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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호위하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시 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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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위하신 은혜에 감사합시다 (시 5:12)
  
(시 5:12)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그를 호위하시리이다.
  
월남전이 치열하던 1970년 3월 18일 맹호부대 2대대 독수리 1호 작전이 안케 계곡 근처에서 시작되었다합니다. 이 전투에서 제일 먼저 부상을 당한 장병이 화기소대 통신병이었다합니다. 네 군대나 총탄을 맞고 실신한 이 장병은 즉시 헬리곱터 편으로 후송되면서 기내에서 응급처치를 받았는데 그의 가슴에는 총탄이 군복을 찢고 관통한 흔적이 역력했다합니다. 

군의관이 심장을 관통한 것으로 판단하고 급히 군복의 상의를 벗겼다합니다. 그런데 심장이 있는 가슴 부위가 아무런 상처도 없이 깨끗했다합니다. 군의관은 좌퇴부를 비롯한 두 군데의 관통상을 찾아 지혈을 하면서 의식을 잃어버린 장병을 회생시키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다했다 합니다. 군의관은 다시 한 번 총탄을 맞아 찢어진 군복 상의를 살폈다 합니다. 즉, 탄환이 군복을 흉측스럽게 뚫었는데도 가슴에 아무런 상처가 없어서 탄환이 어느 방향으로 관통했는지를 보기 위해서였다합니다. 바로 그 순간 군복 상의의 주머니 속에 조그만 포켓 성경이 있었는데 그 성경에 구멍이 뚫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합니다.

군의관은 깜짝 놀랐다합니다. 바로 이 장병의 심장을 향해 날아온 탄환은 성경을 뚫고 성경 뒤에 있었던 얇은 파월장병 수첩사이에서 멈춘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군의관이 또 한번 놀란 것은 성경을 뚫고 나온 탄환이 한 발이 아닌 두 발이라는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발의 탄환을 손에 쥔 군의관은 이 기적의 사건을 후일 누가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 사단장에게 보고했다합니다. 사단장이 군목을 대동하고 병원에 도착하여 이 장병을 위문했다합니다. 

이 사실은 곧 미국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국내에는 전우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합니다. 바로 이 분은 KBS 제주방송총국 기술국에 근무하는 이영진 씨라 합니다. 그때 그 전투에서 그가 근무한 부대는 정확하게 맹호 기갑연대 6중대였으며 그의 직책은 화기소대 통신병이었다합니다. 전쟁에서 통신병의 역할이 막중하다기에 베트공들은 통신병에게 집중적으로 소나기 총탄을 퍼부었는데 그중 네 발을 맞아 두 발은 관통하였지만 두 발은 성경을 뚫고 여력이 없어 그대로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날 그 순간 자신의 생명을 보호해준, 즉 방탄조끼가 되어 준 그 포켓 성경은 월남 파병을 앞둔 당시 어느 날 동료 사병 이흥부 이병으로부터 성경과 찬송가 한 권씩 각각 선물받았다 합니다. 당시 성경을 선물로 준 이흥부 이병은 가정이 매우 어려운 것으로 보였다고 합니다. 

이흥부 이병과는 파월되기 전 1사단 58포대에서 같이 근무해서 교회에도 항상 같이 다녔다고 합니다. 어느 날 이흥부 이병이 "낯선 이역만리 전쟁터로 가는데 식사도 한 번 대접 못하고, 또 여비도 한 푼 못 보태주는 제 마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대신 성경과 찬송가를 각각 한 권씩 선물로 드립니다. 전투에 나갈 때는 꼭 이 성경과 찬송가를 양쪽 포켓 속에 넣고 다니기를 바랍니다."라며 성경, 찬송가를 건네주었다 합니다. 

이영진 씨는 자신의 생명을 건져준 그 성경을 지금도 보존하고 있으며 탄환을 맞아 찢어진 군복 상의도 잘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시인은 주께 피하는 자들은 기뻐할 수밖에 없음을 찬양하며 그 이유가 바로 주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그들을 호위해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힙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호위하신다고 합니다.
의인을 복주시고 호위하심은 의인의 특성인 ‘의로움’이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의인에게’(찻디크)는 성경에서 많은 경우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데 쓰였습니다.

(시 11:7) 여호와는 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 119:137)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신 32:4)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욥 34:17) 정의를 미워하시는 이시라면 어찌 그대를 다스리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이를 그대가 정죄하겠느냐

(렘 12:1) 여호와여 내가 주와 변론할 때에는 주께서 의로우시니이다 그러나 내가 주께 질문하옵나니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반역한 자가 다 평안함은 무슨 까닭이니이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신의 성품을 닮은 의인들에게 복을 주시고 호위하지 않을 수 없으신 것입니다.

시인은 의인 즉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갖는 기쁨을 노래하는데 믿는 자의 기쁨과 즐거움은 하나님의 호위하시는 은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은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정죄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거절을 당하나 의인은 하나님께서 호위하신다는 것이 시인의 확신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에게 피난처이시며 요새가 되십니다.

