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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올바른 금식에 대하여 (마 6: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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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금식에 대하여 (마 6:16-18)

산상수훈의 11번째는 올바른 금식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금식에 관한 말씀이 참으로 많습니다. 금식에 대하여 긍정적인 말씀도 있고, 부정적인 말씀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금식하는 자들에게 칭찬이 아니라 책망을 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책망을 하시는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하여 금식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16절에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사실 이러한 광경은 예수님 시대에만 그러한 것은 아닙니다. 

스가랴 7:5-6“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 

하나님은 너희가 금식하며 애통하였지만,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단언하십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들을 위하여 금식했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고행(苦行)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금식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도를 닦는 방법 중의 최상의 방법 중의 하나가 금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했을 때, 40일간 금식을 하셨습니다. 40일간의 금식은 인간이 금식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라고 합니다. 40일 금식기도 하다가 잘못된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든 금식을 했지만, 결국 자기 자신의 위대함, 자기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금식한 사람들을 향하여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주님을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40회'라는 단체가 있었습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한 분들의 모임입니다. 제가 아는 그중 한 분은 아주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무리 극단적인 고난의 깊이에 들어갔다 하여도, 인간으로서 위대하다고 생각되는 엄청난 업적을 쌓았다 하여도, 자기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려하는 것이었다면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왜냐하면 그러한 금식, 그러한 업적, 그러한 고난에게 주어지는 상은 절대로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이사야 58:3“이르기를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느니라” 왜 하나님은 우리의 금식하는 일에 관심이 없습니까? 왜 금식하는 우리의 마음을 이같이 괴롭게 하십니까? 참으로 당당하게 하나님께 항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8:4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금식하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간단했습니다. 

막 2:16-19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혹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나니” 

예수님에게 서기관들이 두 가지 이유로 따지듯이 물었습니다. 첫째는 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십니까? 둘째는 왜 요한의 제자나 바리새인의 제자들처럼 금식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러한 질문에 두 가지로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세리와 죄인들을 부르러 왔기 때문이요, 예수님이 함께 사는 사람은 금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신랑을 만난 신부에게는 기쁨만 있을 뿐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슬픔과 고민이 있겠지만,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사람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스가랴 8:19“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월의 금식과 오월의 금식과 칠월의 금식과 시월의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오직 너희는 진실과 화평을 사랑할찌니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성도들 모두에게 주님과 함께 사는 기쁨과 희락이 넘치는 복된 삶이 가득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그러면 금식은 하지 말아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금식하면서 기도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예수님도 금식하셨고, 성경에는 금식해야 하는 이유를 몇 가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용서를 구할 때 금식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요엘 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다니엘 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느헤미야 9:1 “그 달 이십 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사무엘상 7:6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에 금식하고 거기서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둘째 하나님의 사람을 불러서 세워 사명을 주실 때 주의 제자들은 금식했습니다. 

사도행전 13:2-3“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 

셋째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렸을 때 금식했습니다. 

누가복음 2:37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넷째 인간의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시편 35:13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사무엘하 12:16 “다윗이 그 아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되 금식하고 안에 들어가서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니” 

그렇습니다. 회개할 때 금식합니다. 교회의 일군을 세울 때 금식합니다. 주님이 오심을 간절히 기다릴 때 금식했습니다. 병으로 고생하는 심령들을 위해서 금식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금식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금식해야 할 때 금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편 109:21-24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선대하시며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여 중심이 상함이니이다 나의 가는 것은 석양 그림자 같고 또 메뚜기 같이 불려가오며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금식은 엄청난 고통을 동반합니다. 그만큼 철저하게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신앙의 고백으로 우리는 금식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믿음으로 금식하는 것입니다. 내 무릎이 약하고 육체가 수척해질 때까지 금식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나 혼자 아니라 함께 금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미스바에 모여서 온 민족이 회개의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금식기도 할 때에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금식은 나의 신앙의 자세일 뿐입니다. 금식하는 자체가 무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금식 기도 역시 기도의 일부분입니다. 즉 금식기도로 하나님과 투쟁하거나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식하면서 더욱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로 부터 낳은 처음 아들이 아팠을 때, 그 아들이 죽게 되었을 때, 금식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죽자마자 금식을 멈추었습니다. 금식하면서 아들이 건강하게 되기를 기도했지만, 아들이 죽자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더욱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금식 기도 후에 사탄이 시험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금식이 끝났을 때, 사탄이 시험했습니다. 그 이유는 금식이 성공리에 끝났을 때, 교만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신의 신앙이 대단한 것처럼 자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사탄이 공격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는 겸손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금식하여야 하지만, 금식하는 것은 벼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려야 하고, 하나님께 의지해야지만, 금식하는 일을 자랑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만일 자랑하면 사탄이 여지없이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렸습니다. 따라서 사탄이 공격해 올 때 역시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금식에 대하여 한 가지 더 중요한 가르침으로 주셨습니다. 

이사야 58:6-8에 보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밥을 굶는 금식이 아닙니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즐거운 마음으로 약한 이웃과 아픔을 함께하고, 작은 것이라도 함께 나누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입니다. 이러한 금식을 즐겁고, 겸손하게 행할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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