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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인생의 겨울이 오기전에 (딤후 4:9-1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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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겨울이 오기전에 (딤후 4:9-13, 21)


우리가 많은 변화를 경험하지만 그래도 변하지 않는 것은 계절의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봄이 오는가 싶더니 여름이 옵니다. 너무 덥다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하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오는 가을을 맞이 합니다. 단풍놀이 가야겠다 등산가야겠다 하면 추운 겨울이 찾아옵니다. 계절의 변화는 늘 우리가 느끼면서도 참 하나님의 섭리란 놀랍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스위스의 의사요 심리학자인 폴트루느에라는 사람이 인생을 4계절에 비교해서 책을 썼습니다. 그는 봄을 가르켜서 소년기라고 말합니다. 이제 꿈이 부풀어오르는 꽃봉우리가 터지는 듯한 인생의 비젼과 꿈이 자라나는 시기입니다. 농부로보면 씨를 뿌리는 계절이 봄이지만 우리 인생에는 막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10대 20대를 봄의 계절이라고 말합니다. 

그런가하면 봄이지나면 여름을 맞이합니다. 여름은 성장과 성숙의 계절입니다. 청장년시기를 의미합니다. 30대에서 40. 이제 뭔가 의욕을 가지고 마음껏 일을 펼쳐가고 땀흘리는 시기가 여름입니다. 가을은 수확과 저장의 계절입니다. 가을 추수걸이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으로 보면 장년기라 할 수 있습니다. 50대에서 60대입니다. 뭔가 인생의 정상에 우뚝 설때입니다. 뭔가 인생의 성취를 경험할 때가 바로 이 장년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년기를 지나면 노년기를 맞이합니다. 그것이 바로 겨울입니다. 인생의 결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로 보면 70대에서 80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 시기는 인생을 정리해야 할 시기입니다. 또 하나님의 부르심에 준비하는 시기가 바로 겨울이요 인생의 노년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앞서가신 선배들은 인생의 겨울에 대해서 별로 노후준비를 잘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 잘 키워놓으면 내 노년도 책임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많이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내가 나이들어도 자식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이 많아진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버님 오세요하면, 난 복잡해서 못살겠다 난 혼자 따로 살련다 그런분들도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스스로 노후를 준비하는 분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래서 노후를 위해서 보험을 들던가 또 국민연금을 들던가 자기 나름대로 노년의 삶을 준비해 놓는 것입니다. 

노후준비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준비가 있습니다. 인생의 월동준비입니다. 내 인생의 겨울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까. 그 월동준비하는게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어릴때 부모님이 늘 월동준비하시던게 생각이 납니다. 이제 겨울을 맞이해서 김칫독을 묻을 구덩이를 파고 또 갓을 씌웁니다. 또 창문마다 비닐을 칩니다. 또 마루에는 연탄 난로를 설치합니다. 그래서 겨울을 따뜻하게 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겨울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으면 그 겨울은 추위에 떨어야 되는 그런 아픔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사랑하는 제자요 아들과 같은 디모데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는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그는 편지에 뭐라고 말합니까 너는 속이 내게로 어서오라. 너는 겨울전에 어서 내게오라고 사도바울은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에게 인생의 겨울이 임박했음을 예감하며 그는 디모데를 간절히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사도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갖혀 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꽤 오랜시간을 보냈고 자신의 나이도 70이 넘었고 그는 이제 자신에게 임종이 다가왔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죽기전에 디모데를 만나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오늘 디모데후서 4장 6절말씀 읽어 보겠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간이 가까웠도다. 떠날 시간이 가까웠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임종이 다가왔다. 순교할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재판을 로마의 감옥에서 기다리던 바울은 사형당할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그는 디모데를 너무나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는 사도바울 곁을 지키던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바울의 안타까움입니다. 

10절말씀을 읽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데마라는 제자는 세상을 사랑해서 데살로니가로 갔다 뭔가 그는 하나님을 배신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도바울을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그레스게와 디도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갈라디아와 달마디아로 떠나갔다 하는 것입니다. 

바울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갈 때 바울은 외로움을 느낍니다. 고독감을 느낀다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10절에 보니까 나와함께 한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하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제 의사인 누가만 나와함께 있느니라. 그래서 그는 디모데가 올때에 마가도 데리고 오라고 간절히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인생에 겨울이 찾아왔다면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도 언젠가는 겨울이 찾아 올 것입니다. 

