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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생활의 3대 암초 (유 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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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의 3대 암초 (유 1:11-13)
  

두 주 전에 나는 300여명과 함께 이집트, 이스라엘 그리고 이탈리아 크루즈 여행을 하고 돌아 왔습니다. 여행객이 세계 각국에서 모여 55개국에서 2천명 정도였습니다. 한 사람당 여행비가 대략 500만원이었으니 한번 크루즈가 도는데 100억이나 되는 여행이었습니다.

78,500 톤 선박입니다. 승무원이 770명이었습니다. 배 길이가 280 m였습니다. 63빌딩이 239m입니다. 63빌딩 뉘워 놓은 것보다 40m가 길고 높이는 11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배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암초입니다. 아무리 큰 배라고 암초에 부딪치면 치명적입니다.
항해하는 선박은 암초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신앙생활하는 우리에게도 3가지 암초가 있음을 본문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암초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필라스라고 하는데 이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암초인 바위가 배를 파괴하는 것처럼 신앙생활의 암초는 신앙생활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의 3대 암초는 무엇입니까?
본문이 정확하게 그 정체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화있을 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11)

본문은 가인을 파멸로 이끈 암초와 발람을 멸망시킨 암초와 고라를 죽게한 암초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파멸시키는 암초가 무엇인지를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가인의 길의 암초

가인의 길의 암초는 무엇이었습니까? 시기와 질투였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아벨은 목축을 하면서 가장 좋은 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가인은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이런때 가인은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더 잘 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좋은 농산물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는 동생 아벨을 시기하고 질투하였습니다. 그래서 동생 아벨을 들로 데리고 나가 돌로 쳐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신앙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바위같은 암초입니다.

어떤 집에서 염소와 나귀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염소보다 나귀를 더 사랑하였습니다. 이것을 안 염소는 시기가 났습니다. 그래서 나귀를 해칠 계략을 꾸몄습니다. 기회만 보고 있던 어느 날 주인이 나귀를 때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귀야!
네게 대한 주인의 태도가 너무 경박해! 무거운 짐만 싣고 일만시키고 어쩌다가 한번 잘못 하면 때리기만 하니 억울하지? 그렇지만 주인의 태도를 고칠 방법이 있다. 짐을 싣고 개천을 건널 때 피곤한 것처럼 하면서 넘어져 버려. 그러면 주인은 네게 무거운 짐을 싣지 않을 거야.>

이 말을 들은 나귀는 정말 개천을 지날 때에 피곤한 척하면서 일부러 넘어졌습니다. 주인은 처음당하는 일이라 당황해하며 수의사를 데리고 왔습니다. 수의사는 진찰하더니 다리가 좀 상하였는 데 염소간의 피를 바르면 나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주인은 곧 집으로 돌아와서 염소를 잡아 간의 피를 나귀에게 발라주었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자신을 파괴시키는 암초입니다. 가인과 같이 시기와 질투의 길을 가는 자는 암초에 부딪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동네에 아주 친한 두 친구가 있었습니다. 둘이 다 마라톤 시합에 나갔습니다. 한 친구가 1등을 하여 금메달을 탔습니다. 동네를 빛낸 사람이라고 칭찬이 자자하였습니다. 프랭카드를 걸었습니다. 동상도 세웠습니다. 그 후 사람들은 그 동상을 바라보며 친구를 존경하고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사람들이 잠든 틈을 이용하여 동상이 쓰러지도록 조금씩 팠습니다. 어느 날 밤 또 동상밑을 파내려갔습니다. 그 날밤 동상이 무너지면서 그 동상에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파멸로 이끄는 신앙생활의 암초입니다.
남이 잘 하는 것은 시기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도전의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시고 자기의 제물을 받지 아니할 때에 다음에는 더 잘 하리라는 다짐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면 가인은 더 좋은 결과를 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기와 질투로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누구에게나 가인의 암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남이 잘 되면 그 분의 비결을 배워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남이 성공하면 축하하여 주면서 그 분의 비법을 배우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것이 신앙적 자세입니다.

가인의 길과 반대되는 길이 있습니다.

