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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순종하고 헌신하기로 서약한 사람들 (느 9:38 - 느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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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고 헌신하기로 서약한 사람들 (느 9:38 - 느 10:8)


진정한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너진 성벽을 52일 만에 목숨 걸고 재건했습니다. 성벽을 재건할 때 많은 방해도 있었습니다. 

모진 고난 끝에 공사를 완성하고 나자 처음에는 기쁨이 충만했는데 얼마 가지 않아 허전함을 느낍니다. 영적으로 갈급했던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자동차를 사고, 좋은 집을 사도 늘 만족하지 못합니다.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거기서 승진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늘 지금보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 좀 편히 쉬려고 하자 학사 에스라가 말씀을 읽어줬던 기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성전에 모였습니다. 학사 에스라는 두루마리로 만들어진 말씀을 들고 읽었습니다. 백성들은 그 말씀에 스스로를 비춰보면서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위선과 형식적으로 살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종교적 위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믿는 척, 교회 나오는 척, 기도하는 척 하지만 실제로 내 마음의 중심에는 그게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사 에스라가 두루마리로 성경 원본을 읽어주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거울 앞에 선 것처럼 자신을 돌이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통곡하고 금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 있을 때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를 지켜주셨나, 홍해를 어떻게 건넜나, 40년 동안 광야에서 어떻게 하셨나’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고난을 기억했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

회개란 말씀 앞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회개할 때 한바탕 울고 가슴 치고 금식하고 철야기도하고 나서 다시 옛날로 돌아갑니다. 오늘 회개했다고 하더라도 며칠 지나면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자신의 잘못을 문서로 작성했습니다. 다시는 옛날처럼 살지 않겠다고 서명했습니다. 우리는 죄의 본성, 죄의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여유를 주면 옛날로 돌아갑니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 진정한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나 세계교회가 다 망해가고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청교도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이 마약과 매춘, 동성애 등 하나님이 싫어하는 죄악으로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과거에 하나님이 축복했다고 하더라도 신앙을 포기하면 앞으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60년대, 70년대에는 얼마나 마음이 가난했습니까. 그 당시에는 빌리 그래함이 오면 100만 명이 모일 정도였습니다. 요즘은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붙잡지 않아도 우리의 능력으로 살 수 있다는 교만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바람 앞에 있는 촛불처럼 위태롭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바로 말씀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

느헤미야가 말하는 개혁은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면 좋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매우 불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느헤미야의 개혁정신에 동의했습니다. 느헤미야의 신앙개혁에 서약한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그 말씀을 조금 더 주의 깊게 살펴보면 몇 그룹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제사장 그룹입니다.

10장 8절을 읽겠습니다. “마아시야, 빌개, 스마야로 이들은 모두 제사장이었습니다.”
23명의 제사장 이름이 기록돼 있습니다. 
9~13절을 읽겠습니다. “또 레위 사람들로는 아사냐의 아들 예수아, 헤나닷의 자손인 빈누이, 갓미엘, 그리고 이들의 형제인 스바냐, 호디야, 그리다, 블라야, 하난, 미가, 르홉, 하사뱌, 삭굴, 세레뱌, 스바냐, 호디야, 바니, 브니누가 있었습니다.”

레위 사람 17명이 기록돼 있습니다. 또한 14절부터 27절까지는 백성들의 지도자 44명이 기록돼 있습니다. 제사장 그룹, 레위 사람 그룹, 백성의 지도자 그룹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28, 29절을 읽겠습니다. “이밖에 그 나머지 백성들, 곧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성전 문지기들, 노래하는 사람들, 느디님 사람들, 또 하나님의 율법을 위해 다른 민족들과 스스로 구별한 모든 사람들과 그 아내들과 그 아들딸들, 지각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그 형제 귀족들과 마음을 같이해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고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잘 지키기로 맹세했으며 그것을 어기면 저주를 달게 받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이렇게 서명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본능대로만 산다면 짐승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 이런 것은 하지 말고, 이런 것은 하라는 원칙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입니다.


