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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마라를 만나게 될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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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를 만나게 될때

▶성경본문: 출15:22-27 

여러분, 짚신 장수와 우산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의 이야기를 아시나요? 
한 어머니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큰 아들은 짚신장수였고, 둘째아들은 우산 장수였습니다. 며칠 동안 비가 오지 않자 어머니는 작은 아들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작은 아들 우산 장사 안 되서 어떻게 하나? 어머니는 우산 장사를 하는 작은 아들을 걱정하며 하늘을 향해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장마가 져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큰 아들이 걱정이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큰 아들 짚신 못 팔겠네.. 어쩌나.. 
이번에는 비를 쏟아내는 하늘을 향해 원망하였습니다. 이렇듯 이 어머니는 날이 좋아도, 날이 궃어도 늘 근심과 원망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모습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이웃 사람이 말했습니다. 아니 아주머니 뭘 그렇게 염려하며 불평하며 사십니까? 반대로 생각해보세요.. 날이 좋으면 큰 아들 짚신장사가 잘 되니까 좋고, 날이 궃으면 작은 아들 우산장사가 잘 되니까 좋은 것 아닙니까? 
어머니는 생각했습니다. 아 그러네.. 그때부터 이 어머니는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래 비가 오면 작은 아들 우산장사가 잘 될 거고, 비가 안 오고 날이 좋으면 큰 아들 짚신장사가 잘 될테지 하며 걱정 없이 살았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걱정은 또 다른 걱정을 낳고 염려는 더 큰 염려를 낳게 마련입니다. 불평하고 불평할수록 불평할 일이 생기고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감사할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똑같은 10개의 사과를 먹을 때 어떤 사람은 맛 없는 거 부터 골라 먹으면서 계속 불평을 합니다. 아니 뭔 놈의 사과가 이렇게 맛이 없어.. 에이 이런 사과를 계속 먹어야 해 하면서 불평하면서 맛 없는 사과 10개를 먹습니다. 그 사람은 맛없는 사과 10개를 먹은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똑같은 10개의 사과를 먹을때 어떤 사람은 맛있는거부터 골라서 기쁜 마음으로 야 사과 참 맛있네.. 하면서 10개를 먹었다면 그 사람은 맛있는 사과 10개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문제는 주어진 상황이 아니라 그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처리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맛 없는 사과 10개를 먹는 사람처럼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게 됩니다. 

지금 출15:22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출14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전 생애를 통해서 가장 기적적인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경험은 바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너게 되는 꿈같은 구원의 경험이었습니다. 출14:29-31절입니다. 함께 읽어보시죠? 
그리고 출15장에서는 1절부터 하나님이 베푸신 그 크고 놀라우신 은혜를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20절 말씀에 보면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으로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 행진해 나가는 위대한 하나님의 순례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한 감동적인 체험과 감사는 사흘을 넘기지 못하였습니다. 
22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르 광야로 들어가 3일 동안 물을 얻지 못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23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3일 만에 겨우 찾은 샘 마라에서 쓴 물을 만나게 되면서 24절에서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하나님께서는 한 나무를 지시하여 주심으로 그것을 물에 던졌더니 물이 달아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 역시 홍해를 건너게 되는 것과 같은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감격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도 때로는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의 인생길이 또 때로는 쓰디 쓴 마라의 쓴 물과 같은 고통스럽고 힘겨운 삶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됩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인생의 광야, 인생의 마라를 만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첫 번째로 인생의 광야, 인생의 마라 쓴 물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한번 따라해 봅시다. 원망 대신 기도하는 성도가 되자. 

