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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샘 곁의 무성한 가지 (창 49:22-26)

첨부 1


샘 곁의 무성한 가지 (창 49:22-26)


성경에는 크게 두 반열이 있습니다.
축복의 반열과 저주의 반열입니다. 
아벨이 있으면 가인이 있고, 이삭이 있으면 이스마엘이 있고
야곱이 있으면 에서가 있고, 
축복의 그리심 산이 있으면 저주의 산 에발산이 있듯이
축복과 저주의 반열이 있습니다.  

찬송가 267장 4,5절에
“ 예언자들과 왕들도 반열대로 금길 따라서 나아와 찬송하네 ”
“ 우리 모두다 그 반열 뒤따르며 함께 즐거운 찬송을 부르리라 ” 합니다. 
우리의 이 땅에서 어떻게 신앙생활 했느냐가  
하나님 앞에 설 때 그 반열이 결정된다는 것을 생각하며 
오늘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축복받은 두 아들 
유다와 요셉의 반열에 설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말씀 창49장은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팔려 간 아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어 있는 
애굽에 내려와 거주하던 야곱이 임종을 맞이하여
열 두 아들들의 장래에 대하여 유언 격으로 예언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각 아들들의 죄와 선행을 적나하게 드러내며 
그에 따라 각기 축복과 저주를 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보면
어느 아비가 자식을 축복하지 저주를 하겠습니까? 
그런데 어떤 아들은 축복하고 어떤 아들은 저주한 것을 볼 때  
이것은 단순한 유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계시를 좇아 
장차 열 두 지파가 될 아들들의 장래를 예언하고 있기 때문에
다 축복한 것이 아니라 저주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창49장을 통해 살펴보면                                  
열 두 아들 가운데 뚜렷이 축복받은 아들은 
넷째 유다와 열 한 째 요셉 두 아들만이 축복을 받게 됩니다. 
특히 오늘 본문말씀은 
열한째 아들 요셉에 관한 축복의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럼 야곱의 열 두 아들과 오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는데

1) 구약 주경가 델리취는 야곱의 열두 아들은 장차 열 두 지파의 족장으로
바로 구약 교회를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즉 야곱은 구약 교회의 목사이고 열 두 아들은 구약 교회 성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는 유다, 요셉같은 성도들이 있어
축복받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르우벤이나 단과 같이 축복에서 제외되는 교인들도 있습니다. 

2) 계7:에 보니 천상 교회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나오는데
그기에 보면 각 지파대로 12,000명 씩 144,000명이 나옵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성도들도 반열 따라 서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신앙생활 어떻게 하였느냐에 따라 
우리의 구원의 반열이 달라짐을 암시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구원의 반열에 서더라도 
축복받은 유다의 반열 아니면 요셉의 반열에 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셉의 일생을 잘 나타내는 말 가운데 첫째를 들라면
성경은 ‘형통’이라는 말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창39:2,3절에
애굽에 팔려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도
[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 
[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 
나중에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지만 
간수장이 감옥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맡겼는데
창39:23절 [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 
종으로 팔려가도, 감옥에 들어가도 하나님이 함께 하니
요셉이 형통하였더라고 합니다. 

그 형통의 결과가 무엇이냐? 바로 샘곁의 무성한 가지가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 22절에
[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 

1.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고 합니다. 
무성한 가지라는 것은 모든 나무는 그 가지에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무성한 가지란 풍성한 열매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왜?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하는가?
이 표현은 요셉의 형통의 비결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요셉의 일생은 그야 말로 드라마틱한 생애요, 
반전 드라마의 다큐멘타리인 것입니다. 
그럼 요셉의 일생이 고속도로 달리듯이 수직 상승을 했느냐?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생에 비통함을 겪은 고진감래의 생애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심적 고통은 
혈육에 의한 배신과 신의를 저버린 모함입니다.
창37:에서 아버지의 총애와 꿈을 꾸기 시작하는 요셉의 등장은 
위로 열 형제의 시기와 질투로 
아버지 야곱의 심부름 온 동생 요셉을 
‘저기 꿈 꾸는 자’가 온다고 하면서 깊은 구덩이에 빠뜨렸다가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립니다.

F.B 마이어의 영해주석에 보면 
요셉이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려 갈 때
얼마나 아버지 야곱에게 절규를 했겠는가?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밖혀 달려 돌아가실 때
“엘리 엘리 라바사박다니” 라고 부르짖었듯이
“아버지여, 아버지여 형 들이 나를 팔아버려 내가 종으로 팔려갑니다”
예수님의 절규가 고통의 극치였다면
이때 요셉 역시 비통함은 고통의 극치인 것입니다.

