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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강절]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 (갈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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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 (On Time and On Target)
성경 : 갈 4:1-7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교회력에 따르면 오늘은 대강절입니다. 오늘부터 성탄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념하며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이 계절은 예나 지금이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괜히 들떠 성탄 본래의 의미와는 별 관계없이 흥청거리는 절기입니다. 
자본주의가 발달된 나라일수록 크리스마스 시즌의 상업주의는 더욱 극성을 부립니다. 백화점의 요란한 분위기가 그렇고, 해마다 성탄 특수를 노리고 새로이 개발되어 나오는 갖가지 상품들의 요란한 선전이 그렇습니다. 
이 절기에 교회 강단에 등장하는 설교의 주제와 자주 언급되는 단어들은 우리 모두 익히 아는 것들입니다. 베들레헴, 여관, 양치는 목자들, 이상한 별, 동방의 박사들, 천사들의 출현, 그리고 그리스도 오심을 예언한 구절들...
오랜 신앙생활을 해오는 많은 성도들에게는 별로이 새로울 것도 없고 큰 기대를 줄 것 같지 않은 메시지들이 연중행사처럼 전달되고 있는 절기가 될까 염려가 됩니다.
금년은 뭔가 좀더 달라지면 좋겠습니다. 마침 오는 12월 3일 오후에 인근 반월당 교차로에서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주관으로 거행되는 성탄 트리 점등식을 기점으로 우리 도시에 구주 강림의 기쁨이 넓게 퍼져나갔으면 합니다. 

본문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서신서의 일부입니다. 갈라디아서는 이신득의 구원 원리의 정당성에 대하여 변증하는 서신으로 유명합니다. 그중 본문(1-7절)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구속(救贖) 사역으로 말미암아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사실을 종과 아들의 신분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믿음이 오기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로서의 율법 아래 매여서 종노릇하였으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심으로 자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유업을 이을 아들로서의 신분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문맥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오신 사건’을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으로 해석하여 증언하고 있습니다. 

4-5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때가 찬 경륜을 좀더 깊이 생각하며, 주님 오심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강림 절기가 의례적인 날들로 그치지 않고 우리 신앙의 본질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경륜은 어떠합니까?


1. 메시야의 정해진 때를 지키심 (= 주님의 때)

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하나님은 자신이 친히 정하신 때가 되어서야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결코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님을 시사해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영원 전에 모든 일을 계획하셨고 때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과 그 때에 따라 섭리하시되, 때가 차매 인류의 구속을 위해 당신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때를 지키셨습니다!
여기 ‘때가 차매’ 는 직역하면 ‘시간의 충만함이 이르렀을 때’ 입니다. 이 말은 새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가장 합당한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말씀이고, 아울러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실 때를 위해서 세상을 놀랍도록 준비시키셨다는 말씀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어떤 의미에서 때가 찼다고 할 수 있습니까? 실제 역사는 이 사실을 잘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우선 그리스도께서 오신 당시 하나님의 율법은 이미 유대인들에게 몽학선생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종교와 율법의 무능력이 드러난 때였습니다. 인간은 모두 범죄하여 배반한 자들이고 하나님의 온갖 은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은혜의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율법을 통하여 드러났습니다. 
세상은 영적으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잡신과 쾌락을 좇거나 인간 철학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이 영적 공백상태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이 로마의 지배 아래 평화로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복음 전파에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도로망이 잘 형성되어 있어서 어디로나 교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이 복음을 들고 이 길들을 따라서 세계 각지로 나가는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헬라어는 오늘날의 영어가 어디서나 공용어로 통하듯이 각 나라 사람들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언어 매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역사상 이와 같은 때는 아직 없었습니다.

