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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달란트 비유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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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란트 비유 (마 25:14-30)  

지구의 종말이 내일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사람들은 때때로 이런 긴박한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 실컷 먹고 마시고 취하겠다는 사람, 조용히 방에 틀어박혀 있겠다는 사람, 여행을 떠나겠다는 사람 등 다양한 대답을 한다.

초대 교회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 

주의 강림이 쉬 이루어진다는 소문과 주님이 이미 오셨다는 소문이 유포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빈둥거리며 놀았다. 주님이 오시면 이 땅에서 결혼하고 공부하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이 다 허사이니까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 교회를 어지럽히는 종말론의 폐해였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종말론에 잘못 빠져든 사람은 가출하고 일상 생활을 거부하며 어떤 특정 집단에 들어가기도 한다. 오늘 읽은 달란트 비유는 바로 이런 종말 문제를 겪고 있는 교회에 주는 주님의 가르침이다. 

주님은 아셨다. 주의 강림의 징조가 깨달아질 때 우왕좌왕한 사람들의 불안과 두려움 증세를 아셨다. 그래서 이 달란트 비유를 열 처녀 비유와 함께 주셨다. 그것은 ‘인자의 오심과 인자의 오심 앞에 어떻게 서는가?’에 대한 답을 주시기 위해서다. 두 이야기는 이렇다. 달란트 앞부분의 이야기는 “인자가 오신다. 그러므로 인자의 오심 앞에 깨어 있으라. 준비하고 있으라.”는 것이다. 

마24:37~50까지 기록되어 있다. 달란트 비유 뒤에 있는 이야기는 “인자가 오신 후 사람들이 두 부류로 나뉘어져 영벌과 영생을 받는다는 심판의 이야기”이다. 마25:31~46까지 기록되어 있다.

달란트 비유는 마25:14~30에 기록되어 있으니 살펴본 그대로 인자의 오심을 준비하라는 이야기와 오신 인자가 보좌에 앉아 심판하는 이야기 가운데 나온 말씀인 것이다. 그러니까 주의 오심과 심판을 믿고 준비하는 삶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가?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내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열심히 주어진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옳은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러면 달란트 비유의 내용을 보자.
  

1.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들이다. (마25:15)

마25:15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달란트를 맡은 이들은 주인의 것을 맡은 자들이다. 종에게 맡길 때 무작정 맡긴 것이 아니고 개인, 개인별로 재능을 따라 맡겼으니 감당하도록 맡겼다. 이것이 고마운 것이다. 

내 재능이 얼마만한 재능인지 나는 잘 몰라도 주인이 각각 종의 그릇을 알고 재능대로 크고 작게 달란트를 맡겼다. 사실 달란트는 금의 중량이지만 Talent, 즉 텔레비전에 나오는 드라마 배우들도 탤런트라고 부른다. 나를 잘 아는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합당한 크기의 달란트, 즉 재능을 맡겼으니 참으로 적당하고 잘된 일이다. 맡겨주신 것에 대해 할 일은 감사의 태도로 충성할 뿐이다.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보다 재능이 많으냐, 적으냐 그것을 비교하고 따지는데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 나는 왜 작은 것을 맡았는가라고 원망해서도 안된다. 내 각각 재능대로 내 보수만큼 맡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맡긴 달란트를 활용해야 한다.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이 맡기신 재능은 한 가지라도 맡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달란트를 맡지 않았다고 변명하거나 핑계할 수 없다. 남보다 탁월하지 않다고 투정하느라 눈이 어두워져서 맡은 것을 외면하는 것이 문제다. 누구나 하나님의 것을 맡은 자가 그리스도인이다.
  

2. 그리스도인은 주인되신 하나님 앞에서 결산해야 한다. (마25:19)

마25: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삶이란 적당히 막을 내리는 것이 아니다.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지내왔든지 간에 결산의 날이 있어서 삶을 긴장시킨다. 연주 무대의 막 내림도, 경제 활동의 막 내림도, 정치적 리더의 막 내림도 뜻없이, 끝없이 막 내림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어떤 것이라도 마찬가지다. 결산으로 종결된다. 하물며 살아계신 하나님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인자가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이유는 맡겨놓은 것을 어떻게 하였는지 보게 한다. 즉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결과들을 보고 받고 계산해 보고자 결산하시는 것이다. 

오목천교회가 어느 덧 100주년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옛날 성도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지금 남아있는 우리들이 결산대에서 결산해야 한다. 업적을 내보이는 사람, 사람을 구원한 사람, 해외 선교에 투자한 사람, 목회자를 섬긴 사람, 구제한 사람 등 나름대로 달란트를 활용했다. 그런대로 애를 썼다. 건강으로, 물질로, 재능으로 일해 왔다. 허나 긴장되는 것은 주인의 결산이다. 나의 삶을 맡겨진 교회에서 맺어 갈 열매를 하나님이 어떻게 결산할 것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3. 하나님으로부터 상과 벌을 받는다. (마25:20~23)

마25:20~23에 보면 상을 받는 자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맡은 자다. ①그들은 착하고 충성된 종이란 호칭을 들었고 ②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더 많은 것을 관리하는 이들이 되었다. ③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특권을 얻었다.

