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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얍복나루 건너기 (창 32: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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얍복나루 건너기 (창 32:22-31)  


야곱은 지금 얍복 나루에 있습니다. 얍복 나루는 사해와 갈릴리 바다를 잇는 요단강의 동편에 있는 한 지류로서 밧단 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목입니다. 야곱은 지난 20년 간 밧단 아람에 있는 외삼촌 집에서 생활을 청산하고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길입니다. 

야곱이 외삼촌 집으로 가서 살게 된 것은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기 위함이었습니다. 야곱은 형 에서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았습니다. 장자권은 사냥에서 돌아와서 배고파하는 형 에서에게 팥죽 한 그릇에 샀고, 축복권은 눈이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자기가 마치 장남 에서인 것처럼 속이고 받은 것입니다. 에서가 화가 날 만도 합니다. 

20년이란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형 에서의 마음은 아직 동생 야곱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은 에서는 군사 400명을 거느리고 동생을 맞으러 나갑니다. 이런 상태로 형제가 만나면 큰 사건이 날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 야곱은 얍복 나루에서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고 있습니다.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갈 수도 없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진퇴양난에 빠졌습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세 번씩 기도는 문제로 정적들의 올무에 빠졌습니다. 기도를 하면 왕이 명령을 거역하는 것으로 사자굴 속에 들어가야 하고, 그렇다고 기도를 그친다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얍복 나루에 서 있습니다. 얍복 나루는 밧단 아람에서 가나안으로 가는 길목입니다. 천국을 향해 순례하는 우리들이 꼭 지나야 하고 건너야 하는 길목입니다. 천국 가는 길에는 얍복나루가 많습니다. 그것이 야곱처럼 형과 화해하는 일이든, 혹은 물질 문제이나 건강의 문제이든 우리 앞을 가로막는 문제들은 많이 있습니다. 2004년도 한 해도 희망 속에 시작되었지만 우리 앞에는 반드시 얍복 나루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압복 나루가 있을지라도 믿음으로 건너가기 바랍니다. 후퇴를 모르고 전진하기 바랍니다. 강하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기 바랍니다. 지혜롭게 위기를 극복하며 나아가기 바랍니다. 

사람의 도리 

야곱은 형 에서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먼저 사람을 보내서 형에게 인사하였습니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고 예물을 보냈습니다.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의 생각에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으리라 힘이었더라(20절).” 

예물은 형 에서의 격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선물입니다. 뇌물이라기 보다는 지난날 형에 대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마음에서 주는 선물입니다. 우리도 야곱처럼 우리 앞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도리를 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동생이 마땅히 형 앞에 사람을 보내서 인사하는 것이 옳습니다. 지난날에 대해서 형에게 미안한 것이 있으면 예물을 보내서 그 마음을 푸는 것이 지혜입니다. 

믿음으로 행한다는 것이 인간의 도리와 책임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인간적인 관계를 잘못해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결과 무례한 사람이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고 현실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먼저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상대방과 우호적인지 적대적이고 전쟁 상태인지 알아야 합니다. 낮인지 밤인지 분위기를 파악해야 합니다. 먼저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합니다. 먼저 인사할 것은 인사해야 합니다. 

사람의 일의 대부분은 태도와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같은 일이라도 마음으로 공감을 가는 경우에는 잘해 주고, 같은 일이라도 마음에 장벽이 있으면 냉정하게 대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없습니다. 잘 지내자는데 계속 싸움을 걸 사람이 없습니다. 먼저 겸손하게 머리를 숙입시다. 적이 없어지고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우호적으로 변할 것입니다. 믿음은 있는데 사람과의 관계가 불편하고, 믿음은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믿음은 있는데 분위기 파악이 안 되서 손해 보는 일이 없기 바랍니다. 진리의 문제는 타협해서 안 됩니다. 그러나 마음을 같이 하고 뜻을 같이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장벽이나 표현의 부족으로 인해 일을 그르치지 맙시다. 