(삼하 22:2)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시 59: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 이니이다.

구원의 뿔이시오 높은 망대가 되십니다.

(삼하 22:2-3)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곤고한 날에 항상 보호해 주시되 스스로 자신을 의탁하는 자를 보호하십니다.

(습 3: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환난 날에 하나님께서 나아갔을 때 의인은 항상 보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므로 그 이름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과 함께 있음을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약대로 사랑의 본성에 따라 의로운 백성을 보호하시기로 약속하시었습니다.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을 타시고 궁창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 도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의 처소가 되신다"(신 33:26, 27) 

찰스 브라운이 래브라도(Labrador) 해안에서 위로 솟은 부분이 400피트나 되는 거대한 빙산을 본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놀랍게도 강한 역풍과 거대하게 부딪쳐 오는 파도를 거슬러서 남쪽으로 흘러내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비밀은 그 몸체의 90퍼센트가 물속에 잠겨 있으며, 래브라도 해류가 통제하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합니다.

이와 한가지로 성별된 의인인 그리스도인들의 여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내면적으로 깊이 일치하고 있으며, 그의 섭리의 능력에 의지하기 때문에 어떤 외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결코 지체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나아갈 때 호위하시는 은총이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며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의인의 모든 기쁨은 하나님의 복이 그들 위에 임해있기에, 솟아나옵니다. 그의 은총은 저들의 마음속에서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악인은 자기의 꾀에 스스로 몰락하고 말지만 의인, 즉 주께 피하는 자는 주의 이름을 기뻐하며 사랑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호위하시는 줄 믿습니다.

  
방패로 함같이 호위하신다고 합니다. 

‘방패로 함같이’(캇친나)는 ‘가시나무’(욥5: 5)를 나타내는 말(첸)에서 유래하여 원래는 ‘가시 울타리’를 가리키는 단어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가시 울타리가 맹수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전신 방패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삼상17:7 ;겔38:4).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마치 전쟁터에서 적군의 창과 화살을 막아내는 방패와 같이 튼튼하고 완벽하다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부르그(Augusburg)에서 색소니 선제후가 루터에게 '내가 보호해 주지 않으면 네가 어디에 숨겠느냐?'고 묻자 '하늘의 방패 아래'라고 대답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이 방패는 전신을 가리는 방패입니다. 방패(Tsinnah jN;xi)는 크고도 긴 방패로 싸움하는 자의 전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Ancient Monarchies, vol. ⅰ. p.445 참조). 이 방패로 몸을 가리면 아무리 많은 불화살이 날아와도 안전합니다. 시인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그러한 방패와 같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방패만으로 족합니다. 이것 이외의 어느 것도 우리를 궁극적으로 보호할 수 없습니다. 오직 이 방패로만 우리는 모든 대적으로부터 안전할 수가 있습니다.

고대 전쟁터에서의 방패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성도들을 향한 그분의 사랑은 부분적이고 협소한 의미가 아니라 전체적이고 전존재를 향한 전 삶의 영역에 미치는 것입니다. .

이러한 고백은 시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시인은 일평생 동안 수많은 위기를 만났습니다. 왕으로 부름을 받기 전에는 양을 치는 목자로서 사나운 맹수들과 맞서기를 수없이 하였습니다. 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후에는 줄곧 사울 왕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죽을 고비를 한두 번 넘긴 것이 아닙니다. 또 왕이 되어서는 줄곧 전쟁터를 누볐습니다. 언제 적의 화살이나 칼 또는 창이 그에게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안전하였습니다. 아무도 그를 해하지 못햐였습니다. 사나운 짐승도,사울 왕도,대적들도 시인의 목숨을 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시인의 머리털 하나도 상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이러한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자기의 보호가 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전신 방패가 되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 피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디 시인에게만 해당하는 일이겠습니까? ‘주께 피하는 자는 다’ 이러한 기쁨을 누립니다. 그 기쁨은 영영한 기쁨입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우리들 스스로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협소하게 하는 경우가 너무도 비일비재합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라면 오늘 우리 성도들도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이 왕이었던 것처럼 우리 성도들도 다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벧전2:9).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께 피하기만 하면 시인을 보호하듯이 보호하여 주십니다. 시인에게 방패가 되어주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방패가 되어주십니다. 그리하여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를 노리는 원수들을 비웃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위기가 위협한다고 해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피하면 호위하시는 줄 믿습니다.

  
은혜로 호위하신다고 합니다.