바나바의 길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교회를 튼 교회로 부흥시킨 평신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부흥시킨 교회의 지도자를 자기보다 못 한 바울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뒷바라지하여 주었습니다. 바울을 바울로 만든 숨은 공로자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없는 바울을 우리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바나바는 바울을 성경 최대의 목회자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그 밑에서 보조하여 주었습니다.
가인의 길과 반대되는 길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장입니다.

지난 주간 미국에서 제일 부자 빌게이츠가 한국에 왔었습니다.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800억을 주고 갔습니다. 고대에서 강의하고 600억을 주고 갔습니다. 고대에서는 그의 강의를 들은 모든 학생들에게 15만원씩을 주었다고 합니다.
이런 보도를 보면서 나는 한탄하였습니다.
<똑같은 인간인데 나는 너무 쩨쩨하다.>
열등감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런데 화요일 광림 세미나 하우스에서 개척 교회 목회자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10여명 목사님들이 50만원씩을 내어 500만원 정도로 개척교회 살리기 운동의 한 프로그램으로 한 것입니다. 내가 강의를 마쳤습니다. 내게 몰려와서 말했습니다.

<목사님만 같으면 나는 더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내가 빌게이츠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나를 부러워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나보다 잘 되는 사람을 가인과 같이 시기하지 말고 도전의 대상, 배움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가인의 길은 신앙생활에 암초가 됩니다.

2. 발람의 길의 암초

신앙생활에 두번째 암초가 있습니다. 황금만능주의입니다. 돈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황금의 암초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발람은 이방왕 발락이 돈을 많이 준다고 유혹하자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을 섬기고 음행에 빠지게 한 거짓 선지자입니다(민31:16-19)

자신에게 돈이 들어 온다면 남은 피해를 보아도 좋다는 이기주의자입니다. 자기만 부자가 된다면 민족은 망하여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자기고 있는 자입니다. 선지자면서 돈만 아는 이였습니다. 돈만 주면 민족을 저주하는 기도까지 한 이입니다.

돈이 신앙생활의 암초입니다.
돈에 얽매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신앙생활을 게을리하거나 거부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돈이면 다다.>
돈 제일주의로 살아 온 가치관의 주인공이 발람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결국은 물질을 아까워 하다가 저주를 받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았습니다. 이를 본 시몬이 돈을 가지고 와서 말했습니다.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행8:19)
시몬은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살 수 있다고 여기는 황금만능주의자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될 것도 없느니라>(행 8:21-22)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가 돈을 달라고 할 때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6)

40년간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일어나 걸었습니다. 그런데 현대교회는 <예수 이름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은과 금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황금만능주의가 신앙생활의 암초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자고 약속한 세 명의 강도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길을 가다가 금덩어리를 보았습니다. 그들의 약속은 순식간에 그리고 무언중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 명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두 명이 하나가 되어 다른 한 명을 물에 빠뜨려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한 명을 죽이고 술을 마시며 말했습니다.

<우리 둘만의 분배를 위하여.>

두 강도는 배에서 내려 호젓한 길을 가다가 집 한 채를 발견하였습니다. 한 명이 집안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구해 오겠다 들어갔습니다. 조금 후 그는 칼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는 다른 한 명을 칼로 찔러 죽였습니다. 조금 후 그도 싸늘한 시체로 길거리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밖에 있던 한 명이 흑심을 품고 식사후 먹을 물에 독약을 타두었습니다. 이 물을 마시고 죽었습니다.
돈 제일 주의가 일으킨 사건입니다.

그러나 반대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말 감동스러운 부부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노인부부가 동반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부부는 대단한 부자였습니다. 남편 리챠드 브라운은 79세였는데 관절염에 걸렸습니다.부인 헬렌 여사는 76세로 알츠 하이머 병에 걸렸습니다. 둘이는 53년간 살면서 80억원을 모았습니다. 그들은 자살하면서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최고로 치료받을 수 있는 충분한 돈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여생을 마치기를 원치 않는다. 그렇게 돈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돈이 세계의 어린이와 도움이 필요한 젊은 이들에게 쓰여지기를 원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도 자라서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을 벌고 하나님을 위하여 써야 합니다. 그런데 물질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거나 물질을 위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있습니다. 물질을 벌려고 하나님을 섬기는 데 게을리하고 있습니다.
발람의 길에 도사리고 있는 암초는 돈의 암초였습니다. 우리도 걸리기 쉬운 암초입니다.

