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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교회와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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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국가


25일 국민일보 1면에 “대법 ‘일 기업 강제징용 배상하라’”는 제목 하에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그리고 다음 날 26일자 같은 신문 1면에 “62년 만에야 돌아온 ‘12인의 영웅’”이라는 제목 하에 북한에서 발굴된 6.25 전쟁 참전 국군 용사 12인의 유해가 62년 만에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기사를 실었다. 이는 일제 36년 가운데 일어났던 사건과 6.25 동족상잔의 가슴 아픈 사건으로 일어난 일들이다.

이 두 가지 기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그만큼 굴곡이 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곧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온 한국 기독교가 나라가 겪는 다양한 사건 속에서 함께 겪으면서 복음의 역사를 진행해 왔다는 뜻이다. 사실 한국 기독교만큼 다양한 국가의 모습과 사상을 경험한 교회도 없을 것이다.

19세기 말 기독교가 처음 전해질 때의 대한민국은 조선왕조였다. 전제군주 국가체제에 복음이 전해진 것이다. 그러나 이 체제도 채 30년이 가기 전에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어 주권을 잃은 국가에서 36년간 몸부림을 쳐야 했던 민족과 함께 기독교가 자라왔다. 그리고 6.25를 통해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만 했고 이어 독제 대통령에 항거하면서 민주주의를 세우는 과정과 함께 교회가 세워져왔다. 그리고 지금은 지역감정과 좌우이념 그리고 복지 포풀리즘에 들 뜬 시대 속에 교회가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이 다양한 국가 형태로 형성되어왔다는 것은 기독교적인 면에서 보면 대단히 혼란스러운 문제다. 아무리 정교분립의 원칙 속에 진행되었다 하더라도 그 시대와 환경 속에 있는 백성들을 이끌어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대단히 힘든 문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국가의 형태가 어떠하던지 간에 그 속에서 적극적인 신앙의 자세를 가지므로 다양한 국가의 형태 속에서도 복음의 역사를 일으켰고 세계가 놀라는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조선왕조 때에는 서민들을 중심으로 복음이 전해졌지만 왕실에까지 영향력을 끼쳤다. 일제 36젼 동안에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렸으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그리고 교회가 독재에 항거하면서 민주주의를 세우는데 적극적으로 동참하였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당면한 복지의 표풀리즘과 지역 및 좌우 이념 앞에서는 죽은 자와 같이 아무런 행동이 없다. 오히려 기독교 지도자들이 내분에 휩싸여 스스로의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국가의 위기 앞에 기독교가 적극성을 잃어버리고 죽은 자 같이 침묵한다면 기독교의 앞날은 어두워질 것이다. 호국의 달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본다.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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