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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눅 19: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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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였다 착한 종아 (눅 19:11-27)

◈ 어떤 분이 교인들의 스타일을 재미있게 분류해 놓았습니다. 

① 교인 가운데는 달구지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끌어주지 않으면 꼼짝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② 그 다음에는 하늘을 나는 연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항상 높이 올라갈려고만 하는 잘 난 척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연줄에 매여 더 높이 오르지도 못합니다. 언제 줄이 끊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③ 또한 고양이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고양이는 늘 머리를 쓰다듬어 줘야 좋아합니다. 
칭찬 받기만을 좋아하고 누가 건드리면 금방 할퀴려고 덤벼드는 사람입니다. 

④ 그리고 럭비공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그 공은 타원형으로 뾰쪽하게 생겨서 한 번 튀면 잡기가 힘듭니다.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릅니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⑤ 또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 트리 전등 같습니다. 불이 들어왔다 꺼졌다 들쑥 날쑥합니다. 
믿음이 있다가고 없습니다. 기도를 하다 말다합니다. 교회도 나오다 말다합니다. 봉사도 하다가 말다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 전등처럼 껌벅 껌벅한다는 것입니다. 

⑥ 그리고 반석 같은 성도가 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 없는 마음으로 주님의 일에 '예'하고 바른 응답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이런 사람들이 충성된 성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변덕이 심합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릅니다. 돈을 빌릴 때와 빌린 후가 다릅니다. 
가난할 때와, 돈을 손에 조금 쥐었을 때가 다릅니다. 
상대방이 무엇인가 가졌을 때와 빈털터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대하는 태도가 달라집니다.
오늘은 이 사람과 마음 터놓고 지내는가 싶었는데, 사소한 문제로 등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변함이 없는 모습과는 너무 다른 모습입니다. 
매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주님을 닮아가는 충성스러운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 예수님께서 여리고에 사는 삭개오의 집에 계실 때 삭개오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사람들은 다른 생각에 사로잡혀 도무지 말씀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바라던 예루살렘이 바로 코앞에 있습니다. 내일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것이고, 그러면 곧 왕이 되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자기들이 바라는 세상이 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가 금방 이루어질 줄 알았습니다. 
이런 마음을 아시는 예수님은 마음이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고 계시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실 일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있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잘못된 생각들을 고치기 위해 므나의 비유를 말씀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당시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근거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시지만 만왕의 왕으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가 아니라 다시 오시는 그 때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때라는 것입니다.

◈ 헤롯 대왕이 죽을 때에 그는 자기가 통치하던 유대 땅을 자녀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와 헤롯 빌립과 그리고 아켈라오에게 분할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로마의 식민지 국가로 대 군주인 로마 정부에 의한 인준이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는 왕권의 승인을 얻으려고 로마에 갔습니다. 이 때 팔레스틴에서는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음을 알리기 위해서 로마에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로마 당국은 아켈라오를 이두메, 유대, 사마리아 지역의 통치자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유대로 돌아온 아켈라오는 그 동안 반란을 일으켰던 사람들을 잔인하게 다스렸습니다. 
이 일에 앞장섰던 대제사장을 해고 시켜버렸습니다. 
이 역사적 사건은 유대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역사적 사건을 이용하여 므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달란트 비유와 비슷하게 보이지만 다른 비유입니다. 

① 우선 주인의 모습이 다릅니다. 므나 비유는 집 주인이 왕권을 받으러 집을 떠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달란트 비유에서는 어떤 부자가 단순히 여행을 떠난다고 되어 있습니다. 

② 주인이 나누어 준 돈의 양이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는 세 명의 종에게 다섯 달란트, 2달란트, 한달란트를 능력에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러나 므나 비유에서는 10사람에게 한 므나 씩 공평하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③ 종들이 남긴 돈의 양이 각기 다르고 보상도 다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남긴 종에게 똑같은 상급을 주었습니다. 

므나 비유에서는 5므나와 2므나를 남긴 종이 다른 보상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달란트 비유에서 악한 종은 있던 것을 빼앗기고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무서운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나 므나 비유에서 악한 종은 있는 것을 빼앗기기만 합니다. 
그 대신 왕되심을 거역하는 반역자에 대한 주인의 진노가 나옵니다. 

▶▶ 두 비유는 같은 비유가 아니고 다른 목적을 가지고 행한 비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충성된 생활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므나의 비유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고치기 위한 말씀입니다. 

