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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감사-기적의 시작(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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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감사-기적의 시작(합 3:16-19)


어떤 가정에 좀처럼 변화되지 않고 결혼한 지 10년 동안 계속 술에 찌들어 사는 그런 남편이 있었답니다. 아내는 교회에 나가서 남편을 위해서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좀처럼 바뀌지 않습니다. 어김없이 퇴근시간이면 술에 취해서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 들어옵니다. 

어느 날은 또 술 취해 들어와서 잠을 자고 있는데 부인은 너무 서럽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동안 이렇게 내가 술 취한 남편하고 산다는 것이 너무 슬프고, 이런 남편과 결혼해 살고 있다는 것이 인생의 큰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설움에 북받쳐서 울면서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기도 했습니다. 울다가 울다가 보니 어느 날 지난 주 목사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목사님 설교 말씀에 “잘 안 되도 무조건 감사하십시오. 감사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술 취해서 들어와 자고 있는 남편을 바라보니 감사할 것이 뭐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과연 감사할 것은 없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한 가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옆집에 아줌마는 남편 일찍 여의고 혼자 참 힘들게 사는데 나는 그래도 이렇게 술 먹고 속 썩이는 남편이지만 그래도 이렇게 의지할 남편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하나님! 비록 술을 먹어서 그렇지만 이런 남편이라도 있으니까 그래도 감사하네요. 하고 감사를 했다고 합니다.

또 뭐 감사할 것이 없나? 하고 생각해 봤더니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술이 아무리 취해도 자기 집은 꼭 찾아오는 것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안 가고. 사고 치지 않고 속 썩이지 않고 꼭 집을 잘 찾아 들어오니 그것을 생각하니 또 감사한 조건이었습니다. 또 뭐 감사할 것이 없나 생각했더니 술은 좋아하지만 다른 여자에게 눈길 주지 않고 부인이라고 나만을 좋아하니 그것이 또한 감사했습니다. 또 뭐가 감사한가 생각했더니 다른 남자들은 술 취해 들어오면 집안 기물도 부수고 아이들도 자는 거 깨워서 괴롭히고 온가족을 힘들게 하는데, 우리 남편은 술 취해 들어오기만 조용히 자는 겁니다. 그것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또 하나님 앞에 감사합니다. 또 감사의 조건을 찾았더니 우리 남편은 이렇게 술을 좋아해도 한 번도 병원에 간 적이 없었습니다. 건강하니 또 감사했습니다. 또 없는가 생각했더니 우리 남편은 이렇게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와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정시에 일어나서 출근을 합니다. 회사를 결근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것도 너무 감사했습니다. 또 감사한 것이 없나 생각했더니 토요일이면 술을 더 많이 먹고 들어와서 주일까지 계속 잔다는 것입니다. 집도 하루 종일 지켜주고, 아무소리 않고 잠 자면서 교회 가는데 방해가 안 되니 그것도 또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그 새벽에 술 취한 남편을 바라보면서 이것도 감사하고 저것도 감사하다고 하나님께 감사의 고백을 드리면서 히죽 히죽 웃고 있는데 남편이 자다가 깨었습니다. 목이 말라서 물 좀 달라고 말하려고 깨었는데 보니까 부인이 웃으면서 뭐라고 뭐라고 계속 중얼거리면서 히죽대는 것입니다. “여보, 당신 지금 뭐하는거야?” 부인이 웃으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그 말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 여보, 정말 나도 그럴 줄 알았으면 일찍 좀 술도 끊고 예수 믿어야 하는데, 나도 이제 앞으로 당신이 그렇게 원하면 술도 끊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이렇게 해서 이 아내의 소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는 능력입니다. 감사는 행복의 열쇠입니다. 감사는 기적의 출발점입니다. 
여러분! 감사하면 반드시 감사하는만큼 감사할일이 생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면 불평할수록 분명히 불평할일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에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감사할일을 만났을 때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도 감사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모든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는 초월적 감사를 드리는 사람들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환경과 상황을 뛰어넘는 초월적 감사를 드리는 순간 우리는 이 세상의 모든 상황과 환경에 얽매이지 않고 하늘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초월적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이 땅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니 이처럼 초월적 감사를 통해 초월적 행복을 누렸던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네 바로 선지자 하박국이었습니다. 
 하박국이 살 때는 매우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미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벨론이 신흥강국으로 일어나서 애굽을 제압하고 온 세상을 평정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이 그 강한 군사를 이끌고 유다를 침공해 들어오기 시작해 들어오는 그런 시점이었습니다. 그 침공의 소문을 듣고 유다 백성들은 벌벌 떨고 있는 것입니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입니다. 

