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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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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11절: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천국복음을 영접하는 자다.’ 그러니까 너희를 영접치 않는 것은 천국복음을 영접치 않는 것이다. 세상 속화된 기독교, 거짓 종들, 이단자들은 전부는 천국복음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구별 분별해야 할 것은 오늘날 기독교 종교적 흐름이 기독교 단체가 크면 그 단체의 주격자들이 보는 이단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현재 나타나고 있는 신 천지나 하늘의 어머니 등의 이단들은 조금만 공부를 하면 그들이 이단인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대세의 흐름이 정통 전통이라고 하는 교단이나 교파에 속해 있으면서도 진리본질에서 빗나간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사상으로 나가는 일들이 많은데, 이들도 성경구절을 쓰고 있기 때문에 영의 눈을 가지고 보지 못하면 그들을 이단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 대부분의 정통교단이라고 하는 곳도 다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정통 기독교라고 해도 하나님의 본질로 들어가지 않고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육신적인 정신과 사상으로 나가는 것은 교리적인 면에서는 이단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신앙하는 목적과 신앙의 질이 하나님 앞에 이단성이요 거짓성이다. 그러니까 이런 자들이 정통교단에 속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종교계로부터 이단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더라도 그 정신과 사상은 신 천지와 같기 때문에 신 천지들의 망함이나 본인들의 망함이나 똑같이 망하는 거다.


기독교는 자기가 정확하게 성경을 바로 깨닫고 믿으면 자기의 영인성장 면의 실상이 성장하고 장성하고 뚜렷해지는 거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격과 성품이 자라는 것이다. 이게 분명한 사람은 대인관계 자아관계 대사관계 대물관계가 속속들이 정확하게 들어간다. 이게 이룰구원이다.


그런데 그것이 없이 ‘다른 교회보다 우리가 더 좋다. 더 깊이 깨달았다. 더 세밀하다’ 한다고 해도 이룰구원은 앞에서 말한 관계성에서 되어 들어가는 건데 그런 관계성도 없이 자기가 아무리 최고로 깨달았다고 해도 이룰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거다. 그런 사람은 입만 살아서 자랑만 했다 뿐이지 실제적인 생활면에 들어가서 이룰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면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다.


자기가 옳은 정신 사상을 가졌다면 그 옳은 정신 사상에서 나오는 관계성이 있어야 하는 건데, 내 이룰구원이 저 사람에게 들어있고 또 이 사람의 이룰구원이 저 사람에게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관계성을 가지라고 많은 사람 만들어 놓은 건데 그 면은 다 잘라놓고 입만 살아서 ‘이룰구원, 이룰구원’ 하면 이게 무슨 구원이냐? 입만 천국에 가는 거냐? 이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 예수 믿지 말라.


내가 말씀을 전하지만 행여나 내 설교를 듣는 교인들이 입만 산 사람이 나올까봐 겁이 난다. 자신의 생활 전체, 전 인격, 자기 생애 전폭이 이룰구원이다.


이룰구원에 있어서 진리의 옳은 것이라면 하라. 해야 한다. 하는 사람이 훨씬 빠르다. 입만 살아있는 자는 교만쟁이요 아무 짝에도 못 쓴다. 그런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래서는 안 된다.


자기의 삶이 바로 자기 인격화 성품화가 되는 거다. 나의 삶에서 이게 다 나와야 한다. 자신의 삶에서 진리의 지혜지식이 나오고, 자신의 삶에서 신적인 도덕성 나와야 한다. 이게 옳은 사람이요 능력 있는 사람이요 창조의 목적에 걸맞은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는 그러지를 않고 있다가 천국에 가면 인격이 계속 자라느냐? 천국에서는 자라는 건 없다. 천국은 자라는 곳이 아닌 누림의 곳이다. 천국에 가서도 자란다면 이 세상에 있을 때 천천히 믿어도 된다. 왜? 천국에 가서도 자꾸 자라니까. 이치가 하나 비뚤어지면 모든 것이 다 비뚤어진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 아들의 영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양자의 영이 따로 있다고 하는데, 그래 성경에 있는 대로 그 말이 맞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사람이 양자의 영으로 사는 거냐? 양자는 아들처럼 들어가는 거다. 그러니 우리가 양자의 영을 받았다면 아들처럼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셨고 우리는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되었으니 양자의 영을 받은 거다. 똑같이 들어가는 거다. 따라서 아버지의 참 아들은 아버지처럼 100% 온전 완전이 들어가 있고, 양자의 아들이라면 기본구원은 깔고 들어가는 거고, 그 다음에 이룰구원 차원에서 자기 실력대로 들어가는 면에서는 예수님과 차이가 난다.


