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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 1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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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보답할까? (시 116:12-14)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소페르(David Soper)는 ‘피할 수 없는 하나님’(God Is Inescapable) 이란 책에서 교도소와 수도원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지적했습니다.
여러분은 똑 같이 담장이 높고, 세상과 차단된 교도소와 수도원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는 말하기를, 교도소와 수도원의 차이는 불평과 감사에 있다는 것입니다.
죄수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불평으로 보냅니다.
가족을 원망하고, 친구들을 원망하고, 사회를 원망하고.......
그러나 수도사들은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감사로 보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동료에게 감사하고, 자연에게 감사하고........
이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죄수가 감사하면 그가 비록 감옥에 있을지라도 그의 자리를 하나님이 임재하는 수도원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반대로 수도사가 감사를 잃으면 수도원에 있을지라도 그의 자리를 마귀가 역사하는 감옥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삶의 자리를 수도원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옥으로 만들고 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의 일입니다.
그들은 허허벌판에서 매일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주시는 천국의 음식인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똑같은 만나만 먹으니 싫증이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매끼 만나만 먹으니 권태롭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조로운 만나만 먹으니 먹는 재미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고기기를 좀 먹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백성들의 원망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바다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그들이 머문 곳에 90센티 쌓일 정도로 쏟아 부었습니다.
백성들이 몰려나가 메추라기를 거둬들였습니다.
이때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니, 그 메추라기를 잇 사이에 놓고 씹기도 전에 재앙이 임했다고 했습니다.
민11:33-34절 “고기가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도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서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기브롯핫다아와’란 말은 ‘탐욕의 무덤’이란 말입니다.
아무도 망하려고 출애굽 하지 않았지만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망하려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섭섭함, 원망, 불평을 아주 조심하십시오.
하나님이 그것을 듣고 계십니다.
섭섭한 마음이 들면, ‘내가 지금 시험에 들고 있구나.’ ‘사탄이 지금 내 마음을 노략하고 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닫고 민첩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섭섭함, 원망, 불평을 잘 컨트롤 하지 못하면 ‘기브롯핫다아와’가 됩니다.

1. 시인이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는 내용은?

본문에 보면 시인이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1) 기도에 응답하심으로

1절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절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4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시인은 기도의 맛을 아는 사람입니다.
무슨 문제이든 기도하면 응답받는다는 사실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기도의 선순환, 기도의 악순환이란 말을 들어 보셨지요?

기도의 선순환이란 기도하면 응답받고, 응답받으니까 무슨 문제이든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고........ 
이렇게 해서 주님과의 교제의 깊이가 깊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기도의 악순환이란 기도하지 않으니까 기도응답을 맛볼 기회가 없고, 기도응답을 체험하지 못하니까 기도하고 싶지도 않고.......
이렇게 해서 주님과의 관계가 점점 더 어색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조사에 의하면, 교인들 중에서 ‘기도해서 응답받은 경험이 없다.’고 고백한 사람이 30%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세 명 중 한 명이 기도의 악순환에 빠져있다는 것입니다.

진주는 굴의 몸에 들어온 모래알이 변해 생성된 보석입니다.
몸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굴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나카’라는 특수한 물질을 생성해 살갗을 파고드는 모래알을 끊임없이 감싸거나, 아니면 아예 모래알을 무시해버리거나 하는 것입니다.
‘나카’가 모래알을 감싸면 엄청난 고통이 따른답니다.
고통의 분량만큼 진주는 점점 더 커집니다.
그러나 모래알을 무시하면 통증은 없지만 살이 곪아서 곧 굴은 죽게 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모래알을 만날 때 기도로 맞서 눈물의 진주를 만드는 사람이 있고, 이리저리 피해 다니다가 파멸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눈물의 기도는 강력한 힘을 갖습니다.
아내의 눈물의 기도는 남편을 감동시킵니다.
부모의 눈물의 기도는 자식을 감동시킵니다.
눈물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입니다.

곡읍할 대상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하소연할 대상이 없는 사람은 울지도 못합니다.
크게 놀란 아이는 울음을 참고 있다가 부모의 얼굴을 보면 ‘앙’하고 울음을 터뜨립니다.
아이는 사랑하는 대상에게만 웁니다.
그래서 아이의 통곡은 가장 강렬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고아는 울지 않습니다.

