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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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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30절-33절: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매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가라사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율법사들과 바리인인들 즉, 자기 백성들에게 버린바 되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을 비로소 가르치되.’ 예수님께서 이 일을 당하시는 것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설정된 전무후무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사건인데 베드로는 이것을 인간의 생각으로 육적으로 알아들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안 죽는 것이고 안 죽어야 하는 것인데 왜 그렇게 죽어야 하느냐? 그리고 어차피 또 살아날 것인데 왜 죽느냐’ 하는 것이다.


베드로의 이 말은 맞는 것 같은데 무엇이 빠졌느냐? 예수님께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설정된 우리의 전무후무한 구원이 이루어지는 사건을 말씀하시는 건데, 여기서 ‘우리의 구원’ 이라고 하는 건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중보의 사역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베드로의 말에는 이 중보사역의 구원이 빠진 것이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하늘로부터 오셨고, 33년 동안을 사셨어도 예수님에게 그게 빠지면 소용없다. 하나님과 나와 손을 잡게 만드는 중보사역인데 베드로의 생각에는 제일 중요한 그게 빠져있다.


예수님께서 따라오는 제자들을 보면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며, 사람의 일이 무엇이며, 또 사람의 일과 사단의 일이 같이 들어가 있는데 사단의 일은 무엇이냐? 예수님의 일은 누구의 일이냐? 사단의 일이냐, 사람의 일이냐. 하나님의 일이냐? 하나님의 일이다.


지금 이치를 따져라. 지금 기독교 안의 목사님들이 지식의 기준을 모른다. 설교를 할 때 아무리 성경구절을 써도 선악과 먹고 나온 지식을 가지고 성경구절을 쓰는 건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생수를 먹고 나온 개념에서 성경구절을 쓰는 건지?


일반세상의 철학이 수준이 높은 건데, 그 철학은 하나님의 말씀 생명수를 먹고 나온 것은 아니다. 선악과 따먹고 나온 철학의 수준이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우리가 성경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은밀계시, 마음을 알아차리는 지식을 가졌다면 세상철학은 밟아버리는 것이다. 세상철학은 사람이 설 수 있는 근원이 없다. 공자의 도덕성도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영적 근원이 없다. 창조의 목적이 없다. 그걸 알아야 한다.


예수님의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인데,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설정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일이다. 그러면 죄가 뭐냐?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누굴 죽였느냐?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뱀 속에 들어갔기 때문에 아담과 하와가 뱀을 죽였느냐? 그래서 뱀을 죽이니 죄가 돼버린 거냐?


이것도 우리에게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뱀의 혓바닥이 몇 개냐? 두 개다. 하나는 성경구절을 쓰면서 하나님과 천국을 말하고, 또 하나는 세상을 목적적으로 말을 하는 것은 뱀의 혓바닥이 되는 것이다. 사람은 혀는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창조의 목적대로 말하라는 의미로써 하나인데, 다 그렇지는 않지만 선악과 따먹고 나온 목사님의 혓바닥은 두 개로 쪼개져 있다. 성경구절을 쓰면서 세상을 취하라고 하는 이게 뱀의 혓바닥이다. 마귀가 예수님 앞에서 성경구절을 쓰면서 그랬고, 거짓 종들이 또 그러는 거다. 예수 믿는 자기는 신앙의 기준적 지식을 분명하게 가져야 한다. 안 그러면 사람이 비굴해진다. 추해진다.


예수님 당신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면 33동안을 죄를 전혀 안 짓고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 율법이 요구하는 그 은밀한 뜻을 100% 이뤄야 하고, 문자 속에 들어있는 그 뜻을 이뤄야 하고, 33년의 전 삶이 영생으로 생명으로 죽을 것이 없이 산 것으로 다 통과해야 한다.


그러면 인간의 생각으로 누굴 보고 ‘네가 33년 동안 털끝만한 흠도 티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만족을 드릴 수 있게 살래, 아니면 그 날 하늘에서 떨어져서 그 날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살래’ 한다면 인간 편에서 어느 게 쉽고 편하겠느냐? 죽지는 않지만 하루 동안 죽도록 얻어맞는 게 좋은지, 33년을 늘 얻어맞고 사는 게 좋을 런지?


