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교회창립]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엡 2:11-19)

첨부 1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엡 2:11-19)
 
1955년 10월 2일 바로 이 동산 언덕위에 천막을 치고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방 목사님과 1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시작한 것이 바로 우리교회의 출발입니다. 그리고 어언 58년의 역사가 흘러갔습니다. 

아마 이 교회를 예배하는 얼굴도 많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드려 희생하신 목사님들로부터 원로 장로님 원로 권사님, 또 많은 성도들의 눈물과 기도 가운데 교회는 자라왔습니다. 정말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이 바톤이 주어져 있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달려 가신 것처럼 우리도 믿음의 바톤을 잡고 우리가 달려갈 길을 향해서 힘차게 경주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은 상 찡그리시면 안돼요. 생일 날은 좋은 날 아니예요? 생일날은 신경질 나요? 우리 교회의 생일 날이예요. 즐겁고 기쁘게 서로 축복하고, 불만이 있는 분들은 오늘은 불만을 좀 표출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서로 양보하시고 오늘은 하루 종일 감사와 기쁨 웃음이 있는 축복의 하루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평화로운 동산에서 두 명의 목동이 양들에게 풀을 뜯기고 있었습니다. 하다보니까 매일 똑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좀 권태로워요. 그래서 한 목동이 제의했습니다. ‘야! 우리 오늘 좀 재미있는 놀이를 하자. 이 넓은 초원에 너와 나 사이에 담을 쌓자. 그리고 담으로 경계를 치고 서로 왕래하지도 말고 이제 우리가 이 땅의 주인이 되는거야.’ ‘그거 재미있겠다.’ 그래서 돌을 주어다가 서로 담을 쌓기 시작했어요. 

서로 경계를 만든거예요. 담을 쌓다 보니까 땀을 흘리고 목이 말랐어요. 한 목동이 목이 말라서 물을 먹으려니까 저쪽에 샘이 있거든요. ‘나 물 좀 먹으러 가야겠어’ 그랬더니 ‘안돼 여기는 내 땅이야. 내 허락 없이는 못 와’ 이러는 거예요. ‘아니 이건 놀이인데 물도 못 먹게해?’ ‘놀이도 규칙이 있는거야 안돼!’ 정색하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는 화가 난 다른 친구도 ‘야 그럼 그만 둬, 여기는 물이 없는 줄 알아?’ 그래서 깊이 곡괭이로 구덩이를 열심히 팠어요. 그랬더니 나오라는 물은 안 나오고 무슨 상자 하나가 나왔어요. 그래서 뚜껑을 열어보니까 이것이 보물 상자예요. 

그랬더니 저쪽 친구가 ‘야! 우리 이제 부자 됐다!’ 그랬더니 친구가 ‘부자는 무슨 부자야 내가 부자지 너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어. 내 땅에서 나온거거든.’ 자 여러분 그러나 아무리 보화를 가졌어도 물을 마지지 않으면 살 수 가없잖아요. 목이 말라서 안 되겠어요. ‘야 그러지 말고 우리 타협하자. 내가 진주 목걸이 하나 줄테니까 너는 물 한 바가지 나에게 먹여 줄 수 있겠어?’ ‘그래 그렇게 하지 뭐’ 그래서 서로 타협을 했어요. 진주 목걸이를 가지고 경계선 까지 가고 한 친구는 물 한바가지를 가지고 서로 먹여 주었어요. 물을 먹여 주고 하나는 진주 목걸이를 걸어 주는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잠시 후에 둘 다 죽었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진주 목걸이를 가지고 목을 졸라서 상대방을 죽여 버렸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떠온 물에는 독을 탔어요. 둘 다 결국 부둥켜안고 쓰러지니까 그 쌓았던 담이 다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의 여류 작가 애드남 밀레 여사의 아리아 다커포라는 극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담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서로 마주치기 싫은 사람들하고는 앉아도 그냥 안 앉아요. 가방을 놓고 앉아요. 왜요? 이쪽으로 앉지 말아라! 보기 싫다! 뭐 그런 얘기죠. 국가와 국가간에 핵무기라는 담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기심이라는 담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미움과 증오라는 담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서로 경멸의 담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또한 하나님 앞에 높은 죄의 담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인간 사이에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담을 헐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 계십니다.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분은 바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막힌 담을 허시기 위해 오셨어요. 성경은 그것을 증언해요. 14절 말씀을 한 번 다시 읽어볼까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아멘! 자기의 육체로 막힌 담을 헐어버리셨어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되게 하셨어요. 

