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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기준 (요 13: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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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준 (요 13:31-38)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요한복음 13:31-38)

지난 주간에 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세계복음주의연맹(WEA) 이사회와 제3차 로잔세계대회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로잔대회에는 2백 개 국가에서 4500명이 참석했습니다. 초청받은 국가 중에서 불행하게도 한 나라만 참석을 못했는데, 중국입니다. 초청받은 중국기독교 지도자 2백여 명이 이미 등록을 하고 비자, 항공권 등 모든 수속을 마쳤지만 공항에서 중국정부의 저지를 받고 여권을 회수당했다고 합니다. 대회 참석자들은 행사 기간 중 하루저녁 중국과 전 세계의 핍박받는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금도 많은 나라에서 기독교인들이 핍박과 멸시를 당하고 직장에서 쫓겨나고 폭행과 죽임을 당하고 집과 교회가 불에 타는 일들도 비일비재합니다. 오늘 우리는 여기서 이렇게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의 많은 형제들이 어디선가 숨을 죽이고 몰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신앙의 자유를 주심을 감사하십시다.

지난 50년 동안 세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진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교회성장, 민주화, 경제부흥. 신앙의 자유를 통해 세계에서 교회가 가장 왕성하게 성장한 나라는 한국뿐입니다. 동시에 민주주의가 회복된 나라도 한국뿐입니다. 처참한 가난에서 일어나 경제가 부흥하여 10위권에 들어간 나라도 한국뿐입니다. 교회성장, 민주화, 경제성장, 이 세 가지가 지난 50년 사이에 한국 땅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한 은총 주심을 여러분이 보고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럽 각국은 지금 여러 어려움에 처해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노동자 1백만 명이 거리에 나와 화염병을 던지면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정부가 은퇴자들을 먹여 살릴 길이 없어서 정년을 2년 늘렸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극단적인 정책을 사용하지 않으면 나라가 파산 당한다는 의견과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으로 논쟁이 심했는데 결국은 국회에서 정부안을 통과를 시켰습니다.

영국은 앞으로 4년에 걸쳐 공공기관 직원 50만 명을 해직시킨다고 합니다. 특히 군예산의 8%를 단계적으로 삭감한다는 것입니다. 직장이 없어지는데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야단법석입니다. 독일, 스페인, 그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잘 산다고 하는 유럽 국가들이 지금 이렇게 어렵습니다. 이란 대통령은 그런 유럽을 대놓고 조롱합니다. “서구 문명은 망했다. 희망이 없다. 앞으로는 모슬렘 문화가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여러분도 이란 대통령이 유엔에서 이렇게 연설하는 것을 들으셨지요? 이처럼 어려운 시대에 G20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로 우리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 주신 것,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우리가 38선 북쪽에 살지 않음을 감사하십시다. 38선이라는 경계선 양쪽으로 나뉜 남과 북은 그 차이가 수십 배입니다. 정치제도 하나를 잘못 선택해서 북한은 전 세계가 도움을 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남쪽도 과거에는 도움을 받는 나라였지만 이제는 도우면서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또 감사할 일들이 많습니다. 금년은 풍년입니다. 북한은 먹을 것이 없는데 우리는 쌀을 쌓아 둘 창고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창고 비용이 더 든다고 하니까 "이미 쌓아 둔 쌀을 북한에 보내자, 북한 정부를 생각하면 주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지만 국민을 생각해서 주고 우리의 창고에는 새 쌀을 쌓아 놓자"고도 합니다.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납니까? 우리가 오늘 북한에 살지 않고 대한민국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임을 알고 오늘 감사 주일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다.

아직 직장생활을 하시는 분들은 일할 수 있는 직장과 능력이 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이미 은퇴하신 분들도 감사하십시다.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 감사하다!” 젊어서는 시키는 일을 하고, 성인이 되어서는 해야 할 일을 하고, 은퇴 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자유도 있습니다. 제게도 이제 그 시간이 가까이 왔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 우리 모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십시다. 