오늘 마라를 만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뉘고 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24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백성의 지도자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5절 말씀을 보면 백성의 지도자 모세는 여호와께 부르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삶 속에 광야같이 척박하고 메마른 삶, 마라와 같이 쓰디 쓴 인생의 쓴 맛을 맛보게 될 때 취할 수 있는 방법 역시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기도대신 원망을 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모세처럼 원망대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람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광야와 같이 메마르고 척박한 삶이 주어지고 마라와 같이 쓰디 쓴 고통의 순간이 주어질 때 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을 향하여 나 자신을 향하여 그리고 주어진 그 상황을 향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으로는 광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라를 단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원망은 더 큰 원망을 가져오고 불평은 더 큰 불평을 낳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라와 같이 쓰디 쓴 고통의 삶을 단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 출15장 25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 마라가 단물이 되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시해주시는 한 나무를 그 마라에 던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는 날개가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떼어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개 때문에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는 돛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잘라버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돛으로 말미암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차는 화통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것을 끝까지 달고 다닙니다. 왜냐하면 그 무거운 화통이 없다면 단 1m도 전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를 보고는 시계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 그 추를 떼어버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간 시계 바늘이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고통스러운 마라의 쓴 물을 마시게 될 때 어쩌면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닐 지 모릅니다. 지금의 이 상황도 무겁고 힘겨운데 또 다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는 게 너무 무겁고 더 힘든 일이라고 여겨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우리의 기도의 날개를 떼어버린다면 우리는 하늘을 향해 다시 날아오를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힘들고 무겁다고 하여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날 수 없는 새가 되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배가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일이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일이 무겁고 귀챦다고 여겨지는 그때야말로 반드시 더욱 기도하기에 힘쓰고 부르짖어 간구해야 할 때임을 생각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수 있는 믿음의 귀한 성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기 25절의 부르짖는다는 표현은 영어로 cry out입니다. 조용조용 얌전하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 하나님만이 도우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마치 죽은 사람 살려내라고 소치 치듯이 그렇게 속에 있는 내장이 다 끌어올려질 듯 애절하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말하는 기도인 것입니다.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어느 누가 시간 있으면 이 사람 좀  하면서 신사적으로 조용 조용 이야기하겠습니까? 목이 다 쉬고 심지어 피를 토하는 한 이 있어도 그 사람 하나 살려내겠다는 일념으로 소리를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그렇게 소리치지 않겠습니까? 부르짖는 기도란 바로 그런 것입니다. 
들어 주실 려면 들어주시고 바쁘시면 나중에 들어주셔도 됩니다. 하는 그런 조용조용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으니 반드시 역사하소서. 반드시 변화시켜주소서. 반드시 일하소서 하며 애절함과 간절함을 가지고 소리치는 기도가 바로 부르짖는 기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한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119가 소방차를 부르는 다이얼이라면 하나님을 부르는 다이얼이 몇 번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333이 하나님을 부르는 다이얼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핸드폰 333을 눌러봤자 아무도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거신 번호는 잘못된 번호입니다. 란 말밖에 들을 수 없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예레미야 33:3절을 말하는 것입니다. 렘33:3절에 보면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도 부르면 쳐다보고 거기에 대하여 반응을 합니다. 하물며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고 계시는 하나님, 나보다 나를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토록 하나님을 간절히 부르고 또 부르는데 외면하시겠습니까? 모른 척 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말씀처럼 우리의 기도에 응답 하여 주실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기도하며 부르짖을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쉽지 않은 일을 하나님 앞에서 행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명 기적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여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라 같은 삶 속에 해결책을 제시해주실 것입니다. 방법을 찾게 하여주실 것입니다. 마라가 변하여 단물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인생의 광야, 인생의 마라 쓴 물을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25절에 보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한 나무를 그 마라에 던졌습니다. 많은 성경학자들이 여기 여호와께서 지시하시는 한 나무를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해석합니다. 벧전2:24절 말씀을 찾아볼까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입었나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의 모든 죄악과 고통 눈물과 한숨, 아픔과 슬픔을 다 담당하여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의 고통의 마라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던지면 우리의 마라가 달아 지게 되는 놀라운 주의 역사가 있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마라를 만나게 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 두 번째는 우리 인생의 쓰디쓴 마라에 십자가를 던져 넣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이 밤 여러분을 쓰라리게 하는 마라가 무엇입니까?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미움과 증오의 쓴 물을 마시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은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로 인한 두려움과 염려의 쓴 물을 마시고 그 가운데 고통당하고 계실 수 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는 좌절과 낙심의 쓴 물을 마시고 있을 줄도 모릅니다. 
어떤 분은 삶의 다가오는 문제들이 바로 마라가 되어 힘들어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물질의 마라, 질병의 마라, 차마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죄악의 마라 때문에 고통당하며 아파하고 있을 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습니다. 

