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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다림은 아름다워라 (눅 2: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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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아름다워라 (눅 2:25-33)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 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22-33)

12월은 기다리는 달입니다.
대강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달이 12월입니다.
기다림은 아름답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속에는 아름다움이 들어 있습니다.

라파엘의 모나리자 그림은 유명한 그림입니다. 라파엘이 저녁 노을질 때에 집으로 돌아 가고 있었습니다. 한 여인이 밖에 나와 퇴근하는 남편을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늘 걸어오는 먼 길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미술가의 감각이 발동하였습니다. 그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화선지! 화선지!>
옆에 있던 제자가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화선지가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침 옆에 있던 방앗간 벽 옆에 술통 뚜껑이 팽개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술통 뚜껑을 갖다 주었습니다
물론 물감도 없었습니다. 라파엘은 옆에 있는 숯덩어리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술통 뚜껑위에 남편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을 정신없이 그려 나갔습니다.
이 그림이 역사상 그 유명한 모나리자입니다.
기다림은 아름답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기다리는 시므온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기다림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기에 그렇게 기다린 것일까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나리라고 믿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렇게 기다린 것일까요?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느 날 기도하는 데 성령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기도는 위대한 것입니다. 나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10,000 성도 교회로 만들어 주시는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어느 날 성전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싶은 성령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성전에 기도하러 들어갔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이 아기 예수님을 알고 성전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기도중에 받은 성령의 감동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안고 예수님이 어떤 분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입니다.

1. 위로자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시므온은 민족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은 바로 예수님을 기다림과 같은 기다림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이스라엘의 위로가 될 것을 알았습니다. 믿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는 고달프기 짝이 없었습니다. 농산물을 모두 가지고 갑니다. 사람 죽이기를 파리 목숨보다 더 쉽게 죽였습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종들이었습니다.
위로가 정말 필요한 시절이었습니다. 시므온은 늘 성전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민족을 위로할 분을 보내 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위로자가 오기까지 죽지 않을 것이라고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힘이 났습니다. 그가 기다리는 위로자가 바로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위로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민족적인 고통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을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태어날 때부터 상처를 입으며 태어납니다. 이를 출생상처라고 합니다. 그래서 상처 때문에 태어나면서 그렇게 악을 쓰며 우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웃으며 태어나는 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상처를 받으며 태어나 살아가면서 수없이 상처를 받았습니다. 칼로 난 상처는 금방 아물지만 입으로 난 상처, 말로 난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는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위로의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최상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감독회장에 출마하였다가 부담금 문제로 후보에서 제명되었을 때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감독회장 준비한다면서 그런 것 하나 챙기지 못 하는 것이 무슨 감독회장감이냐?>
이런 비난을 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이 위로의 편지를 보내 주었습니다. 위로의 글 중에 몇 가지만 골라봅니다.

<강문호 목사님 같이 참신한 인물이 감독회장 재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아직 젊고 뭣하나 부러울 것 없는 사람이 갑자기 확 돌았나 하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 재선거국면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강문호 목사, 그 자신이란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요?>

<힘내세요, 목사님은 복이 많은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한쪽 문을 닫으시면서 다른 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역시 법과 질서를 지키시며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선함이 모두를 감동시킵니다.
참으로 잘 하셨습니다. 다음 세대를 위해서 예비하심을 믿습니다.>

<인간들의 각축 장에서도 절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느낍니다. 하나님께서 강목사님을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네요. 강목사님, 존경합니다. 분명히 강목사님의 때가 올 것입니다.>

<후보자리를 잃은것이 아니라 다음세대를 위하여 후보자리를 보관하시는 하나님인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의 언어가 위로자의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위로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바닷가에서 조개 둘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습니다. 조개 하나가 말했습니다.
<내 뱃속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한 혹이 생겨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어.>
다른 자랑삼아 조개가 말했습니다.
<나는 아무 탈 없이 잘 지낸다.>
이런 이야기를 듣던 지나가던 거북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건강해서 좋겠네요. 그러나 뱃속에 혹이 있어 신음하는 조개는 지금 진주를 만들고 있어요.>
이 말에 진주 조개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시므온이 기다는 예수님, 우리가 기다리는 예수님은 위로자입니다.

