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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영광 돌립시다 (골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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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영광 돌립시다 (골 3:17)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중세 시대 때 수도원에서 제자 양육시 중점적으로 교육하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감옥과 수도원의 차이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유가 없는 외형적 모습은 비슷할지라도 감옥에 있는 사람은 불평과 원망이 있고, 수도원의 생활에는 감사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수도원에서일지라도 감사 없이 시작된 하루는 감옥이 될 것이며 감옥에서라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시작하면 그곳이 천국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많이 갖고도 불행한 사람이 있고 없이 살아도 행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행복은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도의 모든 언행 심사에 하나님께 감사함이 깃들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음으로써 가능함을 교훈해 줍니다. 세상의 모든 일에는 원칙과 이치가 있듯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에도 성경의 원리를 따라 감사 하는 생활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감사는 믿음의 성장을 줍니다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성도의 감사 행위와 내용은 그 성도의 신앙 성숙도와 성장 내용과 비례하는 원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합니다. 

(엡 5: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의 나 된 것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고전15:10)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범사에 감사하는 일은 여간 신앙이 깊은 성도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요행이든 불행이든 감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며,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섭리로 받아들이고 믿는 깊은 신앙심을 소유한 성도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또 "나의 나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은 매우 고상한 신앙에서 생겨납니다.
건강, 행복, 물질의 부요함 때문에 감사드리는 것보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받았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 늘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품고 있는 성도는 그 믿음이 성숙한 경지에 있는 성도인 것입니다.
이처럼 감사의 도와 내용은 성도의 신앙 성장과 성숙도에 비례하는 원리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한 여성이 지하철에서 도움을 구하는 아저씨 한 분을 보았습니다. 다른 곳은 다 멀쩡한데 한 쪽 발목에 의족을 차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의족을 차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쪽 바짓단을 걷어 올린 채 조그만 플라스틱 바구니를 들고 구걸했습니다. 그 때 이 여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깨달음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이 남자가 왜 구걸하며 인생을 살게 되었는지 아느냐? 다른 일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자기에게 없는 한 쪽 발목만 바라보고 살았기 때문에 구걸하는 인생을 살게 된 것이란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도 내게 받은 것들이 그토록 많건만 남편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아니냐?" 
없는 것 생각하며 원망 하거나 불평하지 말고 있는 것 생가하며 감사하는 믿음의 성도가 됩시다.

  
감사는 신앙 성장을 가져 옵니다.

또한 성도의 감사 행위는 신앙의 성장 결과를 가져오는 원리가 있습니다. 성도의 감사 행위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만과 불평을 잠식시키는 무기가 됩니다.
성경은 어리석은 말을 그치고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권합니다.

(엡5:4)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원망, 불평은 사단의 시험에 빠지게 되는 요인이 됩니다.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어도 돌이켜 감사하는 자세와 고백을 할 때 사단의 시험과 유혹을 물리치고 더 놓은 신앙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게 됩니다. 그와 같은 생활을 하는 성도의 신앙 인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게 됨으로써 성숙하고 고상한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메리 리드 선교사는 인도에 건너가 그리스도의 선한 사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 인도에는 나병환자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의 비참한 생활을 보며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을까 고심했지만 좀처럼 그들을 도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메리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시달렸습니다. 할 수 없이 그녀는 하던 사역을 접어두고 인도를 떠나 본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정밀검사 결과 그녀의 병명은 놀랍게도 나병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메리는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제게 나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인도로 돌아가 나병환자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녀는 즉시 인도로 들어가 나환자들 곁에서 그들을 돌보며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무지 이런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감사는 복의 씨앗입니다

(고후 9:10-11)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물질의 복을 주신대로 감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성도의 가사 행위에는 때때로 예물이 따르게 됩니다. 즉 마음뿐만 아니라 물질도 수반될 경우가 있습니다.

(잠 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물질을 감사의 표시로 드릴 때 '주신 복의 분량'을 따라 드려야 하는 원리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합니다. 

(고후 9:7)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인색하다는 것은 부한 형편에 있는 성도가 걸맞지 않게 적은 예물을 드리는 예이며, 억지로 드린다는 것은 형편이 되지도 않는 성도가 감당할 수 없는 예물을 드리고자 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주신 형편대로 자원하여 드리는 것이 올바른 감사 예물의 원리입니다. 

  
복의 씨앗을 심는 믿음으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삶도, 신앙도, 물질도 원래 하나님이 위탁하신 것들입니다. 많은 받은 자도, 적게 받은 자도 그 분량에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그 받은 것을 주인 되신 하나님 뜻대로 세상이란 밭에서 어떤 내용으로 뿌리고 가꾸었으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감사도, 구제도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씨앗을 뿌리고 심는다는 자세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백 배, 육십 배의 열매로 다시 거두는 원리가 있음을 알고 즐겁게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전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한국에서 첫 번째 여성 장군이 대한민국 건군 53년, 여군 창설 51년만에 처음으로 나왔는데 육군본부 간호담당관 51세 양승숙 대령이 드디어 장군이 되었다 합니다. 일찍이 그녀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전남대 의대 간호학과를 졸업한 뒤 간호장교가 되어 장교가 된 후 최선을 다한 결과 장군이 되었다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의 집안은 4대째 내려오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 합니다. 그녀의 어머니 권준자 권사님은 매일 새벽 기도를 하는 분이요,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첫 열매는 무조건 교회에 감사 예물을 드릴 정도요, 교회에서 충성 봉사하면서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의 어머니라합니다. 그 어머니의 기도 때문에 딸 여섯이 철저하게 신앙 안에서 자라서 네 명이 의사, 또는 간호사가 되었으며, 그 가운데서 첫 여자 장군도 나오게 되었다 합니다.


