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살전 5:16-18)

첨부 1


■ 도입
안녕하세요. 한 주일동안 잘 지내셨어요?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우리 앞뒤 좌우에 있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축복하면서 인사 나눕시다. “너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야.” 말씀 듣기 전에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시작 기도)
소원이란 말은 ‘바라고 원하는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소원을 빌고, 소원을 들어주며, 소원을 성취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나에게 없는 어떤 것을 가지고 싶고, 지금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이루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소원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가장 바라고 원하는 소원이 무엇입니까? 그 소원이 아름다운 마음이 되어 언젠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세상 만물의 주가 되시고 아무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에 풍성하신 하나님도 소원이 있을까요? 여러분, 18절의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하나님의 뜻이라고요? 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좀 전에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중에 나오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을 ‘하나님의 소원’으로 바꾸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잠시 추수감사주일 영상을 보고 계속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자녀들은 부모님에게 바라고 기대하는 바가 많습니다. 자녀들의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달라는 끝도 없는 요구를 들어주며 사는 사람들이 자식을 가진 부모님들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자식이 잘되는 일이라면 내 한 몸 부서질지라도 마지막 힘까지 다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 역시 자녀들에게 기대하는 소원이 있습니다. 내가 자식을 위해 이만큼 수고했으니 이다음에 자식 덕을 보고자 기대를 거는 그런 소원이 아닙니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조건 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해 뒷바라지합니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소원은 무슨 큰 것으로 호강시켜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자녀들이 큰 탈 없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지켜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기대를 걸고 마음 졸이는 것 못지않게 하나님도 우리에게 기대를 두고 바라보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말한 대로 하나님의 소원을 정리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맨날 인상만 짓고, 부모와 대화도 하지 않고, 매사에 트집과 불평을 일삼는 아들 딸과 지내야 하는 부모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제발 기쁜 얼굴로 살고 어른들께 싹싹하게 대하며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모습 좀 보자. 그게 내 소원이다’ 하지 않겠습니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도 자녀들을 향한 기대감이 왜 없으시겠습니까?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맨날 화난 얼굴로 굳어있고, 수심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우울하게 살며, 기도생활도 꾸준하지 못하고, 하는 일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고 툴툴거리는 자녀를 어찌 좋아하실까요?  네가 정말 나를 믿고 나를 섬기는 사람이라면 얼굴을 환하게 펴고 항상 기쁘게 살고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와 대화하자. 그리고 모든 일에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보라’ 하시지 않을까요? 우리도 하나님의 입장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보자는 말입니다.
  ■ 본문
하나님의 한 가지 소원은 무엇보다 내가 모든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자녀가 되는 일입니다. 사실 아이들이 아직 어릴적에는 삐지기 잘하고 투정도 잘 부립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며 내 뜻대로 하지 못한다고 툴툴거립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전보다 많이 자라가고 있습니까? 언제까지 아이로만 머물 수는 없습니다. 아이가 좀 자라면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고 고마움도 표현할 줄 압니다. 당연한 것 받는 듯 당당하게 받고 휙 돌아서는 버릇없는 아이보다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줄 아는 아이가 더 큰 사랑을 받습니다.
가시와 잡초는 누가 일부러 심지 않아도 여기저기 저절로 왕성하게 자라납니다. 원망과 불평은 잡초와 가시덤불처럼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우리 마음 가운데 불쑥불쑥 자라납니다. 반면 화단에 핀 예쁜 화초는 누군가 거기에 맘 먹고 알뿌리를 심고 물을 주며 가꾸어야 보기 좋게 자라갑니다. 우리의 감사가 그렇습니다. 감사의 마음은 저절로 자라나지 않습니다. 작은 것에서부터 감사하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감사의 삶이 자연스럽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는 그 씨앗이 얼마나 잘 심겼고 정성스럽게 물을 주어 자라고 있습니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바램은 우리 입에서 ‘감사합니다’ 소리를 자주 들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봅시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사람과 모든 일에 원망하는 사람 중에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실까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고 싶지 않습니까?
   도대체 기쁠 일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생겨야 감사가 나올 것 아닌가 항의하고픈 분들 계십니까? 그렇다면 소망을 어디에 두고 사십니까? 눈에 보이는 사람과 일과 물질입니까? 그래서 사람이 맘에 안들고 성이 차지 않아 마음에 불만이 차오르고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합니까?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는 찬송가사가 기억나십니까? 소망을 하나님께 두고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을 바꾸시고 환경을 이기게 도와주시길 구하십시오. 그리고 영원히 마르지 아니하시는 샘물되신 예수님께로부터 참 기쁨과 평안의 물을 길어올리게 해달라고 구합시다. 그 외에 다른 곳에는 진정한 소망은 없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상황 속에서 나오는 감사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의 탁월하심을 인정하는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범사에 감사합시다. 오늘 이 추수감사주일 아침에 하나님께 진정한 감사를 올려드리는 우리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 결론
오늘 읽은 바울의 편지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사정은 인간적으로 보면 기쁨과 감사의 조건이 그리 많은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한다면 정말 살려달라고 매달려야 했고, 힘든 상황들이 어서 속히 우리를 떠나가도록 구해야만 했던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떤 교회들보다 바울에게 칭찬을 많이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모진 핍박과 고난 중에도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칭찬 받기에 충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어려운 환경일수록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서로 화목하고 귀하게 여기라고 했으며, 연약한 자들을 붙들어 주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고 하였습니다. 혹시 악을 행하는 사람에게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행하라고 당부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라’고 당부합니다. 이런 삶의 자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부모의 심정으로 비교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어려움 중에도 믿음을 버리지 않고 어려움 당하는 형제들을 서로 돕는 형제 우애가 든든했던 효자들이라 하나님의 마음이 흐뭇하셨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고 소망을 잃지 않고 고난을 참고 견디어냈던 꿋꿋한 믿음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이보다 부모님을 더 기쁘게 해드리는 자녀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의 마음이 이렇게 기쁨으로 충만하였고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하나님께 어떤 자녀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소원을 만족시켜드리는 사랑스런 자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