그래서 11년 동안 애굽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합니다.
그런데 주인마님이 요셉에게 동침하기를 요구할 때
요셉이 거절하므로 보디발의 아내가 도로 누명을 씌어
감옥에 들어가게 합니다.
지난 11년 얼마나 충성했는데 그 결과는 감옥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뿐입니까? 창40장에 감옥에 들어가서도
술맡은 관원장, 떡맡은 관원장에게 꿈 해석을 해주고
그들의 장래를 일러주었지마는
은혜를 입은 술맡은 관원장은 2년 동안이나 그 은혜를 잊어버립니다.

누가 생애 이런 배신과 배은망덕한 일을 당해봤습니까?
누가 팔려 죽을 고생하며
그리고 억울한 종살이 감옥살이를 해봤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요셉이 형통할 수 있었습니까?
어떻게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고
어떻게 자기의 부모 형제와 자기가 총괄하는 애굽과 나아가 
온 세상을 기근에서 벗어나게 하는 명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까? 

그 답이 오늘 “샘 곁의 무성한 가지”입니다.
샘 곁에 무성한 가지는 바로 뿌리 깊은 나무의 외적 표현이겠지요.
요셉의 삶은 바로 ‘깊은 샘에 뿌리 깊은 나무’ 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책에서 배운 용비어천가 기억나세요?
불휘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믤쌔                 
곶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현대국어로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흔들려 
꽃 좋고 열매가 풍성하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아니 마르니
내를 이루어 바다로 가나니’
요셉은 바로 샘 곁의 무성한 가지
깊은 샘의 뿌리 깊은 나무인 것입니다.
뿌리를 깊은 샘이 되시는 하나님께 내리고 있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반대로 극심한 가뭄이 들어도
무성한 가지와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요셉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창45:5절에 형들이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양식 사러 왔을 때
형들이 요셉인 것을 알고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만 
[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 
요셉의 삶은 바로 깊은 샘 되시는 하나님께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에
원수 같은 형제들 앞에 자비를 베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 지난 주 솔민을 위해 설교 준비를 하다가
요셉의 생애를 묘사할 수 있는 다른 비유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92:12절 [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 ] 

(1)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왜? 의인의 삶을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라고 할까요?
종려나무를 대추야자나무라고 하는데
대추야자나무는 50도가 오르내리는 사막에서도 시들지도 않습니다. 
마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뿌리는 깊이 내리고 
나무와 가지와 잎사귀는 오히려 번성하며 25-30m까지 자라며 
큰 나무는 60m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그 뿌리가 샘물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려나무는 광야에서도 잘 자랍니다. 
그 생존력은 얼마나 강한지 불에 그슬려도 새순이 솟아날 정도입니다. 

그러니 종려나무는 비가 쏟아진다고 좋아할 것도 없고 
가뭄이 계속되고 뜨거운 햇빛만 쏟아진다고 해도 좌절하지도 않습니다. 
비가 오나 안 오나 상관이 없습니다. 
뜨거운 태양이 불을 쏟아 부어도 무서운 돌풍이 사납게 불러와도 
그 자세가 흔들리거나 시들지 않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배신당해 팔려가고 잘못 없이 감옥에 가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서 
형통할 수 있었던 것도 ‘종려나무처럼’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종려나무를  히브리어 '타마르' 라고 하며 우리 말로는 다말입니다.
그런데 종려나무는 학명이 피닉스 닥티리퍼라(phoenix dactylifera)입니다.
피닉스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불사조입니다. 
500년에 한번씩 스스로 불 속에 뛰어 들어 타죽고 
그 재 속에서 다시 태어난 다는 명조입니다. 
그러니 종려나무를 피닉스 나무라 부르는 것은
그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종려나무처럼 생명력이 강해야 합니다.

종려나무에 대해 재미있는 사실을 한 가지 알 수 있는데 
히브리어로 종려나무의 가장 높은 꼭대기를 “키파”라고 합니다. 
종려나무의 생장점은 ‘키파’입니다. 
생장점이란 다세포 식물의 줄기나 뿌리 끝에서 세포분열을 일으키며 
생장게 하는 부분을 말합니다. 
종려나무의 생장점은 뿌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의 꼭대기에 있습니다. 
종려나무를 죽이려면 나무를 뽑거나 자를 필요가 없습니다. 
종려나무 꼭지점을 꺾어 버리면 됩니다. 그게 바로 생장점입니다. 
그 생장점인 키파를 꺾으면 종려나무는 말라죽고 맙니다. 

