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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롬 3:29-4:12)


오늘 본문에 바로 앞서는 21-28절에서 사도 바울은 쓰기를 하나님께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의”가 아닌 하나의 새 “의”를 세우셨다고 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의”입니다. 그리고 이 새 “의”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모든 믿는 사람을 위하여 세워진 하나님의 “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하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세우신 새 의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차별이 없어졌을 때 제기되는 물음들을 사도 바울이 모를 리가 없었습니다. 첫째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각각 하나님과 갖는 관계의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은 이스라엘 민족만이 하나님의 백성인 줄 믿고 있었는데 그러면 이방인도 하나님의 백성이냐 하는 물음입니다. 달리 말하면, 할례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표지인데 할례 받은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할례 받지 않은 사람과 다를 것이 무엇이냐 하는 물음입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일에 있어서 율법의 행위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면 오직 믿음만 고려된다면 율법은 파기된 것이냐 하는 물음입니다. 이런 물음들에 답하는 것이 오늘 본문 3:29-31입니다: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31절 끝에서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한 말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라는 종교개혁운동의 핵심사상인 소위 <이신칭의>교리에 대한 오해로부터 오는 <율법폐기론>을 잠재우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과 율법이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율법을 배제하거나 무효화시키는 것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한 말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율법의 의미와 용도가 오히려 더욱 분명해지고 확고해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된 이제 도대체 율법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입니까? 우리가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율법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를 지시하는 말씀이 아니라 구원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율법이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나 수단으로 제시된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이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옛 이스라엘 백성이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언약의 율법을 받은 것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바로의 압제로부터 구원을 받아 나온 후의 일이었음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율법을 주시고 그 율법을 잘 지켜 행하는지 아닌지를 보신 후에 출애굽을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출애굽하게 하시고 그 후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언약을 맺으신 후에 그 언약의 증표로 율법을 주셨다는 엄연한 사실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율법 행함이 하나님의 백성 됨의 전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됨이 율법 행함의 이유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에로 택하심을 받은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율법이 폐기된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일찍이 예수님 자신이 밝히신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마5:17-20의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율법의 용도 또는 기능에 관하여 잠시 생각해보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첫째는 죄를 억제하는 기능입니다. 죄를 지으려다가도 율법이 말하는 형벌이 두려워 죄를 짓지 못하게 하는 기능입니다. 율법은 이렇게 범죄를 억제함으로써 사회질서를 유지하며 국민의 안녕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는 죄를 폭로하는 기능입니다. 율법이 없다면 죄를 짓고서도 죄인임을 모르고 지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롬3:20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했습니다. 이렇게 율법이 있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며 회개하게 되고 두려움에 싸여 하나님께 용서를 빌며 살려달라고 매달리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는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기능으로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가르쳐주는 기능입니다. 율법이 있어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도 알 수 있고, 어떻게 해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복되게 살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율법은 결코 파기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과,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임을 설파한 사도 바울은 이제 그 복음의 진리를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뒷받침합니다. 그것이 4장의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하나님에게서 의롭다고 인정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라는 사실을 예시하는 것은 유대인들을 설득하는 데 대단히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예를 내세워 유대인들을 설득하는 사도 바울의 논리는 다름 아니라 율법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지기 훨씬 오래 전에 아브라함은 이미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만큼 무슨 자랑스러운 율법의 행위를 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율법이 주어지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4:1-2가 그것을 말합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여기서 “육신으로”라는 말은 “행위로”라는 말과 같은 뜻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성경의 증거를 제시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여기서 성경이라 함은 창15:1-6이 전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어느 날 환상 중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셔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하시고는 또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이미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 말씀을 믿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증거로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도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바 되었음을 밝힌 사도 바울은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를 시도합니다. 4-8절의 말씀입니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율법이 명하는 대로 행하지 않고도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사람은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하지도 않고 거저 누리는 복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곧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며 우리 스스로의 의지나 결단이나 노력의 소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 자체가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롭다 하심을 얻을 만한 일을 한 것도 없는 “경건하지 아니한 자” 즉 죄인을 거저 의인이라 인정하시는 것은 무로부터 만유를 창조하신 일,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일과 더불어 하나님이 행하신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일의 하나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이 위대한 복음의 수혜자들입니다. 이 어찌 감사하며 힘껏 증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은혜의 복음, 복음의 은혜를 설명한 후 그것이 할례 받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은혜인지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이게도 주어지는 은혜인지 하는 문제를 다시 꺼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 그가 할례 받기 전의 일임을 밝힘으로써 그 문제에 정답을 줍니다. 또한 아브라함 자신이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면 그는 할례를 받았건 안 받았건 모든 믿는 이들의 조상이 됨을 천명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같은 이방인도 할례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로 인한 속죄와 구원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9-12절입니다: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아멘! 

11절의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 한 말을 음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할례 자체가 하나님의 백성 되게 하는 어떤 마술적 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함축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그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의 표지로 주어진 것이 할례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그대로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세례에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기 위해 세례를 받지만 세례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로, 믿음으로 구원 얻은 신자의 표지로 주어지는 것이 세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의 고백 없는 세례는 아무 의미도 은혜의 효력도 없는 것입니다. 세례 받을 기회가 없었던 사람도 바로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세례 받았으니 천당 가는 것은 보장된 일이라고 여기며 신앙생활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세례로 얻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찬 그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찬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이루신 우리의 구원을 믿고 고백하는 의식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의 구원사건을 일으키는 것이지 성찬 자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성찬에 임할 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는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계적으로 성찬식에 참석만 하면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죄를 그때그때 다 씻어준다고 믿고 형식적 신앙으로 아무렇게나 살아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얻는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널리 힘껏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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