우리에게 가족이 있음을 또한 감사하십시다. 여러분에게 가장 편한 곳이 어디입니까? 집입니다. 이번에 제가 열흘 동안 해외에 나가 있으면서 4개의 호텔에 머물렀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니까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요! 제일 좋아요. 가족이 함께 하는 가정이 있고 거처할 집이 있으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어떤 호텔도 가정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감사할 것은 나를 사랑하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사랑의 대상임을 감사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영원히, 무조건 사랑하십니다. 내가 부족하고 잘못도 있고 실수를 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향한 희망을 절대로 버리지 않으십니다. “나는 네 하나님이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 내가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 너를 다시 세워주겠다.” 내가 돌아올 때까지, 다시 설 때까지 기다리고 참고 돌아오는 나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인간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회에서 천대받는 사람들, 심지어 창녀까지 사랑하셨고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니야! 새롭게 사는 길이 있어!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사람들을 너를 정죄해도 나는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예화 가운데 집을 나간 아들의 비유가 있습니다. 집 나가서 망나니짓 하고 재산을 탕진해도 아버지는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늘 밖을 쳐다보며 아들을 기다리시던 아버지는 돌아오는 탕자를 보고 달려 나갔습니다. 아들이 뛴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뛰어 나가 아들을 안고 받아주고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끊임없는 사랑,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 것, 그것을 믿는 믿음이 생긴 것,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때로는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사랑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증오할 때도 있습니다. 엊그제 두바이에서 26살 된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아버지 방에 휘발유를 뿌려 불을 지른 일도 있습니다. 인간의 사랑은 흔들리지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흔들림이 없습니다. 세상이 나를 버리고 심지어 부모가 나를 버려도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의 대상임을 감사하십시다. 

우리가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 우리가 사랑할 대상이 있습니다. 나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을, 그리고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원수마저도 사랑합니다. 여러분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있고 여러분이 사랑할 대상이 있으면 감사하십시오. 그러면 인생은 살만 합니다. 왜 그런가? 

저는 지난 몇 주 동안 성경에 나타난 사랑에 대해서 구석구석 살펴보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공부하고 가르치긴 했지만,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를 통해 사랑에 대해 공부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은 사랑하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사랑하는가, 어떻게 사랑하는가, 잘못된 사랑인가, 참된 사랑인가, 정의를 사랑하는가, 불의를 사랑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인간을 제대로 사랑하든가 잘못 사랑하든가의 차이 뿐이지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습니다. 

제대로 사랑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엉뚱한 대체물을 사랑합니다. 창조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 피조물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해와 달과 별들과 같은 천체나 금은목석으로 만든 가짜 신을 사랑합니다. 사랑의 대상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도 “악을 사랑한다”, “거짓을 사랑한다”, “거짓 신을 사랑한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랑의 대상과 방법이 잘못되었을 뿐 사랑하며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참된 사랑의 대상을 알고 진심으로 참된 사랑을 하는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만약 하나님이 주신 참된 사랑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가짜를 사랑하거나 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인간은 사랑하며 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저절로 안 되는가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사람을 혼자 두고 “네가 알아서 해!” 하면 제대로 사랑을 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구약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을 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가장 중요한 계명이다. 둘째는 이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이 두 가지가 성경 전체의 요약이니라.” 즉 하나님 사랑, 인간 사랑입니다. 

제가 젊었을 때, 아직 성경을 잘 몰랐을 때는 기독교 신앙에 대해 혼란이 많았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하는 것이 너무 많아서 얼마나 복잡하고 신경이 쓰이는지요. 목사님들이 오셔서 설교를 하셔도 같은 성경구절을 가지고 이 목사님은 이렇게, 저 목사님은 저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혼란스럽고 신앙생활이 어려웠습니다. 물론 제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요. 후에 신학공부를 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아, 신앙생활이 복잡한 것이 아니구나!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이것이 전부다. 그래서 사랑, 이것 하나가 가장 중요하다! 사랑을 계발하고 사랑의 샘을 만들어서 늘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 솟아오르게 하라.’ 복잡한 것 없습니다. 너무 간단하고 쉬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시나? 인간도 스스로 사랑을 합니다. 하지만 인간이 스스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사랑스러워서 사랑합니다. 솔로몬이 술람미 여자를 보자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그 여자의 몸에서 사랑스러움이 철철 넘쳐요. 그래서 그 여자를 사랑합니다. 둘째는 아름다워서 사랑합니다. 왕이 에스더를 사랑합니다. 왜 사랑하는가?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서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아름답지 않은 사람,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처음 만났을 때는 사랑스러웠는데 10년이 지나니까 이젠….” “20대에는 아름다웠는데 50이 되니까 그저 그래!”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사랑할 수 있나요? 인간에게 “너희들이 알아서 사랑해”라고 하면 사랑스러운 것, 아름다운 것만 사랑하려고 할 것입니다. 사랑이 제대로 될까요? 인간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사랑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입니다. 그래서는 제대로 사랑을 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사랑하고 모두가 사랑을 받지는 못합니다. 