16절입니다.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바로 그런 시대, 그 고통의 시대, 그 절망의 시대에도 오히려 하박국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시대에는 흉작이 들어서 농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마저도 바벨론군사들이 쳐들어오면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갈 것입니다. 포도나무 열매하나, 무화과나무 열매하나, 우리의 소 한 마리, 남는 것 없이 다 빼앗아 갈 것입니다. 17절입니다. 

16절과 17절을 읽어보니 감사할 생각이 드십니까? 
그 시대는 어떤 시대였습니까? 어느 것 하나 기대할 수 없는 절망의 시대요, 상실의 시대였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시대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바로 그 시대요, 하박국 선지자가 처한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16절, 17절에서 실날 같은 단 한 줄기 희망도 깨알같은 감사의 조건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못하고 안 되고 망하고 불행하고 절망적이고 어찌 보면 이제 죽는 것 밖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절대 절명의 위기상황이요, 아무 소망 없는 막다른 골목과 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는 하박국의 신앙의 고백을 우리는 18절과 19절에서 보게 됩니다. 함께 봉독해볼까요?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리로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감사의 조건은 무엇이 있고 무엇이 잘 되고 무엇이 많아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럼 그가 믿고 섬겼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셨습니까? 

18절을 보십시오. 첫째로, 그는 여호와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아니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일하셨던 전능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성경의 어느 한 구석에 잠자고 계시는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의 삶의 현실속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나 일하시고 역사하셨던 실재하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오. 이삭의 하나님이시오, 야곱의 하나님이시며 요셉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모세의 하나님이시오, 여호수아의 하나님이시오, 갈렙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하나님은 다윗의 하나님이시오. 솔로몬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결국 이 하나님은 단 한 순간도 주무시지도 졸지도 않고 당신의 백성들의 삶의 상황속에서 그때 그때마다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일하시고 역사하셨던 그 하나님이셨습니다. 

오늘 하박국이 왜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안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이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역사 한 복판에서 늘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놀라운 역사와 기적을 베풀어주신 것처럼 오늘 우리 민족이 당하고 있고 우리 각 개인이 당하고 있는 모든 삶의 어려운 상황과 환경에도 아무것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절망의 상황에도 일하고 역사하실 것을 믿고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상황과 환경을 보면 감사할 것보다 불평하고 투덜거리고 싶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너무 먼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의 인생만 생각해보십시다. 얼마나 많은 놀라운 역사와 감사의 상황들을 허락해주셨습니까? 그 하나님이 지금 당하고 있는 이 절망과 어려움의 상황속에 침묵하실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호와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십시오. 또 다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감사할일이 넘치도록 인도하시고 축복하여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감사하고 있습니다.
18절입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해야 할 일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고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이 땅에서 보게 하셨는지가 아닙니다. 
행여 이 땅에서 우리가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고 아무 축복도 누리지 못한다고 하여도 우리에게 이 땅과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구원의 축복을 주신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땅에 있는 장막집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여러분, 여름이면 우리는 휴가를 떠납니다. 휴가 떠날 때 가끔 텐트를 가지고 떠납니다. 휴가가면서 엑스 캔버스 벽걸이 티브이며 김치 냉장고며 트롬 세탁기 이런 거 트럭 불러서 싣고 떠나는 사람이 있을까요?