이스라엘에 가면 보수파 유대교인들이 
머리에 빵떡 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그 모자를 키파라고 합니다. 
종려나무의 꼭대기가 ‘키파’인데 보수파 유대교인들은 정수리에 키파를 씁니다. 
유대인들이 ‘키파’를 쓰는 이유는 
“나는 하나님을 인정한다. 나는 그분의 권위 아래 있다. 
나의 머리는 하나님이 주관자이시다.”라는 표시입니다. 
바르알라 대학교의 랍비 라우(Lau) 교수는 
유대인이 키파를 머리에 쓰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머리에 키파를 쓰는 것은 군인이 모자를 쓰고 
자신이 특정한 그룹에 속하여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과 같다. 
우리가 베레모를 쓴 군인을 보면 
그가 특정한 임무를 맡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처럼 
키파를 쓰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의 군대의 일원이 된 것을 시인하는 것이며         
그의 신분을 나타내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종려나무 같이 번성한다는 말은
(1) 어떤 환경 속에서도 번성하고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며
(2) 나의 삶의 형통은 하나님께 있다는 의미를 말하고 있습니다.
생장점이 키파에 있어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는 삶
이것이 요셉의 형통의 비결인 것입니다.

2. 요셉이 받은 축복은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입니다.

샘 곁의 무성한 가지는 열매만 풍성할 뿐 아니라
그 가지가 담을 넘는다고 합니다.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라는 말은 
대상5:1절에 
[ 르우벤은 장자라도 그의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혔으므로
장자의 명분이 이스라엘의 아들 요셉 자손에게로 돌아가서 ] 라고 합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장자의 복이 요셉에게로 돌아갔으므로
요셉 지파가 번성하여 므낫세, 에브라임 두 지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이 표현의 의미는 
자신의 형통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력을 미치는 
장자적인 축복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샘 곁의 뿌리 깊은 나무의 특징인 것입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있었습니다. 
봄이 되자 사람들이 싱그러운 초록잎과 아름다운 꽃을 보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 뿌리가 이야기 합니다. 
나무야 너와 나는 하나이지만 너는 보이는 것이고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나는 너를 위해 네가 싱그러운 초록잎과
꽃을 잘 피울 수 있도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릴게,
여름이 되면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제공할 수 있도록 
더 깊이 뿌리를 내릴 것이고
가을이 되면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와 색갈을 낼 수 있도록 
더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고 내릴 것이며
겨울이 되면 추위와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뿌리를 내릴 것이다.

이렇게 뿌리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보이는 나무에게 혜택을 주고 있습니다.
뿌리 깊은 나무의 특징은 바로 남을 위해 사는 삶인 것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어면서 한 사람이 생각납니다. 
재미교포 태연 김이라는 여성의 성공 사례로 앵콜 방송까지 한 인물입니다.
한국에서 밑바닥 여자라서 많은 설움을 받았는데 
미국에 건너가서 태권도 도장을 하여 성공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편안한 여생을 마칠 수 있었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망나니들을 양아들로 삼아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 양아들 몇 명을 데리고 실리콘 벨리에 갔습니다. 
잘 곳과 먹을 것이 없어 신문지를 깔고 
서양인들이 버리는 소뼈를 꼬아 먹어며 살았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할머니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나? 못한다고 할 때 
태연 김이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합니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I CAN DO”
“그도 할 수 있고 그녀도 할 수 있다면 나는 왜 할 수 없는가?”  
옳습니다. 나도 할 수 있습니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  I CAN DO. 
나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만이 온갖 역경 속에서 
형통함을 나타내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아니라.
I CAN DO ! 믿습니다. 나도 할 수 있습니다 ! 
나의 신앙의 삶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뿌리 밖을 수 있다면
나도 얼마든지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어
담을 넘어 남을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로 요셉이 받은 축복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원수에게서 승리하는 복을 약속합니다. 23-24절
[ 활 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이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 

우리 성경은 좀 어렵게 번역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쉽게 풀이한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 원수들이 무섭게 그를 공격하며 활을 쏘고 추격하지만 
 오히려 그의 활이 견고하고 그의 팔에 힘이 있으니 
 이스라엘의 반석이시며 목자가 되시는 
야곱의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 때문이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의 반석이시오. 목자 되신 하나님을 힘입어 
  요셉을 곤경에 빠뜨리는 원수들에게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누가 나를 곤경에 빠뜨렸다 해서 
그 사람을 원망하거나 적대하지 말고
나의 반석 되시고 목자 되신 하나님께 더욱 매달리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가 감나무에 감이 달렸을 때 가지를 흔드는 것처럼 
마귀는 성도들이 형통한 삶과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 
그냥 두지 않습니다. 흔들어 댑니다. 미혹합니다. 넘어뜨립니다. 
뿐만 아니라 마귀에 속한 악한 세상은 또한 나를 대적합니다.  
이 모든 원수의 세력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습니까?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이스라엘의 반석이신 하나님, 목자 되신 하나님의 손을 힙 입는다면
얼마든지 나의 삶도 형통할 줄 믿습니다.

