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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바라는가? (눅 17: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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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바라는가?  (눅 17:5-10)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5)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6)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7)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8)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9)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10)
<누가복음 17장 5~10절>

할렐루야! 
지난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저는 지난 한 주간 힘들었습니다.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 부흥회 해야지
- 아시안 게임 신경 써야지
- 연평도에 포 떨어져 … 우리교회 해병대 간 청년들 안전한지 
확인하느라 신경써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마음 아픈 분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왜 가만히 있느냐, 공격하지’라고 하시는데 …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자기 아들이 군대에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까운 젊은이들이 죽어간 것, 누구나 다 서글프게 생각하지만
큰고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더 많은 생명들이 희생될 것입니다.

정부는 그동안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무엇을 한 것인지 …
낡은 무기들은 교체하지 않고 
도대체 세금 거두어 다 어디에 썼는지 … 답답합니다.
여러분도 각자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생각이 다르고, 판단이 다를지라도 평안을 위하여 기도하자는 
제 말에 반대하실 분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권세가 있는 말을 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함부로 막말 하지 마세요.
기도하는 사람답게 말하고 행동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바른 길을 가야하고, 바른 길을 가려고 신경써야 합니다.
길이 아니면 바른 길로 찾아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길을 잃어버려도/길에서 헤매도 안물어본다고 합니다.

영국의 한 보험회사(Sheilas' Wheels)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영국 남성들은 운전을 하다가 길을 잃어도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를 않는답니다.
그래서 1년에 평균 444km를 헛 주행 한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헛고생 하는 셈입니다.
여성 운전자의 경우는 3/4이 길을 모를 경우 
즉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만 남자들은 잘 묻지 않는답니다.
영국 남자 10명 중의 1명은 목적지를 안 가면 안 갔지
끝까지 다른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조선일보. 2010년 10월 29일. A20면, 참조>

우리는 천국 가는 길을 바르게 알았으니
길 모르는 사람, 아직도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
영생의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 가르쳐 주며 사시기 바랍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이 많이 보급되어있어서
운전하다 길을 잃을 염려가 많지 않지만 …
그래도 길을 잃었을 때 가장 좋은 해결책은
길을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길>이라 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우리는 진리와 생명의 참 길을 확인했으니 
그 길을 잘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부흥회 때 배운 인사 한번 해보겠습니다.
<좋아지고 있습니다. 잘되가고 있습니다. 아멘>
저는 이번 부흥회 때 배운 이 인사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가 말의 중요성에 대해 늘 말씀드렸는데 
‘좋아집니다. 잘되갑니다. 아멘’하는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양과 질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들이(5절) / 제자들이(1절)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 라고 말씀드린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말라 가르치셨고 (눅 17:1~2),
회개하는 형제는 용서하라고 하시면서 일곱 번 죄를 짓고, 죄를 지을 때 마다 
일곱 번 회개할지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눅 17:3~4)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사실 아직도 부족함이 많은 우리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가르침을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들었던 예수님 제자들도
일곱 번 죄를 지은 사람을 그 때마다 회개한다고 해서 용서한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잘 알았을 것입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생각하자니 
마음에 부담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눅 17:5)라고 했던 것입니다.
믿음이 더해지면 …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않고
미운 사람, 싫은 사람도 용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던 모양입니다.

예수님께 믿음을 더해달라고 요청했던 
‘사도들’이란 말은 좁은 의미로 예수님께 선택받아 복음을 전했던
12명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호칭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로 번역된 헬라어‘아포스톨로스(απόστολος)’는
‘보냄을 받은 자’란 뜻으로 일정한 사명을 위임받아 파견된 자를 의미합니다.
『비전 성경 사전』(서울; 두란노, 2006), pp.558~559. 참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도’들은
예수님 곁에 머물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을 목격한 이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께서 칠십 명의 사도를 세우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전하도록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그들을 파송했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 10:1~16)
예수님의 분부대로 세상에 나가 능력을 행했던 그들은
귀신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항복하는 현장을 목격했던
간증을 가진 제자들이었습니다. (눅 10:17)