자 15절, 16절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아멘!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피 훌려 죽으심으로 그분의 육체를 깨뜨리심으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죄의 담이 허물어졌어요. 원수의 관계가 허물어졌어요. 인간과 하나님 사이가 화목한 관계가 되었어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었어요. 한 새 사람, 한 몸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 운명하실 때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와 성소를 막았던 휘장이 찢어짐으로써 인간들은 이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이 열렸어요. 죄로 막혔던 담이 허물어지고 인간이 하나님과 소통하게 되었다. 이것이 십자가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이루어진 사건을 과거와 현재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느냐? 전에는 그 전에는 우린 이런 사람이었어요. 소망 없는 사람들이었어요. 

자 1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볼까요?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아멘! 

그 때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의 모습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 없는 외인에 불과 했어요. 세상에는 소망이 없었어요. 그리고 우리 안에도 하나님이 없었어요. 우리는 다 무신론자였어요. 소망 없는 삶을 살고 있었는데 바로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빛을 주시고 소망을 주시고 구원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제 우리의 모습이 달라졌어요. 과거에는 소망 없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이제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것이 중요해요. 

19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죠.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아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이제 너희는 외인! 외국인도 아니고 나그네도 아니고 떠도는 사람들 집도 없이 떠도는 사람들, 나그네도 아니고 너희는 성도와 똑같은 시민! 어떤 시민이요. 천국시민! 너희들은 천국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권속이라는 말은 다른 번역에 다 보면요, 영어성경, 새번역, 공동번역 보면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했어요. 사실은 가족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한 표현이예요. 여러분 우리는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분에게 한 번 인사하세요.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게 중요한 거예요. 우린 예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어요. 

여러분 제가 인도 다녀와서 그 주일에 우리는 뭐라고 설교했어요. ‘우리는 한 팀입니다.’ 우리는 한 팀이라는 거에요. 야구팀, 축구팀처럼 우리는 한 팀이예요. 한 목적을 향해 우리는 뭉쳐야 해요. 한 팀이예요.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예요. 

서로가 협력하고 도와줘야지 좋은 팀이 될 수 있어요. 저는 오늘 우리의 설교 제목을 ‘우리는 한 가족입니다.’라고 정했어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으로 부름을 받았어요. 여러분 가족이 얼마나 소중해요. 육신의 가족도 얼마나 소중해요. 여러분! 피는 뭐보다 중요하죠? 물보다 진하잖아요. 그래서 역시 내 가족이! 내 새끼지! 아무리 남이 좋아도 내 새끼가 우선이지! 왜? 내 피로 타고 났으니까! 혈연관계니까 그래서 피는 물보다 진한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누구의 피로 한 가족이 되었어요? 예수의 피로. 우리는 예수의 피로 영적 가족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예요. 여

러분 여러분의 혈연관계가 중요하니까 지난 추석에 어땠어요? 저 부산에 가는데 10시간씩 차를 타고 가잖아요. 그 교통난을 헤치고 뭐하러 가요 힘들게? 그래도 가족을 만나고 나면 기분이 좋은 거예요.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고 가서 돈도 쓰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갔다 오면 보람이 있는 거예요. 왜요? 우리는 가족이니까 교회도 바로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예요. 우리 모두는 여기에 있는 어린 아이로부터 92세에 이르는 김순애 권사님까지 우리 모두는 한 가족이예요. 

여러분 이 의식을 가져야 해요. 이것을 모르면 곤란해요. 예수 헛 믿은 거예요.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영적 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 우리가 한 권속 가족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가족이 되었다니? 어떻게 가족이 될 수 있는가? 제가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릴게요. 

우리는 먼저 예수님의 피로 맺은 가족입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피로 맺은 가족이다. 성경적 근거 13절 말씀을 같이 읽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아멘 전에는 멀리 있었어요. 남이었어요. 이방인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이 얘기는 가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는 가족 아니예요? 우린 가족이 되었다. 예수의 피로 한 가족이 되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보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그래서 찬송가에도 이 보혈 찬송이 너무 많은 거예요. 예수의 피, 주의 보혈, 주의 보혈, 주의 보혈 여러분 예수님의 보혈,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내 죄가 씻음 받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사건인지 몰라요. 여러분의 모든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은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30년을 해도 내 죄가 예수님의 피로 씻음 받음을 믿지 못하면 그것은 헛 믿은 거예요. 그것은... 다른 것은 다 몰라도 내 더럽고 누추한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음을 믿습니다. 그 확신이 필요한 거예요. 그거면 족해요. 누구든지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고 주님 앞에 내 죄를 고백하면 예수의 보혈로 씻김 받는다. 