▶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여기 귀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왕위를 받아 온다는 것은 주님께서 만 왕의 왕으로서 다시 
재림을 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또, “먼 나라”라고 하신 것을 볼 때 하나님의 나라가 제자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당장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상당한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먼 나라로 가시면서 그 종 열을 불러서 열 므나를 주시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13) 하셨습니다. 
10명의 종에게 1므나씩 주었습니다. 
이렇게 주고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셨습니다. 므나는 헬라와 로마의 화폐로 한 므나는 
약 100데나리온 정도됩니다. 달란트에 비해서는 작은 금액이지만 결코 작지 않은 돈입니다. 

공평한 기회....

◈ 어느 나라에 임금님이 나이가 들어서 이제 그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려고 하는데 아들이 장가를 
가지 않아서 장차 나라의 왕후가 되며 며느라가 될 사람을 선발하기로 하였습니다. 
후보로 10명이 선발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이 왕이 열 명의 처녀들에게 쌀 한 되씩을 나누어주며 이 쌀로 한 달을 살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 처녀들은 쌀을 받아 가서 그것을 가지고 규모 있게 나누고 어떻게 하면 한 되를 가지고 살까 연구를 하였습니다. 어떤 아가씨들은 이것을 한 달로 나눠 가지고 생쌀을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아가씨들은 죽을 쑤어서 조금씩 먹기도 하고, 또 어떤 아가씨들은 굶다가 굶다가 배가 고프면 조금 먹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이렇게 죽을 지경이 되어서 임금님 앞에 이 아가씨들이 나오는데, 어떤 아가씨는 들것에 실려서 나오고, 또 어떤 아가씨는 뼈만 앙상하게 남아서 비틀거리며 나오고, 모두들 말이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한 아가씨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에 살이 포동포동 찌고 좋은 옷을 해 입고 화장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떡을 한 시루해서 머리에 이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금님이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해 왔느냐?” 하고 묻자, 그 처녀가 대답을 하기를 “임금님 그 한 되의 쌀을 가지고 도저히 살 것 같지가 않아서 그것을 가지고 떡을 해서 내다 팔았습니다. 그러니 수입이 되고 또 떡을 더 많이 해서 내다 팔아 그 수입으로 우리 식구들이 살고, 옷도 해 입고, 임금님의 은혜 때문에 잘 살게 되어 떡 한 상자를 해 왔습니다.” 
이 대답을 들은 임금님이 만족해하며 “여봐라! 이 처녀를 왕후로 삼도록 하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평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주인은 열 명의 종들에게 똑같이 한 므나씩 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종들은 똑같은 조건에서 공평한 기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책임을 맡은 종들은 주어진 기회를 잘 사용하여 주인이 오시기 전까지 허락된 기간동안 주인에게 이익을 남겨드릴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종들의 사명은 열심히 장사하여 많은 이익을 남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인에 대한 의무요,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장사하라”하는 것은 주의 명령입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재림해 올 때까지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부지런히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셨습니다.

◈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왕권을 받아가지고 왔습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합니다. 이 땅에서 왕권을 가지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맡은 종들과 회계하며 맡겨진 사명에 대한 종들의 생활을 살펴보십니다. 

첫째 사람은 “주여 주의 한 므나로”(16)라고 합니다. 
누구의 므나라 했습니까? 분명히 주의 므나입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므나가 자기 것이 아니고 주인의 것이고 이익을 남겼다고 해도 주인의 은혜 때문이라는 겸손한 고백입니다.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합니다. 주님은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17) 하였습니다. 

둘째 사람이 와서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하자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기를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19) 하였습니다.

셋째 사람은 와서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라고 합니다. 
이 셋째 사람도 똑같이 “주여”라고 부르고 므나도 “주의 므나”인 줄 압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보소서 주의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나이다”하며 그대로 들고 나왔습니다. 

▶수건이라는 단어로 사용된 수다리움〈sudarium)'은 라틴어의󰡐땀'을 가리키는 .수도르(shu-dor)란 말에서 유래된 '손수건‘ 이라는 뜻입니다. 

싸두었다는 말은 주인이 돈을 맡기고 떠난 날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손수건으로 싸두었다는 시제의 표현입니다. 땀을 닦아야할 그 손수건으로 돈을 싸두었다는 말은 암시적인 데가 있습니다. 
땀을 홀리며 일하면서 사용해야 할 손수건을 돈을 싸두는 일에 사용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자기 변명을 합니다. 

21-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데서 거두나이다 그래서 그냥 그대로 두었다가 가져왔다”

◈ 이 종에 대한 주인의 평가....

그러자 주인은 22절에 “악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넣어 두지 않았겠느냐 그리하면 이자라도 찾았을 것이 아니냐”고 호되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제가 설명하려고 하는 이 비유의 초점은 악한 종의 모습입니다. 

