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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영혼을 깨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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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준 목사 (동안교회)

고양이가 앞발로 쥐를 움켜잡았다. 순간, 쥐가 고양이를 노려보며 “멍멍” 짖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고양이가 당황해서 쥐를 움켜진 앞발의 힘을 풀자 쥐가 도망가 버렸다. 죽은 줄 알았던 쥐가 돌아오자 다른 쥐들이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물었다. 살아 돌아온 쥐는 “요즘 같은 세상에 살아가려면 외국어 하나쯤은 해야 된단 말이야”라며 어깨에 힘을 주었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고양이가 쥐를 발견하고 달려갔다. 그런데 쥐가 구멍에 숨어버렸다. 쥐는 구멍 안에서 고양이가 떠나기만을 기다리는데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개 때문에 고양이가 떠난 줄 알고 쥐가 고개를 내미는 순간 고양이가 쥐를 날쌔게 잡아채버렸다. 고양이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 먹고 살려면 외국어를 하나쯤은 해야 한다니까”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 두 이야기는 요즘 우리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만 내면 살아갈 수 없다. 쥐처럼 약한 자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면 순식간에 강한 자들한테 먹혀버린다. 하지만 강한 존재도 자기 목소리만 내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어느 누구도 자기 목소리만 내면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아닌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고 또 쉽게 들을 수 말은 바로 상황이 요구하는 것들이다. 힘과 돈의 상황이 요구하는 말을 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황에 맞게 언제든지 자기 말을 연출한다.

소극적으로는 손해를 입지 않는 길이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적극적으로는 무엇이 유익한지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보다는 무엇이 내게 좋은가, 혹은 싫은가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사랑의 말과 희망의 표정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상황과 자기 이익이라는 돌멩이를 들고 누군가 만들어낸 말과 행동을 해야만 하는 군중 사이에 서 있다. 예수님 앞에 끌려나온 간음한 여인을 심판하기 위해…. 관습 율법 도덕 전통이라는 상황이 만든 종교적 윤리적 언어에 떼밀려 죽음의 돌멩이를 간음한 여인에게 던지기 위해 분노를 연출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살벌하고 두려운 상황이지만 분노한 군중을 향해 예수님처럼 외칠 수 없을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사람들 속에 깊게 잠자는 양심과 죄의 아픔을 일깨우는 말이다. 이 여인을 살릴 수 있는 생명의 말을 외칠 수는 없을까? 이 말은 그 여인을 위한 게 아니라 바로 내가 들어야 할 말이기 때문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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