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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엡 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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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엡 2:4-9)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영적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은 모습이라고 했습니다(골 2:13) 허물은 자범죄를 말하고 죄는 아담의 유산인 원죄를 말합니다. 따라서 허물과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시키고 인간을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공중에 권세 잡은 사탄의 노예가 되어 육신의 소욕을 좇아서 마침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본문은 인간의 비참한 상황과는 대조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본체(本體)이신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속죄제물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요 5:24).

인간이 구원의 은총을 받는 데는 인간의 공로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철저히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구원을 계획하신 성부 하나님은 선택에 있어서도 주권적입니다.

인간의 구원은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바(행 2:23; 벧전 1:18-20; 계 1:8)이며, 다분히 제한적(마 22:14; 롬 9:20-21, 27)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사실은 인간이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러한 인간을 위한 구원계획을 완성하시려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요 1:14). 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행 4:10-12; 사 53:4-6; 벧전 3:18), 또한 죽음 가운데서 부활하셨고(행 2:32-36; 롬 8:11) 구원에 따른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행 2:38; 엡 1:13-14).
약속하신 대로 오신 성령이 인간의 구원을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가는데 이것을 구원의 서정(The order of salvation)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발생하는 순서가 아니고 논리적인 순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소명-召命, Calling)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 『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10절에 『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에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고 했습니다.

1) 외적(外的) 부르심(효과없는 부름)
마가복음 16장 15절 말씀에 『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 말씀에 『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속죄 사역을 통해 이미 성취된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죄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입니다.

2) 내적(內的) 부르심(효과있는 부름).
로마서 8장 30절에 『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14절에 『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고 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부름이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구원의 효과가 있는 부름이 내적 부르심이고 구원의 효과가 없는 부름이 외적 부름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내적 부름과 외적 부름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외적 부름에 의해서 내적 부름이 확인되고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Ⅱ. 우리를 거듭나게 하심입니다. (중생-重生, Regeneration)

요한복음 3장 3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거듭나다( )'라는 말은 '다시 태어난다(born again).'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은 조상 아담으로부터 죄를 전가(轉嫁) 받았으므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있습니다(엡 2:1). 따라서 하나님을 찾거나(고전 1:20) 스스로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 없으며(요 1:12,13) 영적 선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시 14:3). 중생(Regeneration)은 이러한 영적 죽음의 상태에서 벗어나 영적 생명을 회복하는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변화를 가리킵니다(고후 5:17).

Ⅲ. 하나님이 우리를 돌이키게 하였습 니다.(회심-回心, Conversion)

누가복음 5장 32절에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5절에 『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징계할찌니 혹 하나님이 저희에게 회개함을 주사 진리를 알게 하실까 하며 』라고 했습니다.
중생의 필연적 결과로 뒤따르는 회심(Conversion)에는 회개(Repentance)적 요소와 신앙(Faith)적 요소가 있습니다. 회개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자기의 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고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로부터 돌이키는 소극적 요소입니다. 반면 신앙은 회개에 뒤이어 삶 전체를 하나님께 헌신하며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적극적 요소입니다. 회심은 단회적이나 회개는 반복적입니다. 회심한 자에게는 반복적인 회개가 나타납니다. 

Ⅳ. 하나님이 우리를 믿게 하셨습니다. (신앙-信仰, Faith)

요한복음 19장 35절에 『 이를 본 자가 증거하였으니 그 증거가 참이라 저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함이니라 』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2절에 『 또한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믿음은 죄를 버리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회심의 적극적 행위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아 중생함으로 회개에 이른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라고 하는 적극적인 신앙행위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은 신앙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기를 『 진정한 신앙이란, 하나님께서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진리로 간주하는 확실한 지식일 뿐만 아니라, 성경이 나의 심령 속에 복음으로 역사하고,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죄의 용서와 영원한 의와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값없이 주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확고한 신뢰이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에 대한 정의를 예수를 영접함(요 1:12), 예수를 쳐다봄(요 3:14), 예수를 먹고 마심(요 6:5; 54-57, 7:37-38), 예수와 연합(요 15:5) 등으로 표현했습니다.

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칭의-稱義, Justification)

로마서 3장 24절에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30절에 『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4장 5절에 『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칭의(Justification)는 하나님께서 자연적인 상태의 모든 인간이 지닌 죄인된 신분을 의인의 신분으로 바꾸어 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이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에 근거하여 죄인에 대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이루어져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킴으로 의인(義人)으로 선언되는 하나님의 재판적 행위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轉嫁)로(롬 5:18, 19) 값없이 주어진(갈 2:17) 칭의에 의해 성도는 죄의 공포에서 완전히 놓인 바 되어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 분이 주시는 축복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Ⅵ.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양자-養子, Adoption)

에베소서 1장 5절에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 말씀에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5절 말씀에 『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6-7절 말씀에 『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두 마귀의 노예가 되었던 죄인이 구원의 대열로 들어서면서 신분이 바뀌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양자된 자는 율법과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자유와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롬 8:15).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섬길 특권과 그리스도와 성도간의 영적 교제의 특권을 얻게 됩니다(요 15:5). 그리고 장차 부활의 영광과 영생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모든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엡 1:4-5).

Ⅶ. 하나님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성화-聖化, Sanctification)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말씀에 『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고 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7절에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가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본받음으로써 점차 죄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성결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성령의 내주(內住)하심과 초자연적인 도우심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현세에 완성되지 않으며, 영혼의 성화(Sanctification)는 성도의 죽음에서, 또한 육신의 성화는 세상의 종말 곧 육체의 부활시에 완성됩니다(롬 3:10; 히 12:23; 약 3:2; 계 14:5).
과거의 우리보다 현재의 우리가 낫고 현재의 우리보다 미래의 우리가 더 좋습니다. 
전도서 7장 10절에 『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고 했습니다.

Ⅷ.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붙들어 주십 니다. (견인-堅忍, perseverance)

요한복음 13장 1절에 『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29절 말씀에 『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 말씀에 『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고 했습니다.
한번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중생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성화의 과정에서 퇴보하거나 방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자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멸망받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견인(Perseverance)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중보 사역을 절대 신뢰하는 데서 그 출발점을 둡니다(요 10:27-29; 롬 11:29; 빌 1:6).

Ⅸ. 하나님이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영화-榮華, Glorification)

로마서 8장 30절 말씀에 『 …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24절에 『 …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7-18절 말씀에 『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라고 했습니다.
성도가 죽을 때에 그 영혼은 성령의 사역에 의해 즉각적으로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영원한 행복의 상태를 누리게 됨을 영화(Glorification)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성도의 육체가 부활하여서 죽지 아니한 새 몸을 입을 때(고전 15:51-53) 완전한 영화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시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엡 1:4-5). 하나님의 택자들만이 구원에 참예할 수 있고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만이 구원의 서정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행 13:48).
이 구원을 무엇에다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내 이름이 기록된 것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눅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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