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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을 창조하며 삽시다 (빌 1: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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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을 창조하며 삽시다 (빌 1:20-28)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빌 1: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가릴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빌 1: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빌 1: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 1:25)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빌 1:26)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를 인하여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빌 1:28) 아무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빙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빙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니라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기쁨이 충만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항상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사시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환경에 따라 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인기에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모든 문제를 풀려고 동분서주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다만 이 땅에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래서 분명하게 당신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눅 5:32).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

바울도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도 자신의 존재 목적을 분명히 알고 그 목적을 이루는 일에 모든 힘을 집중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성도들을 향해서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살라고 말합니다. 자신과 같이 고귀한 목적을 가지고 살 때 어려운 환경을 초월하여 기쁨을 창조하며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줍니다.  기쁨을 창조하며 살기 위해 우리가 붙잡아야 할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1.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것입니다.(20)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존귀하게 한다는 것은 '크게 만들다. 확대시켜 잘 보이게 하다'는 뜻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자신의 몸에서 크게 드러나게 되기를 소원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는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가 크게 드러나시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워렌 위어스비는 그리스도인의 몸이 망원경과 현미경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망원경으로 별들을 크게 하여 가까이 가져와 보듯이 그리스도인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를 크게 해서 가까이 보여주는 망원경이 되어야 합니다. 

또 현미경은 아주 작은 것을 크게 확대하여 보이게 합니다.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중요하게 보이지 않습니다. 믿는 이들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모든 이들에게 그리스도가 크게 잘 보이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고 자신만 크게 보이는 인생을 살면 실패한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자기만 보여주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자아가 강하게 살아 있기에 그리스도가 내 몸에 살지 못합니다. 자기의 감정과 욕심과 자존심이 죽지 않으니까 예수님이 가리워지고 자신이 크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의 몸에는 그리스도가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살아야 그리스도가 크게 나타납니다. 그리스도가 살 때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 사는 것이 지식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사는 것이 돈입니다. 쾌락입니다. 명예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에게는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되는 것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편안하게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부유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우리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을 갈망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같은 삶의 목적이 명확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바울도 처음부터 그렇게 살지는 못했습니다. 쓸데 없는 자기 확신이 강했고, 자기 자랑으로 가득했으며, 자신의 야망을 앞세우며 살았습니다. 그런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으러 가다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믿은 후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과 아름다운 관계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오셔서 그 안에 사시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바울의 삶을 통하여 나타나시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이 바울을 통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바울을 통해 사람들에게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거룩한 목적이 이루어지면서 바울은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놀라운 기쁨을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세기 이태리가 낳은 최고의 화가이지 조각가이며 건축가입니다. 다빈치가 43세때, 화가로서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밀라노의 두도빙코 공이 예수님의 마지막 만찬 모습을 그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빈치는 온갖 정성과 심혈을 기울여 최후의 만찬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늘 그랬던 것처럼 절친한 친구를 불러 그림을 보여주며 의견을 물었습니다.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본 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최고의 걸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완벽해,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손에 그려진 은잔이 어쩌면 이처럼 섬세하고 생동감이 가득한지 눈을 뗄 수가 없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말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붓으로 그 잔을 지워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말했습니다. "이 그림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것도 중심이 될 수 없네."

여러분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학식입니까? 미모입니까? 실력입니까? 재주입니까? 그것이 무엇이든, 그를 위해 얼마나 공을 많이 들여서 이룬 것이든 다빈치처럼 주저하지 말고 지워버리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려 할 때 여러분의 삶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하늘의 기쁨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2. 복음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27) 오직 너희는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잇는 이유를 분명히 가르쳐 줍니다. 그 이유는 복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강조합니다. 합당하다는 말은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가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가치를 측정하는 기준은 잠재력입니다. 물은 생명을 유지하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큰 가치가 있습니다. 씨앗은 작지만 엄청난 가치가 있습니다. 그 속에 담긴 잠재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입니다. 잘 가꾸면 씨앗을 통하여 계속 엄청난 열매가 맺혀질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음으로 생명을 유지하게 도와줍니다. 생명을 주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복음은 가장 가치있는 것입니다. 곡식이 육신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이라면 복음은 영적 생명을 유지하는데 절대적입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영생을 얻게 하는 복음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없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그 가치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복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고 새롭게 태어납니다. 복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복음을 통해 천국 열쇠를 받게됩니다. 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님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니 복음보다 더 값진 것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아무데도 복음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복음이야 말로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우리안에 참 기쁨을 창조해 줍니다. 이런 복음의 가치를 온전히 안 사람만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 수 있습니다. 복음에 전인생을 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듣고 믿었습니다. 복음을 통해 자신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포기하지 않고 사랑하심을 깨닫고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너무나 좋아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붙잡고 복음을 전하니 다른 사람들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통해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것을 보며 너무나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확신을 갖고 복음을 위해 살고 복음을 위해 죽기로 결심하였니다.  복음은 능력이요 생명입니다. 

이랜드 주식회사의 박성수회장이 십대들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좋은 친구는 누구일까요?  좋은 친구에 대한 기준은 좋은 성품을 가졌는가보다는 '내게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친구인가'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되는 수가 많습니다. 좋은 인생의 훌륭한 기회를 가지려면 좋은 기회를 제공하는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같은 대학을 다녔던 한 멋진 친구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친구가 나에게 해 준 가장 큰 것은 좋은 교회에 데려다 준 일이었습니다. 거기서 좋은 스승을 만나고, 일생의 좋은 벗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이 스승과 벗들을 통해 성장하고 교훈을 얻으며 지금의 저의 좋은 면들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박성수 회장을 오늘의 인물이 되도록 도와준 친구는 예수님을 소개해 준 친구입니다. 좋은 교회로 인도한 친구입니다. 우리도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돈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진실된 마음으로 복음을 소개하고 교회로 인도하면 됩니다. 복음을 통하여 누군가에게 인생의 좋은 기회를 줌으로 놀라운 인생을 살도록 결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신나는 일입니까?  

목적을 따라 살 때 가장 보람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목적을 따라 살 때 가장 열정적인 사람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 냅니다. 바울은 사는 이유가 그리스도를 위하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라고 했습니다. 가장 귀한 분은 예수님입니다. 가장 가치있는 것은 복음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여러분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복음을 받았다면 진짜 부자입니다. 다른 것이 더 채워지지 않아도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자원을 가지고 기쁨을 창조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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