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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에게 중요한 5대 삶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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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에게 중요한 5대 삶(1) (느헤미야 9장 1-38절)


1. 회개하는 삶

 감격이 넘치는 초막절 축제가 끝난 이틀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여 금식하고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뿌리며 그들의 죄를 회개했다(1절). 금식하고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뿌리는 것은 가장 극한 슬픔을 당했을 때 나타내는 표현인데 그 정도도 그들은 철저히 회개했다. 형식적인 회개는 상황을 변화시키지 못하지만 철저한 회개는 상황을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때 백성들은 모든 이방 사람과 절교했다(2절). 이방 사람과의 절교는 오늘날로 말하면 잘못된 습성을 끊었다는 뜻이다. 참된 회개에는 잘못된 것을 과감히 끊어내는 행동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회개할 때 자기의 죄뿐만 아니라 조상들의 죄도 회개했다. 그처럼 철저히 회개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사람은 애통하며 회개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회개를 모르는 의인보다 회개를 아는 죄인을 더 기뻐하신다. 아무리 의인인 척 해도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인도에 한 수도사가 있었다. 그에게는 늘 창녀와 신부가 와서 상담했다. 그러면 창녀는 늘 하나님 얘기만 했고 신부는 늘 여자 얘기만 했다. 창녀는 늘 남자와 더러운 죄를 지으면서 하나님을 동경했지만 신부는 늘 여자를 멀리하면서 더 여자를 생각한 것이다. 사람은 다 죄인이고 다 연약하다. 그런 연약함을 생각하며 애통의 눈물을 흘릴 줄 알아야 한다.

 보통 눈물에도 놀라운 힘이 내재되어 있다. 인간의 눈물은 세균을 죽이는 약효와 부식 방지 효과가 있다. 가끔 눈물을 흘리면 몸에 윤활 작용이 생기면서 건강하게 된다. 또한 눈물은 인간관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눈물은 사람의 마음에 감동과 변화를 일으킨다.

 히틀러는 눈물을 무기로 정치적 야심을 확대시켰다. 그는 자신의 힘이 약해지면 여자처럼 눈물을 주룩주룩 흘려 사람의 마음을 돌리곤 했다. 그는 나치당의 분파 지도자 오토 라세르가 탈당하려고 하자 탈당을 만류하면서 세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거짓 눈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하물며 진심으로 애통하며 회개하는 심령을 하나님이 그냥 두고 보겠는가? 진실한 회개의 눈물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2. 말씀 중심적인 삶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첫째 낮 4분지 1인 아침 6-9시까지는 먼저 말씀을 낭독했고, 그 말씀을 바탕으로 다시 둘째 낮 4분지 1인 아침 9시부터 정오까지는 하나님 앞에 회개기도를 했다(3절). 그처럼 기도할 때 먼저 말씀을 보고 기도했다. 또한 그들은 말씀 읽는 시간과 기도 시간을 똑같이 3시간씩 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가 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도할 때 항상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으라.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그 기도가 응답된다. 기도뿐만 아니라 말씀 중심적인 삶은 삶에 큰 유익을 가져다준다. 특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면 어떤 실패와 절망 중에도 일어설 수 있다.

 살다 보면 가끔 실패한다. 그때 말씀은 뭐라고 하는가? 성도의 실패는 저주나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있는 일시적인 시련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실패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얻는 경우가 많다. 소유를 잃고 나서 지혜를 얻고, 사업을 잃고 나서 친구와 아내의 사랑을 얻고, 지위를 잃고 나서 더 좋은 겸손을 얻는 경우도 많다.

 성도에게는 절대로 적자가 없다. 결산하면 늘 흑자이다. 성경이 그렇게 약속한다. 성도는 실패 중에도 더 큰 축복이 있음을 믿고 낙심하지 않고 긍지를 잃지 않는다. 성도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성공하겠다고 용을 쓸 필요가 없다. 성공이란 악착같이 산다고 얻는 것이 아니다. 성공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오히려 자신을 파멸시킨다.

 성공은 주어지는 것이다. 성공은 선하고, 진실하고, 사랑과 용서를 알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다. 환경을 보고 성공과 실패를 단순히 평가하지 말고, 남의 시선과 소리에 흔들리지 말고 말씀에 더욱 귀를 기울이며 살라.

 실패할 때 실패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다. 그것은 남들의 편견과 정죄다. 실패하면 “게을러서 그렇다. 성격이 나빠서 그렇다. 말이 앞서서 그렇다. 교만해서 그렇다. 실력이 없어서 그렇다”라는 말들을 한다. 물론 그런 요소들이 성공에 장애가 된다. 그러나 꼭 그것 때문에 실패한 것은 아니다. 실패에는 수많은 감춰진 요인이 있고 하나님의 뜻도 있다.

