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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살전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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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살전 1:1-10)  
 

「마음에 원하는 바는 선이로되, 육신이 약하여」항상 불만족스러운 인생을 사는 우리들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살아서, 사람들로부터 잘했다는 소리를 듣고 하나님께서는 기쁨을 돌릴 수 있기를 간절히 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 곧 많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요일서 1:9절의 말씀이 참 고맙고 그렇게 반가운 구절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악에서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슨 걱정을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줄도 아시고, 또한 연약하여 말씀대로 살지 못하여 안타까워하는 것도 알고 계시니 말입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솔직하여 진실되이 고백만 한다면, 우리의 지은 죄인지, 아니면 아무런 고민도 없이 정욕에 이끌려 지은 죄인지 하나님은 아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구차스러운 변명이나 핑계가 필요 없습니다.

단지 지금, 우리 맘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하면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속이려 할 때 발생합니다. 하나님께 솔직한 고백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의 전능하심을 믿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거짓된 고백은 하나님을 우롱하고 그의 존재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특히 우리 인간이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되며 자신을 속이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됩니다.

비단 거짓된 고백이란, 우리 인간이 죄 없다고 말하는 것뿐만 아니라, 입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의 능력을 구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와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바르게 살아갈 수 있겠다고 고백을 드리면서도, 밖에 나가 세상살이를 할 때에는 하나님을 의지하려는 모습이 도통 보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애당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살아가리라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어느 정도 실생활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의 말씀을 기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다급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찾는 것 말고, 평소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고 잠시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살았습니다. 복음이 진실되다는 것을,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이 된다는 사실을 생활로 증거하며 살았습니다. 그것은 물론 그 복음을 전한 바울이 확신을 갖고 전했을 뿐만 아니라, 바울자신이 생활로 증명했기 때문이라고, 살전 1: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말씀대로 살아서 모든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바울은 그 교인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하고 하나님께는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의 생활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복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까? 그래서 그 좋은 소문이 널리 펴져 있습니까? 

어떤 분은 말할 것입니다. 아직 형편이 어렵고 힘들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있노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현재 우리 형편보다 더 어려운 조건 속에서 복음을 받아 들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기록하기를,「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살전 1:6)」라고 했습니다.

만일 어떤 남자가 아내에게 말하기를 "나는 당신만을 사랑해! 정말 당신 이 세상 여자 중 최고" 라고 고백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둘이 같이 길을 가다가 예쁜 아가씨를 만났을 경우 그 여자를 뚫어지게 바라본다든지, 또한 집에서 다른 여자 칭찬만 계속하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가 말한 사랑의 고백은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교회에 나와서 주님을 찾으며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을 복되게 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 이라고 신앙고백을 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실생활에서 하나님께서 지시한 대로 살지 아니하고 여전히 세상 방법대로 살며 우상을 섬긴다면, 그 고백은 진실 된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복된 인생을 누릴 수 있으며 영원한 삶이 보장될 줄 믿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안 믿어지면 믿을 수 없다고 말해야지, 확신도 없으면서 "주여!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면, 하나님을 두 번 속이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이 두려워서 교회를 찾았든지, 아니면 막연히 교회 나오면 잘 되리라 생각하고 나왔든지, 있는 그대로 고백을 드려야 합니다.

다만 진지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말씀 듣고 깨달아서 하나님이 계심을 확실히 믿을 수 있어야 바르게 사모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거짓된 고백을 하게 되고, 잘 믿는 척하는 거짓된 태도를 버린 후, '이제부터 시작이다.' 라는 생각을 갖고 말씀에 관심을 기울어야 합니다. 

말씀의 참 뜻을 잘 알지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양 교만하게 되면,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안 됩니다. 말씀에 은혜가 없으면, 주의 일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훼방꾼이 됩니다. 겉보기에는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을 주의 뜻을 거스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하면,

1. 거짓된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척하고 있기 때문에, 겉모양과는 영 딴판인 불의한 길을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파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겉보기에 아주 훌륭한 신앙인 이었습니다. 안식일 잘 지키고 십일조 생활 열심히 하며, 거룩한 모습을 하고 기도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했습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그들이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한 분이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며 누가 두려워서 말씀하기를 꺼려하지 않으시는 분임을 압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거짓된 것임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벌써 그들이 흉계를 꾸민 다음에 당신에게 찾아 온 줄을 이미 눈치 채고 예수님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죽일 생각을 갖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거짓되고 위선에 찬 놈들아! 왜 나를 시험하려 하느냐?"

저는 두렵고 떨리는 가슴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우리, 아니 나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 같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훌륭한 목사인 것 같지만, 속에는 세상의 온갖 욕심과 미움 시기가 가득합니다. 입으로는 주님의 사랑을 외치지만, 실상은 조금 속상한 소리만 들어도 참지 못하는 소인배입니다. 가르치기는 '모든 걱정과 두려움을 하나님께 맡기라' 고 하지만, 나 자신은 아주 사소한 문제에 부딪혀도 우거지상(像)이 되어 근심하고 걱정할 때가 많습니다.