동네를 청소하는 미화원이 있었습니다. 얼굴이 항상 어두웠습니다. 직업이 청소부라고 열등감이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청소를 하면서도 항상 흥얼거리며 노래를 하였습니다.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알고 있는 사람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달라졌어?>
그는 아내가 아침마다 자기에게 이런 말을 하여 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여보! 당신이 이 마을을 어떻게 그렇게 깨끗하게 청소하는지 자랑스러워요. 당신이 아니면 이 마을이 쓰레기로 덮였을거예요.>
모든 사람에게는 위로자가 필요합니다.
오늘 이 아침 모든 성도님들 입술에 위로의 말을 하는 영으로 그득 채워지기를 기도합니다.

2. 구원자

시므온이 기다리는 예수님은 구원자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말했습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30)

예수님을 보면서 구원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12월 대강절에 기다리는 예수님은 구원자입니다.
죤 맥닐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기차 길 위에 술마시고 취한 사람이 누워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모두가 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빨리 가서 기차길에서 내려 놓아야 합니다.> 그 때 맥닐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심판의 기차가 달려 오고 있습니다. 빨리 가서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입니다.

지난 번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곳에는 개 레스토랑이 있었습니다. 주인이 개를 데리고 갑니다. 테이블에 개를 앉히고 메뉴판을 보고 자기 집 개가 좋아 하는 음식을 주문합니다. 그리고 개에게 먹입니다. 개 내프킨도 있어서 개 목에 씌워주며 먹입니다. 다 먹이고 돈을 지불하고 나옵니다.

그리고 개 호텔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행갈 때 개를 맡기는 곳입니다. 하루 밤에 얼마씩 주고 개를 재웁니다. 그리고 나는 보지 못 하였는데 개들이 예배드리는 곳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개는 영혼이 없습니다. 오직 우리 사람들에게만 영원히 죽지 않는 영이 있습니다. 그 영은 살리는 영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당하여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습니다.

어느 학교에 법이 있었습니다.
학교 유리창을 깨뜨리면 깨뜨린 학생이 변상해야 하는 법입니다. 그런데 아주 가난한 학생이 공놀이를 하다가 유리창을 깨뜨렸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변상할 수 없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유리창 값을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학생을 용서하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어야 마땅할 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 외에 구원자가 이 지구상에는 한 분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입니다.

인도에서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고행을 강조하는 종교가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는 못을 촘촘히 박힌 널빤지 위에 옷을 벗고 하루 동안 누워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일생동안 한 마디도 하지 말고 벙어리로 살기로 서원하여야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이도 있습니다.
전보대 위에 올라가서 24시간 매달려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하는 곳도 있습니다.
목욕탕에 들어가서 코밑까지 물을 채워놓고 24시간 움직이지 말고 고행을 하여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수백km를 기어서 가야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에 그 분이 나의 구원자임을 믿고 고백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습니다.

어느 농부가 지나가다가 독수리가 덫에 걸려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농부는 덫에서 독수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독수리는 하늘 높이 날라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땅을 파다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담밑에서 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독수리가 나타나서 농부의 모자를 입에 물고 달아났습니다. 농부는 벌떡 일어나서 독수리를 쫓아 갔습니다. 그 순간 뒤에서 담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대로 있었으면 깔려 죽었습니다.
독수리를 구원시켜 주었더니 독수리가 구원하여 주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 주님은 우리의 일을 하여 줍니다. 우리는 12월 25일 752명을 구원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입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구원을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3. 빛

시므온이 기다리는 예수님은 빛이었습니다. 본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9-30)
예수님은 빛입니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자신 성격을 자신이 10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나는 ....이다>라는 말씀이 모두 10가지가 표현되고 있습니다.

