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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된 청지기로 사셨습니까? (전 5: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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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청지기로 사셨습니까? (전 5:8-20)


한 사람의 인격과 믿음을 알아보는 데는 여러 가지 시금석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말이라든지, 태도, 고난 중의 자세 등을 통해서 인격과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인격과 믿음을 가장 정확히 일 수 있는 시금석은 역시 그의 돈에 대한 태도입니다. 사람이 무슴 말을 하든 그 행동이 어떻든 간에 그 사람의 돈에 대한 자세를 보면 그 사람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쓰는 것을 보면 가장 큰 관심을 갖는 데가 어디인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 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지나치게 악기나 악보를 사는 데 돈을 많이 씁니다. 화초를 사랑하는 사람은 잡초 같아 보이는 꽃을 몇 백 만원씩 주고 사들입니다. 명예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름밖에 없는 감투에 엄청난 돈을 투자합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10만원도 안 살 것 같은 그림 한 장을 수 천 만원이나 주고 사는 것을 봤습니다. 

여러분이 제일 사랑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정확하게 발견하려면 가계부를 보고 자신이 어디에 돈을 가장 많이 투자했는지를 보면 됩니다. 제 개인의 지출의 1 순위는 헌금, 2순위는 책값, 3순위는 사진기등 전자제품입니다. 잘 보니까 제 관심사와 소비 순위가 정확하게 비례했습니다. 제 관심사의 순서와 똑같습니다. 돈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어떤 교회를 방문해서 “이 교회의 목표, 이념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 교회의 헌금 지출 내역을 보면 명확히 압니다. 선교하는 데 돈을 제일 많이 투지하는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이지, “우리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입니다.. 전도하는 교회입니다.” 이렇게 맨날 떠들어도 다 엉터리입니다.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갈 때 지혜롭게 살아가야합니다. 무엇보다 돈 문제에 있어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5장을 통해 지난 주에 보셨듯이 1-7절에서 가장 먼저 예배의 회복을 외칩니다. 그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이 물질의 청지기됨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예배를 회복하고, 바른 물질의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청지기가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종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잠시 맡고 있는 종이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의 100%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기신 것이 우리가 소유한 재물입니다. 

연말에 물질 이야기를 하니까 좀 무거운 분위기인데 그러나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기독교 교인들의 의식을 조사하는 연구 보고서들에 의하면 교인들이 목사님들이 설교에서 언급하지 말았으면 하는 주제 중에 1위가 돈(헌금)이야기이고, 2위는 정치 이야기로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오래 전에 종교 개혁자 칼빈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칼빈 당시에도 그런 문제의 제기가 있었던지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는 돈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가 돈에 대하여 바르게 말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말했다고 알려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당신의 설교에서 어떻게 말씀하셨을까요? 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많은 비유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대략 38개의 비유가 기록되고 있는데 그 중에 16개가 재물에 대한 비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거의 예수님의 설교의 절반이 돈 이야기라는 사실입니다. 

달란트이야기, 데나리온 이야기, 청지기, 과원지기, 품군, 부자 이야기 등은 다 물질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아닙니까. 신약성경에 평균 10구절에 한번 씩 물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고 복음서에만 288구절이 물질에 관한 이야기이고, 성경 전체에 무려 2300구절 이상이 돈과 재정에 관한 구절입니다. 성경은 돈에 대한 관심을 피해가지 않습니다.돈은 삶의 실제적인 문제입니다. 돈을 피해서는 인생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어떤 청년이 소원 성취의 요정이 들어 있는 요술 항아리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청년이 요정을 불러내자, 요정이 “주인님, 무슨 소원을 들어 드릴까요?”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청년은 지체 없이 “저는 돈과 여자와 결혼을 원합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요정은 곤난한 듯 “꼭 세 가지를 다 원하시나요?”하자 다시 청년은 “예, 저는 돈 여자 결혼 세 가지가 다 필요한데요”했답니다. 그러면 “할 수 없지요. 소원대로 해드리지요” 그래서 그 청년은 얼마 후 돈 여자와 결혼했다고 합니다. 돈 여자와 결혼 안하시고, 돈 인간으로 살지 않으시려면 돈에 대한 바른 생각, 돈에 대한 바른 헌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성도는 이 땅을 살아갈 때 지혜롭게 살아가야 합니다. 무엇보다 돈 문제에 있어서 지혜로워야 합니다. 그래야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5장을 통해 지난주에 보셨듯이 1-7절에서 가장 먼저 예배의 회복을 외칩니다. 그 다음으로 강조하는 것이 물질의 청지기됨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고자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예배를 회복하고, 바른 물질의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청지기가 누구입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종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잠시 맡고 있는 종이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질의 100%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 맡기신 것이 우리가 소유한 재물입니다. 딤전6:17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무슨 말씀입니까? 부를 추구하며 불확실한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돈은 어디까지나 ‘정함이 없는 재물’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속성이 있는지 세 가지로 정리해 봅니다. 

