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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세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최대의 관심 (벧전 4: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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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에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최대의 관심 (벧전 4:7-11)


“관심(關心)”이란 말은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해 마음이 끌리고 흥미를 갖는 심적인 태도”를 가리킨다. 관심은 집중력을 갖게 하는 강력한 힘이다. 

본문에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다.”고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행동할 시간이지 낭비할 시대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올바른 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살아야 한다. 

“세계의 모든 길은 로마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고대 로마는 대제국이었다. 당시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특권층에 속해 있었다. 그러나 이 제국은 AD 395년에 힘없이 무너져 망하고 말았다.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1737년~1794년)은 영국이 낳은 역사학자이다. 그는 자신이 쓴 “로마 제국 쇠망사”라는 책에서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을 이렇게 말했다.

①지나치게 성에 대한 관심.
②사치스러운 생활에 지나친 관심.
③쾌락에 대해 지나친 관심.
④국방에 대해 지나친 관심.
⑤신비주의에 지나친 관심.

한 마디로 관심이 잘못되었었다는 것이다.

만물의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관심은 어떠한 것인가?

1.기도에 대한 관심

본문은 기도를 하되 그냥 기도할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다.

“정신을 차리고”는 “분별력 있게, 경솔하지 않게”라는 뜻이다. “근신”은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여”라는 뜻이다. 

종말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지, 말세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혼란을 일으키고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우리의 한계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만 힘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란 인간적인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대해서 무관심 하고 있다. 심지어 기도무용론, 새벽기도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욥21:15에 욥이 자기를 위로하러 온 세 친구들을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전능자가 누구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기도가 우리 생활에 어떠한 능력을 미치느냐? 에 대해서는 기도를 열심히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스펄전 목사님은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단 10분 기도하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천만 명의 군중보다 기도하는 단 한사람이 더 낫다. 이런 기도의 용사가 벌떼 같이 일어나야 하겠다. 에디슨은 “나의 연구는 기도의 시간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했다.

말세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보다 우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결코 기도보다 앞서가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기도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최후의 승리는 기도하는 자의 것이요, 천국의 창고는 기도하는 자만이 열 수 있다. 

항구를 떠난 배는 항상 모함과 통신을 교신해야 하고, 비행기도 관제탑과 계속 교신을 해야 한다. 그래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듯,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계속 교신을 하여야만 우리의 인생 항해는 안전할 수 있다.

만물의 마지막 때 긴박한 때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기도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2.사랑에 대한 관심(8~9)

성경은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라.”고 했다. “뜨겁게” 라는 말은 “열심히” 라는 의미이다. 사랑에는 열심이 있어야 한다. 열심이 식어질 때, 이미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특히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두 가지이다. 

①용서이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다. 이 말은 특히 “용서의 사랑”이다. “허다한 죄”는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짓는 여러 가지 허물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것은 내게도 있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요일4:8) 때문에 사랑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같이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요일4:11)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다. 그와 같이 우리도 형제를 용서해야 한다.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신다고 했다.(마18:22)

②서로 대접하는 것이다.

본문 9에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며”라고 말씀했다. 대접도 사랑의 일종이다.  
맥콜이라는 목사님이 “하나님의 손”이라는 책에서 “손은 주기 위하여 있는 지체”라고 말했다. 

사랑은 이렇게 모든 것을 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한방울 남기지 않으시고 다 주셨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것이요, 주는 것이요, 희생하는 것이다. 사랑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3. 봉사에 대한 관심.

봉사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①은사를 받은 대로이다. ②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해야 한다. ③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라는 것이다. 
봉사하고 난 다음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뿐이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 뒤에 숨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교회라는 공동체를 위해 주신 것이다. 결코 개인 소유가 아니라는 말이다. 교회의 공동재산이다.

본문에는 “서로” 라는 단어를 자주 쓰고 있다. 서로 사랑하며(8), 서로 대접하고(9), 서로 봉사하라(10)고 했다.
성도의 사랑, 대접, 봉사가 일방통행이 되어서는 안 된다. 쌍방통행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오직 순수하고, 자발적인 섬김과 봉사를 통해서만 유지되는 공동체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말고, 봉사하기 바란다. 여러분의 교회는 여러분의 깊은 관심과 봉사가 있을 때만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렘48:10=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우리는 주님의 몸을 함께 세워가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일, 교회의 일에 무관심하면 안 된다. 

구원받았다고, 천국 가겠다고, 복 받겠다고 하면서도 봉사할 줄 모르고, 교회에 관심이 없다면 자신이 믿음에 있는가? 시험해보아야 한다.

주의 일은 공짜가 없다. 
고전15:58=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결론.

만물의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기도와 사랑, 그리고 봉사에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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