1.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거니와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 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요10:11-12)

2. 나는 생명의 떡이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6:48-51)

3. 나는 길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4. 나는 진리다.

5. 나는 생명이다.

6. 나는 문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생명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10:9)

7. 나는 양의 문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요10:7)

8. 나는 포도나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9. 나는 부활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10. 나는 빛이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 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8:12)
예수님은 예수님 스스로가 자신을 표현할 때 <나는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은 밝은 것입니다.
어두움의 반대입니다. 빛이 있으면 어두움은 물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는 곳에는 어두움은 물러갈 수 밖에 없습니다.

어두운 방에 빛 한 줄기가 들어오면 먼지들이 떠도는 것을 환히 볼 수가 있습니다.가만히 있으면 안 보이던 것이 빛이 들어오면 보이는 것처럼 혼자 있을 때는 모르던 것이 빛되신 예수님이 오시면 자기의 어두운 것이 들어나게 됩니다.
어부 베드로가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 하였습니다.아침에 실망스럽게 그물을 씻고 있는 데 예수님이 오셔서 집에 돌아 갈 생각으로 그물을 씻지 말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처음 만난 예수님이지만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그리고 깊은 곳에 그물을 던졌습니다.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이 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고기와 배와 그물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아 갔습니다. 베드로의 일생이 획기적으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으로 나왔다가 목적을 이룬 순간에 죄인이라는 엉뚱한 고백을 하였습니다.
빛되신 예수님이 임재하시면 안 보이던 죄가 보이게 됩니다.

빛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빛에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창가에 둔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이 모두 빛이 들어오는 창가를 향하여 자라나는 것을 발견하며 빛의 신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동굴에 들어가 보면 빛이 들어오는 곳까지 식물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빛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래서 자신을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말4:2)
그래서 빛되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생명을 얻게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성탄절에 생긴 이야기입니다.
어느 어머니가 장난감을 모아서 가난한 고아원에 주고 싶어 하였습니다. 그래서 장난감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조그만 아들에게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너도 엄마가 하는 일에 동참해야지. 네게 있는 장난감중에 한 개를 가지고 와라. 이왕이면 가장 아끼고 가장 좋아 하고 가장 비싼 것을 바쳐라.> 아들은 어머니에게 순종하였습니다.

아들에게는 4m 정도되는 좋은 모형 비행기가 있었습니다. 비싸고 좋은 장난감이었습니다. 정말 하늘을 날라가는 모형이었습니다. 이것을 드렸습니다. 그 후 18년이 지나 그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 모형 비행기가 그 집안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인은 유명한 파이롯트였습니다. 자기 모형 비행기를 선물로 받은 고아가 파이롯트가 된 것이었습니다.
선물 하나가 인생을 바꾸는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한 일은 생명력이 있어서 그 사람을 변회시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시므온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전에는 죽지 않는다는 성령의 감동을 안고 예수님을 기다리며 산 사람입니다. 그가 아기 예수를 안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위로자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은 빛입니다.>
그 때 예수님의 아버지, 어머니조차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놀랐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33)

마지막으로 이런 말씀을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미국 뉴저지주 린던 월드 마을에 특이하고 유명한 집이 있습니다. 12월 1일이 되면 집 전체에 성탄절 장식을 합니다. 촛불 46개, 전등 1,000개등 화려하게 장식을 합니다. 15년 동안 그 집은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전기세만도 100만원 이상 나온답니다.
그러나 몇 년전부터 장식이 없어졌습니다. 츄리도 불도 사라졌습니다. 구경꾼도, 관광객도 없어졌습니다. 죤 카솔 부부가 사랑이 식어지자 빛도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입니다.
기다림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기다리기 시작하는 12월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다리는 우리에게 주님은 다가와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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