1. 이 종은 게을렀습니다. 

주님이 주신 것을 가지고 열심히 하지 않았습니다. 똑같이 한 므나씩을 주었는데 이 악한 종은 게을러서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을 귀히 보시고 더 큰 사명을 허락해 주십니다. 
게으른 사람은 결코 충성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죄 같지 않으면서 큰 죄가 게으름, 나태의 죄입니다. 
󰡒악한 종아󰡓하는 주인의 책망을 기억해야 합니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맡은 사명을 저버리고 게으르면 무서운 죄입니다. 

◈ 성 Augustine은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과 같이 여겨야 한다" 했고 또 "나는 오직 한 번만 인생을 산다" 하는 각오로 매일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게으른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않습니다. 
다윗은 목동의 일을 할 때 부지런히 일하다가 부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열심히 고기 잡다가 부름 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게으른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봉사도 못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귀찮아서 교회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게으른 사람은 기도 생활도 못합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할 때까지 TV를 보다가 잠든 사람이 어떻게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겠습니까? 
절제가 없고 규모가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은 영성이 자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엡 5: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함. 세월을 아끼라는 이 말은 기회를 잘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부지런해야 기회를 포착할 수가 있고, 열심히 살다 보면 좋은 기회가 꼭 오게 되어 있습니다. 

◈ 영국의 어느 왕자가 사냥을 나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길을 찾아 헤매는 중, James라는 한 목동을 만나서 길을 좀 안내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안됩니다. 저는 남의 집 양을 치는 목자인데 양떼를 놔두고 길을 안내할 수 없습니다."라고 거절했습니다. 월급이 얼마냐고 묻고 월급의 3배를 줄테니 좀 안내하라고 하니까 
"못 합니다. 저는 이 양떼를 버리고 갈 수 없습니다." 하더랍니다. 

이번에는 총을 겨누며 "안내하지 않으면 쏴 죽이겠다"고 하니까 
"예, 죽을지언정 당신을 따라가지 않고 양들을 돌보겠습니다. 그러나 말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저 산을 세 번 넘은 후에 서쪽으로 계곡을 따라 20분간 가면 도로가 나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그대로 해서 길을 찾아 돌아갔습니다.
후에 그 왕자가 왕이 되자 James를 불러 총리로 삼았다고 합니다. 

현재 나에게 맡겨진 일에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인정도 하나님의 인정도 받을 수 있습니다.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감당하는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2. 악한 종은 주여 하기도 하고 주의 므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주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13절에 모든 종들에게 므나를 주며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셨는데 이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주님의 것인줄 알면서도 주의 뜻과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이것이 악한 것입니다. 첫째 종, 둘째 종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장사를 했습니다. 
우리가 종으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노아는 배를 지을 때에 어렵다고 쉽게 대충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철저하게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설계대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 위에서 만들었습니다. 배는 바닷가에서 만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편합니다. 
그러나 노아와 가족들은 믿음으로 산 위로 자제를 운반해서 어렵게 배를 만들었습니다. 
120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변함이 없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에 그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노아를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노아를 어리석다고 비웃던 사람들은 다 물 속에 장사되었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가족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악한 종은 주의 말씀에 순종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악한 종입니다. 주인의 말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고, 자기 뜻대로 받아들여서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순종하고, 믿음이 없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정말 지혜롭고 복있는 사람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의 성공과 실패는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 축복의 길이 불순종하고 무시하면 저주의 길이 열려있습니다. 
악한 종처럼 자기 생각과 뜻으로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말고 힘써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3. 악한 종은 주인의 왕되심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켈라오가 왕위를 얻기 위해 로마로 갔을 때 유대인들은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로마로 50명의 사절단을 보내어 그의 왕위(王位)취득을 저지했으나 실패했습니다. 
14절 “그런데 그 백성이 저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됨을 원치 아니하오이다” 
27절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끌어내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있는 것을 빼앗기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비유는 예수님이 왕됨을 원치 않은 자의 결국을 말하고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여러분의 왕이라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기 이전에는 내가 내 인생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난 이후에 내 인생의 왕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그분이 하시기를 원하는 대로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왕이 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간섭하셔서 예수님 뜻대로 되는 것에 대해서 기꺼이 "아멘!" 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얘기는, "예수님 이것 해주십시오" "예수님 저것 해주십시오" 하고 
예수님을 마음대로 부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예수님 마음대로 우리를 부리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돌아보면 우리의 모습은 고백과는 다릅니다. 

