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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도①- 의존 (요 17: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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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①- 의존 (요 17:6-12)  
 
 
1. 지난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나라 선수들 정말 대단했습니다. 역도, 양궁, 수영, 야구 등에서 좋은 성적을 냈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관심을 끄는 화제의 인물이 있습니다. 사격의 공기권총 분야에서 개인전, 단체전 2관왕을 한 김윤미씨입니다. 그는 임신 7개월의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어떻게 임신한 몸으로 출전할 수 있었겠습니까? 국가대표로 선택받는 영광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감이 크기 때문에 만삭의 몸으로도 훈련을 잘 소화하였고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로 선택받았습니다. 요한15:16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싶어서 온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기 때문에 이 자리에 온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하늘나라 대표선수들입니다. 또, 청산교회 대표선수들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세상 사람들에게 하늘나라가 어떠한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것을 보고 청산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사람들은 압니다. 

이것이 부담스러워서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청산교회 교인인 것을 숨기며 사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그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국가대표선수만 되어도 자랑스럽지 않습니까? 
우리 집안에 국가대표선수가 나오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그런데,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 그분께서 다스리시는 하늘나라 대표선수인데, 얼마나 더 자랑스럽습니까? 그런데, 부끄러워한다니 말이 됩니까? 아마 하늘나라 대표선수인 줄 모르고 그럴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하늘나라 대표선수입니다. 내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았습니다.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당신은 하늘나라 대표선수입니다.”

오늘부터 3주 동안 요한복음 17장 예수님께서 드리신 기도로 하늘나라 대표선수인 제자의 삶 즉 제자도가 어떠한 것인지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오늘은 하늘나라 대표선수인 제자의 삶, 그 첫 번째 특징인 의존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 제자는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6절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세상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입니다. 9절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오늘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우리는 100%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해있습니다.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품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는 사람은 겉모습은 살아 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있는 제자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씀이 시편123:1-2입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하늘나라 대표선수인 제자는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간절히 기다리는 여러분에게 오늘도 반드시 은혜 주실 줄 믿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해방되어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광야 40년은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매일 ‘만나’ 라는 양식을 내려주셨습니다. 길이 없는 사막에서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구름기둥은 낮의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었고, 불기둥은 밤의 추위를 막아주었습니다. 물이 없는 메마른 사막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바위에서 물을 내셨습니다. 주위 나라들의 공격을 막아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의 삶을 보면서, 참으로 사는 것이 힘들구나 하는 생각을 늘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내고 얼마나 힘든지, 자녀들의 삶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그들 때문에 염려가 얼마나 많은지, 경제적인 불안으로 생활고를 겪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지,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상처로 고통당하는 분들도 계시고, 남모르는 가족간의 갈등으로 밤잠을 설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설상가상, 우환이 겹치기도 하고, 지난 날 겪은 충격적인 사건이나 실패의 상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도 합니다. 

바로 광야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매일 만나를 내려주셔야 살 수 있습니다. 육체의 일용할 양식뿐 아니라, 영혼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힘든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습니다. 길이 안 보이고 답답한 우리 인생에 하나님께서 길 인도자가 되어주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해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살 길은 오직 한 길, 하나님 밖에는 없습니다.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교만입니다. 

하나님께만 매달리십시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여러분과 저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는 우리의 상처와 실패, 우리의 아픔과 슬픔, 우리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크고 감당치 못할 것인지 잘 보여줍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묵상하십시오. 십자가 위에 우리의 아픔을 걸어놓읍시다. 우리의 슬픔을 맡깁시다. 우리의 눈물을 쏟읍시다. 그러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시편115;1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주님의 제자 여러분, 하나님께 의존함으로 축복을, 평안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3. 제자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11절 “나는 세상에 더 있지 아니하오나 그들은 세상에 있사옵고 나는 아버지께로 가옵나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시기 전,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였습니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된다는 말은 네가 내 안에 들어와 있고, 내가 네 안에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공동체성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옆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 무관심합니다. 개인주의가 극도로 팽배해져있습니다. 나의 기쁨과 아픔을 진솔하게 말할 가족이나 친구가 몇이나 됩니까? 어떤 사람은 가족에게도 자신의 아픔을 말하지 않습니다. 혼자입니다. 그래서, 우울증에 걸립니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상처가 있습니다. 아무 문제 없는 척 숨기지 말고, 서로 들어내 놓을 때, 우리는 참으로 하나됨을 경험하게 됩니다. 
데이빗 왓슨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향하여 마음을 닫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닫는 것이다.” (데이빗 왓슨, 제자도, p.63)
왜냐하면, 그들 안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요 목회자인 존 스토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당신은 내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고, 나는 당신에게 짐이 되도록 설계되었다. 가족끼리, 교회의 성도끼리 서로에게 짐이 되는 삶이어야 한다.” (존 스토트, 제자도, p.131)
갈라디아서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서로의 짐을 지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저의 어머님은 올해 90세이십니다. 작년부터 치매가 있어서 어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제가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나는 제발 너무 오래 살지 않으면 좋겠다.” 이것은 제 욕심입니다. 어르신들이 종종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아무에게도 짐이 되고 싶지 않아요. 내 앞가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 살았으면 행복하겠어요. 짐이 되느니 죽는 게 낫죠.” 그러나,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제 생각과 어르신들의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부모님의 사랑과 보살핌에 전적으로 의존해왔고, 나이가 들어 자립하면서 결혼을 하고는 자녀들이 우리에게 의존하게 되고, 자녀들의 짐을 대신 져주고, 늙어가면서 다시 자녀들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어르신들이 자녀에게 짐이 되는 것을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자녀들이 여러분을 보살펴드림으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성도들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하고, 서로의 짐을 져주어야 하기도 하는 관계입니다. 교회생활하면서 아무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 한편으로는 참 좋은 마음입니다. 하지만, 내가 약할 때는 다른 성도의 기도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충고도 받아야 합니다. 교회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보인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렇습니다. 

행2:44-46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다 함께 있어” “서로 통용하고” “나눠 누며” “마음을 같이하여” “집에서 떡을 떼며 음식을 먹고” 이런 모습, 바로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에서 이런 공동체의 모습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내년에는 우리교회에서 이런 공동체의 모습을 회복하기 위하여 소그룹 운동을 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소그룹에 편성됩니다. 부부모임이든지, 남성들만의 모임이든지 혹은 여성들만의 모임이든지 하나를 선택하여 참여하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며,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줍니다. 
거기에서 사랑을 나누며 선행을 격려합니다. 
거기에서 서로 짐을 져주고, 또 짐을 나눠지기도 하며 천국까지 갑니다. 

제자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성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막힙니다. 
제자,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해 있는 존재입니다. 
제자, 서로에게 의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서로에게 의존하는 교회, 서로에게 짐이 되고, 짐을 져주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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