33년이라는 게 말이 쉬운 거지 이왕 죽을 거 차라리 하루 와서 고난 받고 바로 그 날 죽는 그게 낫지 이건 인간으로서는 상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려면 당신께서 33년 동안 의행을 이뤄야 하는 그게 있기 때문에 그 날 와서 그 날 십자가를 지은 것이 아니고 33년을 사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하리라’ 라고 하시자 베드로가 그렇게 되어지지 않기를 간하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그 말에 대해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


그러나 베드로의 이 말은 인정이 철철 넘치고, 일반적으로 들어도 타당한 말이고, 온 인간에게 물어봐도 베드로의 말이 옳다고 하지 틀렸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지만 베드로의 이 말은 인간으로 인해 하나님의 일을 뒤엎어 버리는 말이다.


그러면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었는데, 그럼으로써 예수님의 구원의 일이 엎어졌느냐, 지연이 됐느냐,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그냥 진행된 것이냐? 그냥 진행이 됐다.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을 뒤집어 버리는 베드로의 말과 비교할 때 누구의 죄가 더 큰 것이냐? 베드로의 죄가 더 큰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거짓 종들의 사고방식이 가룟유다를 ‘지옥 갈 놈, 죽일 놈’이라고 하는 거지 베드로의 말 속에 들어있는 것이 구원을 엎어버리는 말인 줄을 모르고 있다. 오늘날 거짓된 목사들이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병 낫고’ 하는 이게 다 베드로의 말과 통하는 말이다. 목회자들이 이런 걸 알아야 ‘내가 누구의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이게 금방 나오는 건데 이치를 모르니까 저 모양들이다. 어쨌든 이 모양이든 저 모양이든 지금 마지막을 향해 내리막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33년 동안 죽을 것이 없이 생명적으로 다 통과해야 하는 건데 사단의 일은 예수로 인간생각을 갖게 해서 그 일을 무효화 시켜 우리의 구원이 안 되도록 하는 것이다. 마:의 마귀가 예수님께 한 시험에서도 이게 다 나타난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시험에서 다 이기셨는데 오늘날 거짓된 목사들은 그 뜻을 모르니까 이 세 가지 시험에 다 넘어갔다. 참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니까 죽을 놈은 귀신이 둘러씌워지는 모양이다.


베드로는 인간의 육신생각으로 예수님께서 안 죽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생각은 ‘네가 죽고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라’ 하는 것이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을 구원하려면 맨 위에 있는 분이 밑바닥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러면 내려가는데 있어서 생명줄이 없이 내려가느냐? 잠수부가 물 밑으로 내려가려면 생명줄이 없이 내려가느냐? 그건 죽는 거다. 생명줄을 가지고 내려가야 한다.


죄인은 죽는 것인데, 이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죄인은 죄인을 못 살린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하려고 한다면 ‘너도 죄인이니 너도 죽어라’ 한다. 그러니까 의인이 죄인 대신 죽어야 한다.

그런데 선악과 따먹은 인류는 하나님 앞에 전부 다 죄인이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만한 의인은 하나도 없다. 모든 사고방식이나 성품이나 이해타산이나 평가성이나 하나님 앞에 통과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다.


그러면 저 사람을 구원하려면 예수님께서 일대 일로 의인으로 살면 될 텐데 왜 예수님 한 분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죄 사함을 얻고 살아나는 것이냐? 예수 믿는 자마다 몇 명이든 왜 다 구원을 얻는 것이냐?


그것은 첫째는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죄를 다 짊어지셨고, 짊어지신 인간의 그 모든 죄를 당신의 죽음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것. 그러니까 예수 믿고 구원 얻는 사람의 죄라고 하는 모든 죄를 다 십자가에 박는 것이다. 당신이 이렇게 죽는 것은 그 의인 밑에 우리를 위한 죄의 못박음이 들어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완전히 죽으셨고 사흘 만이 살아나심으로 그 죄책이 다 감당이 되는 것이다. 삼일이란 완전히 죽으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 편에서 보면 죄에서 구원 얻을 자는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것을 모르는 거다. 베드로는 단순히 인간적으로 스승을 위해 한 말이지만 사람이 구원되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구원이 방해되는 짓을 하게 된 것이다. 사람이 구원되는 이치를 모르면 구원이 방해되는 일을 하게 됨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구원되는 그 면에 방해되는 짓을 하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일을 완전히 실패로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부모사랑도 자녀교육도 구원의 이치를 알고 해야 한다. 주 안에서 하라고 했다. 자녀를 노엽게 말라고 했는데, 그러면 자녀를 노엽게 한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자녀를 하나님 보시에게 노여움을 받을 자로 기르면 안 된다 그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준을 바로 잡아야 한다.