첫째, 돈은 편리하지만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무슨 말입니까? 돈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거여요. 여러분 사업을 하시나요. 그러면 여러분 직원들에게 돈을 올려 줘보세요. 만족 하나요. 만족하지요. 그런데 얼마 간 만족하지요. 딱 새해 첫 달 1달간 조금만 지나면 바뀌어요. 사업을 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수입에 만족 하나요. 천만에요. 벌면 벌수록 조금 더 필요 한 거 같아요. 한 기자가 세계 제일의 부자 카네기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세계 제일의 부자가 되었으니 이제는 만족 하시나요?’ 

그랬더니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조금만 더 가지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돈으로는 결코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죠. 많은 사람들이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과 행복은 분야가 다릅니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이런 말 들어보셨죠? “돈으로 고급 침대를 살 수 있지만 단잠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진수성찬을 차릴 수 있지만 입맛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친구를 살 수 있지만 사랑은 살 수 없고, 돈으로 웅장한 교회당을 지을 수 있지만 영생은 살 수는 없다!” 정말 그렇습니다. 인생에서 귀중한 것일수록 돈으로 되지 않습니다. 돈이 적어도 불안하고 불만족스럽지만, 많아도 역시 불안하고 불만족스럽습니다. 그러므로 근본적으로 돈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둘째는 돈은 집착하면 할수록 오히려 고통이 커집니다. 

11-13절을 보면, 11절을 보세요.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 여러분 얼마나 명쾌한 표현입니까? 무슨 말입니까? 돈이 많다고 6끼를 먹느냐는 말입니다. 아닙니다. 내가 다 쓰지 못한다는 것이죠. 돈이 많으면 짐만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내가 먹여 살릴 짐만 늘어난다고 성경은 말씀 합니다. 그러므로 그 돈이 나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12절에 보면 “노동자는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그 부유함 때문에 자지 못 하느니라”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돈이 많아지면 고민이 많아진다는 거여요. 어떻게 투자해야 되는가, 어떻게 관리해야하는가? 또 전쟁이 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얼마나 고민이 많은지 모릅니다. 13절에도 보세요. “내가 해 아래서 큰 폐단 되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 되도록 지키는 것이라” 여러분 돈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고 말 합니다. 우리 주위에게 우리는 종종 이러한 사실을 목격 합니다. 

미국에 한 때 유명한 밴드 그룹이 있었습니다. 아주 유명한 30대 중반의 밴드 그룹 제목하여 ‘유혹’ 영어로 ‘템테이션’ 이 밴드가 미국을 휘어잡았어요. 돈을 긁어모았어요. 여러분 미국에서 갑부로 성공하면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안 되어요. 그 사람들은 어마 어마한 갑부가 되었어요.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30대 후반에 그 중에 한 사람은 알콜에 젖어들어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죽습니다. 

또 한사람은 불륜에 빠지게 되어서 나중에 처절하게 가정이 깨어지고 이혼을 하며 그 자녀들은 타락의 길로 나갔습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갖기 전에 그들의 삶은 행복 했어요. 그들은 겸손했고 참 행복한 인생으로 살았습니다. 성실히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부가 그들의 영혼을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영혼이 약해져요. 돈이 많아지면 유혹에 약해요. 그들은 이름을 잘 지었던 거 같아요.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의 소유를 제한하신 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베푸신 은혜라는 사실을 생각해 본적 있습니까? 나는 더 갖기를 원하지만 하나님이 더 주시지 않은 것이 은혜라고 생각해 본적이 있냐는 말입니다. 