인생의 겨울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우리가 잘아는 이솝우화중에 개미와 베짱이가 있습니다. 여름내내 베짱이는 노래를 하고 개미는 열심히 일을 해가지고 농사를 짓습니다. 가을이 돼서 추수를 해서 많은 쌀을 쌓아놓고 겨울을 따뜻하게 보냅니다. 그러나 노래만 하던 베짱이는 겨울이 되어 먹을게 없어서 결국 개미에게 와서 사정을 하는 그런 우화의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가 뭔가 준비해야할 것을 준비하지 않았을 때 그는 당황하게 되고 어려움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의 겨울은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 인생의 겨울을 우리가 어떻게 준비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먼저는 우리 인생길에 동행하실 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혼자 못삽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부부가 함께 살고 가족이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남편이 먼저 떠나기도 하고 아내가 먼저 떠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떠날때도 있고 일가친척들이 한사람 한사람 떠나갑니다. 그때 우리는 고독감을 느낍니다. 

사도바울의 심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데마가 나를 떠나갔습니다. 그레스게가 나를 떠나갔습니다. 디도도 나를 떠나갔습니다. 나는 고독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한 건 아니지만 늘 같이 있는게 좋다하는 것입니다. 병원에서도 어떤 환자는 혼자 입원한 환자가 있고 어떤 환자는 늘 가족들이 드나들면서 봐주는 환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똑같은 치료를 해보면 가족들의 격려와 위로를 받는 환자들이 더 빨리 치료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길에는 혼자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노 부부들보면 그런분들 있습니다. 만나기만하면 할아버지 할머니가 싸웁니다. 아이고 저 영감탱이 보기싫다고. 남들은 그렇게 말합니다. 그래도 싸울수 있는 영감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줄 알라고. 싸울 사람하나 없으면 얼마나 외로운줄 아느냐고. 인생은 그런겁니다. 같이 동행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길에 동행해 주실 분은 예수그리스도인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사도바울이 그런것입니다. 친한 동료들이 다 떠난 것입니다. 외로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까지 그를 지켜주신 분이 있습니다. 누구냐?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하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니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그랬습니다. 내 곁에 서신분이 누구십니까? 바로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또 18절에 보니까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길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랬습니다. 나를 천국으로 인도하실분이 누구입니까 나를 악한길에서 건져주실 분이 누구입니까 바로 주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오늘 바울은 그것을 고백합니다. 

시편 23편4절에 다윗은 아주 놀라운 고백을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고 노래합니다. 비록 내 인생에 험한 골짜기와 같은 시련이 다가올지라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주님이 그와 함께 하시기에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길에 우리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동행하시길 원하십니다. 내가 너와 동행하겠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손을 들어서 주님의 손을 잡으시고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인생길 행복한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월동준비로 필요한것은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줄 외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3절입니다.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겨울의 찬바람을 막아줄 외투가 필요하다 나이드신 어른들은 추위를 많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연세가 86인데 춘천에 계신데 춘천은 좀 춥습니다. 한번은 저희 집에 오셨는데 옷을 벗으셨는데 내복을 두툼하게 입으셨는데 두벌을 입으셨습니다. 그래서 왜 두벌씩 입으셨냐고 했더니 요즘내복은 얇아서 입어도 입은것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두벌은 입어야 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연세가 드시면 추위를 타시는구나하고 느꼈습니다. 어릴 때 아이들보면 맨발로 뛰어나가 놉니다. 추운줄 모릅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추위를 느끼시는 겁니다. 