고아는 슬프고 괴로워도 눈물을 보이지 않습니다.
울어도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우리의 기도를 들어줄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2) 환란과 슬픔에서 건지셨으므로

3절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8절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이런 표현들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큰 고통에 고난에 처했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 피할 수 없는 고통, 답답하고 안타까운 곤란........
이런 영적인, 정신적인, 육체적인 상황에서 건지셨다는 것입니다.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렘33:3절 “너는 네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빌4: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지난 주 우리교회는 ‘콤패션' (Compassion)이라는 선교단체의 대표로 있는 서정인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고 선교 부흥회를 했습니다.
교우들이 많은 도전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분은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첫째 아들이 5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희귀병에 걸린 것입니다.
죽지는 않지만 피부의 실핏줄이 터지는 고통스러운 질병이었습니다.

아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보험료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병원비였습니다.
3주 만에 병원비가 자그마치 2억 8천만 원이 나왔습니다.
친척들이 모금을 하여 4천만 원을 도와주었지만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병원복지사인 필리핀계 카톨릭 신자가 이 사정을 알고, 눈감아 줄 테니 보고서 내용을 고쳐서 정부의 지원을 받자고 제안했습니다.

얼마나 감칠 맛 나는 유혹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어서 “나의 하나님은 그보다 크신 분임을 믿습니다.”라고 그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병실에서 아들과 함께 하염없이 울고 있는데 복지 감사를 나온 정부관리가 이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로 그렇게 울고 있느냐?”

사정을 말했더니 미국의료법에 특별규정이 있는데 아이의 희귀병이 그 규정에 적용될 수 있을 것 같으니 서류를 보자고 했습니다.
이 관리의 선처로 아이의 병이 치료될 때까지 치료비를 미국 정부가 전액 지원할 뿐만 아니라 그 병이 재발할 확률이 97%인데 재발시에도 치료비 전액을 정부에서 지원하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서정인 목사님의 간증이 사실임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만만히 보실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환란과 슬픔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들어 감사를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런 은혜를 생각하고,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라고 자문하고 있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라고 자문하는 시인의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그 모습이 아름답지 않아요?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긴 해야 되겠는데.......’ 그 어떤 것을 드린다 해도 그 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지?”
유명한 선교사, 미국의회가 초청하여 연설을 들을 정도로 유명했던 스터드(C.T.Studd)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것이 사실이라면 나의 어떤 희생도 결코 지나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2. 시인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려고 합니까?

본문에서 시인은 자신이 던진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라는 물음에 두 가지로 답변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3절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7절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의 감사를 입술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히13:15절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입으로 하나님의 덕을 선전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벧전2:9절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심장을 뛰게 하는 최고의 선물은 성도의 찬양입니다.
가장 훌륭한 찬양의 악기는 열정과 감격으로 가득 찬 우리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2) 서원을 갚으며

14절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8절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서원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 벧엘에서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그러나 20년이 지나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서 의식주를 풍부하게 공급해주시고, 많은 복을 주셨지만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을 갚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사랑하는 딸 디나가 추장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당하는 환난을 당한 후에야 그는 서원을 갚았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경우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서원을 갚으라고 요구합니다.

이런 서원은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흔히 있는 일입니다.
설교시간에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세례를 받거나 집사 권사 장로 등의 직분을 받을 때, 찬양대원 교회학교 교사 등 사역을 위임 받을 때 하나님께 서원합니다.
공개적이든 개인적이든 하나님께 드린 모든 약속은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그것들은 하나님과 나와의 폐기될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서원을 갚는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실천한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행동이 있는 감사를 말합니다.
생각으로 감사하고, 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하고 끝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한 예배학자는 헌금행위를 가리켜 ‘생명을 바꾸는 사건’(exchanging life)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신 주님께 우리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바로 헌금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온르 우리는 추수감사헌금을 드림으로써 ‘행동이 있는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나가는 말
코리텐 붐 여사와 자매 벳시는 독일 감옥가운데서도 가장 악명 높은 레이븐스브룩 감옥으로 이송되었습니다.
감방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을 뿐만 아니라 벼룩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이송되던 날 아침에 그녀가 읽은 성경구절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7)이었습니다.
벳시는 코리에게 새로운 감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감사하자고 했습니다.

코리는 벼룩에 대해서만큼은 감사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벳시는 벼룩에 대해서도 감사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후 그 감옥에서 몇 달 동안 간수의 방해 없이 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인도할 수 있었습니다.
몇 달 후에 밝혀진 것인데, 간수들이 그 감옥에 자주 찾아오지 않는 이유가 벼룩이 들끓기 때문이었습니다.
벼룩에 대해서도 감사해야할 이유가 나중에서야 밝혀진 것입니다.
이렇듯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아주 작은 것에 대하여, 아니 불행해 보이는 일에 대해서도 감사할 줄 압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곡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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