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할 믿음 (롬 4:13-25)

첨부 1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할 믿음 (롬 4:13-25)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이며 그것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마찬가지라는 것은 사도 바울이 로마서에서 강조하는 주된 사상임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바로 앞서서 사도 바울은 비록 율법은 결코 파기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율법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오직 믿음 때문임을 설파한 후 그 복음의 진리를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뒷받침한 바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율법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지기 훨씬 오래 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도 오직 그의 믿음 때문에 의롭다고 여겨졌다는 것입니다. 4:3에서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바울은 또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것이 그가 할례를 받기 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도 모르고 할례를 받지도 않은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아브라함이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의롭다 여기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이의 조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그의 사고와 그 논리를 오늘 본문에서도 그대로 반복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본문 13절에서 바울은 쓰기를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언약을 하셨는데 그것도 율법이 있기 전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이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되는 것도 율법을 잘 지키는 행위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따르는 믿음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상속자”가 된다는 뜻을 이해하기 위하여 창17:1-8이 전하는 일을 돌이켜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며 네 가지 약속을 하셨음을 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하나님이 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크게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셋째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넷째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온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네 번째 약속을 본문 13절의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과 연결시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지만 그가 크게 번성하고 그에게서 여러 민족이 나오게 하시겠다는 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온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복하는 것이지만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시기 훨씬 이전에 이미 행하신 언약입니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를 따라서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믿음을 따라서 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는 것인데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본문 14절입니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다시 사람은 근본적으로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음을 상기시킵니다. 율법을 다 잘 지켜 행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만 일으킬 뿐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다면 차라리 법을 범하는 일도 없겠는데, 율법은 있고 그것을 지키지는 못하니 모두가 범법자가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본문 15절의 뜻입니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그러므로 이 말 또한 그 누구도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고 하나님의 언약에 따라 세상의 상속자가 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 행함으로써 세상의 상속자가 되는 복을 누릴 수 없다면 그 언약이 이루어지는 길은 무엇이겠습니까? 오직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행위 대신 믿음만을 보시고 세상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리라는 약속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유대인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이방인에게까지도 베풀기로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유대인뿐 아니라 모든 믿는 이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말하는 것이 본문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사도 바울은 여기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갖게 된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그들로 하여금 의롭다 여기심을 얻게 할 수 있는 믿음이 어떤 믿음인지를 말하기 위하여 먼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한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를 소개합니다. 본문 17-22절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여기서 나타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라.”는 믿음입니다. 나이가 백 살이나 되었으면서도 아들을 낳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한 믿음입니다. 그와 그의 아내 사라의 몸이 다 자녀를 생산하기에는 사실상 죽은 몸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몸을 다시 살아나게 하셔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출산하게 하시리라는 견고한 믿음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고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그에게서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만 아니라 모든 이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셨다고 사도 바울은 다시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믿기만 하면 다 의롭다고 여기심을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아브라함처럼 믿는 것이 무엇을 믿는 것인지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을 믿는 믿음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희생으로 의롭다 하심과 새 생명을 얻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셨다가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우리 대신 십자가에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려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그를 믿는 우리들도 살리셨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사실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의로 여겨질 것입니다. 그 의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언약이 이루어질 것이며 우리가 이 세상의 상속자가 될 것입니다. 그것을 결론적으로 압축하여 언급하는 것이 23-25절 말씀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들은 너무나 크고 놀라운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입니다. 우리는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과 고통 속에 지내야 할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께로 되찾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한 관계를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우리가 의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의로운 존재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 일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고 하나님의 뜻과 결정에 달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꺼이 그 일을 하시기로 결정하시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행하셨습니다. 아들을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로 내놓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기만 하면 우리를 의롭게 여기시고 우리와 화해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들로 삼아주시고 이 세상과 영원한 나라에서 복된 삶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자기를 희생하셨습니다. 참으로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입니다. 실로 위대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겨야 할 백성입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소식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전하고 증언해야 할 사명을 지닌 이들입니다. 이 사랑과 사명을 외면하지 않는 충성된 주의 자녀들 모두 되기를 기원합니다. (이수영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