예수님은 절대 완전 절대 온전 100이라고 한다면 우리에게는 점수 차이가 심하다. 그러나 질은 예수님과 똑같은 거다. 좁쌀만한 금이나 바위만한 금이나 질은 똑같은 것처럼. 그러나 그 양을 실력적으로 말하자면 차이가 있는 거다.


양자의 영을 가진 자들은 천국에서 딴 자리로 들어가고, 가지지 않은 자는 천국에서 딴 자리로 가고 그런 건 아니다. 자칫하면 성질이 이단성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 점을 늘 생각을 해야 한다.


성경에서 ‘왜 여기서 이런 표현을 썼나? 딴 데서도 같은 표현을 썼는데 거기에서는 어떤 신앙의 질감으로 돼 있기에 똑같은 용어로 썼을까?’ 그 면을 알아야 한다. 같은 용어를 썼다고 해서 거기와 여기가 똑같은 것이냐? 아니다. 각기 어떤 면을 깨닫게 해 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의 한 면을 잡아서 그것을 교리화 세울 수는 없는 거다. 이룰구원에서는 성경 한 구절을 선포를 해도 성령님의 역사는 그 말씀을 받는 각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서, 그 사람의 성장 면에 따라서 필요한대로 들어간다. 특히 성경말씀을 받을 때 각자 느껴지는 느껴짐에서 은혜가 다르기 때문에 느껴짐 그것을 문자화 시켜서 교리로 세울 수는 없다. 성품화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받아도 어떤 사람은 많이 깨닫고, 어떤 사람은 조금 깨닫고, 어떤 사람은 하나도 못 깨닫고 그러는 거다.


나는 천국복음을 전하는데 저 쪽에서 그 복음을 영접을 한다고 할 때 꼭 받아들이는 것 같으나 아닐 경우도 있다. 말하자면 복음을 영접하는 이유가 자기의 일을 위한 목적과 수단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천국복음을 받아들이는 척 하면서 그걸 자기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써버리는 것이다. 천국복음을 전할 때 ‘아, 옳습니다. 나도 그 복음을 붙잡고 그걸 세우고 살겠습니다’ 그게 아니라 복음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 수단으로 쓰는 거. 그래서 살펴야 한다.


‘천국복음을 영접하는 것은 너희를 영접함이다.’ 그러니까 돌려서 말하면 천국복음을 안 듣는 것은 너희 말을 안 듣는 것이다. 제자들이 전하는 말은 주님이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인데 안 듣는다면 이는 복음순종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들을 볼 때 천국복음을 안 받아들이는 것은 주님이 보내신 종을 안 받아들이는 거고, 아울러 주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갖고 있으니 이 주님의 종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게 아니다.


천국복음이 아닌 세상복음을 전하는 유형적 교회가 참 많다. 이런 교회는 천국복음을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세상 복 받아라’ 하면 그런 말에는 잘 엎어져도 ‘사람이 영능의 실력자로 바로 되자. 자기의 환경을 통치하고 지배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지자’ 하면 돌아서 버린다. 진리이치의 말씀의 사람으로 되자는 이건 싫고 ‘돈이다’ 하면 거기에 엎어지고, ‘축복이다’ 하면 거기에 엎어진다. 그러니 성경에서는 이걸 간질병이라고 한다. 영의 눈으로 보는 영적인 간질병이 든 거다.