여름 휴가가서 그 좋은 벽걸이 티브이며 고급 소파며 트롬 세탁기 없이 불편하게 살더라도 즐거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름 휴가는 잠시 집을 떠나 쉬러 간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까? 그래서 정말 좋은 것 귀한 것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고 이박삼일 삼박4일 지내고 돌아오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돌아갈 집이 없다면 여름 휴가지에서 3박4일이 즐거울까요? 휴가가 끝나도 돌아갈 집이 없다면 그들에겐 휴가지에서 3박4일이 즐겁고 유쾌한 휴가가 아니라 생존의 또 다른 몸부림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돌아갈 장막집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우리가 지금 이 우리 육신의 장막집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절대 누릴 수도 없는 가장 좋은 것과 아름다운 것을 누리며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 힘들고 어렵지만 70년 80년 90년 견딜 수 있습니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돌아갈 집이 있는 우리와 돌아갈 집이 없는 세상사람들과의 차이점이요 우리가 구원의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십시다. 우리에게 돌아갈 집이 있음을 감사합시다. 그곳에서 누리게 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과 축복과 상급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 19절입니다. 나의 힘이시라..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셔서 어떻게 하십니까?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십니다.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십니다. 
세 번째 우리는 우리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 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비를 안 맞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우산을 쓰면 될까요? 우의를 입으면 될까요? 물론 그렇겠죠. 그러나 우산이나 우의가 감당할 수 없이 비가 쏟아지고 폭풍이 불고 태풍이 불면 우산도 다 부러져버리고 날아가버리고 우의도 찢어지고 샙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폭풍우가 몰아치는 가운데서도 비 한 방울 안 맞을 수 있을까요? 
그 폭풍우의 구름을 뚫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비바람이 치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그 비바람과 폭풍우보다 높이 올라가면
비바람과 상관없이 폭풍우와 상관없이 살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높은 곳에 거하게 하여 주시는 힘이 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무엇입니까? 여호와가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고 구원의 하나님이 우리의 감사의 조건이 되니까 감사해야지 생각하고 또 결심하지만 그것조차 우리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의 보슬비가 내리고 소나기가 내리면 감사의 우산을 펴서 그것을 막아봅니다. 그러나 정말 우산으로도 우의로도 감당할 수 없을 삶의 무게가 우리를 짓누르면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감사조차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때 그 감사를 드리게 할 수 있는 힘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 삶의 폭풍우와 비바람을 뚫고 올라가는 힘과 능력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감사하게 하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그 어떤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아시죠? 그는 전남 여수에서 애양원이라는 나환자들을 위한 기관을 운영했던 목사님입니다. 너무 너무 훌륭한 목사님이셨습니다. 그는 6.25 때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그분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동인이와 동신이라는 두 아들이었습니다. 이 두 아들이 여수 반란 사건 때 공산당들에게 붙들려서 고문을 받다가 끝까지 예수를 믿겠다고 하다가 총살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두 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렸습니다. 두 아들의 장례식을 치르는데 이 손양원 목사님이 나오셔서 다음과 같은 감사의 답사를 하셨습니다. 

첫째로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두 번째로 허다한 많은 성도들이 있는데 이런 보배로운 자녀들을 내게 맡기셨으니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세 번째는 6남매 자녀들이 있는데 그 중에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하시니 그것도 감사합니다. 네 번째로 한 아들이 순교해도 감사한데 두 명씩이나 순교하게 하시니 그것도 너무나 감사합니다. 다섯 번째는 예수 믿다가 죽는 것도 복인데 전도하다가 총에 맞아 순교하게 하시니 그것도 감사합니다. 여섯 번째는 우리 두 아들이 미국에 유학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에 가게 하시니 그것도 감사합니다.
 