 남의 시선과 소리에 흔들리지 말라. 자기 생각만으로 쉽게 판단하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나 있다. 남이 하는 소리와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말씀 위에 든든히 서고 말씀 안에서 자신을 성찰하라.

 로마서 8장 28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한다. 그처럼 말씀 중심적으로 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반드시 선하고 소중한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

3. 찬양하는 삶

 백성들이 죄를 자복할 때 당시 레위 사람 종교 지도자들은 강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말했다.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5절).”

 종교 지도자들은 기도 전에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강조했다. 주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하나님을 송축하는 것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처럼 하나님께 범사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라.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을 앞세우는 부정적인 사람을 결코 기뻐하지 않는다.

 일전에 한 재혼 정보회사에서 재혼 대상자들이 기피하는 배우자감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때 여자는 첫 번째 기피대상 남자로 폭행을 하는 남자를 꼽았고 두 번째 기피대상 남자로 도박게임을 하는 남자를 꼽았다. 반면에 남자는 첫 번째 기피대상 여자로 부정적인 여자를 꼽았다.

 사람도 부정적인 사람을 기피한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가끔 보면 자녀 중에 부모의 사랑은 외면하고 부모가 상처를 준 것만 기억하는 자녀들이 있다. 그래서 “엄마 아빠가 날 사랑한 적이 언제 있느냐?”고 따진다. 기막힌 일이다. 사단이 역사하면 사람이 그렇게 앞뒤가 꽉 막힌다.

 반면에 어떤 자녀는 가난하게 자랐지만 부모가 자기를 고생시킨 건 하나도 생각 안 하고 부모가 자기를 위해서 고생한 것만 생각해서 늘 감사한다. 얼마나 복된 자녀인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마음을 가지라.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생각하면 때로 어떤 문제와 어려움이 있어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라.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면 하나님이 신속히 고난의 물줄기를 축복의 물줄기로 돌린다.

 어떤 사업가는 공장에 불이 났어도 “하나님! 감사해요. 아버지 뜻이라면 더 가져가셔도 좋아요.”라고 감사했다. 그러자 오히려 직원들이 다시 시작하자고 해서 작은 수공업을 시작해 몇 년 만에 과거보다 훨씬 더 사업체가 커졌다. 범사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면 급히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있게 된다.

 성 프랜시스는 새들에게 항상 말했다. “새들아!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날 수 있는 자유를 주시고, 먹을 것과 샘물을 주시고, 둥지를 주셨다. 그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항상 하나님을 찬미하라!” 그처럼 수많은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항상 입술에 찬송이 넘치게 하라.

4. 기도하는 삶

 본문 6-38절에 장문의 기도가 나온다. 기도의 전체 주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가나안의 축복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시로 불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서 이방인의 손에 잡혔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공의와 신실하심을 확신한다는 내용이다.

 이 기도를 보면 당시 리더들은 기도할 때 무조건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성하면서 기도했다. 그처럼 기도에는 자기 성찰과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신뢰가 담겨야 한다. 이제 달라는 기도는 조금 더 줄이고 자기 성찰과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는 조금 더 늘리라. 성숙한 기도만큼 마음에 평안과 치유를 주고 문제를 해결하게 만드는 것은 없다.

 개들이 주인의 손에 있는 고기를 먹고 싶을 때 어떻게 하는가? 고기를 먹고 싶지만 주인이 주기를 기다리며 가끔 주인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러면 애틋한 개의 눈동자를 보고 주인은 고기를 개에게 준다. 만약 개가 고기만 쳐다보고, 고기를 향해서 멍멍 짖으면 주고 싶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용히 기다리면서 한번씩 고기 주인을 바라보니까 더 주고 싶은 생각이 난다.

 기도할 때 욕심을 가지고 너무 목표만 바라보지 말고 기도를 이뤄주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또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확신하며 믿음으로 기도하고, 기도를 마칠 때도 “주여!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하라. 그처럼 기도가 ‘응답 중심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가 될 때 오히려 더 응답받는다.

 영국인 의사 하이슬루프는 자신이 지금까지 발견한 치료법 중에 가장 효과가 좋은 치료법이 기도였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환자들에게 항상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세요.”라고 말해주었다. 그처럼 보통 기도에도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데 만약 그 기도가 하나님 중심적인 기도가 되면 더욱 놀라운 치유와 회복과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5. 결단하는 삶

 그들은 기도를 마치면서 더 이상 불순종하지 않겠다는 표시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먼저 리더들이 인을 쳐서 그대로 행동하겠다고 결단했다(38절). 그처럼 기도는 최종적으로 선한 결단으로 마쳐져야 한다. 헌신을 결단하지 않고 새로운 역사만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신앙생활에서 제일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헌신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자기 몸을 거룩한 하나님의 산 제물로 드리라. 헌신은 축복의 문으로 들어가는 대문의 축과도 같다. 힘들어도 헌신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망하면 망하리라!”고 하며 헌신해보라. 바로 그때 사는 길이 열리고 축복의 문도 열린다.