돈은 좋은 것입니다. 돈을 꼭 필요한 것입니다. 얼마 전 신문 광고를 보니까 <솔직히 나는 돈이 좋다>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오 숙희라는 사람이 쓴 책입니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돈은 좋은 것입니다.
복권이 유행되는 나라는 우리 나라뿐입니다.
복권이란 <최저 투자로 최대 이익을 남기려는 수단>입니다. 가장 손쉽게 떼돈을 벌어 보겠다는 시도입니다. 
최근 조사를 보니 직장인 39%가 로또 복권을 샀다는 것입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될 확율은 814만분의 1입니다. 사람이 비오는 날 벼락 맞아 죽을 확율은 60만분의 1입니다. 그런데 날벼락을 맞을 확율은 200만분의 1입니다. 비오지도 않는 날 벼락맞는 것을 날벼락이라고 합니다. 비오지도 않는 날 날벼락을 하루에 네 번 맞는다는 것은 기적중에 기적입니다. 이런 확율을 믿고 복권을 사는 것은 정말 언어 도단입니다.
우리는 사행심을 바라는 복권을 사지 말아야 합니다.

대조적인 두 사람을 소개합니다.
두 명다 돈을 엄청나게 번 미국의 부자입니다. 한 명은 하워드 휴즈라는 부자이고 다른 한 명은 코닥 칼라를 만든 죠지 이스트만(Geoge Eastman)입니다.

먼저 하워드 휴즈를 소개합니다.

그의 목표는 오직 돈이었습니다. 악착스럽게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미국에서 이름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1977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20억불 그러니까 약 2조원 가량이을 남겼습니다. 그는 라스베가스에 호텔, 유흥장. 비행기 회사, 영화사, 방송국등 50여개 업체를 경영하면서 그렇게 많은 돈을 벌은 것입니다. 당시 미인 여배우 에바 가드너와 살기도 하였습니다. 헐리우드의 수많은 여배우들과 지냈습니다. 돈과 여자와 명예를 원없이 소유하였던 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기 10년전부터는 폐결핵으로 유리로 차단된 벽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누가 자기를 죽이고 자기 재산을 빼앗으려고 음식에 독을 넣어 죽이려한다는 피해망상증에 걸려 음식을 먹지 못하여 몸은 오징어처럼 말라버렸습니다. 그래서 병이 더욱 악화되자 그는 자가용 비행기로 병원으로 가면서 비행기안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비행기가 지금 남아 있는데 나는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것입니다.
<Nothing! Nothing!>(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돈을 하워즈처럼 많이 벌었으나 돈이 목적이 아니라 선교가 목적이었던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코닥 칼라를 만든 죠지 이스트만입니다.
그는 한 빈민촌에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 어머니와 함께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너무 가난하여 그 날 그 날 먹고 살면서 근근히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죠지의 어머니는 늘 아들이 자기 전에 붙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손을 꼭 잡고 기도하는 것이 버릇이었습니다.

<하나님!
지금은 비록 가난하지만 죠지가 훌륭히 자라 이 나라의 큰 일을 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어머니는 늘 침상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하곤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세멘트 바닥처럼 굳어져 있었습니다. 여자이지만 남자들처럼 힘든 노동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죠지는 어머니가 기도하고 나가시면 자기도 늘 기도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내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돈을 많이 벌어서 하나님의 선교사업을 크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옵소서.>
죠지는 사진관에 취직하여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가르쳐 주는 대로 열심히 기술을 배웠습니다.친절하고 사진찍는 기술이 좋아 소문이 났습니다. 그는 조그만 가게를 내어 독립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간편한 휴대용 필림을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상품이 폭팔적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공장을 짖고 생산라인을 증설하였습니다. 하루 아침에 갑부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죠지 이스트만은 코닥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많은 돈으로 하나님이 일을 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하나님께서 더욱 축복하시고 행복한 생활을 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발람의 암초가 우리의 암초입니다.