그런데 마25:24~30을 보면 벌을 받는 자는 한 달란트를 맡은 자다. 그는 ①악하고 게으른 종이란 호칭을 들었고 ②한 달란트마저 빼앗기는 자가 되었고 ③바깥 어두운데 내쫓아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하였다. 

이 달란트 비유에서 우리는 주인이 어떤 분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은 맡겨 놓은 것을 가지고 주인이 돌아오는 날까지 어떻게 했느냐가 주요 포인트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삶을 결산하여 확실하게 상과 벌을 주신다는 것이다. 잘한 삶은 칭찬으로, 못한 삶은 꾸지람으로 나누어 상벌을 주는데 상벌이 정해지면 돌이킬 수 없다. 

그러면 상벌을 줄 때 꾸지람을 듣고 벌 받고 쫓겨나간 자는 무엇이 문제였는가? 아무 것도 안한 것이 문제였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 이것이 꾸지람을 듣게 되는 잘못된 행실이다. 그대로 땅에 파묻어 두었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되돌려드리는 이 게으름은 악하기 짝이 없는 잘못된 삶으로 규정된다. 마찬가지로 그 때나 이 시대나 주의 재림이 가까이 왔다고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시간만 보내는 것은 매우 잘못된 삶이다. 세상에 오염될까봐 자신의 인생을 커튼 뒤에 감추고 은둔하며 살려 한다면 무익한 종이다. 악한 종이다. 

사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재림이 가까워졌는데 일하면 무엇할 것인가?’ 하는 체념론이 일어났다. 교인들은 주님이 곧 오실텐데 농사도 소용없고 집 짓는 것도 소용없고 공부하는 것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살후2:2을 보라. 그리스도의 강림이 임박하다고 해서 마음이 흔들리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소문의 바람 앞에 미혹되지 말라고, 불안해하지 말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살후3:11을 보라.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임박한 재림 앞에서 아무 것도 안하려는 것이 문제였다.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저지르고 사역 자체를 어렵게 되도록 하는 것도 문제였다. 스피노자는 내일 세계에 종말이 올지라도 오늘 사과 나무를 심으리라고 하였는데 인자의 강림 소문으로 인해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영적 생활의 질병이다. 이것을 가리켜 악한 신앙이라고 달란트 비유에서 잘 보여준다. 주님은 이렇게 될 것을 아시고 재림을 기다리는 준비의 신앙이란 열심히 최선을 다해 일하는 것임을 알려주려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아 칭찬을 들은 이들을 보라.

① 그들의 행동은 신속했다. (마25:16) - 바로 가서 장사하였다. 게으르거나 주저하지 않았다. 

② 그들의 삶은 열매가 있었다. (마25:16~17) - 장사의 열매로 갑절을 남겼다.

③ 그들의 충성심은 주인을 기쁘게 하였다. (마25:20,22) - 남긴 것까지 더 가지고 와서 다 보여드렸다. 

이 칭찬 듣는 사람들은 주인이 언제 오시든지 그 날을 준비하는 삶을 살았는데 최선을 다해 맡겨진 것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상 받을 사람은 주인을 제대로 안 것이다. 주인이 어떤 분인지 안 것이다. 반면 벌 받은 사람은 주인을 전혀 모른 것이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모른 것이다. 

우리는 달란트를 맡기신 주인을 바로 알자. 가만히 있는 것을 싫어하시는 하나님, 소극적이고 두려워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하나님, 허무주의에 빠진 자를 기뻐하지 않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바로 알고 주님 오심을 기다리자. 

이제부터 우리가 다시 오시는 주님을 기다린다면 맡겨진 달란트를 묻어 두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그렇게 땀을 흘리고 일하며 사는 삶이 재림 신앙의 참된 생활이다. 산 속에 숨어 들어가는 것이 신령한 삶이 아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의 탤런트로서 일하는 것이 거룩이고 신령한 것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한 달란트라서 다 남기려고 시도해야 한다. 

작가 최인호 씨는 침샘암으로 별세했다. 그러나 그는 암으로 죽는 자가 아니라 마지막을 작가로 죽기로 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두 달 만에 소설을 탈고하고 죽었다. 우리는 누구인가? 성도다. 성도는 전도자다. 삶이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그날이 되기까지 움직이며 영혼 구원을 위해 살아야 한다. 은퇴한다고 복음 전하는 일을 그만 두는가? 부르시는 날까지 탤런트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물어야 한다. 내게 맡겨주신 달란트는 음악인가? 학문인가? 기술인가? 체육인가? 정치인가? 장사인가?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재능의 달란트를 활용하여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은 죄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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