아무리 부모형제들과 일가친척들이라도, 자식들이라도 천국복음을 안 받는다면 소원 목적적으로도 주님과는 마음이 멀다. 신:에 ‘자녀를 잃을 것이요’ 하는 게 있는데 한 집에서 같이 밥 먹고 살아도 소원 목적이 각기 다르게 나가고 있다면 이건 육신만 같이 사는 거지 마음은 각각 따로다. 그러니까 이런 가정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이어받는 가정이 아니다. 그러니 뿔뿔이다. 그런 가정이 참 많다. 그런 면에서 ‘네가 낳은 자식이라도 그 자식을 잃어버릴 것이요’ 하는 것이다.


영의 눈으로 보면 이건 자식을 잃어버린 거다. 하나님의 집 안에서 하나님의 식구로 볼 때 그건 고아다. 그게 실상이다. 그래서 한 집에 살아도 의사가 도무지 맞아 들어가지를 않는다. 마찰 충돌 대립이 된다. 그러니 얼마나 고통일까?


그리고 포도밭을 경영을 해도 하나도 먹지 못한다. 먹을 수가 없다. 어떻게 먹느냐? 육으로 가르쳤으니 하나님 앞에 포도가 알알이 여문 것처럼 어떻게 성령의 사람으로 열매를 맺느냐? 안 된다. 사람을 즐겁게 하는 그게 없다. 열매가 없다. 즉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그 열매가 없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 믿는 자기 속에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어야 한다.


과일을 사먹을 때 맛이 없으면 못 먹는다. 그러나 과일이 맛이 있으면 그 과일을 먹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가 없으면 하나님 입맛에는 없다. 벌레를 먹었거나 덜 익었거나 제 맛이 없으면 버림을 받게 된다.(주-이룰구원에서의 말임) 예수 믿으려면 똑바로 믿어라.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세상살이 욕심부터 먼저 채우기 때문에 진정 참 인간상을 보기가 힘들다. 물질욕심 때문에 부모형제 처와 자식 남편과 일가친척들을 원수로 만들어 놓고 사는 자들이 너무나 많다. 물질욕심은 대표적으로 돈이다. 예수를 믿어도 천국복음의 정신으로 믿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예수 믿으면서도, 죽도록 충성봉사를 한다면서도 하나님 앞에 원수 대적노릇을 하고 가게 된다.


자기 속에서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들어가면서 수종을 들던 충성봉사든 해야 되는데 교회에서 인조척도, 인간들이 보는 지식을 기준 삼아서 해 놓으면 천국복음과는 원수 대적노릇이다. 왜? 마귀가 그런 짓을 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어떻게 피할 수 있으랴!


‘거기서 나갈 때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했다. 천국복음을 안 받는 곳에서 시간낭비 노력낭비 물질낭비 일생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천국복음을 안 받는 개인이나 동리나 가정이나 그 곳에서 낭비할 필요가 없다. 이건 주님의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천국복음을 받지 않으면서도 예수 믿는다고 하고 충성봉사도 하고 ‘세상 복 복’ 하는 거기에는 사도들로 하여금 거기 있지 말라는 것이다.


‘먼지까지 떨고 나오라’ 하는 것은 거기서 신속히 나오라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 심판이 들어간다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그런 곳에서는 성령님이 역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음을 배척하는데 성령님이 왜 거기서 역사를 하겠느냐? 그러니까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진리이치 생명이치 도덕이치를 안 받아들이면 그 사람은 성령님이 같이 안 한다. 왜? 세상이 들어있으니 세상이 같이 하는 거지 거룩한 성령님은 그 정신에 같이 하지 않는다.


그러면 마음 밭으로 들어가서, 그 사람이 가진 소원과 목적을 보면 이게 길가 밭인지, 돌짝 밭인지, 가시 밭인지, 좋은 밭인지 그냥 들통 나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이치적으로 그 밭을 알아서 자기를 좋은 밭으로 자꾸 갈아엎어야 한다.