절제하며 사는 리더

제사장 그룹, 레위 사람 그룹, 백성의 지도자 그룹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그룹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모두 지도자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대통령이 있고 장관이 있고 도지사가 있는데, 이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국가의 운영을 누가 하겠습니까. 모든 정부 관리자들이 애국자가 되어서 나라 살림을 아끼고 나라를 위해 봉사할 때 한국이 제대로 유지되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리더의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좋은 리더를 만나면 그 나라 국민들이 행복합니다. 위기가 있을지라도 위기 가운데서도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나 좋은 리더가 아닌 사람을 만나면 국민들이 서로 싸우고 원망하게 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학교에서 외치는 구호가 ‘아버지가 살면 가정이 산다’입니다. 가정의 영적 권위자로 세워진 아버지가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가정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그 가정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러나 요즘은 그 권위를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더 절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도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는 바로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세상 지도자들처럼 종교지도자들도 타락한 시대입니다. 목회자들과 장로들, 교회에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도 망하고 사회도 망하게 됩니다. 교회에 와서 상처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다 우리 지도자들에게 리더십이 없기 때문입니다. 리더십들이 성도들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계명

29절을 읽겠습니다. “그 형제 귀족들과 마음을 같이해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고 우리 주 여호와의 모든 계명과 규례와 율례를 잘 지키기로 맹세했으며 그것을 어기면 저주를 달게 받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냥 맹세만 한 것이 아니라 맹세한 것을 지키지 못하면 저주를 달게 받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구약 말씀의 요점은 말씀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나머지 말씀은 모두 규례입니다. ‘안식일을 지켜라, 재물을 잘 관리해라’ 등의 계명들은 법조문처럼 하나씩 하나씩 만든 것들입니다.

유대인들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계명을 지금까지 지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있는 유대인 학교에 가보면 그들은 많은 돈을 들여서 잘 교육하고, 히브리어와 히브리 문화를 잘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통의 절기를 모두 가르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외국에 가면 우리나라 문화를 잘 잊어버립니다. 그 나라 문화대로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문화도 하나님 중심으로 통일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안식일을 지킬 뿐 아니라 금요일 저녁에는 꼭 집에 모여서 촛불을 켜놓고 빵과 떡을 갖다 놓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 문화를 지금까지 지키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까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기반을 탄탄하게 다진 것은 바로 율법과 규례와 계명을 잘 지켰기 때문입니다.

약속이란 안 지키면 저주를 달게 받겠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천들은 성경대로 살지 않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자기 편한 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눈치를 보고 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에게서 빛이 없습니다. 누가 봐도 저 사람은 진짜 하나님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여러분, 전도하면 예수 때문에 믿을까요? 아니면 전도하는 나 때문에 예수를 믿을까요? 당연히 나를 보고 믿는 것입니다. 전도대상자들이 어떻게 예수를 알겠습니까. 말씀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네가 믿는 예수는 나도 믿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예수 믿는 우리를 보고 예수를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 크리스천들을 보고 ‘어떻게 저 사람은 저렇게 살 수 있나? 그 돈 가지고 어떻게 살 수 있나? 어떻게 용서하기 힘든 사람을 용서하고 살 수 있나? 화를 왜 안 내는가? 복수를 왜 안하는가?’라는 생각을 하도록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

30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은 또한 맹세하기를 ‘우리 딸을 그 땅의 민족에게 시집보내거나 우리 아들들을 그들의 딸과 결혼시키지 않겠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자기 자녀들을 이방민족과 결혼시키지 않겠다고 맹세합니다.

결혼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바로 원칙입니다. 한눈에 반해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원칙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당시 이방민족과 결혼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이방민족들이 모두 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가정에서 태어난 딸이 그 문화를 그대로 가지고 결혼해서 이스라엘 남자들이 우상을 믿도록 바꿔버렸습니다.

