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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마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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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마 6:5-8)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두 가지 필수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구가 제대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구가 궤도를 이탈하거나 멈추면 아무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둘째는 심장이 계속 뛰어야 합니다. 심장이 멈추는 순간이 삶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삼척동자도 알만한 이 사실을 새삼 언급하는 까닭은 생존을 위한 이 절대적인 일을 위해 인간이 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지구를 돌게 하는 일을 위해, 심지어는 내 몸의 일부인 심장을 뛰게 하는 일을 위해 우리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한 일도 없고, 할 수 있는 일도 없습니다. 그저 지구를 운행하시고 심장을 뛰게 하시는 창조주의 은혜에 철저하게 빚지고 살아갈 뿐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뻔뻔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살아있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창조주의 은혜에 감사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버릇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무모한 일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는 생존에 절대적인 것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무력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지구를 돌게 하시고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연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고기가 물 속에 있기 때문에 살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물의 존재를 부정하고 물 없이 살아보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까?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결되지 못하는 사람은 그와 같습니다.

기도가 이렇게 결정적인 것이기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라도 기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로 하여금 기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십니다. 고난은 우리가 얼마나 무력한지를 깨닫게 해주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만들어주는 거룩한 도구입니다.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고난을 겪으면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것이 물을 떠난 물고기와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는 가장 큰 까닭은 고난을 통해서 기도를 되찾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다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2.

그런데 기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올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만, 올바로 기도하지 않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운동을 하지 않는 것도 건강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른 자세와 방법으로 운동하지 않는 것 역시 건강에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릇된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무모한 일이요 위험한 일이지만, 기도한다고 무조건 그 무모함과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되, 올바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올바르지 않은 기도가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십니다.

예수께서 지적하시는 그릇된 기도의 첫 번째는 ‘위선자들의 기도’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5절) 위선자들의 기도, 즉 위선적인 기도가 무엇입니까? 목적이 잘못된 기도입니다. 위선적인 기도는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 

사람에게 자신의 믿음을 과시하고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기도는 아무리 설득력 있다 할지라도 바른 기도일 수 없습니다. 위선적인 기도를 하는 사람은 주로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합니다. 사람들에게 보이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입니다. 기도의 목적이 빗나가니 기도의 자리도 빗나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기도의 목적과 자리를 바로잡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른 기도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골방으로 기도의 장소를 옮겨야 합니다. ‘골방’이란 개인이 사용하는 작은 방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뜻합니다. 기도의 자리를 올바로 설정했다면, 이번에는 올바른 기도의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되고(connection), 소통하고(communication), 사귀는 것(communion)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위하여 손을 모으는 순간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만 모아야 합니다. 눈을 감는 순간 세상 모든 일들과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눈을 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3. 

예수께서 지적하시는 두 번째 그릇된 기도는 ‘이방인들의 기도’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7절) 전도서 기자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이 말씀은 기도가 간결하고 단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밤새 기도하셨고, 똑같은 내용의 기도를 여러 번 반복하셨습니다.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는 말씀은 기도로 하나님을 설득하거나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교도들은 주문을 만들어서 외움으로써 신을 설득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뜻도 알지 못하는 주문을 계속 외우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의 랍비들도 길게 기도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신다고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그릇된 기도인 결정적인 이유는 그 기도가 ‘빈말’이기 때문입니다.

‘빈말’이 무엇입니까? 담겨야 할 것이 담기지 않은 말입니다. 기도에 담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명령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자기 마음대로 부리는 수단도 결코 아닙니다. 기도는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자신의 유한함과 하나님의 영원하심을, 자신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지혜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함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가끔 보면 자기가 마치 기도의 전문가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가 마치 하나님과 사람을 직접 중재하는 사람인 것처럼 행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들의 기도에는 겸손이 들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 잘한다고 하는 사람에게 기도 받으러 가는 일도 있습니다. 내가 하면 들어주시지 않는 기도를 그 사람이 하면 들어주신단 말입니까? 

중보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만, 기도 전문가라는 사람에게 기도를 받으러 가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기도하는 자리에서, 우리 모두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참으로 연약하고 유한한 인간일 뿐입니다. 하나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의존적인 존재일 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이 없이 드리는 모든 기도는 ‘빈말’이 됩니다. 참된 기도는 겸손함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4.

겸손이 담기지 않은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고 가르치신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8절) 알고 계신데, 왜 우리가 굳이 기도해야 합니까? 알고 계시면 알아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셔야 좋으신 하나님 아닙니까? 미리 알아서 주실 것이지, 왜 우리더러 굳이 기도하라고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다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도해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인정(recognition)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왔음을, 하나님만이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수 있음을, 그리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가끔씩 아이가 부모의 존재를 무시하고 말을 듣지 않을 때에 차 열쇠도 빼앗고 용돈도 중단합니다. 그렇게 며칠 동안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냉전이 지속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면 아이가 다가와 말을 겁니다. 다가와 말을 거는 것은 자기에게 부모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고백과 인정, 그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시기에 우리의 필요를 아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직접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말씀 드리기를 원하십니다.

둘째, 기도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는 수단이 아닙니다. 참된 기도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는 수단입니다. 기도의 일차적인 목적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합당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이미 주고 계십니다. 지구가 잘 돌게 해달라고 몇 번이나 기도했습니까? 내 심장이 잘 뛰게 해달라고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까? 기도하지 않아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기도란 삶의 조건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올바른 기도는 새로운 감사의 조건을 구하기 전에 예전에 알지 못했던 감사의 조건을 발견하게 해줍니다. 무얼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는데, 진실하게 계속 기도하다 보면 나에게 생각보다 많은 것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새것을 요구하기 전에 이미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변화될 때에, 하나님은 더 큰 감사와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기 전에 우리가 그 필요를 합당하게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까닭이 거기 있습니다.


5.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심에도 불구하고 먼저 그것들을 주시지 않고 기도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제 아셨습니까? 그분은 참으로 우리가 기도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올바로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위선자의 기도가 아니라, 욕심을 채우려고 하나님을 조종하려는 이방인의 기도가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정하고,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릇된 기도를 하는 사람을 본받지 마십시오. 자랑 삼아 기도하는 사람들, 소리는 있는데 마음이 없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 조르면 다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들, 잠든 하나님을 깨우기라도 하듯 목청을 높여 기도하라고 가르치는 사람들, 그런 행위를 통해서 결국은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기도를 본받지 마십시오.

가장 큰 기도의 응답은 바로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조정하시도록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야 합니다. 지구를 돌게 하시고 심장을 뛰게 하시는 그분은 이미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십니다. 그 믿음으로, 자신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하나님 자신을 구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결코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먼저 하나님 자신을 기도의 응답으로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철저하게 책임지십니다. 언젠가 한 미국 교회 목사님께 전화를 했는데 자동응답기에 다음과 같은 말이 녹음되어 있었습니다. 
<Whatever you experience today, remember, God is still good! : 당신이 오늘 무엇을 경험하든지, 하나님은 아직 좋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정말 좋으신 분이십니다. 바른 기도를 통하여 좋으신 하나님을 얻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역사를 펼쳐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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