이런 점에서 저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1일 신정에 병원에 오래 입원해 계신 분을 심방했습니다. 작년 연말에 시간을 내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있고, 신정이라 시내에 차가 막히지 않아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것 같고, 집에서는 구정을 지내기 때문에 달리 일도 없고, 심방을 가면 반가워할 것 같기도 해서 집 사람과 같이 병원 심방을 갔습니다. 가는 길에 하나로 농협마트에서 꽃바구니를 준비했습니다. 제가 하자고 했습니다. 심방할 때 화분이나 꽃을 준비하는 것은 전도사님이나 심방대원들 몫이었는데 이번에는 제가 직접 했습니다. 꽃집에 들어갔는데 신정이라 그런지 꽃이 아름다웠고 꽃향기는 정신까지 맑게 하였습니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고 늦잠을 잔 터라 피곤했지만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올해에는 꽃집에 종종 들르리라 다짐했습니다. 

목회를 하는데 이것이 얍복 나루 건너는 지름길이라 생각합니다. 큰 문제와 사건이 있습니까? 제일 먼저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아무리 앞이 캄캄해도 마음의 평안과 여유를 잃지 맙시다. 상대방에게 이해와 용서와 화해를 구할 때, 우리의 믿음대로 이해와 용서와 화해가 되돌아 올 줄 믿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물질로 해결하고, 물리적인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목표합시다. 사람의 마음을 얻읍시다. 아무리 미국이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강해도 세계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합니다. 

영적 씨름 

야곱은 형에서 화해를 요청하고 예물을 보낸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식구들과 가축들을 먼저 건너게 한 후에, 홀로 남아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쌔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며 그 소유도 건네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22-24절).” 

야곱은 인간적으로 할 일을 다 했지만 여전히 불안했습니다. 형과 만남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했습니다. 과연 형이 화해를 받아줄 것인지, 자기의 마음을 형에게 전했지만 효력은 보장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무麜 꿇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라고 표현합니다. 야곱은 천사를 붙잡고 씨름했습니다. 이 천사는 일반 천사가 아니라 여호와의 천사입니다. 성육신하기 전의 그리스도입니다. 풀무불에 나타나셨던 천사, 소돔성을 심판할 때 아브라함의 집을 방문한 천사입니다. 인간이 되실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수준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답게 할 필요 없습니다. 인간답게 하면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 표현하면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다 아십니다. 

씨름은 육신적인 씨름이 아니라 영적인 씨름 곧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를 왜 씨름으로 표현했습니까? 씨름은 기도의 간절함을 합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생명을 사랑했습니다. 물질에 대해서 끔찍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외삼촌 집에서 밤낮으로 일해서 벌었습니다. 이 모든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간다고 생각하면 눈앞에 캄캄합니다. 천사를 붙잡고 놓을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믿음의 유업을 이어야 합니다. 이런 소망들이 있었기 때문에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생명을 걸고 기도했고 전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우아하고 품위 있게 교양 있게 해서 안 됩니다. 기도는 그 이상입니다. 과부가 불의한 재판관 앞에 나아가서 강청한 것처럼 결사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얍복 나루를 건너기 위해서 우리도 기도의 무릎을 꿇읍시다. 우리 앞에 있는 장애물을 보십시다.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짐을 보십시다. 우리의 수고가 물거품이 된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모든 소유가 하루아침에 우리를 떠난다고 생각해 보십시다.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수고와 노력을 다 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그쳐서 안 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기도를 들으시고 에서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 하니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 맞추고 피차 우니라(창33:3-4).” 

