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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 이주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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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앙일보 백성호 기자가 찾아와

산골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와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가 된다.

알아야 묻고, 알아야 답을 하면 서로 통한다.


지난 날 어떤 경우는 그만 하자고 했던

TV방송 기자와의 촬영도 있었다.


영성에 관해서는

기자가 아니라 영혼의 벗이어야

이야기가 된다.


그저 웃으며 서로 던지는 말들이

누가 답인지 누가 물음인지 모르게

법열처럼 기쁨의 감동 속에 하나가 되어야

진짜 통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 인터뷰다.


질문이 반은 답이다.

질문의 질과 수준에 따라 답을 던질 뿐이다.

가르치려 하는 것도 아니고

새삼스레 말을 만들거나 준비하지 않아도

주고 받은 것이 영적인 대화이다.


지난 백성호 기자의 방문은

길벗으로 교감하던 영혼의 이야기를

충만함 중에 몇 시간 동안이나 진행되었지만

간단히 핵을 골라 기사화한 것을 보고는

다시 한번 영혼의 공명을 느낀다.  


아래는 기사 내용입니다.


-예수의 부활, 한 마디로 뭔가.
“신비다. 그리스도교에는 3대 신비가 있다.

창조와 성육신(成肉身), 그리고 부활이다.

이 셋은 신비의 마지막 지점에 있다.

나는 거기에 도달하는 게 우주의 끝에 도달하는 거라 본다.”

-그걸 과학의 눈으로 보면.
“신비가 없다면 과학의 내일도 없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에는 어땠나.

 시간이 상대적이라든가, 공간이 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상대성이론 나오면서 신비의 영역이 우리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래서 과학이 됐다.

그건 아인슈타인에게 영적 감수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본다.”

-부활은 신비라고 했다. 사람들 눈에는 왜 안 보이나.
“신대륙 개척 시절, 탐험가들은 지도의 끝을 넘어갔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상식과 세계관의 끝을 넘어갔다.

거기에 신대륙이 있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지도를 넘어갈 때 비로소 우리는 신비를 만나게 된다.”
이 목사는 신비를 모르는 삶을 탄광의 갱도(坑道)에 비유했다.

 “주위를 보라. 다들 힘들어 한다. 지도 안에서만 사는 삶.

그건 무너진 갱도 안의 삶과 같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라는 갱도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다.

다들 각자의 황금을 찾느라 거기가 갱도인 줄도 모르고 산다.

결국 숨이 막히지 않겠나.” 그는 나지막하게

러시아 문학가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읊었다.

“우리의 삶과 우주에 신비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이들에게 마음을 다해 진정으로 사랑을 해보라고 말한다.

그러면 신비가 열릴 거라고. 그때 알게 된다.

세상은 온통 신비로 가득하다는 걸 말이다.”

이 목사는 부활을 굳이 멀리서 찾지 말라고 했다.

“나의 일상, 나의 하루에서 창조와 성육신,

그리고 부활을 찾아야 한다.

그게 지금껏 그토록 갈급하며 찾다가 제가 도달한 결론이다.”

-목사님의 하루에서 ‘창조’는 어디 있나.
“천지창조의 첫날. 우리가 그걸 두 눈으로 직접 본다면 어떨 것 같나.

어마어마한 신비에 젖을 거다. 차분히 살펴봐라.

태양도 계속 움직이고, 지구도 계속 움직이고, 우리의 세포도 계속 움직인다.

똑같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나님의 천지창조는 지금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나는 모든 하루의 시작이 천지창조의 첫 아침이라 본다.

오늘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 때 들어서는 햇볕,

나는 거기서 창조의 신비를 만난다.”

-그럼 부활한 예수는 어떻게 만나나.
“예수께선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고 했다.

우리가 부활한 예수를 만나는 길을 구체적으로 일러주신 거다.

오늘 하루 우리에게 주어진 만남.

그 속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나는 게 우리의 몫이다.”

-창조와 부활, 그 신비를 알면 갱도에서 나오게 되나.
“물론이다. 갱도 안에는 신비가 없다. 신비는 늘 갱도 밖에 있으니까.”


<백성호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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