누구든지 베드로와 같은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설교도 하고 가르칠 수도 있고 인간을 위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을 하나님 앞으로 구원하는 이 일은 인간들의 설계가 아니고 하나님의 설계로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인간들의 계획에 수단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그 말이다. 하나님의 신의 일은 하나님의 설계로 된 것이니 인간은 그 일에 수종만 바로 들어라. 그런데 그렇게 하는 걸 인간들이 볼 때는 꼭 인간이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일이 뭔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설치는 것은 필연적으로 사단 마귀의 일을 하게 된다. 소경이 사람을 인도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제대로 가지겠느냐?


예수 믿는 수많은 교인들이 예수님의 만능의 능력으로 세상에서 병도 안 들고 부자로 살기를 소원하며 믿는다. 이것은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한 내용들이다. 이치를 모르면 그렇게 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이 세상에서 부자로 살게 해 줄 목적으로 오신 것이냐, 죄에서 구원시킬 목적이냐?


우리가 예수를 믿어도 온전을 향한 실상을 가지려면 얼마나 많이 깨달아야 할지? 안 깨닫고 밥만 먹고 살면 되지? 그렇게 살다 죽으면 죽는 거다. 그러나 인간창조의 목적이, 너를 인간으로 지은 목적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를 지은 인간창조의 목적을 모르니 자기 스스로가 자기를 병들게 만들고, 자기 스스로 자기를 하락하게 만들고 저질적으로 만들고 있다. 자기 스스로의 생각이 그렇다.


인간은 아예 놓여지기를 선악과 먹은 상태이니 모두는 사망 아래다. 사망 아래라고 하는 것은 천국에 해당되는 지혜지식이나 존귀나 영광성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창조의 구원목적에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잘 먹고 잘 살아도 죄와 사망 아래이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을 가져야 하는데, 신적 도덕성이 원칙이고, 바로 그 기준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요 이게 구원이다. 그런데 ‘예수는 잘 믿는데 왜 부자가 안 되느냐? 성경대로 가르치는데 왜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느냐’ 이런 말을 하는 사고방식이 인간생각이냐, 하나님의 생각이냐? 인간 제 생각이다.


예수님 당시 때 바리새교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께 한 것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것이냐, 마귀를 위한다고 예수님께 그렇게 한 것이냐?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것이지만 속성이 변하지 않으니 결과는 마귀가 다 수입을 잡은 것이다.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히느냐? 예수를 믿되 그렇게 믿지를 말아라. 그런데 그 이치를 모른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한 일이냐, 마귀를 위한다고 한 일이냐? 이건 말하나 마나 인간창조의 목적에 대조하면 금방 드러난다. ‘저 사람의 믿음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걸 자기 기준에서 판단하지 말고 예수님을 모셔 와서 예수님과 대조를 하면 금방 판단이 된다. 그런데 인간이 어리석어서 판단을 할 때 자기 기준으로 하기 일쑤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위하고, 바리새 종교지도자들도 하나님을 위한다고 했는데 그들이 왜 예수님을 핍박하느냐? 예수님이 하신 일이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어서냐, 아니면 그들 단체가 워낙 크니까 힘으로 밀어 붙인 거냐?


베드로가 그리 되지 말기를 간한 것은 주를 위하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그 말을 한 거냐, 사단을 위한다고 그 말을 한 거냐? 주를 위한다고. 그러면 판단의 기준이 뭐냐? 말이 기준이냐?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면 판단이 안 된다. 맨 성경구절 가지고 죽을 때까지 돌려도 판단이 안 된다. 해결점은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해서 시간적으로 질적으로 차원적으로 판단을 하면 분명히 판단이 난다. 본질에 입각한 판단을 하게 되면 교회 인도자 개인적으로도 스스로에게 판단이 나오는 거고, 온 교회가 운동을 해도 그게 성격적으로 판단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을 죽이는 것도 사단의 일이요, 생명의 구원의 주를 인간 육적으로 둘러치는 것도 사단의 일이다. 죽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사람을 속이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방편만 살짝살짝 바꾼다.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일에서도 여러 가지 방편을 쓴다. 진리를 핍박하는 것도 심판을 받을 일이지만 사람의 마음을 육적으로 돌려놓는 것도 심판이다. 그런 면에서 교회 인도자는 정신을 차리고 깨달아야 한다. 주위에서 흔히 하는 그런 목회를 할 것 같으면 아예 하지 말라.


예수님께 ‘참람하도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하나님을 높이고자 한 말이냐. 그들의 감정에서 나온 말이냐? 정확한 진리본질에서 모르면 어쩔 도리가 없다. 여기에서 빗나가면 틀린 거다.


자기의 심성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성령의 감화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성경구절을 써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사단 마귀의 일을 하고 가게 된다. 사단 마귀의 속셈은 성도를 천국에 못 가게 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열매의 사람이 못 되도록 만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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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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