여러분, 사랑은 느낌이나 감정이 아닙니다. 참된 사랑은 의지적인 행동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고린도전서 13장에 사랑의 정의가 있지 않습니까? “사랑은 오~래 오~래 고통스럽게 참고…”(love suffers long). 이것이 사랑입니다. 고통을 느끼면서도 오래 참아주는 것이 사랑의 1번입니다. 또 “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love bears all things)라고 합니다. 참을만한 것을 참아야지 어떻게 모든 것을 참습니까? 사랑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사랑은 끝까지 견디느니라”(loves endures all things). 오래 오래 고통하면서도 참고, 모든 것을 다 참고, 끝까지, 끝까지 참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사랑인데 누가 이런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인간에게 그냥 맡기면 너무 힘들어서 못합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워야만 사랑하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온 세계가 사랑에 굶주리고 목말라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모자라는 것이 사랑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돈, 집보다 사랑이 모자랍니다. 인간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것만 찾아서 사랑하려고 하니까 사랑이 없다, 사랑이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맡겨놓지 않으시고 “사랑하라! 너희는 서로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나는 목숨을 바쳐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라고 말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네가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 사랑하겠느냐? 오늘밤 닭이 울기 전 세 번이나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면 베드로가 얼마나 실망했겠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철렁합니다. “목숨을 내놓고 나를 사랑하겠다고 하지만 너는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어. 오히려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하지.” 베드로는 정말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고 통곡을 했습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의 현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늘 사랑이 모자라서 몸부림 치고, 혹시 어디 사랑이 없는가? 아름다운 것이 없는가? 사랑할 만한 것이 없는가? 두리번거리면서 잘못된 사랑을 추구하고 따라다니다가 더 많은 고통을 만들어 놓고 끝냅니다. 인간의 사랑은, 마치 아버지의 집을 나가서 허랑방탕하다가 배가 고파서 마지막에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배를 채워 보려고 한 탕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하십니다. 변함이 없으십니다. 사랑은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예수님이 그 사랑의 본을 보이셨고, 성령께서 여러분의 가슴에 역사하셔서 사랑의 샘을 트여 주실 때만 거기서부터 솟아나오는 것이 참된 사랑입니다. 

여러분이 아내를 사랑하고 있다면 성령께서 삶속에, 가슴속에 역사하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남편을 사랑하고 자식, 형제, 이웃을 사랑한다면 성령께서 도와주신 것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첫 번째 열매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원치 않아서가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목숨을 바쳐 사랑하고 싶어도 바로 그날 밤에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 인간이 스스로 하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서 모든 가치 중에 최고의 가치인 사랑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 가슴에서 날마다 솟아오르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에게 은혜 베푸셔서 제 사랑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하소서. 그 사랑으로 가족을, 성도들을, 이웃과 가문을, 이 민족과 세계를 사랑하도록, 저에게 사랑을 채워주옵소서. 저를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 발전시켜 주시옵소서.” 간절히 기도할 때 기도를 통해서 성령께서 여러분 가슴에 역사하실 것입니다. 구하지 않고 바라지 않고 기대하지 않고 간구하지 않으면 우리의 사랑은 식을 것이고 모자랄 것입니다. 결국 여러분은 사랑의 결핍 때문에 몸부림치면서 엉뚱하고 잘못된 사랑의 대상을 찾아 사랑하는 불행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사랑할 대상인 자신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슴에 성령을 주셔서 내가 사랑의 도움을 청할 때마다 성령께서 사랑의 능력을 주십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사랑이 없이는 인간처럼 살 수가 없습니다. 집은 오래 되고 무너지면 처참하지만, 무너진 인간은 무너진 집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가슴속의 사랑과, 사랑을 간구하는 기도로 남은 평생에 풍성한 사랑의 축복을 꼭 체험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김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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