그들은 모든 일들이‘믿음’안에서 가능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용서’에 대해서 가르치신 예수님께
그 가르침대로 살 수 있도록 믿음을 더해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더해지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대로 
일곱 번 용서도 할 수 있고 더 큰 능력도 행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더하소서”라는 사도들의 요청에 대해
오히려 책망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 …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 17:6)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라는 말은
제자들에게는 그러한 믿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조차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을‘양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믿음의 ‘질적’인 성격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즉, 너희들의 믿음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이라면 …
아주 작은 겨자씨만큼만 있을지라도
능히 모든 일을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목회와 신학 편집부, 『누가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 2008), pp.340~341. 참조.>

믿음을 ‘양적’으로 계산하고‘더 많은 믿음’을 요구했던 제자들은
그 믿음으로‘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면
믿음을 주시는 분, 하나님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능력을 행하기 위해 믿음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산다고 하면서
자기 입장에서, 자기 편하게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말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세 사람이 하나님께 자기 소유를 얼마나 바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먼저 땅에 줄을 긋고 제가 가진 돈을 쏟습니다.
그리고 줄 오른편에 떨어진 돈은 하나님께 바치고
왼편에 떨어지면 제 주머니에 집어넣습니다.”

- 다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땅에 작은 원을 그린 후에 모든 돈을 쏟습니다.
그리고 원안으로 떨어진 돈만 제가 갖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드립니다.”

-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마지막 한 사람이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께 바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저의 돈 전부를 하늘로 드립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다른 두 사람은 마지막 사람의 헌신과 결단에 감탄했습니다.
그러자 마지막 사람이 덧붙였습니다.
“저는 제 돈 모두를 하늘 높이 던지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공중에 머무는 돈은 하나님 것이고 땅에 떨어지는 것은 제 돈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며 믿음을 지키는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들의 생활속에, 신앙속에, 말 속에, 행동속에 …이런 신앙자세가 많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하는 것 같지만 결국 모든 것이 자기를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 치중하고,
하나님께 많이 드리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서
우리들의 믿음을, 직분을, 섬김을 … 이용하고 활용하는
자기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십시오.

목회자들 중에 보통의 방법으로는 목회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으니까
‘특별한 은사’를 소망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치유의 은사, 귀신을 쫓는 축사의 은사 … 여러 가지 은사를 구합니다.
그런데 순수한 의미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은사를 받아 목회에 써먹기 위해 / 써먹고 싶어서 …
하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제자들처럼‘믿음을 더하소서’라고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성령의 은사를 받고 싶은 간절함이 있다면
그 간절함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성경을 읽으십니까? 왜 읽으십니까?
여러분, 성경을 쓰십니까? 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성경을 타이핑하십니까? 왜 하십니까?

독일의 함부르크 대학의 총장을 지내고 
수천 명이 모이는 세인트 스테반교회에서 목회를 했던‘헬무트 틸리케’는
젊은 신학자, 목회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는지 아는가? 
이유는 성경을 써먹기 위해 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듣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써먹기 위해서 읽는다는 것입니다.
교회학교 교사들이 어린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젊은 신학생들이 청년들에게 무엇을 가르칠까?
속회인도자들이 속도원들에게 무엇을 말할까?
목회자들은 설교하기 위해서 … 성경을 써먹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고 쓰고 타이핑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내 삶에 성경 한 번 썼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쓰십니까? 
그런 목적은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 타이핑을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남보다 더 빨리 치기 위해서입니까?
그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만족을 위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내가 만족하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통해 이렇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눅 17:10)

종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목사만 하나님의 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에서 임명을 받고 일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종이라고 여기십니까?
저와 여러분은 모두 다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다 행했다고 해서
무엇을 얻으리라 기대하거나 / 박수 받거나
대접 받기를 요구해서는 안 되는 종일뿐입니다.
종인 우리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자랑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 라고 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자기 맡은 일에 충실하기만 하면 칭찬을 받고 존경을 받습니다.
곳곳에 자기 일에 불성실한 사람이 많기 때문에
오히려 성실한 사람이 칭찬 받고 대단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사회는 바람직한 사회가 아닙니다.
모두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성실히 일하는 세상,
그래서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칭찬을 못 받는 세상
그렇게 일하는 게 당연한 세상이 정상적인 사회입니다.