오늘 사도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로마에 찬바람이 불어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더 두꺼운 옷이 필요했고 외투를 가져오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외투를 가져온다는 것은 놀라운 영적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심판의 찬바람을 막아줄 의의 겉옷 그 외투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숲속에 들어가 숨습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아담과 하와를 부르시고 그들을 위해서 가죽옷을 지어주십니다. 가죽옷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양 한 마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피를 흘르고 그 가죽을 벗겨서 이들에게 옷을 만들어 주셨다하는 것입니다.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옷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의 공로로 지어진 옷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불의함을 덮어주기 위해서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춰주기 위해서 그분은 십자가에서 피흘리셨고 그 피흘리심으로 의의 겉옷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의의 겉옷을 입을 때 더러움이 감춰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3장 14절에 보니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의의 옷이 필요합니다. 왜? 죄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불행해 질 수 밖에 없고 죄는 우리를 결국 심판 앞으로 인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나오신 여러분은 의의 겉옷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의 의의 겉옷을 입음으로 여러분의 심령과 육신이 말씀으로 깨끗함을 입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월동준비로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영혼의 공허를 채워줄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심령의 한 곳간에는 하나님말씀이 아니면 채워질 수 없는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것으로도 그 공허함을 메꿀수없다는 것입니다. 아마 사도바울도 마찬가지, 그는 긴시간 감옥에 있으면서 매우 허전함을 느끼고 공허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오늘 부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책은 특별히 가죽종이에 쓴것을 가져오라. 가죽종이에 쓴 것은 무엇일까요. 분명히 성경책이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파피루스라는 종이에 쓰기도하고 가죽에다가 글씨를 써서 성경책으로 삼은 것입니다. 성경책을 가져오라. 우리 인생의 겨울을 나기위해서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인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얻는줄을 생각하고 이 성경을 상고하고 이 성경이 곧 나에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제시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19편에 보니까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성경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경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80대의 노 교수님이 계십니다. 문학 교수님인데 이분이 장로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느 하루는 제자가 교수님에게 문안하러 찾아갔습니다. 가는데 교수님은 서재에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은것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 책을 가면 구경도 하고 빌릴 수 있으면 빌려야겠다 하고 찾아갔습니다. 그랬는데 온 서재가 텅 비어 있는 것입니다. 교수님 그 많던 책들 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거 다 치웠어, 내가 나이 80이 넘었는데 하나님나라 갈 준비해야 하는데 그 책이 뭐가 필요하나. 그래서 나는 책상에 성경책 하나만 놓고 있다네. 보니까 정말 성경책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교수님은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 겨울 그 임종을 준비하면서 성경책만 열심히 읽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은 우리의 인생에 이 땅에서 필요한 지혜도 주지만 하나님나라에 갈때에 마지막 이정표를 가르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사야 40장 9절에 보니까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대학교수가 시골을 방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시골을 방문하기 위해서는 강을 하나 건너가야 했습니다. 강이 좀 큰 강이였습니다. 몇 일전에 비가와서 급류가 셌습니다. 강을 건너기위해서 찾으니까 마침 뱃사공이 있습니다. 그래서 뱃삯을 주고 배를 탔습니다. 뱃사공이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건너가는데 심심하니까 대화를 했습니다. 뱃사공 아저씨 당신은 평생동안 뱃사공 놀이만 하는 것이네요. 그럼요 저는 태어나서 여기서 죽을 거에요. 그러면 초등학교는 어디 초등학교를 나왔습니까. 초등학교는 무슨 저는 학교문턱에도 못가봤습니다. 그럼 까막눈이네요. 그럼요 저는 글씨도 모릅니다. 책도 읽을줄 모르고 신문도 못보고 참 답답하겠습니다. 그래도 살맛이 나나 저렇게 무식해가지고. 

그러면서 이 교수는 자기 자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유수한 대학을 나오고 해외 유학도 갔다오고 나는 박사학위가 3개나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중간쯤 가는데 급류가 꽤 센곳을 가게 되었습니다. 배가 휘청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교수의 안색이 바뀌는 겁니다. 이 교수는 헤엄을 못쳤기 때문에. 그런데 급류에 휩쓸리면서 배가 뒤집어 졌습니다. 그런데 이 대학교수가 꼴깍꼴깍 물을 먹으면서 살려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걸 바라보는 뱃사공이 여유있게 헤엄을 치면서 그 많은 지식을 자랑하더니 박사학위 많으면 뭘하나 자기하나 구원하지 못하는구만. 그러더랍니다. 그러면서 빠져가는 대학교수를 구해주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면 뭐합니까. 죽어가는 자신을 살릴 수 없는 것이라면 그거 무용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지식.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오늘 가죽종이에 쓴 것, 성경을 가져오라고 디모데에게 특별히 부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의 월동준비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영원한 안식의 처소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절에 보니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집에는 거할곳이 많다고 사도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 진정 필요한 거처가 무엇일까요. 영원한 천국의 처소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 보니까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이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 아나니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육체라는 집은 때가되면 노쇠해지고 허물어질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새로운 곳으로 옮겨갑니다. 그것이 뭐냐면 천국의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집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직접 손으로 지은 영원한 집이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이 집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시편 23편에 보니까 다윗은 마지막에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는 영원히 거할 집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부산역까지 달려갔습니다. 새벽 3시에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각각 총총 발걸음으로 자기 집을 향해서 갑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 차를 가지고 나와서 그를 반가이 맞이해주고 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은 갈곳이 없습니다. 집이 없기 때문에 노숙자와 같아서 갈곳이 없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우리가 갈곳이 없다면 말입니다. 