예수의 보혈로 씻음 받았다. 우리의 육신이 더러운 것은 양재의 물로 또 하이타이로 씻어도 비벼도 안 되지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로는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는 거에요. 너희 죄가 눈과 같이 될 것이다. 양털같이 될 것이다. 정말 우리에게는 예수의 피의 보혈이 너무너무 필요한거에요 

여러분.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일생을 복음을 증거하셨는데 어떤 기자가 와서 물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 이렇게 일생을 부흥사로 다니셨는데 가장 아쉬운게 무엇입니까? 저는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 교회 밖에 이방인들로 생각했는데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은 교회 안에 더 많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매일와서 예배드리지만 진정한 복음은 몰라요. 예수의 피의 복음을 몰라요. 습관적으로 그냥 의식적으로 그냥 곗돈 받기위해서 그냥 교회 점심이 맛있어서 그냥. 오는 분들은 예수의 피의 의미를 전혀 몰라. 복음을 모르는 거에요. 

여러분 예수의 피로 우리는 한 가족이 된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피로 맺은 가족이라니까요. 한번 옆에 분들과 우리는 피로 맺은 가족입니다. 시작. 우리는 피로 맺은 가족입니다. 물론 육신의 혈연은 아니지만 예수님의 피로 우리는 한 가족이 된 거에요. 이건 분명히 아셔야 돼요. 성경에서는 분명히 예수의 피로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 권속이 되었다. 

자 두 번째 우리는 어떤 가족일까요? 예수님의 주례로 이뤄진 가족이다. 마치 신랑 신부를 놓고 주례자가 남자 여자 성이 다르지만 한 부부로 묶어주듯이 이제 한 몸 되었다고 선포하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상에서 우리들을 한 가족으로 묶여주셨어요. 

자 우리 자막에 요한복음 19장 26절27절을 한번 볼까요?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26절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의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절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아멘 

예수님의 육신적인 어머니 마리아가 계시고 십자가 앞에 그리고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전에 어떤 말씀을 하셨습니까? 요한아 네 어머니야. 이제는 네 어머니로 모셔라 그런 이야기에요. 그리고 요한을 가리키며 마리아에게 어머니여 당신의 아들이니이다. 그때부터 요한이 친어머니처럼 모시고 이생을 공경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에서 요한과 마리아가 아무 관계가 없지만 그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주었어요. 가족이 되었어요. 예수님이 주례를 선거에요. 신혼부부 주례가 아니라 가족의 주례를 슨거에요. 여러분과 저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허강희 선생님은 허씨고 나는 이씨인데 그냥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왜? 허강희 자매도 예수님의 가족이고 나도 예수님의 가족이니까 고로 예수님의 한 가족인 거에요. 그렇죠. 우리는 한가족이 된 거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한 가족으로 묶어주셨다. 하는 거에요. 

우리 젊은이들 있습니다. 여기 원로 권사님들 원로 장로님들 있지 저분들이 바로 너희 어머니고 너희 아버지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에요. 또 원로 권사님들은 젊은이들을 향해서 젊은이들이 늘 마음에 안들지? 때로는 머리에 염색도 하고 다니고 말도 잘 안 듣고 그래도 너의 아들이고 딸이야 말씀하시는 거에요. 이제 우리 모두를 한 가족으로 예수님이 묶어주신 거에요. 
예수님이 사랑하는 그 분이라면 겸손하게 가족으로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해요. 

만약에 여러분이 교회 공동체 속에서도 어떤 분하고는 친하지만 어떤 분하고는 안 친한 분이 있어요. 안 친하면 옆에 가기도 싫어. 근데 또 우리 교회의 특징을 보면 부부가 와도 서로 떨어져서 앉는 버릇이 있더라구요. 남자 권사님은 이쪽에 여자 권사님은 저쪽에 홍기복 권사님은 같이 앉으니까 얼마나 보기가 좋아요. 교인들 가운데도 보기 싫은 사람 옆에는 안가. 
딱 봐서 이쪽 줄에 있으면 저쪽 줄에 가서 앉아. 서로 안마주 치려고. 자 과연 이게 옳은 것입니까?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모두는 나의 한 가족이야. 오히려 예수님 때문에 용납할 사람을 용납해야하고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가까이 해야해. 왜?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주기도문에도 보세요. 내가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내 죄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였어요. 우리가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이 모두가 다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요 또 아들로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주례로 맺어진 가족의 모습이다. 