“때가 차매...”(When the time had fully come...) 과연 하나님의 때가 왔고,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정확히 지키시는 것에 비하여 오늘 우리는 얼마나 참지 못하는 자들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우리는 얼마나 조급해 합니까! 우리의 기도가 속히 응답되지 않을 때 우리는 또 얼마나 가슴 답답해 하는지요! 기억합시다. 우리 하나님은 자신의 때를 정확히 지키십니다!
성경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애굽으로 노예되어 팔려갔고 후일 감옥에까지 갇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정하신 때, 곧 그의 나이 30세 되던 해에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궁을 도망쳐 나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이나 양치기로 지내다가도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자기 백성을 구하는 구원자의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던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왔고 앞에는 홍해의 파도가 넘실거리던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나님의 구원의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지체없이 바다를 가르셨고 뒤쫓던 바로의 군대는 모두 바다 속으로 수장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정해진 때에 정확하게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셨습니다.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메시야를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오래된 것이었는지요! 이것은 일찍이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타락한 후 하나님은 인류 구원의 원대한 계획을 세우시고 이를 천명하셨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여자의 후손을 보내시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셋의 후손을 통하여 계속됩니다. 홍수 후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뽑아내어 가나안으로 이주시켰고, 그에게서 큰 민족 이스라엘이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 그리고 그들의 메시지는 모두 구속의 역사를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을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간 후까지 하나님은 선지자를 파송하셨습니다. 
학개, 스가랴,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년간의 긴 침묵의 기간 동안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메시야를 기다리는 열망을 키우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어 그리스도 오심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 탄생을 전후하여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로마 황제로부터 내려진 호적령, 그것 때문에 멀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만삭의 몸을 이끌고 내려갔던 마리아 부부,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로 인한 여관들의 만원사례, 마굿간에서의 탄생, 천사들을 만난 목자들, 그들이 목격한 구유속의 아기, 그리고 동방으로부터 여러 달 걸려 도착한 동방의 박사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적절한 때에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또한 가장 적절한 때에 정확히 진행하실 것입니다. 재림의 시기는 하나님의 작정 하에 있습니다. 인간들이 이 때를 알아맞히려는 노력을 계속하여 왔지만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것”(행 1:7)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오실 때까지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작정하신 바를 정확히 이루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거역하지 말고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간에 하루 하루의 삶에 만족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난이 다가올 때, 바로 그 때가 우리의 믿음을 세우며 굳게할 기회인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여자에게서 나게하심 (= 도성인신의 겸손)

4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정한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습니다. 여기 ‘아들을 보내사’ 라는 말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여자에게서 나게 하셨다’ 라는 말에서 예수님의 인성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독생자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여자에게서’ 나셨습니다. 그러나 가장 영광스런 진리는 ‘그가 하나님에 의해 보내지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고 여자는 기적적으로 아들을 잉태하였습니다. 동정녀 탄생이 이루어졌습니다. 독생자가 육신을 입고 오신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겸손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성도 여러분! 독생자는 율법 아래로 오셨습니다. 이 사실 또한 주님의 겸손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제정자이시지만 우리 인류를 위하여 율법 아래에서 율법의 모든 요구들을 완전하게 지키셔야 했습니다. 
본절의 ‘율법(노몬)’ 은 그 앞에 관사 없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관사와 함께 사용될 때는 모세의 율법, 곧 토라(TORAH)를 가리키나, 관사가 없을 경우에는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의 법을 의미합니다. 즉, 모세 율법 뿐 아니라 모든 인류가 가진 양심의 법까지도 포함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셨습니까? 유대인만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은 모든 사람을 자유케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놀라운 통찰력을 보십시오.

롬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우리 모두는 아무 힘이 없는 존재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물리적, 육체적으로도 연약한 존재이지만, 영적으로는 더욱 취약한 자들로 태어납니다. 
우리 힘으로는 율법의 한 조항이라도 완전하게 지킬 힘이 없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넘지 못합니다. 우리의 육신은 의식주의 요구를 채워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이처럼 연약한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예수님이 보이신 겸손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이처럼 예수님의 겸손을 마음에 품으라고 권면합니다.