좋은 농부라면 돌짝 밭의 돌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밭가에 담처럼 그 돌을 쌓아야 한다. 정말 부지런한 농부는 돌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씨를 안 뿌린다. 돌을 걷어내고 뿌린다. 또한 큰 바위가 있으면 바위가 그 밭을 다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바위를 치우고 씨를 뿌린다. 그래야 농사가 잘 되고 수확이 잘 된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자기 마음 밭이 어떤 상태인지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이게 교인인지 아닌지, 믿는 사람인지 안 믿는 사람인지?’ 교회 오는 것도 들쑥날쑥하고 뿌리도 박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다니고 마음도 정하지를 못하고 믿고 있다면 이게 무슨 밭이겠느냐?


개인적으로도 복음을 안 받아들이면 그 사람 앞에서 시간낭비 할 필요가 없다. 처음에는 믿을까 하고 점점 가까이 하고 친형제처럼 대해줬음에도 계속 안 받으면 그건 하나님께 맡겨라.


천국복음을 안 받으면 누가 손해인가? 하나님이 손해다? 전도자가 손해다? 인간 자기가 손해다? 누가 손해냐? 인간 자기가 손해다. 인간이 배짱이 있으면 하나님을 이기느냐?


천국복음을 위한 여행자가 만일 세상에다 정을 붙이고 인간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간다면 이는 변질이 된 것이니 그 사람은 버림을 받는 거다. 회개를 안 하면 천국복음이 안 된다.


천국복음을 영접하는 자는 모든 면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교회의 짐을 같이 메고자 하는 동참의식을 가진다. 말하자면 자기가 가진 돈을 땅의 일에 묻어두는 것은 자기만 위한 삶이요, 이런 사람은 사람을 위해서 돈을 쓸 줄을 모르는 것이니 이 사람은 사람을 잃기가 쉽다. 자기 주위의 사람을 다 잃어버리기가 쉽다.


돈은 돌고 돌아야 돈인데 이 돈을 사용하는 자는 사람이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옷을 사는 것보다 곡식을 사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라고 하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이는 것이 급한 것이다. 이치를 잘 깨달아라 그 말이다. 아무리 자기 돈이지만 가령 다른 사람 집에는 먹을 것이 없는데 자기는 수천 만 원 수백 만 원짜리 옷을 걸치고 있다면 이 사람은 돈을 쓸 줄 모르는 사람이다.


천국복음이 아닌 교회로 들어가는 것은 돈을 위하다가 사람을 잃어버리는 사람보다도 더 어리석고 분별력이 없는 사람이다. 청소도 안 돼 있고 물 없는 그 집으로 왜 들어가느냐? 그러니까 이건 사람이면서 참 사람으로 살지 않고 그런 곳에 가서 귀신노릇을 하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오늘날 이 마지막 시대에 천국복음이 아닌 마치 자기 집 유산을 자기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과 같은 성격의 교회가 많다. 이게 세습교회라. 뿐만 아니라 천국복음이 아니면서도 교회 한답시고 교회에서 자기의 용돈을 벌어 쓰는 목사도 있다. 이건 교회가 그 목사의 본업이 아니라 부업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교회를 인도하는 자는 천국의 본질을 전하는 구원운동이 본업이다. 교인들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인도하는 게 인도자로서의 본업이다. 그런데 교회 한답시고 그게 아니라 세상을 잔뜩 가르치고 거기서 나오는 헌금으로 먹고 사는 여자목사가 있었다.


천호동에 그런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당을 팔아서 또 딴 데 가서 교회를 한다고 한다. 나는 그 교회를 다른 진리의 종에게 줘서 진리운동을 하게 했으면 했는데 그 목사는 그걸 팔아서 다른 데 가서 또 교회를 하면서 용돈을 벌어 쓰겠다고 했다. 이건 교회를 부업처럼 생각을 하는 거다. 남편은 돈을 안 벌어다 주지, 자기는 돈 쓸 일은 있지 하니까 자기가 교회를 하면서 용돈을 벌어서 쓰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님 앞에서 용납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그런 형태의 교회가 수없이 많다.