‘은혜로’(라촌)는 애정을 품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라차)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기쁨’,‘즐거움’,‘자발적 의지’,‘은총’등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이 넘치므로 자발적으로 보호하여 주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은 한 인간을 그와 같이 안전하게 두르고 보호하여 모든 위험으로부터 의인을 보존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인간의 모든 면을 감싸주고 보호해 주기에 충분한 것입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우리에게 달려와 불붙은 창을 던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방패로 우리를 지키듯이 인애와 자비로 우리를 둘러 지키신다면 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공격하는 자의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 악행을 제어하시며, 우리 발아래 엎드리게 하실 것입니다. 숲의 사자가 부르짖으며 우리를 무섭게 하고 괴롭힌다 해도, 잠시 동안 괴롭히도록 허락하시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슬로 묶으시고, 의인을 은혜로 호위하실 줄 믿습니다.

호위(아타르 rf'[ ) '에워(둘러)싸다', '관을 쓰다'를 의미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호위하십니다

(슥 9:15)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들을 호위하시리니 그들이 원수를 삼키며 물맷돌을 밟을 것이며 그들이 피를 마시고 즐거이 부르기를 술취한 것 같이 할 것인즉 피가 가득한 동이와도 같고 피 묻은 제단 모퉁이와도 같을 것이라

애굽을 물리치신 하나님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완전한 해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승리하신 하나님은 백성들을 호위하셔서(15절) 그들로 승리의 문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승리를 통해 우리는 마지막 날에 원수를 이기고 사망과 애통이 없는 영광의 나라에(계 21:4)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눈동자처럼 호위하십니다.

(신 32:10)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모든 인간들은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와 같은 세상에 처한 인간입니다.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들은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나 짐승들 간의 울부짖음과 원수들의 침략이 끊이지 않고, 수고하여 땀을 흘려도 만족한 대가를 얻을 수 없으며, 배고픔과 목마름과 헐벗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바로 세상에서의 삶입니다.

그러나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발견되어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 모든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상황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평강입니다(잠 3:17).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영원한 행복,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호위하시는 상황입니다.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하듯 호위하십니다.

(사 31:5)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같이… 예루살렘을… 호위하며 건지며 넘어와서 구원하리라'(5절)고 하신 것은 일찍이 출애굽 사건을 독수리의 새끼 훈련 비유로 설명한 모세의 구속 신앙을(신 32:11) 연상시키는 말씀으로서, 선민 유다가 비록 앗수르에게 공격을 받으나, 하나님께서 호위하여 주실 것입니다.

뒤에서 호위하십니다.

(사 52:12)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서 호위하시리니 너희가 황급히 나오지 아니하며 도망하듯 다니지 아니하리라

출애굽시에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이 가는 길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은 바벨론에서의 새 출발에서도 '앞에 행하시며', '뒤에서 호위'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평생의 목자요, 영원한 목자가 되십니다.(시 23:1). 사실 이스라엘은 그들의 범죄의 연고로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 때(출 12:11,신 16:3)보다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앞과 뒤에서 호위하는 가운데 평안히 인도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극진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을 받은 유일한 대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큰 군주 미가엘로 호위하십니다.

(단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큰 군주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적그리스도의 득세가 극에 달했을 때 하나님께서 천사 미가엘을 보내셔서 그 택한 백성을 보호하고 위로하며 성도들에 대한 최후의 구원을 준비하시리라는 의미입니다.

'군장'( 솨림 리쇼님)은 '첫째 우두머리'라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는 바, 이는 하나님 곁에서 수종드는 천사들의 장을 가리키는데 '누가 하나님과 같은가'라는 뜻의 '미가엘'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아 악한 영계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는 천사들의 장을 가리킨다(유 1:9;계 12:7).

북아프리카에서 사역하는 프레드 릭 놀란이라는 선교사는 북아프리카에서 일어난 기독교 탄압을 받고 원수들을 피해 도망쳤습니다. 언덕을 지나 계곡으로 쫓기는 데 몸을 숨길 곳이 없었습니다. 마침 길옆에 작은 굴이 보여 들어갔지만,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리다가 그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께 매달렸습니다. “주님, 제가 이렇게 죽는 건가요? 제 사명이 이것으로 끝인가요?”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딘가에서 거미가 나오더니 굴 입구에 거미줄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거미는 순식간에 굴 입구를 가로질러 거미줄을 쳤습니다. 그를 쫓아오던 자가 굴 앞에 멈춰 서서 굴을 살폈는데 입구에 거미줄이 쳐 있고 줄을 건드린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는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굴에서 빠져나온 놀란은 “하나님이 계신 곳은 거미줄도 벽과 같고,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곳은 벽도 거미줄 같다.” 이렇게 감탄했다합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보호하시고(시 146:9). 스스로 하나님을 의탁하는 자(습 3:1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시 145:20),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자(시 25:21),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신 33:12), 하나님 앞에서 사는 자(시 61:7). 사명자를 보호하십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교회설립80 주년을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한해를 살되 이달은 호위하신 은혜에 감사하는 달입니다. 

의인에게 복을 주시며 호위하시고 방패로 함 같이 호위하시고 은혜로 호위하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됩시다.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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