효자상, 효부상을 주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효도해야 하고, 효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효도하지 않으니까 특별한 사람을 택해서 효자/효부라고 상을 주는 것입니다. 
그런 상을 많이 주는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누구나 자신의 할 일을 책임감 있게 다 하는 세상.
그 일을 잘 했다고 칭찬받는 사람도 없고 … 
그 일을 하지 않았다고 벌 받는 사람도 없는 … 그런 사회가 좋은 사회입니다.
자연스럽게 맡은 일을 다 하며 지내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예수 믿는 우리들이 먼저 성실한 신앙인, 성실한 사회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전도 많이 했다고 상 받을 일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 잘 했다고 상 받을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 …
구원받은 사람이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부모가 된 사람은 자식을 길러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잘 길렀다고 상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식을 잘못 기른 사람이 벌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해서 상 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 받는 것입니다. (마 25:26)
왜냐하면 당연한 것은 당연히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익한 종이 되어 …

연말이 되면 교회 여러 부서에서 새로운 임원들을 선출합니다.
또 새롭게 직분을 받으실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게 새로운 책임을 지게 되신 분들 중에는
맡겨진 자리가 부담스럽고 염려되는 분들도 있고
감사하며 만족해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분은 안시킨다고 삐지기도 합니다.

회장 선출할 때 ‘나 뽑으면 절대로 교회 안나온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으면 그런 분을 뽑아야 합니다.
그 얘기는‘나 뽑아줘야지, 나 안뽑으면 간다’는 뜻입니다.

초등학교 때 반장선거를 할 때 보면 
‘나는 절대 반장 안한다.’라고 말하는 애는
아무도 자기를 시키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미리 안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아이는‘나 반장 꼭 시켜줘’하는 뜻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기대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십니까?
교회에서 사람을 뽑을 때 ‘믿음이 있는가’를 봅니다.

목사님이 권하셔서 … 전도사님이 설득하는 바람에 …
회원들과 팀원들이 떠미는 바람에 … 내가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억지로 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책임지게 되었든 …
부담과 근심과 염려를 이겨내고 잘 감당할 만한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 겨자씨만한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이라고 믿는 사람은 
어떤 것이든지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맡은 / 받아들인 섬김을 위한 직분은
명예롭거나 자랑스런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종된 우리들이 어떤 새로운 일을 맡게 되었다면
조금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하는 종이 되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집사, 권사, 장로 … 직분을 받았든/받게 되든 …
각 부서 부장과 팀장, 임원이든 / 임원이 되든 …
종된 각자에게 주어진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일을 다 마친 사람은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눅17:10)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알아주지 않는거야?’,‘왜 상을 안주지?’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범사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만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에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작가이자 교수이기도 한 앤토니 캠폴로(Anthony Campolo, 1935~현재)
라는 목사님이 한 선교단체가 후원한 모임에 참석했을 때 일입니다.
그 선교단체 회장이 어느 선교사로부터 받은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은 선교 사역의 어려움을 고백하면서
4천 달러, 우리 돈으로 4백 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낭독된 편지 내용을 듣고 눈물을 흘릴 때 회장이 말했습니다.
“캠폴로 목사님께서 그 선교사님이 필요한 금액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기도를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선교사님의 필요를 채워 달라고 기도하지 않겠습니다.”라며

저도 생각해 보니 기도해 달라고 했는데 거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돌아가신지 오래되었지만 우리교회에‘김용분권사님’이 계셨습니다.
하루는 제게 찾아오셔서 ‘기도좀 해주셔’하시는데
무슨 기도를 하느냐고 했더니‘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제가 못된 목사라 해도 … 
목사가 권사 빨리 죽으라고 기도하는 목사가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왜 그래요, 무슨 심통이 나서 그러세요’하면서
빨리 가시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가 교인이 기도해 달라는데 기도도 안 해 준다”고,
“목사가 사명도 감당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툴툴대셨습니다.
저는 빨리 가시라고 쫓았습니다. 
그래도 어디로 가시는가 궁금해서‘어디로 가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이“약 사먹으러 가요.”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죽게 기도해 달라고 하시던 분이 약은 왜 사드신다고 합니까? 
살려고/살고 싶어서 약국으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다 그렇습니다.