그래서 크게 보는 원리상 여자목사를 나는 싫어한다. 아버지 목사의 말도 안 듣는데 엄마가 목사면 자식들이 그 엄마의 말을 들으려고 하느냐? 그리고 여자목사들이 손톱을 길게 해서 색깔을 다 칠해놓고. 무슨 다방 마담도 아니고 정말 보기 흉하다.


또 그런 교회에서 과부나 집안사정이 좋지 않은 여자들을 신학이라고 하는 학교에 보내서 자기처럼 또 그렇게 목회자를 만든다. 이건 성경과는 관계가 없다. 그래서 계:에 물 타고 앉은 여자, 짐승 타고 앉은 여자, 산 타고 앉은 여자, 이게 그냥 성경에 돼 있는 게 아니다. 계시적으로 보면 오늘날 그런 교회가 많다.


천국복음의 가정은 가정이 딱 잡혀 들어간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의 얻으려면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자녀들이 순종을 하고.’ 그런데 세상으로 나가는 가정은 그게 안 되고 제각각이다. 자녀인데도 엄마 다니는 교회에 안 나온다. 또 아버지가 목회를 하는데도 자식이 그 교회에 안 나온다. 그러면 아들이 어디로 가느냐? 자기 아내 따라 이상한 교회에 나가는 자식이 한둘이 아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천국복음이 아닌 것은 전부는 세상을 사랑하는 음녀교회다. 마치 골목골목마다 술 팔고 정신 팔고 몸 파는 그런 짓과 비슷하다.


‘발에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아라.’ 옛날에 어느 가게에 거지가 왔다가 가면 주인이 재수 없다고 하며 침을 뱉고 소금을 뿌린다. 또 여자 손님이 돈을 가지고 물건을 사러 왔는데 그 여자 손님이 사려는 물건이 없어서 그냥 가면 또 소금을 뿌린다. 그리고 첫 손님이 여자이면 물건을 사가도 하루 온 종일 재수 없겠다고 한다. 또 아침 일찍 첫 남자 손님이 물건을 사가면 돈에다 침을 뱉으며 오늘 재수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동네 개가 아침 일찍 왔다가 가면 왜 그 때는 소금을 안 뿌리느냐? 그런 가게는 가지 말아라. 이건 미신단지다.


또 어떤 사람은 서로 친하다가 의가 상하면 ‘내가 살아생전에 이 집에 오나 봐라’ 하며 자기 옷을 확 잡이 채는 사람도 있다. 싸우고 헤어질 때도 그렇고.


천국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느 집에 들어갔다가 자신의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는 행동이 나왔다면 이는 머지않아 그 집에 저주가 임할 징조다. 이것은 천국복음을 전하는 인간 감정이 아니라 그 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주는데 거부를 했으니 그 집이 저주가 되는 것이다.


천국복음을 전하는 그 사자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 있는데 그 사자로부터 자신이 하나님의 저주로 찍히면 어쩔 거냐? 하나님의 말씀순종으로 천국복음을 받아서 자기가 영원히 존귀 영광자로 창조의 목적대로 살 길을 찾아야지 천국복음을 하나의 인간의 말로 들으면 그 자는 사망으로 달려가는 길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도시생활은 교인들이 다 직장 가고 밤늦게 집에 돌아온다. 과거에는 낮에 여자들은 애들과 집에 있고 해서 심방을 가기가 쉬웠는데 지금은 그것도 힘들다. 지금도 하는지 모르겠는데 ‘춘계 대 심방, 하계 대 심방’ 그게 요즘은 힘들다.


심방을 하는 것도 평소에 교인들에게 옳은 진리이치를 잘 가르쳐줘서 스스로 분별해서 가든지 말든지 하게 해야 하는데 천국복음도 아니면서(전하지 않으면서) 교인들이 도망갈까 싶어서 부지런히 심방 가고 전화 하고 하는 이거는 아니다.


천국복음을 들고 간다면 복음하고 주님이 보낸 사자하고 그 집에 같이 들어가는 거다. 천국복음일 경우에 그렇다. 세상복음을 전한다면 이는 주님의 사자가 아니다. 주님은 그런 종은 안 보낸다. 어쨌든 본문을 귀담아 알아듣고 구별 분별도 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라.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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