어릴 때 그런 경험이 생각나곤 합니다. 동네에 친구들이 모여서 열심히 땅따먹기를 합니다. 구슬치기도하고 돌을 가지고 땅따먹기도 합니다. 하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저녁노을이 지고 황혼이 질때 엄마들이 찾으러 나옵니다. 아무개야 아무개야 저녁먹고 자야지 내일 학교가야지 손씻고 들어가야지하며 찾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는 갈 곳이 없습니다. 왜냐면 그 아이는 집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누가 찾아올 사람이 없습니다. 물론 고아원으로 돌아갑니다만 돌아갈 곳이 없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의 삶을 마칠때 진정 인생의 겨울에 들어갈 때 우리가 돌아갈 처소가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겠습니까. 바로 인생의 영원한 집 그처소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는 집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진실로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을 믿을 때 주님은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천국의 처소를 준비한다고 약속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사도바울은 겨울전에 어서 오라고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왜 겨울전에 급히오라고 그랬을까요. 간단합니다. 만약 디모데가 지체하다가 겨울이지나 로마에 갔다면 로마의 사도바울이 있던 감옥을 찾아갔는데 감옥이 비어있습니다. 아니 바울선생님 어디가셨습니까. 간수장이 말합니다. 지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순교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디모데의 마음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그렇게 바울을 본인도 만나고 싶었는데 지체하다가 늦었다면 얼마나 안타까울까요. 그러니까 너는 겨울전에 어서내게 오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만약 디모데가 지체하다가 이제 겨울이 다 돼서 배를 타려고 항구에 나온다면 배를 타기 어려울 것입니다. 고린도에 있는 디모데가 저 로마까지 가려면 지중해라는 큰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지중해는 10월부터 이미 겨울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그 다음해 4월까지는 이미 겨울에 들었기 때문에 파도가 심하고 태풍이 세서 항해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가 이미 겨울이 들이닥쳤을 때 항해하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로마에 있는 바울에게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어서속히 내게 오라. 겨울전에 내게 오라고 간곡하게 부탁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종말이 찾아오기전에 여러분의 인생의 심판이 찾아오기전에 어서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기회란 늘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여성분들은 특별히 명품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명품 좋아하시죠? 명품가방을 선호하는데 명품가방이 있고 짝퉁가방이 있다고 합니다. 짝퉁가방은 중국이나 이런데서 싸게 만들어서 들어온게 짝퉁가방입니다. 명품과 짝퉁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고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평소에는 모릅니다. 아무리봐도 똑같아 보입니다. 그런데 비가올 때는 안다는 것입니다. 비올때 여성분들이 비 안맞으려고 머리에 가방을 쓰고 달려가면 그것은 틀림없이 짝퉁가방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가오는데 가방에 비가 맞지 않게 하려고 가방을 가슴에 품고 자기가 비를 온몸으로 다 맞으면 그것은 분명히 명품가방이라는 것입니다. 또 커피숍에 갔는데 가방을 한손으로 붙들고 무릎에 놓고 커피를 마시면 그건 틀림없이 명품가방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커피숍에 들어가서 한쪽으로 가방을 밀쳐놓고 있든지 없든지 커피만 마시면 틀림없이 짝퉁가방이라는것입니다. 평소에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느때가 되면 진위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도 명품인생이 있고 짝퉁 인생이 있습니다. 지금은 잘 구별할 수 없습니다. 다 근사한 옷 입고 멋있게 살아가니까 다 훌륭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린 다릅니다. 생명이 있는자와 생명이 없는자가 다른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마지막 심판에 보면 양과 염소를 구분하듯이 구원받을 백성과 심판받을 백성을 하나님께서 구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가을에 수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농부가 가을에 추수해서 수확을 하는데 알곡과 쭉정이를 나누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보니까 그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리라. 알곡은 곡간에 들입니다. 천국곡간에. 그러나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던지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알곡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쭉정이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알곡인생은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원히 사는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쭉정이 인생은 그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계란도 유정란이 있고 무정란이 있습니다. 유정란은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잘 품어주면 거기서 병아리가 부화되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정란은 생명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품고있어도 병아리가 안나옵니다. 썩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똑같이 살아가지만 생명이 있는자와 생명없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할 때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모셔들일 때 나는 생명의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내속에 주님을 모시면 내 속에 영생이 이루어지고 나는 천국자녀로서 영원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를 찾아오신 여러분들이 혹 아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분들이 계신다면 오늘 꼭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예수님을 여러분의 주인으로 모셔드려서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복된 인생길 되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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