20년 동안 묵은 감정이 눈 녹듯이 녹았습니다. 형 에서의 마음이 이렇게 쉽게 누그러질 줄 몰랐습니다. 그것을 알았다면 예물도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알고 보면 기도만큼 쉽고 기도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오늘 저녁부터 신년 축복 성회가 있습니다. 회사에서 시무식도 하고, 신년 인사도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그렇 것보다 더욱 귀한 일입니다. 신년성회에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가 있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 용납하십니다. 잘못했다고 고백하면 하나님이 다 받아주십니다. 또 하나님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25절을 봅시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 것이 져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기도 응답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히스기야가 죽을병이 걸려서 기도할 때 15년의 생명을 연장해 주셨습니다. 요나가 큰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하고 기도할 때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하도록 토하여 내쳤습니다.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쳤습니다.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환도뼈는 고관절입니다. 환도뼈는 생명과 힘의 상징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침으로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어 평생 절면서 걸었습니다. 환도뼈가 위골된 사람은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름다운 모양도 없고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힘주시고 하나님이 붙드시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내 힘으로 걷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걷는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기도 응답의 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31절).” 천사와 씨름하던 밤은 지나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위골되어 걸었지만 아침의 해가 돋았습니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31절).” 희망이 있습니다. 리는 야곱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오직 기도의 힘으로 걷는 사람입니다. 얍복 나루가 나타날 때마다 기도의 무릎을 꿇을 때 아침 해가 돋을 것입니다. 

절었다는 것은 분사형으로 계속해서 절뚝거리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야곱은 날마다 기도하는 무릎으로 살았습니다. 바울의 몸에 가시가 있었던 것처럼 야곱의 몸에도 은혜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기도의 무릎으로 가는 은혜의 흔적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길거리에 다니면서 기도한 은혜의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 방언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안 된다고 해서 교회 가는 길에 방언하며 다녔습니다. 대학교 다닐 때 일부러 사람이 없는 길로 다니면서 기도했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집에 오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순천향 병원이 있는 그 길이 저에게는 기도의 거리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시시로 청계산 기도원에 출입하던 때를 잊을 수 없습니다. 기도의 걸음으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 주시고 강한 손으로 붙잡으실 줄 믿습니다. 

속사람의 변화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널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축복을 구했습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26절).” 야곱은 끈질기게 하나님의 축복을 구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무엇을 축복하셨습니까?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28절).”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품이나 그 사람에게 거는 희망과 기대를 다 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인생을 전폭으로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너는 내 사람이라! 인간 야곱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람 이스라엘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은 누구입니까?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사는 이름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쌍둥이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습니다. 거짓말로 형의 축복권을 빼앗았습니다.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며 약삭빠르게 산 사람입니다. 외삼촌 집에서 인간적인 수고와 노력으로 성공했습니다. 야곱의 생애는 허물도 많고 고난도 많았습니다. 아내를 얻기 위해 칠년씩 두 번이나 일했습니다. 야곱의 이런 모습으로 얍복 나루를 건널 수 없습니다. 거룩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늘의 기업을 이을 수 없었습니다. 설령 얍복 나루를 건넌다 할지라도 그 앞에는 얍복 나루보다 더한 어려움이 닥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입니다. 기도의 사람이 되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속사람이 변했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언약의 축복을 받을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간사하고 교활한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이룰 거룩한 믿음의 족장이 된 것입니다. 육신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입니다. 밧단 아람의 사람의 아니라, 가나안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사람이 아니라 교인이 되고 신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입니다. 구속의 은혜를 안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소유된 사람입니다. 의인이고 성도이고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얍복 나루를 건널 때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거룩하고 신령한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얍복 나루를 건널 때 몸만 건너서 안 됩니다. 아무리 환경이 변해도 속사람이 변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리저리 장소와 환경을 바꾼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얍복 나루를 건널 때 단순한 기도의 응답만 받아서 안 됩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은 형 에서와 화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야곱에게 원하신 것은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하늘의 기업을 이을 믿음의 족장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람이 변하기 원하십니다. 

새해에는 속사람이 얍복 나루를 건너기 바랍니다. 육신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읍시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열매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도, 우리 앞에 얍복 나루가 나타나는 것도 우리의 속사람을 새롭게 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되고 직분을 맡은 것이 얍복 나루를 건너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과 방향을 새롭게 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기업에 동참하기 바랍니다. 봉사의 직무에 충성을 다 합시다.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 살았으나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면서 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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