빌 2:5-7=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기억합시다. 예수님은 말 구유에 자신의 몸을 뉘이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오늘도 우리가 처한 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3.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심 (= 양자 삼기) 

5절=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경륜은 독생자를 보내시는 것에서 멈추지 않으시고 이제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속량하사 양자 삼아주시고, 성숙한 자녀의 모습으로 성장시키고자 하십니다.
‘속량하신다’는 것은 몸값을 치르고 되찾는다는 뜻입니다. 율법 아래서 그 율법이 선포한 정죄의 판결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또한 노예상태에서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는 마땅히 거기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여자의 몸을 통해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입니다.
‘아들의 명분’ 이란 양자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아들 됨이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지위와 같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인을 양자 삼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롭습니다. 본서가 기록된 당시 로마에서는 아버지의 권위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아버지의 생존까지는 아버지의 절대 권한 하에 놓입니다. 자녀들을 일하게 하거나 팔거나 심지어 사형 언도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양자 삼는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양자된 자는 영원히 아들이 되고, 그 집의 아들의 모든 법적 권리를 갖게 됩니다. 
역사에 보면 클라우디우스라고 하는 로마황제의 아들이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입니다. 그는 원래 노예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황제의 양자가 되어서 대로마제국의 황제가 됩니다. 양자가 되면 그 순간 그 집의 모든 권리를 물려받고, 신분과 명예까지 다 물려받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양자됨이 가능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의 은혜 때문입니다. 양자된 성도는 이제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를 영원히 맺게 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권리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제 매 순간 아버지 하나님과의 역동적인 관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양자된 성도는 이제 다른 성도들과 형제 자매의 관계를 맺게 됩니다. 
돈은 많지만 자식이 없는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죽으면 장사지내 줄 사람도 없고 설사 장사지낸들 무덤을 돌봐줄 사람도 없어서 쓸쓸해 했습니다. 노부부는 집에서 30년 동안이나 종으로 일해 왔던 머슴을 양아들로 삼기로 작정했습니다. 
구청에 가서 호적을 정리하여 아들로 입적시켰습니다. 그리고는 호적등본을 떼어가지고 왔습니다. 거기에는 억만장자 아무개의 아들 아무개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호적등본을 옆에 두고 인자한 목소리로 종을 부릅니다. “여보게, 하던 일을 멈추고 좀 들어오게!” 종이 듣고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평소에 듣던 목소리와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시킨 일을 억지로 하고 있던 종은 투덜대며 안방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주인이 비단 방석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종은 깜짝 놀랍니다. 세상에 주인이 종에게 비단 방석을 권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 좀 읽어보게.” 주인이 호적등본을 내어밉니다. 종은 무심결에 훑어보고는 깜짝 놀랍니다. 자신의 이름이 주인의 아들로 입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자초지종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는 종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어디, 아버지... 하고 한번 불러 봐!”
종은 너무나 감격하여 눈물이 핑 돕니다. 가슴이 뭉클하고 콧등이 시큰합니다. 그리고는 “아버지...” 라고 불러봅니다. 
전에는 종과 주인의 관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복종하지 않으면 야단맞고 벌받습니다. 자유가 없고 심지어 주인이 팔아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관계가 끊어지고, 새로운 부자관계가 이 종의 마음에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곧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이 모든 양자의 신분과 권리를 완성시켜 주실 것입니다. 장차 새하늘과 새땅이 이루어지면 우리 모두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서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하나님 자녀의 성숙한 모습으로 개발, 성장시키고자 하십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림절기가 시작됩니다. 크리스마스의 계절입니다. 2000년 전에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은 이제 정해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재림주로 다시 보내실 것입니다. 지금은 온 세상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어야 할 때입니다.
이번 강림절기와 성탄절에 여러분 인생에 있어서 가장 놀라운 변화를 맛보는 계기로 삼읍시다. “나는 진실로 하나님의 자녀인가?” 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자녀이면 후사이고 상속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나라의 온갖 좋은 것을 상속하게 된 가장 복된 자임을 진정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바로 오늘이 여러분을 위한 하나님의 때가 아닙니까?
(대구서현교회,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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