여러분 이제 우리교회는 예수님이 맺어준 공동체로 한 가족이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가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는 하나님을 믿을 때부터 가족이 되었고 하나가 되었어요. 2주전에 에베소서 4장에 보면 뭐라고 했어요. 평안을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이제부터 하나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 되게 해주셨어요. 

성령 안에서 우리는 그것을 힘써 지키고 보존해야할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가르지 마세요. 담을 쌓지 마세요. 그건 주님의 원하는 모습이 아니에요. 주님의 가족의 모습이 아니에요. 때로는 어떤 가정을 보면 동생이 하는 짓마다 얄미울 때가 있어요. 엄마는 좋은데 난 동생이 미워. 동생을 미워할 수 있나요? 어머니는 나도 사랑하지만 그 얄미운 동생도 사랑하시는데. 그도 어머니의 자녀이고 나도 어머니의 자녀인데. 형제라면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어요. 교회의 규범은 사랑과 용서입니다. 마음에 안 들면 용서하세요. 그리고 사랑하세요. 서로 증오하면서 담을 쌓는 것 주님과 상관없는 일이에요. 

세 번째 우리는 어떤 가족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기쁨 되는 가족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좋았더라. 여러분 명절 때 자녀들이 다 모였는데 큰 며느리와 작은 며느리가 서로 싸웠는지 말도 안해. 큰 며느리는 안방가서 티비보고 있고 작은 며느리는 다른방 가서 딴짓하고 있어. 부모의 마음이 어때요?

큰아들하고 둘째 아들하고 말도 안해. 재산 때문에 싸웠데. 말도안해. 자 부모마음이 어때요? 여러분 보세요. 우리는 한 가족인데 한 교회 안에서 서로 말 안하고 일 년을 지냈어. 우리 하나님 마음이 어떨까요? 서로 말도 안해. 보면 아주 외면해. 

자 여러분 주님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우리 때문에 주님께서 또 십자가에 달리셔야해요. 나 때문에 내가 미워하는 그 형제 때문에 나의 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얼마나 주님께서는 안타까우실까. 시편 133편 1절에 보니까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하고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형제들이 서로 하나 되고 서로 동거할 때 주님이 그것을 보고 너무 기뻐하신데요. 

우리 교회교회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야 말로 그런 모습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죽어서도 천국에 함께 가실 것 아닙니까? 아니 천국가기 전에 우리는 교회 추모관에 함께 묻힐 존재들 아닙니까? 

제가 2주전에도 말씀드렸어요. 추모관에 갔더니 맨 밑에 줄에 이영일 장로님 부부 이영무 목사 부부가 같이 붙어 있더라고요. 이영일 장로님 하고 저는 절대 안 싸우기로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죽어서도 유골이 같이 뭍일 터인데 같이 잘 지내야지 안그렇습니까? 우리 교회 교우들은 한 가족이에요. 

여러분 우리는 죽어서도 유골이 같이 묻힐터인데 같이 잘 지내야지 않겠습니까? 우리 교회 교유들은 한 가족이에요. 우리는 한 추모관에 함께 묻히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곳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니에요. 잠시 머물지만 우리는 죽어도 한 가족입니다. 

또 우리 가족들은 힘을 모두어 주님이 주신 사명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권사님의 가정에서 5110의 첫 번째 비전을 세우는 큰 헌금을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보족한 것 같지만 우리가 힘을 합치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요. 우리 교회 58년을 가만히 보면 우리 교회 역사는 특이해요. 그 많은 재벌 회장도 없어요. 돈 많은 사장도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다 어찌보면 성실하시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교우들이 조금씩 헌금하고 그것을 모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지금까지 발전해올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몰라요. 이것이 바로 가족의 위대한 힘인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족은 어떤 어려움을 만나도 마음을 모두면 문제가 되지 않아요. 능히 해결할 수 있어요. 가족이 하나가 안 되니까 그렇지 가족은 어떤 절망도 이길 수 있어요. 1940년대 2차대전 때 독일군이 강세였습니다. 프랑스도 무너지고 벨기에, 네덜란드 다 독일군에게 항복했습니다. 영국군만 남았어요. 

영국군 20만 명과 연합군 10만 명이 프랑스 해안에 고립됐습니다. 독일의 유명한 전차부대가 돌진해오고 있었어요. 오늘 밤이면 운명이 끝나요. 30만 명이나 죽어요. 처칠 수상은 급했어요. 국회에 나가서 호소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우리 국민들 힘을 모아 주십시오. 국민들도 기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어요. 영국 해역 선상에 배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어중이 떠중이 배들이 모이기 시작했어요. 

