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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성령의 법 (롬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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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목사님이 어느 날 보니까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한 남자성도가 교회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아주 진지하게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이었다. 아직 신앙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 같은 사람이 진지하게 기도하는 것이 놀라워서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그렇게 간절히 ‘나는 죄인입니다’라고 기도했습니까?” 그랬더니 이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죄인이라니요? 교회에서는 원래 그렇게 기도하는 것 아닙니까? 보니까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집사님이나 다들 그렇게 기도하시던데요. 그래서 기도할 때는 그렇게 해야하는가보다 하고 저도 그냥 따라서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얼마나 심각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실제로 깨닫고 느끼는가? 성경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남들도 다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인정하는가? 실제로 내 삶 속에서 내가 죄인임을 깨닫고 발견하고 인정하는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것을 정말로 인정하는가?

로마서의 저자 사도 바울은 1장-3장에서 사람은 모두 죄인이라고 지적하고 고발한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까지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했다. 그리고 사람이 자기의 힘으로는, 자신의 노력으로는, 자신의 공로로는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7장에서는 자신의 내적인 고민과 갈등을 솔직하게 고백했다. 자신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며 살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한다고 고백했다. 죄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서 끌고 간다고 했다. 그래서 스스로는 죄를 이길 수 없고 선을 행할 수 없고 그래서 죽음과 멸망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그 하나님의 진노에서 스스로를 구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처절한 절규를 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 건져주겠습니까?”

이 세상에 죄인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바울처럼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가슴 아파하고 고민하는 사람과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죄가 하나도 없는 듯이 맘 편하게 사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병을 아는 사람은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애를 쓴다. 그러나 자신의 병을 모르는 사람은 그 병에 대해서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살아간다.

그러면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그리고 죄를 이기며 살 수 있을까?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와 죄악 됨을 철저하게 깨닫고 또한 그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도 분명하게 알았다. 또한 그 죄를 이길 수 없는 자신을 보고 안타깝게 부르짖은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죄를 용서받고 또 죄를 이길 수 있는 길을 발견했다. 바로 오늘 말씀이 그 분명한 대답이다. 여기에 죄의 용서와 구원의 길이 있다.

이 로마서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책이다. 기독교의 기본교리가 정확하게 그리고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이 8장은 가장 중요한 내용이다. Philip Spener는 “성경을 하나의 반지로 본다면 로마서는 그 반지의 다이아몬드와 같고 또 그 중에 8장은 다이아몬드의 반짝이는 끝과 같다”고 했다. 만약에 성경이 불의의 사고로 다 타서 없어진다고 해도 이 로마서 8장만 남아 있으면 우리는 그것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까지 말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늘 본문은 가장 귀하고 중요한 말씀이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면 복음이 무엇인지,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구원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함이 없나니.” ‘정죄함’이란 법정 용어로 판사가 재판에서 죄인이라고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애를 썼지만 오히려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며 살았다. 그래서 그 율법에 의해서 하나님의 법을 어긴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았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런 유죄판결이 내려지지 않는다. 더 이상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지 않는다. 왜인가?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해방”이란 노예상태에서 풀려나는 것 즉 자유를 얻는 것이다. 전에는 육신에 속해서 죄에 매여서 악을 행하며 살았고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정죄에서 벗어나고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죄와 사망의 법”이란 죄를 짓게 하고 죽게 하는 법이란 뜻이다. 즉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결과로 반드시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생명의 성령의 법”이란 사람을 살게 하는 법이란 뜻이다. 즉 성령을 따라 살면 반드시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한다. 전에는 우리가 죄의 법에 매여서 죄를 짓고 죽음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죽을 사람도 살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의 법을 이겨서 우리로 좌와 죽음을 이기고 생명을 얻게 해준다. 그래서 이제는 죄 때문에 죽지 않고 생명을 얻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주셨기 때문이다.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이것이 무엇인가? 율법 즉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선을 행하고 의롭게 살라고 요구하지만 육신을 입은 연약한 인간은, 죄에 매인 육신은 그 율법의 요구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가 아무리 율법의 요구대로 살려고 애를 써도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며 산다. 그래서 이제는 율법에 의해 죄인으로 정죄함을 받고 형벌을 받아야 한다. 

율법의 요구란 이렇게 율법을 다 지키고 율법대로 행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율법을 어겼으면 그에 응당한 죄의 대가를 치르고 벌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 벌이란 곧 죽음이다.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이렇게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율법을 다 지킬 수도 없고 또한 율법의 형벌을 벗어날 수도 없는 존재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 주셨다는 것이다. 어떻게 하셨는가? “3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여기서 “죄를 인하여”는 ‘인간의 죄 때문에, 우리의 죄 때문에’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어떻게 보내셨는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죄 있는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셨다.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이것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죄인이라고 정하셨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지은 죄가 예수님의 죄라고 정죄하셨다. 그래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이 되셨다. 그리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셨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예수님이 죄인이라고 정죄를 받으셨다. 죄는 내가 지었는데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의 대가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다. 죄는 내가 지었기에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내 죄를 지고 내 대신 죽으셨다. 그래서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서 구원을 얻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이렇게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는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이다. “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우리를 살리는 성령의 법이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기만 하면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의 적용을 받아서 죄와 죽음을 이기고 살게 된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은 바로 나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신 것이 바로 나 때문이고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 안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를 용서받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다. 그래서 죄에 매이지 않고 주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게 된다. 2절의 “너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는데 어떤 번역에는 “나를 해방하였음이라”고 했다. 1,2절을 그렇게 다시 읽자.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님의 오심과 죽으심이 나를 위한 것임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서 죄에서 자유함을 얻으라. 