하기야,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도 앞날이 걱정되어 하나님께 하소연한 적이 있습니다. 담대하게 바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외치고 온갖 역경을 헤치며 홍해를 건너 시내 광야까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온 모세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 모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앓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도저히 혼자서는 앞길을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면서 업어주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떼쓰는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여러 모양으로 모세에게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셨습니다. 증거도 보여주고 권능도 행하셨습니다. 지금까지 베풀어주신 기적이나 은혜만 해도, 하나님이 계심과 그분이 모세를 돕고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더 확실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응석을 부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갖가지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말씀과 능력 행하심으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거짓되이 신앙고백을 하여 하나님을 속이는 불충을 행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하고 부르면서 인생 전체를 맡기는 듯 하면서도 실은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과 의논치 않고 우리 멋대로 결정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불안한 인생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열심히 해 보지만 신통치 않습니다. 벌리는 돈은 별로 없고 써야 할 돈은 자꾸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합니다. 하나님께 나와 기도를 하지만,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없습니다. 속 시원하게 '이 길이다.' 라고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는데, 가르쳐 주지를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실 때에는 졸고 있다가, 이제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하는가?' 하고 자신의 양심이 질책하지만, 그래도 답답한 걸 어떻게 합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보이는 우상을 찾아 경배하고 있습니다.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거나 의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옳지 못한 방법, 하나님의 길이 아닌 그릇된 길을 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거짓된 고백을 드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입으로는 '당신만이 최고입니다' 라고 찬양을 드리지만 마음속에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인생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다른 것을 더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앉아 있어도 하나님 말씀엔 별 흥미가 없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아야만 복이 될 줄로 알고 말씀에 열심히 귀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척이라도 해야 별 탈이 없을 것 같아서 교회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심으로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마음도 우리 인간의 마음과 똑 같습니다. 하나님은 진실 된 자를 원하십니다.


2. 하나님은 진실 된 고백을 원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마음엔 눈꼽만큼도 주님을 인정치 않으면서 입으로만 "당신은 인생의 바른 길을 참되게 가르치시는 분이십니다." 라고 거짓되이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괴롭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고충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인생 살기가 얼마나 힘든지도 아십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눈물도 흘리시고, 고통 중에 땀을 흘려 기도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을 진실 되이 따를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편안하고 아무 탈 없을 때 주를 찾는 것보다, 어려울 때에 바르게 살아보려고 애쓰면 하나님은우리를 대견스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아주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고 하는 것을 생활로 보여 주었기 때문에 더욱 귀하고 값진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굳센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중에 서로 사랑을 베풀고 도우며,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의 생활을 그들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입으로만 주님을 고백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도 그들이 원한 바는 주님 나라 가기까지 진실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을 가르치는 문제에도 그들이 원한 바는 주님 나라 가기까지 진실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자식을 가르치는 문제, 시부모 공경하는 문제,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남부럽지 않게 사는 것은 고사하고, 어떻게 해야 돈을 많이 벌게 되어 돈 걱정 않고 살날이 언제 오려나 하는 소망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주님 오실 날까지 믿음 잃지 않고 하나님께 고백한 대로 살아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큰 소망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네 자식들이 용돈 적다고 불평하거나 다른 애들처럼 해 주지 않는다고 짜증내지 않고, 고생하는 부모님 걱정하면서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면, 부모에게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어디 있겠습니까? 애써 키워놓은 자식이 일껏 한다는 말이 "부모님이 나에게 해 준 게 뭐 있느냐" 고 불평한다면 속 터질 일이지만, 별로 해 준 것 없이 어렵게 키운 자식이건만 "부모님의 은혜를 어떻게 다 갚을 수 있겠느냐?" 한다면 정말 눈물 날 정도로 자식이 고마울 것입니다.

하나님도 우리네 인간과 똑같은 마음을 갖고 계십니다. 원래 하나님께서 인간을 당신처럼 똑같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더 걱정하십니다. 우리가 인생 문제로 고통스러워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보다 더 괴로워하십니다. 부모가 자식 걱정하듯 말입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가 알고 섬기게 된 것은 우리 예수 믿는 사람만의 복중의 복입니다. 

보십시오. 모세가 하나님께 나아와 앞날을 걱정하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직접 너랑 같이 가마,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있거라 (출33:14).」그리고 출애굽기 33장 19절에 「나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을 한없이 돌아본다」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마운 하나님을 왜 버리고 고아와 같이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3. 여호와가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진심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확신을 가지고 말씀대로 삶으로써 생활 속에서 참된 신앙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는 경우란 극히 드뭅니다.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경우는 흔해도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멀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자식들 중에는 부모가 모르는 줄 알고 부모를 속이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는 다 알고 계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속아주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버릇이 계속될 때에는 "이 나쁜 놈아! 왜 거짓말을 하는가?" 하고 야단치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솔직해야 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잘못을 해도 부모만은 그 허물을 덮어 줍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의 잘못이 아무리 클지라도 용서해 주십니다. 문제는 솔직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만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해야 합니다. 우리 맘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을 속이려 하는 것은 태양을 손으로 가리려 하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짓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말로만 아니라 실생활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래, 내가 네 문제를 해결해 주마, 같이 한 번 해보자!"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면, 인생의 문제가 해결 될 뿐만 아니라 불안과 걱정이 사라지고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뒤에 후견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아무쪼록 성도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 마음에 드는 믿음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믿음생활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모범이 되어서, 여러분에 대한 좋은 소문이 멀리까지 퍼지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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