그 배가 뭘까요? 어선, 인양선, 고기잡이 배, 구명보트, 요트, 유람선, 여객선, 낚시배 수천개의 배라는 배는 다 모였어요. 그 배들이 30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다 안전한 곳으로 옮긴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놀라운 일이에요. 영국 군함으로는 17000명만 옮길 수 있어요. 30만명을 수천 대의 배들이 모여서 다 옮겼어요. 그것이 2차대전 승리의 불씨가 되고 영국이 독일군을 무찌르고 승리한원동력이 됐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가족의 힘이라고 봐요. 큰 배도 아닙니다, 어중이 떠중이 낚시배, 구명보트가 다 모여서 어마어마한 괴력을 발휘하게 된 거예요. 이것이 가족의 힘이에요. 우리 교회 가족들이 힘을 모을 때 교회는 위대한 비전을 들고 나아가는 교회가 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힘이 모아질 때 큰 다이나마이트 같은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공동체 아닙니까? 밖에서 절망한 사람들 상처 받은 사람들이 이 공동체를 통해서 힘을 얻는 거예요. 명절 때 다녀오면 가족들로부터 힘을 얻어요. 

2010년 미국 메이저리그에 포스트 시즌에 가장 영웅으로 불리는 인물이 있습니다. 조쉬 헤밀턴 이라는 선수에요. 27살입니다. 그는 그에게 붙은 숫자가 있어요. 81, 26이라는 숫자입니다, 그것이 뭐냐하면 약물중독 재활치료를 위해 8번이나 등록을 했어요. 그는 11차례나 자살을 시도했던 선수였어요. 그는 26개의 문신을 가지고 있는 선수였어요. 왜그랬을까요?

1999년 그는 지명타자 1위였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신인선수 중 하나였어요. 아주 뛰어난 외야수였어요. 그러나 그는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등과 허리에 심한 부상을 입었어요. 그리고 진통이 찾아와 견딜 수가 없으니까 결국에는 마약 코카인을 흡입했어요. 

그렇게 그는 야구선수로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어요. 그는 마지막으로 죽기 전에 시골에 있는 할머니를 찾아갑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가 손자를 따뜻하게 안아줬습니다. 그리고 그를 격려해줬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야기 합니다. 너는 너 자신을 죽이고 있어.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고 있다니까 그리고 나머저 너는 죽이고 있어. 너를 바라보는 우리가 함께 죽어가고 있다니까. 너만 주근ㄴ게 아니야. 그 말에 정신을 바짝 차립니다. 

그리고 약물 재활 치료를 받습니다. 실패하지만 또 시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을 갖게 됩니다. 결국 믿음이 그를 이겨나가게 합니다. 할머니의 꾸짖음과 격려와 사랑이 그를 우뚝서게 했습니다. 

그는 이제 야구를 다시하고 싶은데 받아줄 사람이 없어요. 약물 중독자를 누가 받아줍니까? 그러니 야구할 돈도 없어요. 그는 야구 아카데미에 등록했는데 돈이 엇어서 낮에는 잔디를 깎아주고 화장실 청소를 해주고 야구를 배우기 원합니다. 다시 기본부터 배웁니다. 그러다 2007년 그는 가까스로 구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2010년 미국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가 됩니다. 그는 절망을 딛고 일어섰는데 그 원인이 뭐냐?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교회의 모습 아니겠습니까? 세상에서 버림받은 영혼들 절망한 영혼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형제 된 사람들에게 보살핌을 받고 사랑을 받고 다시 일어서는 것 그것이 교회의 모습 아니겠어요? 적어도 예수님이 꿈꾸던 교회가 바로 이런 교회 아니겠어요? 째려보고 미워하고 손가락질 하고 말도 안하고 외면하고 이것이 무슨 교회에요. 세상의 친교모임보다 등산 모음보다 못하지. 교회는 안주고, 사랑하고 격려하고 축복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우리 주님 성경에 말씀하시잖아요. 전도서 4장 12절에 보니까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우리 한사람은 약하지만 마귀의 밥이 될 수있지만 우리가 공동체 속에 들어와 가족이 되면 우리는 강한 결속력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삼겹줄이 무엇입니까? 내가 있고 당신이 있고 주님이 계시다면 우리는 가장 강한 삼겹줄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가장 강한 가족 가장 강한 교회가 될 수 있어요. 58주년을 맞이하는 교회가 아름다운 비전을 향해 한발씩 내딛는 축복의 교회 축복의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