여러분, 아들이 하나도 아니도 둘씩이나 그것도 한 자리에서 총에 맞아 죽었는데 인간의 힘으로 이런 감사가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도저히 불가능한 이 감사가 고백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이 이 손양원 목사님을 높은 곳에 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시련의 폭풍우, 슬픔의 비바람이 결코 해할 수 없는 시련의 무풍지대 높은 곳게 거하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때문에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 모두가 감사할 수 있는 능력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 어떤 시련의 폭풍우와 모진 비바람이 불어닥쳐도 그것을 뚫고 비상하여 높은 곳에 거하게 될 수 있길 그것을 초월하여 누리는 자유와 기쁨이 넘치길, 감사가 넘치게 되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수 천년전 하박국의 시대에 창자가 흔들리고 입술이 떨리고 뼈가 썩어들어가는 고통은 그 시대 하박국만의 고통과 아픔이 아닙니다. 오늘 이 시대 우리 모두 어쩌면 여러 가지 삶의 정황과 환경속에서 때로는 창자가 흔들리고 뼈가 녹아들어갈 정도의 고통과 힘겨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남성들은 하루 하루 실직과 부도의 염려속에서 마치 시소를 타듯 마치 한 줄 짜리 줄타기를 하듯 힘들고 어려운 삶의 고통을 겪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성들은 편하게 자녀들을 양육할 수 없는 이 시대의 아픔속에서 빠듯한 생활비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남들에게 말할 수없는 고통의 시대, 아픔의 시대를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간의 말할 수 없는 상처와 갈등과 아픔 때문에 힘들어하고 가슴아파하고 눈물흘리고 있을수도 있습니다. 
통장에 찍히는 생활비의 액수가 아이들이 가져오는 성적표의 등수가 우리가 원하는 정도와 너무 멀어 어떻게 해야 하는 암담함과 두려움을 피할 수 없어 휴하며 한숨을 쉴 수 밖에 없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까? 이런 상황 아무것도 안 되고 있고 아무것도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고 도저히 희망도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상황속에서 우리가 세상 사람과 다른 게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요?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여호와 하나님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인생의 숱한 시련과 고통과 슬픔의 순간에 단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고 실수하지 않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오늘 이 시간도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있음을 감사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있음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가졌다면 모든 것을 가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요?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인 우리가 구원받는 불가능이 가능케 되었는데 못될게 뭐가 있겠거요. 도저히 불가능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나서시면 뭐가 안되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십시오. 안 될때 감사하는 사람 하나님은 반드시 잘 되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이도 저도 아무것도 못하겠다고 하기 싫다고요? 감사하는 일조차 우리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감사의 능력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의 고백이 터져나오게 하시도록 맡기십시다. 우리를 세상의 비바람과 삶의 폭풍우가 해할 수 없는 높은 곳에 거하게 하실 수 있음을 믿고 기도하며 감사합시다. 반드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게 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고 안 되는 것을 되게 하시는 놀라운 역사와 기적을 경험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독일의 한 외과의사가 너무나 가슴 아픈 수술을 집도해야 했습니다. 한 여인이 설암 즉 혀에 암이 생겨 혀를 잘라야만 하는 수술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수술을 집도하기에 앞서 환자에게 물었습니다. 이제 혀를 자르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혀를 자르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하십시오. 여인은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합니다. 눈을 감고 기도하는 그 여인의 눈에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이윽고 여인이 입술을 열더니 그의 생애 마지막 한 마디를 고백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오후 여러분의 입술과 마음과 영혼에 하나님을 향한 이 감사의 고백이 넘쳐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마지막 순간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남길 수 있도록 우리가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인생을 산다면 분명 우리의 인생은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감사할일이 넘치는 인생이 될 줄로 믿습니다. 

없을 때 감사하면 있게 하실 것입니다. 안될 때 감사하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불가능할 때 감사하면 가능하게 하실 것입니다. 떨어질 때 감사하면 올라가게 할 것입니다. 실패할 때 감사하면 성공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감사의 능력이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평생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해야 할 이유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속에서 우리가 하나님 때문에 감사한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인 것입니다. 

오늘 이 오후 여러분 모두가 감사를 통하여 있게 하시고 되게 하시고 풍성케 하시고 가능하게 하시는 이 놀라운 축복과 은혜의 주인공들이 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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