① 예수님을 믿기는 믿습니다. 왕되심을 고백합니다. 그런데도 가만히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말없이 옆에 계시다가 우리가 필요할 때 우리가 부르면 가끔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기만 하시고 내 인생에는 간섭하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② "내 뜻대로 마옵시고 다만 아버지의 원대로 되어지기를 바라나이다" 하는 고백은 그저 생색낼 때나 쓰는 말입니다. 실제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③ 이 세상 역사가 아버지의 원대로 되어지는 것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우리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해서 이 세상을 좀 더 폼나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런 모습은 예수님의 왕됨을 거절하는 악한 종의 모습입니다. 
나의 마음의 왕의 자리에 예수님을 모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가정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에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의 부탁하신 것을 잘 힘써 감당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어떤 성경학자들은 이 므나를 복음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 어떤 비행기가 엔진고장으로 추락하고 --- 비행기 안에 탄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에 질려서 어쩔 줄 몰라 합니다. 한 사람이 태연스럽게 앉아있는 것을 본 옆 사람이 그 사람의 표정을 살핍니다. 
"당신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요?"
"나는 목사입니다." 
"그럼 잘 됐습니다. 지금 비행기가 추락하고 있는데 당신이 믿는 하나님께 빨리 기도해서 추락하지 않도록 부탁 해 주세요." 간절히 애원했다.

목사님이 이 사람을 가만히 보더니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비행기가 떨어지고 안 떨어지고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천국 기획국이나 비서실 소관입니다. 저는 영업파트에 있기 때문에 도무지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실적만 잘 올리면 됩니다. 당신 예수 믿습니까?" 

이 이야기는 우리의 진정한 관심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힘써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칭찬받는 종의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악한 종처럼 하지 않으면 됩니다. 

▶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기는 모습이 있기를 바랍니다. 
▶ 주님의 뜻을 알면서 무시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기 바랍니다. 
▶ 예수님의 왕되심을 인정하며 주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살기를 바랍니다. 
▶ 오늘 내게 맡기신 예수님의 복음을 위해 살자.

◈ 요즈음 인기를 끌고있는 TV프로그램 중에서 '전파견문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이 프로를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모릅니다. 이 프로는 아이들이 문제의 힌트를 주면 어른들이 답을 맞추어 가는 과정에서 웃음을 주는 프로입니다. 
제가 아이들처럼 문제의 힌트를 드릴 테니까 여러분이 한번 맞춰보시기 바랍니다. 
- '이것은 들어 올리기 힘들수록 좋은 것입니다.' 
답을 아시겠어요? 답이 생각이 안 나시면 제가 힌트를 하나 더 드리겠습니다. 
- '빈손으로 들어오면 엄마가 싫어합니다.' 

▶ 답이 뭘까요? 정답은 '낚시'입니다. 
큰 물고기가 잡히면 들어 올리기 힘듭니다. 그러나 기분은 좋습니다. 
한 마리도 못 잡고 빈손으로 집에 돌아오면 엄마가 싫어합니다. 
먼 훗날 우리가 주님 앞에 돌아갈 때에 빈손으로 돌아가면 주님께서 뭐라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 세계적인 부자 카네기의 후계자는 쉬브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카네기 공장의 마당을 쓰는 일용직 청소부로 입사했습니다. 그는 공장 마당만 
아니라 공장 전체를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이 소문이 카네기에게 알려져서 정식사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카네기의 비서실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쉬브는 비서실에 와서도 빈틈없는 충성심으로 카네기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그는 카네기를 그림자처럼 수행했습니다. 손에 항상 메모지가 들려 있었고, 사장인 카네기의 지시를 
일일이 받아적고, 체크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카네기가 밤늦도록 사무실에 있다가 집에 가려고 일어나 밖에 나와 보니 쉬브가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카네기는 "왜 아직도 퇴근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사장님께서 저를 언제 부르실지 모르는데 어떻게 자리를 비울 수 있습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카네기가 가장 신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했기 때문에 카네기의 후계자가 되어 회사의 경영을 물려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종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종들 중에서도 착하고 충성된 종들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알고 깨어 있는 종들에 의해서 이루어 집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자기 책임과 기회에 깨어있는 자들에 의해 이룩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바로 지금 주님이 오시기까지 맡겨진 직분과 사명에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희생을 감수하는 마음이 있어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끝까지 변하지 않아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겉과 속이 같아야 충성할 수 있습니다. 
충성과 믿음은 어원이 같습니다. 참 믿음은 충성된 믿음입니다. 

마지막까지 충성스러운 모습으로 변함없이 머물러 있는 복된 성도가 되기 바랍니다. 
주님 앞에서 잘하였다 칭찬받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 바랍니다. 
(심인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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