감사는 신앙의 증거입니다

(히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박윤선 목사님은 '불신자들은 잘 되어도 불만이요, 안 되어도 절망하고 원망한다. 그들에게는 감사라는 것이 있기가 어렵다'고 했으며, 한경직 목사님은 '신자와 불신자의 차이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유무에 있다'고 했습니다.

(롬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감사는 신앙 증거의 원리에 따라 드려지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의 구체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사귀는 성도만이 어떤 형편에서도 진정한 감사 행위를 할 수가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대로 창고에 곡식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합 3:17-19)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감사는 신앙의 증표입니다.

영국의 한 마을에 구두 수선을 하는 윌리엄 캐리란 청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주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 앞에 헌신했습니다. 몸과 마음을 다 바친 헌신으로 그는 25세에 목사가 되고, 1792년 31세에 인도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인도에 도착한 후, 그는 감격과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는 계속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인도에 도착한지 1년 만에 그는 총명한 눈을 가진 5살짜리 아들을 잃었습니다. 아내는 그 충격으로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다가 결국 아내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7년 동안 한 사람도 주님의 제자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그에게 인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끊임없이 부어 주셨습니다. 

1812년, 인도에 온지 정확히 20년 만에 그는 인도 사람을 위한 벵갈어 성경번역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선교부에서 종이와 잉크와 인쇄기를 보내 주어 성경인쇄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찍는 인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는 감격하며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인쇄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그 시간에 캐리 선교사는 전도하러 나갔습니다. 

얼마 후, 전도하러 나갔다 돌아온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습니다. 인쇄공의 실수로 화재가 나서 그의 20년 수고가 물거품처럼 사라진 것입니다. 그때 그가 번역한 원본,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었던 벵갈어 문법책과 사전이 다 타버렸습니다. 처음 그 장면을 목격하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때 성령님이 그의 마음에 평강을 주셨습니다. 곧 그는 조용히 잿더미 위로 걸어가서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의 20년 수고를 거두어 가셨지만 그래도 저의 믿음은 거두어가지 않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는 불안에 떨던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용기를 잃지 맙시다. 이 일은 우리를 전진시키는 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 후 그는 더욱 훌륭한 벵갈어 성경을 이전보다 빠르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역사는 언제나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사람 편에 섰습니다. 때로 걸림돌이 있어도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감사하며 나가면 걸림돌은 반드시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아무리 눈에 보이는 환경이 참담해도 우리의 헌신은 반드시 열매 맺는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욱 사랑하고, 더욱 헌신하고, 더욱 감사하며 사명 감당하는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는 신앙 간증과 고백입니다.

감사 행위는 신앙의 증표인 동시에 그 신앙을 세계와 만민에게 증거하는 간증의 원리가 있습니다.
(시 105: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라고 성경은 명합니다. 

하나님께 불신과 원망과 교만으로 가득차 있는 이 인본주의 세계에서 성도가 드리는 감사 와 고백은 큰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바울과 실라가 로마 감옥에서 밤중에 찬양함으로써 감옥문을 여는 결과를 가져온 것처럼 성도의 찬미와 감사의 고백과 행위는 세상의 희망과 등불과 힘이 됩니다.
절망에 처한 이웃이 성도의 찬미 소리를 듣고 희망의 여명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 대한 감사 고백과 간증에 어두웠던 영혼의 눈이 떠지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성도의 감사는 신앙의 간증과 고백의 원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불평하는 버릇을 갖고 있었던 벤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청년의 얘기입니다. 그는 날씨에 대해서 불평하였고 가족과 친구의 흠을 잡았고 아주 사소한 일에도 기분을 상하곤 했습니다. 매사에 불만이 많고 불평만 늘어 놓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었습니다. "내려주신 모든 은혜에 대해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면 불평하거나 슬퍼할 시간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는 만족할 줄 모르는 자신의 마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그에게 쏟아 부어 주시고 계셨던 선물들을 못보고 지나쳤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벤은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 습관에서 벗어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가 나거나 불평하고 싶어질 때마다... 잠시 멈추고는 그가 즐기고 있는 많은 좋은 것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곤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효력이 있었습니다. 못마땅하여 입을 삐죽거리기보다는 찬양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불평스러운 마음을 훨씬 쉽게 피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의 삶은 완전히 감사로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평을 말하는 것보다 복을 헤아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삶의 모습들은 더 많은 감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성도의 감사 행위와 고백은 단순히 주관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신앙 성장을 돕는 원리로서, 복의 씨앗을 증식케 하는 원리로서, 또한 신앙의 확대라는 원리로서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성도의 사명과 본분을 다하는 자세로 감사 생활을 해야 하며 영광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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