솔로몬이 앞장서서 산당들을 세웠습니다.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솔로몬은 여자가 1,000명 있었는데 모두 산당을 만들어놓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아합이라는 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대 왕 중에서도 매우 악한 왕이 됐는데, 그 이유는 이세벨이라는 이방왕의 딸과 정략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세벨이 시키는 대로 우상을 섬겼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국제결혼을 금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방신을 믿는 이들과 결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과 결혼해서 안 믿던 배우자를 예수 믿게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입니다. 문제는 결혼하고 나서 우상숭배를 하느냐, 하나님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잘나가는 사람만 너무 좋아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만 좋아한다면 반드시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외모가 빼어난 사람만 좋아하지 말고 신앙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고, 자녀들의 결혼도 하나님 중심으로 하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안식일에 목숨 걸라

31절을 읽겠습니다. “또 다른 민족이 안식일에 물건이나 곡식을 팔러 오더라도 안식일과 거룩한 날에는 우리가 사지 않을 것이며 또 7년마다 땅을 쉬게 하고 모든 빚을 탕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과 희년을 잘 지키겠다고 맹세합니다.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여행을 여러 차례 했는데, 유대인들은 토요일에는 엘리베이터 올라가는 층수의 버튼도 누르지 않는 것을 봤습니다. 모두 미리 눌러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버튼을 누르는 것도 노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정도로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를 보면 안식일을 주일로 바꿔놓고 안식일을 일주일에 하루가 아니라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만 지킵니다. 교회 오가는 데 1시간 정도 할애하고 예배 드리는 데 1시간 정도 할애하고 나면 안식일을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24시간 동안 안식일을 지키지 않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이 안식일을 지키면 일생 전체를 놓고 볼 때 안식일이 여러분의 인생을 지켜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쳇바퀴 돌듯이 너무 정신없이 돌아갑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멈춰야 합니다. 쉬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도 쉬고 몸도 쉬고 마음도 쉬면서 세상과 물질에 붙어 있었던 자신을 하나님에게로 접붙임 시키는 것입니다. 그게 안식일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안식일에 교회에서 봉사를 합니다. 느디님 사람들처럼 주일학교 교사 등 다양한 일을 합니다.
타교회 출석하시는 장로님 한 분은 평신도지만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고 나서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심방을 합니다. 또 미국의 한 교회에 갔더니 여전도회 성도들이 주일에 도시락을 싸서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리고 점심을 먹은 후부터 암환자들의 집을 찾아다니는 것을 봤습니다. 환우들이 있는 집에 가서 빨래도 해주고 청소도 해주고 음식도 만들어서 갖다 줍니다.

어떤 성도들은 주일에 예배 드리고 나서 바로 골프 치러 가거나 자기 볼일을 보러 다니는 사람도 많습니다. 놀러가는 사람도 있고 영화 보러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여러분, 안식일을 온전히 주님 안에서 지키기 바랍니다.


베풀고 사는 넉넉한 믿음

32, 33절을 읽겠습니다. “우리는 또 우리 하나님의 집을 섬기기 위해 해마다 의무적으로 3분의 1세겔을 바치는 것을 규례화해서 진설병과 정기적으로 드리는 곡식제사와 번제, 안식일과 초하루와 정해진 명절에 드리는 제물과 거룩한 물건들과 이스라엘을 위한 속죄제와 우리 하나님의 집의 모든 일을 하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드려야 할 제물을 잘 드리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성전을 운영하려면 돈이 들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해마다 1/3세겔을 드렸습니다. 진설병 등 그 외에 드릴 것이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내지 않자 하나님의 교회가 잘 관리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 말씀이라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율법을 나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오늘날에도 구약의 정신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청교도적인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를 잘 내고 교회생활 잘 하는 사람은 가난하나 부요하나 언제나 넉넉하게 살아갑니다. 남에게 베풀고 살아갑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잘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 문제는 신약시대나 구약시대나 늘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잘 지키면 마음이 편해지고 부유해집니다.
저희 교회 성도 중 70~80%가 십일조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한 번도 헌금을 강조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도 교회 재정의 운영이 항상 원활한 편입니다.

마지막으로 39절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레위 사람들은 자기가 드린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거룩한 물건이 보관돼 있는 방, 곧 성전을 섬기는 제사장들과 성전 문지기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이 있는 방으로 가져가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을 다짐했습니다.”

그들은 경제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서약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헌신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는 그냥 잘 돌아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집은, 하나님의 사람은 잘 돌아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원리입니다. 교회의 원리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지키지 않을 때 포로로 잡혀가고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약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구약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별된 생활방식은 오늘날 우리들이 배워야 할 말씀입니다. 그래야 여러분들의 얼굴이 더 빛나고 기도할 때 자신감이 있고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하용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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