둘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오시고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고 믿을 수 없다.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약도 먹으려고 하지 않고 의사에게도 가려 하지 않고 의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것을 깨닫고 인정해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자신은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나아가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지도 않는다. 실제로는 죄 가운데 살면서도 자신을 의롭게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하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주어지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죄를 이길 수 없고 죄에 매인 구제불능의 죄인이라는 것을 솔직하고 고백하라.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죄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시기를 구하라.

셋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선물이다. 왜 하나님께서 죄 없으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내 죄를 대신 지시고 죽게 하셨는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죄를 짓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는 것을 그대로 두실 수 없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믿음이란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럴 때에 그 사랑의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자유하게 해주신다.

이제 하나님 앞에 나의 의를 내려놓으라. 나의 의와 공로로는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라. 그리고 또한 나의 모든 죄악도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라. 죄의 무게에 짓눌리지 말고, 죄책감과 사탄의 정죄에 눌려 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의 모든 죄를 다 내려놓으라. 그리고 그 죄를 용서받으라.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내 죄를 위해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을 깨닫고 믿으라. 십자가에서 나타난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그래서 죄 사함을 받고 죄에서 해방되라.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라.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어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사람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라는 것이다.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육신”은 욕심과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성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죄 된 인간의 본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영”은 우리의 영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다. 즉 우리가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따라 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전에는 육신에 속해서 죄에 매여서 살았기에 의를 행하지 못하고 죄를 지으며 살았지만, 이제는 성령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요구대로 의롭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살기로 결심해야 한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무엇이 다른가?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일이란 무엇인가? 갈라디아서 5: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영의 일은 어떤 것인가? 갈라디아서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처럼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생각이 다르다. 그리고 그 결과도 다르다.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육신의 일을 하는 사람은 죄를 짓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음에 이른다. 그러나 성령의 생각을 하고 영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성령의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생명과 평안을 얻게 된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 생각의 초점이 자신에게 있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다. 욕망에 매여 사는 것이다. 욕심과 정욕이 지나치면 실제로는 되는 일이 없다. 공부를 많이 해도, 노력을 해도, 사랑을 해도 무엇을 해도 자기중심적이고 욕심에 빠지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고 오히려 실패한다. 지나친 정욕과 욕심에 매여서 이런 것들이 그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두려움이 생기고 좌절을 느끼게 된다. 항상 근심과 걱정에 매여서 잠을 잘 수 없는 불안한 삶이 되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육신의 생각을 따라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되는 일을 하며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첫째로, 성령이 나를 다스리는 사람이다.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의 다스림을 받고 그리스도의 영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어서 그 영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에 이끌려 살지 않으면 그는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다. 

둘째로, 그 생각이 영적인 것에 있는 사람이다.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즉 깊은 세계를 보고 사는 사람이다. 보이는 것만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산다. 눈에 보이는 돈이나 명예보다는 보이지 않는 도덕, 양심, 진리, 정의, 사랑, 겸손, 희생 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다. 어떤 일을 당하거나 보아도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깊은 의미를 찾는다. 이런 사람이 성령의 사람이다. 

셋째로, 육신의 욕심과 정욕이 완전히 죽어버린 사람이다.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여기서 ‘몸이 죽는다’는 말은 육신이 죽어서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육에 속한 마음들이 사라져서 완전히 영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면, 즉 그리스도의 영이 온전히 나를 다스리게 되면 몸 즉 육에 속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게 되고, 그래서 몸 즉 육신은 죽은 상태가 된다. 그래서 인간적인 욕망과 교만과 자존심은 다 죽어버리는 것이다.

넷째로, 성령에 의해서 삶이 달라진 사람이다.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 말씀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 몸도 부활할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우리의 모든 삶이 온전히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새로운 삶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완전히 삶의 의미가 달라진다. 몸도 내 몸이 아니고 내 정신, 내 지식도 내 것이 아니다. 내가 가진 물질도, 재능도 다 내 것이 아니다. 나의 모든 것들이, 나의 삶 전체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그리스도의 손에 의해서 쓰이게 되는 것이다. 전에는 죄에 의해 다스려지고 악에 의해 다스려지고 자존심과 욕심에 의해 다스려지던 내가, 이제는 말씀에 의해서 성령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삶으로 완전히 달라지는 것이다.

어떻게 성령을 따라 살 수 있는가? 육신의 요구와 성령의 요구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육신의 요구는 거절하고 성령의 요구를 따라 살기로 결단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음성에, 성령님의 요구에 순종해야 한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항상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고 하나님께 초점을 두고 살기 때문에, 항상 보이지 않는 신령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 영이 살아 있어서 거룩한 하나님의 영에 연결을 받는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에 연결이 된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는다. 자기의 힘과 지혜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과 지혜를 받아서 산다. 그래서 늘 기쁨과 평안이 있고 생명이 있다. 그래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무엇에 이끌려 사는가? 무엇을 따라 사는가? 육신을 따라 살고 있는가? 성령을 따라 살고 있는가? 오늘이라는 현실 속에 살고 있는 것은 같지만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 영에 속한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의 차이다. 그 가는 방향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은 생명의 길로 가고 한 사람은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 한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신령해지고 또 한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저속해진다는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죄를 이기지 못하고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며 살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다. 내가 예수를 믿을 때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켜 주셨다. 이 놀라운 구속의 은총에 감사하고 이제는 참 자유를 누리며 살라.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계신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법에 매인 존재가 아니고 성령의 법 아래 있는 새로운 존재이다. 썩어질 우리의 몸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살리셨기 때문에 귀한 몸이 되었다. 삶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져서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의 영이 내 안에 계심으로 가장 의미 있는 생활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전처럼 육신을 따라 육신의 일을 생각하며 욕심과 정욕에 이끌리는 삶을 살지 말자. 이제는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의 일을 생각하며 영의 일을 하며 사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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