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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주일학교의 시작

  • 최한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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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의 시작


18세기 영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부패하였다. 빈부격차가 극심해지고 거리에는 실직지자들과 알콜 중독자들이 붐볐다. 무서운 전염병으로 어린아이들이 대량으로 죽어가고 있었고 문맹자들로 사회에서 버려지고 있었다. 이 때 한 신문업자였던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는 부요한 생활을 하며 당시 귀족들이 입는 값비싼 의복을 걸치며 멋쟁이로 다녔다. 그런 그가 불안한 영국사회와 국가의 장래와 인류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범죄예방을 위해 감옥소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다. 불결한 감옥을 개선하고 죄수들의 갱생을 위해 감옥내의 교육진흥활동에 힘썼다. 결과 1774년에는 의회로 하여금 감옥법령을 제정케 하여 새롭게 감옥소를 건축했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하여도 죄수들은 출옥한 후 한 달도 못 미쳐서 다시 감옥으로 들어오는 현실을 보며 사회의 악과 범죄의 원인이 무지의 결과임을 깨닫고 근본적인 치유를 위해 아동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레이크스는 주일 아침에 어린아이들을 모아 주일에 예배를 드리게 했다. 노동에 종사하고 거리에 버려진 어린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자기 집을 개방하였다. 자신의 재정으로 숙련된 교사를 고용하고 아동들의 전인교육에 힘썼다. 굶주린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을 가르치며 하나님 말씀과 일반교육을 병행하여 오전 8시에서 오후 5시까지 전인교육을 시행하였다. 이것이 주일학교의 시작이었다.

이것이 당시 교구 담임자였던 토마스 프톡 목사의 도움으로 글로스터에 6개의 주일학교가 설립되었다. 그는 자신의 신문에 주일학교에 관한 기사를 실으므로 주일학교 운동이 급속도로 번졌고 초기에는 감리교회가 적극 참여하였다. 1785년에는 “주일학교 촉진 협의회”가 창립되었고 이로부터 2년 후 주일학교에 등록한 학생이 무려 25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1791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필라델피아에서도 같은 협의회가 조직되어 급속히 주일학교 운동이 온 세상으로 확산되었다.

처음에는 교회가 운영하는 학교로 시작하였으나 후에는 교회는 주일학교 역할을 하고 일반교육은 일반학교에서 가르치게 하였다. 레이크스의 주일학교는 어려서부터의 말씀과 일반교육과 삶에 대한 전인교육에 대한 관심을 일깨웠다.

1811년 4월 15일 레이크스가 세상을 떠나는 날 눈물과 웃음이 가득한 어린이들의 잔치 날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유서에 “내가 죽는 날 나의 저축한 저금을 아동들을 위해 사용해주시오. 이것으로 우리 동네 글라우스터 어린이들 모두에게 1씰링씩 나눠주고 케이크 한 개씩 선물로 주기를 바라오”라고 하였다. 그의 관심은 영국의 사회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였다.

최한주 목사<푸픈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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