기도 요청을 거절하신 목사님은
“대신 제가 무엇을 할지 말씀드리지요. 
저는 지금 제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현금 전부를 위에 내놓겠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그렇게 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모은 돈이 4천 달러가 되지 않는다면 
그때 하나님께 채워 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탁자위에 모아지기 시작한 돈은 4천 달러가 훨씬 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런 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기도해야 합니다.
자신의 주머니에서는 아무것도 꺼내지 않고 … 
자신의 것은 내놓지 않고 기도만 하고 있는 것 … 그것은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내어 놓는 것”입니다.
자신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시간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재능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물질을 내어 놓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6:21) 고 했습니다. 
말로만 ‘주여 주여’한다고, 말로만‘아멘 아멘’한다고 해서
은혜로운 신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드러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임원을 새로 뽑을 때는 
예배에 잘 참석하는지/얼마나 최선을 다하는지/
선교회 활동을 잘 하는지/섬김의 삶은 얼마나 하는지/
그 사람이 보물을 하늘에 얼마나 쌓는지/헌금생활을 하는지 … 
다 살펴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마음을 보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한 해를 보내는 이때에
‘태신자를 갖자, 전도할 대상자를 적어내라’고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삶에 소홀했던 우리들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구원의 일을, 
전도하는 일을 이 한해가 가기 전에 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을 미처 데려오지 못한다 해도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부흥회 때 공감 가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누가 예수를 잘 믿는 사람입니까? 누가 봉사를 잘하는 사람입니까?
누가 최고의 봉사자입니까? 삐지지 않고 예수 믿는 사람, 
삐지지 않고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삐지면 예쁘기라도 하지만
저와 여러분 중에 삐지면 … 보기 안 좋습니다. 밉기만 합니다.
다 큰 사람이 왜 저러나 생각합니다.
이 사람 때문에 삐져서, 저 사람 때문에 기분 나빠서
신앙생활을 방학했다가 개학하고 잠들었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 삐질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종이 왜 삐집니까? 여러분, 종이 삐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꾸준히, 묵묵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 하면 되는 것입니다.

가정에 어려운 문제가 있으십니까? 일터에 껄끄러운 일이 있으십니까?
“나는 무익한 종이라”는 오늘 말씀을 되새겨 보십시오.
가족들, 내 직장 동료들, 친구들… 내 마음에 안 들고 예쁘지 않더라도
그들 모두를 내가 섬겨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하면 다 편안해 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 사람들에게, 믿음의 형제들에게 
주인을 섬기듯 대화하고, 주인을 위하듯 대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어려운 관계가 회복 될 것입니다. 문제가 없어질 것입니다.
요즘에는 불편한 일이 있고, 속상한 일이 있고, 부담되는 일이 있으면
주저 없이 교회를 옮기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자주 말씀드렸고, 이번 부흥회 때도 들은 말씀일 것입니다.
<나무는 묘목 때 한번 옮겨 심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자꾸 옮겨 심으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열매 맺지 못합니다. 
계속 반복하여 옮겨 심으면 깊숙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상하고 병들어 죽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이 우리교회에 영적 뿌리를 내리시기 바랍니다.
영적 열매를 맺기 위하여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고
자신의 가정에, 교회에, 일터에 맡겨진 사명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미 받은 구원의 기쁨에 감사하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종 된 우리가 바랄 것이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럽지 않은 믿음의 사람으로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라고 칭찬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며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기를 원하지만
연약하고 부족하여 쓰러지고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말씀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 주신 것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깨닫고 결단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성도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의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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