요셉이 그랬지요.
형들을 미워하지 아니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를 무고죄로 고소하지 아니했습니다.
관원장들을 원망하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반석되시고 목자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만을 의지하는 믿음의 키파를 잃지 않을 때
결과는 샘 곁의 무성한 가지 그 가지가 담을 넘게 된 것입니다.

4. 요셉이 받은 축복은 25-26절

[ 내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로다 ] 
요셉이 샘 곁의 무성한 가지, 그 가지가 담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근원적으로 말하면
내 아버지 야곱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25절에 
[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없음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 
그러니 먼저 네 아버지 야곱이 바로 축복의 사람이요
그 축복을 자손에게 전해준 믿음의 선조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1) 먼저 우리는 축복을 물려주는 믿음의 선조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축복의 선조가 될 수 있습니까?
부모는 자식에게 있어서 축복의 존재라는 것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그럼 부모로서 어떻게 자식에게 축복을 물려 줄 수 있는가?
방법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과 친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측근이 되시기 바랍니다.

삼하19:31절 80노인 바르실래가 압살롬의 반역으로 다윗왕이 피난갔을 때
끝까지 다윗 왕을 돌봐주면서 충성을 했습니다.
그때 다윗이 바르실래에게 
“같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내가 상을 베풀리라” 했을 때
“나는 고향 부모의 묘 곁에서 죽으려 하나이다
대신 내 아들 김함이 여기 있사오니 왕의 처분대로 그에게 베푸소서”
왕의 측근이 되면 얼마든지 자식을 부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측근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인 것을 나타내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손들을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이조 시대에 있었던 이런 일화가 전해집니다. 
난리가 나서 선조 왕이 피난을 가게 됩니다. 
변장을 하고 신하들과 같이 몰래 도망을 해서 어느 시골로 숨어들었습니다. 
시골 촌부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점잖은 어른들이 며칠 유하시겠다고 해서        
누군가도 묻지도 않고 정성껏 참 잘 대접을 했습니다. 
그 후 왕은 상황이 바뀌어서 환궁을 하게 되었습니다. 
환궁한 다음에 생각하니 그 촌부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 촌부를 궁월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래서 촌부가 궁궐의 부름을 받고 가보니
아이고, 단지 이서방이라고 알았는데 이제 보니 지체 높은 왕이에요. 
그 때 왕이 하는 말이
"자네가 나를 이렇게 도와주었으니 무슨 소원이든지 말하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마. 재산이든 벼슬이든 뭐든지 들어주마 ” 
그럴 때 이 촌부는 
"아이구 아닙니다. 저는 바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단지 며칠 후에 제 회갑날인데 자식들과 함께 회갑잔치를 하게 되는데     
환갑잔치에 한 번 저희 집에 와 주시면 됩니다." 
이에 왕이 그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왕이 촌부의 환갑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요새나 옛날이나 마찬가지요, 
촌부가 무슨 빽이 있는 줄 알고
주변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과 선물이 들어왔는지 그냥 부자가 됐답니다. 
왕이 한번 오니 형편이 달라져 버린 것입니다.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우리의 형편이 확 달라집니다.
믿음의 조상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측근이 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뿌리를 하나님께 깊이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키파를 귀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2) 뿌리가 상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깊은 샘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할지라도
뿌리가 상하면 무성한 가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한 번은 목양실 정원에 전문정원사가 왔길래
제주 귤나무 잎사귀가 마른 것을 보고
나는 물을 안주었다고 뭐라할 줄 알았는데
“목사님 나무를 왜 이래 키웁니까? 뿌리가 상했습니다”고 하더니
화분에 있는 나무를 땅바닥에 부어 상한 뿌리를 짤라 내고
새 흙을 채우고 심었더니 
그 나무가 올해는 귤열매를 얼마나 잘 열었는지? 
전도주일날 소예배실 앞에서 한 몫을 했습니다.
                   
그래요 뿌리가 상하면 안 됩니다.
요셉의 뿌리는 바로 야곱을 통해서 하나님께 내려진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이전에 내 삶의 뿌리는 부모입니다.
화란성경 어떤 번역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네 뿌리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델리취의 주석대로
야곱이 구약교회의 목사라고 했듯이
성도들의 신앙생활은 바로 교회와 특히 목회자를 통해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라는 뿌리
교회와 교역자라는 뿌리가 상해서는
결코 샘 곁의 무성한 가지 그 가지가 담을 넘을 수 없습니다.

<결론>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요셉의 생애 정말 기가 막힌 드라마틱한 생애였지만
그가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뿌리를 샘 곁에 즉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입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는 무성한 가지만 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오는 세대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담을 넘는 가지가 됩니다.
혹 뿌리가 상해있지는 않는지? 잘 점검하여
자손들에게 축복을 물려 주는 하나님의 측근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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