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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벙어리가 된 사가랴

  • 신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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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1


제목 : (2강) 벙어리가 된 사가랴 
본문 : 눅1:5-25

2012.3.11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22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24 이 후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이르되

25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설교>

 

◉ 믿음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게 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좋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뜻대로 우리의 모든 일을 이루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 자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같은 사실은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에게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이 우리 중에 이루신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이루신 일의 사실로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있었던 상식과 가치관이 커다란 장벽이 되어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볼 수 없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나름대로의 상식과 가치관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일들을 자신의 상식과 가치관을 가지고 판단하고 믿으려고 합니다. 결국 자기 상식과 가치관에 의해서 믿을만하다고 판단되는 것만 받아들이고 믿고자 하는 것이 우리들이기 때문에 우리의 상식과 가치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거부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상식과 가치관을 넘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신 사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자기 자신에게서 하나님이 이루시는 사실들을 보게 되는 것이고, 지금도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붙들려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을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이라는 것을 토대로 증거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게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의 사건임을 말합니다.

 

 우리는 믿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믿음의 출발을 자기 자신에 두고 있으며 믿음의 과정도 그 결과도 모두 자신에게 달린 문제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는 자에게 필요한 것은 열심이고 하고자 하는 의지이며 할 수 있다는 확신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믿음에 하나님이 개입할 공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다만 인간이 하는 것을 보고 계시다가 채점을 하시고 점수가 좋으면 좋은 대로 상을 주시는 분으로 여길 뿐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이루신 사실은 예수님의 오심과 부활과 하늘로 가신 것으로 종결되었고, 남은 것은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인간의 뜻과 열심일 것입니다. 그래서 열심의 정도가 믿음의 수준으로 부각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철저히 하나님의 일하시고 이루신다는 것을 배격하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도 무시하고 말씀이 살아서 역사하신다는 것도 무시합니다. 오로지 사람이 일함으로써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진다고만 생각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간에게 있어서 믿음은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 믿음 없음 ◉

 

  본문에 보면 제사장 사가랴와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어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였습니다. 이처럼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한 그들은 그 당시에도 물론이지만 지금도 믿음이 좋은 사람으로 칭송받기 충분합니다.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에 흠이 없이 행할 정도였다면 그 삶은 당연히 거룩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나타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그들을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는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 분향할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 것을 예고합니다.

 

 13절에 천사가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사가랴가 평소에 자식 문제로 기도를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사가 전하여 준 소식은 하나님께서 사가랴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기쁜 소식에 대해 기뻐하지 않고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18절)라고 반문합니다. 천사의 소식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자신도 아내도 나이가 많아 늙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같은 사가랴의 말을 들을 때 누가 생각나십니까? 아브라함입니다. 아이가 없던 아브라함에게 천사가 찾아와서 사라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을 것이라고 예고했을 때 아브라함도 사라도 웃었습니다. 이유는 나이가 많아 늙어서 도무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상식입니다.

 

 아브라함도 사라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과 말씀을 이루시는 신실하심을 인간의 상식이라는 틀 안에서 계산했고, 상식에 이해되는 것만 받아들이려고 한 것입니다. 이같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반응이 제사장 사가랴에게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자기 상식의 틀 안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식에 부합되는 하나님을 따로 만들어내는 것이고,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믿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가랴는 요한에 대한 천사의 예고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할 정도로 주의 계명과 규례에 흠이 없이 행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면 제아무리 주의 계명과 규례에 흠이 없이 행하여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고 칭함 받을 정도가 된다고 해도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뭔가를 지키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일을 믿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시고 이루신다는 것보다는 자신의 열심과 행함에 더 큰 확신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런 우리가 구원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 중에 일하시는 사실 때문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열심에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 벙어리가 되게 하심 ◉

 

 15-17절에 보면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을 보면 요한은 단지 사가랴 가문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할 일이 있는 자로 보냄을 받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이것이 그 무엇도 요한이 세상에 보냄 받는 일에 장애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늙었다’는 자기 신체적 조건 안에서 천사의 말을 생각했고, 그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것을 믿지 못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고 일하시는 세계는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과 얄팍한 생각으로 간파할 수 있는 세계도 아닙니다. 우리의 상식을 뛰어 넘어서 항상 기적을 만들어 내는 놀라운 세계가 하나님이 일하시는 현장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상식과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이같은 놀라운 세계에 대해 항상 무지할 뿐입니다.

 

 사가랴에게 나타난 천사는 좋은 소식을 전하여 말하라고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천사가 전한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믿지를 못합니다. 이러한 사가랴에게 주어진 말은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20절)입니다. 사가랴가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된다는 것입니다.

 

 당시 벙어리는 지금처럼 단순히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재앙을 받은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큰 문제가 있다는 증표로 여겼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가랴는 제사장입니다.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여김 받을 정도로 계명과 규례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도 흠이 없었습니다.

 

 누가 봐도 사가랴는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가랴를 벙어리가 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너는 문제 있는 인간이다’는 것을 그의 몸으로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말을 못하게 되기까지 자신이 문제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계명과 규례를 흠없이 행하는 자신을 바라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가랴를 벙어리가 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칭함 받은 사가랴조차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죄인이었음을 드러내십니다. 이것을 통해서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의 결과임을 증거하시는 것입니다.

 

  ◉ 잊지 말아야 할 것 ◉

 

 인간은 애당초 믿음이 없는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 없음에서 시작을 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에 대해 우리는 끝까지 무지한 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 없음에서 시작하게 되면, 믿음 있음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누가는 복음에 대해 이같은 사실을 증거하고 싶은 것입니다.

 

 사가랴가 천사가 전해준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처럼, 우리 역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으로 기뻐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이 이루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며 우리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고 우리를 부르셨으며 우리에게 일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우리 인생이야 말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인도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가랴가 벙어리가 된 사실 앞에서 ‘나는 정상이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사가랴보다 낫다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말이라도 들었지만, 우리는 그런 말도 들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사가랴는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나를 돌보시는 날에 사람들 앞에서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끄러움이 없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 먼저 자신으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부끄러움에서 건져내는 주의 능력을 담고 있는 복된 소식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이 복된 소식의 기쁨을 알게 하기 위해 먼저 우리의 부끄러움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부끄러움을 보지 못하고 마치 정상적인 사람처럼 살아온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부끄러움에서 건져 내시는 예수님의 은혜를 바라보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신자는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감사하는 자신의 믿음에서 이같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목격한 자로써 하나님의 일하심만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열심이 아닌 하나님의 열심만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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