게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며, 그 안에 있는 나는 그러므로 부족한 것이 없다.” 이것이면 됩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단순하게 그러나 명확한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십니다. 그래야 세상을 이기고 영적인 승리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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