3. 고라의 길의 암초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한 악당입니다. 같은 레위 자손으로서 자기들도 제사장의 명예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습니다(민16:1-35)
명예주의자들이었습니다.
명예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암초가 고라의 암초입니다.

섬기러 오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교회가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러 오신 예수님을 닮아야 할 우리가 받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저명한 한 사람이 봉사하겠다고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봉사직이 주어지자 그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 자신으로부터 저를 끌어내어 주십시오. 저의 의무를 행할 수 없을 만큼 높이 올라가 있는 저를 낮추어 주십시오.

하나님!
제가 겸손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얼마나 겸손하고 섬기려는 자세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겠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고라는 자기들도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명예주의가 신앙생활의 방해물입니다. 섬기려하지 않고 섬김을 받으려 하는 암초입니다.

이같이 유다는 신앙생활의 암초를 세가지로 지적하였습니다.

1. 가인의 길의 암초는 시기와 질투였습니다.
2. 발람의 길의 암초는 황금 즉 돈이었습니다.
3. 고라의 길의 암초는 명예였습니다.

이같이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혀 있고, 황금만능주의에 빠져있고,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유다는 재미있게 6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몸만 기르는 목자요,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이요,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나무요,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품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함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12-13)

이같이 가인의 길을 가고, 발람의 길을 행하고, 고라와 같이 일하는 자는 애찬의 암초입니다. 사람들이 즐겁게 애찬을 즐기고 있는 데 암초입니다. 참 기쁨과 참 교제를 파괴하는 자들입니다.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입니다. 사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바람에 불려가는 물없는 구름과 같은 이입니다. 이는 허위와 거짓만 있는 자입니다. 가식만 있는 자입니다. 알맹이가 없는 자입니다. 고무풍선과 같은 자입니다.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없는 가을나무같은 사람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참된 생명이 역사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가을이 되었으나 열매가 없습니다. 말만 많지 열매가 없습니다.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품는 바다의 거친 물결같은 사람입니다. 끊임없이 불평만 하는 사람입니다. 거품만 품어댑니다. 이런 사람을 좋아할 이가 없습니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함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저주와 멸망받을 사람입니다.
이렇게 암초가 있는 길을 가는 사람은 어디에 가나 사람도 싫어하고 하나님도 싫어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의 3대 암초를 제거하여야 합니다.

진실된 믿음이 요구되는 세상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을 바에야 이렇게 믿고 싶어 어제 설교문을 쓰다가 울었습니다.
만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주일예배를 드리는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공산단이 총을 겨누며 들이 닥쳤습니다. 그리고 예배중인 교인들을 한쪽 구석을 몰아 세우더니 예수님의 초상화를 땅에 던지며 말했습니다.

<너희들 중에 살고 싶은 놈들은 이 예수님 초상화를 발로 밟아라. 그리고 침을 뱉아라. 그러면 밖으로 나가도 좋다! 그렇지 않은 놈들은 살아서 교회 문을 나가지 못 할 것이다.>

서로 눈치만 살피며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침묵이 깨졌습니다. 한 명이 예수님 사진 앞으로 나가더니 발로 밟고 침을 뱉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어서 용기없던 이들이 한 명 두 명 그렇게 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전도사였습니다. 그는 공산당이 겨누는 총구앞에서 당당하게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흙으로 범벅이 되고 침으로 더러워진 예수님의 초상화를 자기 옷을 닦으면서 말했습니다.

<나는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부질없는 목숨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깜짝 놀란 대장이 밖으로 뛰어나가더니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놈들아! 예수를 믿으려면 이 사람처럼 믿어라.>
그리고 잠시 후 교회 마당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전도사님이 나가보니 온 교인들을 사살하고 공산당은 사라졌습니다. 전도사님은 그 많은 사람들의 장례를 혼자서 다 치루어야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이같이 가인의 길, 발람의 길, 고라의 길을 가는 자는 늘 남에게 독만 뿌리는 이라는 것이 유다의 외침입니다. 시기와 질투, 돈, 명예는 암초가 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암초는 결국은 마귀가 주는 것들입니다.
오늘 성령님께서 도와주셔서 신앙생활의 암초를 제가하고 시온의 대로가 열리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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