 2차 대전 직후, 당시 동독 공산주의 선생들은 아이들을 세뇌시킬 때 먼저 아이들에게 “하나님께 사탕을 달라!”고 기도시켰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으면 잠시 후에 말했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 알겠죠? 하나님은 없어요. 그러면 이제 공산정부에 사탕을 달라고 구해 봐요.” 그렇게 구하게 한 후에 선생이 사탕을 나눠주면서 공산정부를 믿고 감사하라고 세뇌시켰다.

 그런 때에 멕클렌부르그에 사는 한 10살짜리 신실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모두 일어서서 자신의 말을 따라 하게 했다. “하나님은 없다.” 그때 모두 다 따라 했지만 그녀는 따라하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은 그녀에게 명령했다. “너 오늘 집에 가서 ‘하나님은 없다’라는 문구를 50번 써와.”

 그녀는 집에서 부모님과 상의한 후 다음날 “하나님은 계십니다!”라는 문구를 50번 써 왔다. 선생님은 화가 나서 욕하며 말했다. “너! 이번에는 꼭 ‘하나님은 분명히 없다’라고 70번 써와. 그렇지 않으면 큰일날줄 알아!” 그러나 다음날 그녀는 또 “하나님은 분명히 계십니다.”라고 70번 써 왔다.

 선생님은 악에 바쳐 말했다. “너! 내일 꼭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없다’라고 100번 써와. 이번에도 반항하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이 말을 듣고 그녀의 부모는 깊이 고민하다가 기쁘게 고난을 당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계시다!”라고 100번을 쓰게 했다.

 그것을 보고 선생님은 떨리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좋아! 이제 내가 고발할 텐데 하나님이 너를 돕나 어디 두고 보자!” 그리고 급히 자전거를 타고 교문을 나섰다가 자전거에서 떨어져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그러자 창문을 통해 그 장면을 바라보던 모든 학생이 한 목소리로 외쳤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살아 계십니다.”

< 드릴 때 더욱 얻는다 >

 죽기를 각오하면 오히려 사는 길이 열린다. 축복의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순종과 결단이다. 아무리 큰소리로 부르짖으며 기도해도 순종이 없으면 허무한 기도가 된다. 예배조차 순종을 전제로 해야 참된 예배가 된다. 그래서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했다. 말씀과 기도는 항상 순종하는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기도하는 손도 중요하지만 남을 돕는 손도 중요하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행위도 필요하다. 성도의 의무와 책임을 외면하고 은혜와 축복만 바라는 것은 잘못된 은혜주의이다. 행함을 절대시하는 율법주의만큼 행함을 무시하는 은혜주의도 나쁘다. 구원은 공짜로 얻었지만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의 소중한 것을 드리고, 최종적으로는 자기 몸까지 드려야 한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행위도 있어야 한다. 물론 행위를 자랑하지는 말라. 자랑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뿐이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교회에 엄청난 건축헌금을 했다. 그 행위를 자랑하면 교회는 어려워진다. 교회에 대주주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헌금하고도 십자가의 은혜만 자랑했다. 그처럼 크게 헌신하고도 자랑하지 않는 사람의 행위는 꼭 필요한 행위이다. 누구보다 헌신적인 행위를 하고도 오직 십자가의 은혜만 자랑하는 복된 성도가 되라. 하나님은 ‘자기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

 드리는 삶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 부부관계를 생각해보라. 부부끼리는 줘도 뺏기지 않는다. 그러나 안 주면 안 주는 것만큼 뺏긴다. 신앙생활에서도 하나님께 안 드리면 안 드리는 것만큼 뺏긴다. 그러나 드리면 더 많은 것을 얻는다. 사랑한 만큼 사랑 받고, 칭찬한 만큼 칭찬 받고, 남을 행복하게 한 만큼 내가 행복해진다. 그처럼 하나님께 드린 만큼 받는다.

 왜 하나님이 “네 몸을 달라!”고 하셨을까? 그 말에는 “내 축복을 너희에게 다 주마!”라는 약속이 담겨 있다. 사람끼리도 “너 나 사랑해?”라는 질문은 질문이 아닌 고백이다. 아이들에게 “얘들아! 너희들 아빠를 사랑해?”라는 질문은 질문이 아니라 아빠가 너희들을 사랑한다는 고백이다. 연인들이 “당신 나 사랑해?”라고 묻는 것은 “나는 당신을 사랑해!”라는 고백을 질문으로 한 것이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다. 그것은 주님이 베드로를 사랑한다는 고백이었다. 사랑관계에서는 질문이 고백이고, “달라!”는 요구는 “주겠다!”는 뜻이다. 그처럼 하나님이 “네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한 것은 “내가 너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이 담긴 말씀이다. 결국 하나님께는 몸과 마음을 다 드려도 잃는 것은 하나도 없고 온통 얻는 것만 생긴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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