오늘 이 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들어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그 마라에 던져 넣으십시오. 그럴 때 여러분의 마라는 더 이상 마라가 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해주신 것은 광야가 아닙니다. 마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을 약속해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광야와 마라가 우리 인생의 최종목적지가 가 아님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분명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임을 믿으십니까? 이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하나님도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여러분의 마라를 달게 하여주시며 여러분 모두를 약속하신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하나님도 여러분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미국의 시카고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전 시가지를 불바다로 만든 일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 도시 중심에 있던 무디 목사님의 교회도 불에 타서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르게 되었습니다. 한 기자가 무디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평소에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백성들을 사랑한다고 설교하시고, 어떤 위험에서도 구해 주신다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교회가 불에 탄데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곰곰히 듣고 있던 무디 목사님은 "지금 우리 교회는 너무 성도가 많이 모여서 하나님께 더 큰 건물을 짓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잿더미가 되었으니 이젠 교회를 더 크게 짓는 일만 남은 셈이지요"라고 대답했다. 기자는 다시, "그러면 교회를 지을 돈은 무사하게 보관하셨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무디 목사님은 자신의 오른손에 꼭 잡고 있던 낡은 성경책을 보이며 "여기 이렇게 하나님의 금고가 있지 않소!"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후 무디 목사님은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전역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큰 부흥운동을 일으켰고, 마침내 영국교회 성도들의 헌금으로, 시카고의 불탄 교회 자리에 더 큰 예배당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디 에게는 잿더미에서 더 큰 성전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었고 그 믿음을 잿더미 마라에 던져 넣었을 때 잿더미가 변하여 아름다운 성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에 다르게 역사해 주심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마라는 마라 지 마라가 어떻게 단물이 될 수 있어라고 믿는 사람에겐 아무것도 변화시켜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마라가 변하여 단물이 될 것을 믿는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반드시 마라가 변하여 단물이 될 그 날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우리에게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당장은 우리가 광야에서 허덕이며 마라의 고통가운데서 신음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나를 이렇게 내버려두시지 않으시고 도와주실 것이다, 역사해주실 것이다. 라고 믿고 여러분의 그 마라에 십자가를 믿음으로 던져넣으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이 반드시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회복시키시며 새롭게 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쓰디 쓴 마라가 달콤한 단물로 바뀌어지는 놀라운 그 날을 맞이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맺으려고 합니다. 
방금 전 홍해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구원의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춤을 추면서까지 기뻐하며 감사하였지만 광야로 들어서 마라를 경험 하게 되자 그 찬양과 감사의 입술이 금방 원망과 한숨과 불평의 입술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라의 위기 상황 속에서도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었고 하나님은 그 마라가 단물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셨고 하나님이 지시하신대로 한 나무를 마라에 던져 넣었더니 마라가 단물로 변화되는 놀라운 기적을 다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 천년전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와 같은 삶이, 쓰디 쓴 마라와 같이 고통스러운 삶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두 가지로 말씀드렸습니다. 첫 번째 원망대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자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그 쓰디 쓴 우리 인생의 마라에 믿음의 십자가를 던져 넣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대로 나를 끝나게 하지 않으실 것을 믿는 믿음의 십자가를 던져 넣을 때 마라가 변하여 단물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됨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밤 여러분의 마라가 변하여 단물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원망대신 기도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여러분의 그 마라에 믿음으로 던져 넣으십시오. 반드시 여러분의 마라가 변하여 단물이 되는 이 밤이 될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오늘 이 밤 우리 모두가 이런 축복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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