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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 (시 14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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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 (시 147:1-9)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 147편은 하나님께 찬양함이 아름답고 당연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의 하나님께 찬양함이 얼마나 좋은 일이며, 하나님께 찬송함이 그 얼마나 아름답고 마땅한 일인가!(본문 1절)

그리고 계속하여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왜 아름답고 당연한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 그 첫 번째 이유는, 우리들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을 세우시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모으신다. (본문 2절)

예루살렘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듯이, 무너진 우리들의 삶을 세워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흩어진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신 분도 하나님이듯이, 흩어진 우리들의 삶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고백하였듯이, 지금의 내가 된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고전 15:10)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님의 크신 은혜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당연한 두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아픔과 상처를 돌아보시고 싸매 주시는 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상한 사람을 고치시고, 그 아픈 곳을 싸매어 주신다. (본문 3절)

우리들은 하나님을 부를 때에“여호와 라파”라고 부를 때가 있습니다. 치료자 하나님이시란 뜻입니다. "라파"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구약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단어인데 그것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을 치료할 때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육과 마음 모두를 치료하는 “전인치유”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치료자가 되심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소행이 어떠한지, 내가 보아서 다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고쳐 주겠다. 그들을 인도하여 주며, 도와주겠다.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여 주겠다. 주께서 약속하신다. "내가 너를 고쳐 주마." (사 57:18-19) 

네 상처가 빨리 나을 것이다. 네 의를 드러내실 분이 네 앞에 가실 것이며, 주의 영광이 네 뒤에서 호위할 것이다. 그 때에 네가 주님을 부르면 주께서 응답하실 것이다. 네가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내가 여기에 있다' 하고 대답하실 것이다 (사 58:8-9)


3.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당연한 세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부족한 우리들을 세밀한 부분까지 다 아시고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별들의 수효를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신다.(본문 4절)

우주에 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별들의 수효를 다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 주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별들의 수효만 헤아리시고, 그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세밀한 것까지 다 아시고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제가 지난 번 설교에서 VBS에서 우리 어린이들이 불렀던 “내 이름 아시죠?" (He knows my name)라는 가사를 소개해 드렸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이번에 호피 선교지에 가서도 그곳 어린이들과 함께 이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영어의 희망이라는 단어 "Hope"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호피(Hopi)”인디안들이지만,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스스로 잊혀 진 자들이라고 생각하며 절망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 이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그 노래의 가사를 다시 한 번 소개합니다.

I have a Maker. He formed my heart. (나를 지으신 하나님. 나의 마음도 지으셨지요.) 

Before even time began. My life was in his hands. (태초부터 나의 삶은 그의 손에 있지요.)

He knows my name. He knows my every thought. (그는 내 이름을 아시지요. 내 모든 생각도 아시지요.)

He sees each tear that falls. And hears me when I call. (그는 나의 흐르는 눈물을 보시지요. 그리고 내가 부를 때에 들으시지요.)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얼마나 세밀하게 아시고 돌보시는 가를 다음과 같이 가르쳐 주신 적이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냥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하나라도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놓고 계신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마태 10:29-31)

시편 기자는 이렇듯 자상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림이 마땅하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마땅한 네 번째의 이유를 시편 기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고 그의 지혜가 무궁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위대하시며 능력이 많으시니, 그의 슬기는 헤아릴 수 없다. (본문 5절)

우리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다음과 같은 어려운 말로 표현합니다.

무소부재(無所不在): 어디든지 없는 데가 없음(omnipresence) 무소불능(無所不能): 능통하지 않은 것이 없음(omnipotence) 무소부지(無所不知): 무엇이든지 모르는 바가 없음(omniscient)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계시고, 모든 것을 다 하실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아시는 하나님. 그리고 우리들의 삶을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 우리들은 마땅히 그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5. 우리들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다섯 번째 이유는, 하나님께서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시며, 악인을 땅의 먼지만큼이나 낮추시는 분이다.(본문 6절)

우리들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공의롭지 못하신 분이라고 불평할 때가 있습니다. 악인이 잘 되는 것 같고, 의인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볼 때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매우 혼돈스러워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도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하고, 악인의 길이 형통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그러한 보이는 현상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는 것을 결코 좌시하시지는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나의 삶을 공의롭게 인도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6. 여섯 번째로, 우리들이 하나님께 마땅히 찬양을 드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을 구름으로 덮으시고, 땅에 내릴 비를 준비하시어, 산에 풀이 돋게 하시며, 들짐승에게,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

(본문 8-9절)

유대 율법에 의하면 까마귀는 부정한 동물입니다. 그러므로 까마귀 새끼에게 먹이를 주신다는 본문의 말씀은 부정한 동물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먹이시고 돌보신다는 뜻입니다. 부정한 동물들까지도 먹이시니, 하물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을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기 않으시겠습니까? 

예수님도 산상수훈을 통하여 우리들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하여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않으냐? 어찌하여 너희는 옷 걱정을 하느냐? 들의 백합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들어갈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입히시지 않겠느냐? (마 5:26-30)


7. 마지막으로, 우리들이 하나님을 마땅히 찬양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찬양하는 자들을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힘센 준마를 좋아하지 않으시고, 빨리 달리는 다리 힘센 사람도 반기지 아니하신다. 주님은 오직 당신을 경외하는 사람과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본문 10-11)

우리 모든 성도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우리들을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고, 많은 복으로 채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복을 받은 비결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에게 부족한 점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자 그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이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 오직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그분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사랑만을 구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입술에서도 다윗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송이 항상 흘러나오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영혼이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삶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시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큰 은혜와 축복을 받는 가장 확실한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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