나의 소유가 거기서 멈춘 것을 가지고 감사해 본적이 있습니까? 여러분 감사하셔야 돼요. 돈은 때로 우리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해가 되기까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을 돈을 허락하지 않음을 감사할 수 있으시기기를 축원 합니다. 더 가져야 행복 할 수 있다는 것에서 해방 되십시오. 그것은 세상과 사탄이 우리마음에 심어놓은 거여요. 그것은 거짓말여요. 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번째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돈을 천년만년 간직할 수 있을 것처럼 쌓아둡니다. 그러나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겁니다. 돌고 도는 겁니다. 새처럼 찾아왔다가 새처럼 날아가 버립니다. 15절을 보십시오.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인생은 적신으로 왔다가 적신으로 간다는 겁니다. 돈이 많으면 이 땅에서 관리하기 힘들다가 이 땅을 떠날 때 다 놓고 가요 그래서 눈도 제대로 못 감아요. 자녀에게 불난만 일으켜요. 

잠언은 이렇게 말씀 합니다. ‘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가 어찌 허무 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 여러분 이 땅의 귀한 인생을 돈을 더 받기 위해 애쓰지 말라는 거여요. 그것은 너무 허무한 거여요. 잠시 있을 그 돈 오히려 다른 사람을 압제하고 불 유익하고 우리에게 만족도 주지 못하는 그 돈을 갖기 위해 세상은 뜁니다. 모든 것을 희생 합니다. 왜요 사탄에게 속았으니까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 합니다. 너는 그렇게 살지 말라는 거여요. 

바울도 딤전6:6-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인생은 공수래공수거입니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기본적인 의식주가 있으면 그것으로 감사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자족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족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이것이 하나님이 돈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진실한 이야기입니다. 이 진실 앞에 여러분, 다가가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르쳐준 이 진실을 우리가 믿게 된다면 우리가 돈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여기 18-20절의 말씀은 내게 주어진 것이 분복임을 알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저는 그 생명의 날을 깊이 관념치 아니하리니 이는 하나님이 저의 마음의 기뻐하는 것으로 응하심이라”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면 자족하고 그것을 즐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평생 자기 몫에 만족하면서, 먹고 마시고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답다"고 하셨습니다.  ‘선하고 아름답다? ’ 영어로는 "good and comely"라고 번역합니다.  "선하고 잘 어울리는" 일이란 뜻입니다.  

인생이 슬퍼하고 불행에 빠지는 것은 본래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즐겁게 사는 것이 인생에 어울리는 일이요, 불행하게 사는 것은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병들고, 고생하고, 죽게 된 것은 전적으로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을 때, 모든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얼굴에 땀이 흘러야 먹고 사는 고생이 시작되었습니다.  미움과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안과 염려 근심이 시작되었습니다.  죽음의 두려움 속에 살다가 결국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아담과 그 자손에게 아직도 즐거움의 여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특히 19절 말씀에는 이 "분복" 이란 말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전체가 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마땅히 즐겨야 될 내 몫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도 분복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도 분복입니다. 재물과 부요를 누리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이요, 분복입니다.  육체를 움직이는 것도 분복이요, 가정을 이루는 것도 분복입니다.  이웃과 함께하며 친구를 사귀는 것도 분복입니다.  재능을 가진 것도 분복이요, 직업을 가지는 것도 분복입니다.  주어진 시간을 만족으로 보내는 것도 분복입니다.  "분복"이란 말 속에는 자기 몫에 만족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몫에 만족하세요.  괜히 남의 몫에 기웃거리지 마세요.  자기 몫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몫을 탐낼 때 인생을 불행해집니다. 

강원도 정선 사북에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가 있습니다.  카지노가 뭐냐 하면 놀음판입니다.  국가가 인정한 놀음판입니다.  그런데 이 카지노에 하루 평균 2천6백여 명씩 출입한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tv에 소개 되는 것을 보니까, 혹시나 해서 덤벼든 사람들 가운데 모두가 다 패가망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좁은 정선 바닥에 무려 67개 전당포가 성업중입니다.  

최근 미국의 통계에 의하면 "강박성 도박증"에 걸린 사람이 무려 500만 명이고, 그런 증세에 빠질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무려 150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도박에 뭡니까?  내 몫이 너무 작아 보여서 남의 몫을 가로채려는 날도둑놈의 행동이 바로 도박입니다.  우리나라는 도박 천국입니다.  정선 카지노가 떼 돈을 벌게 되니까, 여기저기서 카지노를 만들자고 합니다.  카지노가 아니라도 도박할 일이 널렸습니다.  競馬, 競輪, 競艇, 소싸움, 개싸움, 화투...심지어는 골프, 바둑까지 온갖 것이 내기 판입니다.  내 몫에 만족하세요.  남의 몫에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그것이 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삼성 그룹의 이병철 회장이 작고하기 얼마 전 의료진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1년만 더 살게 해주시오. 1년만 더 실게 되면 그동안 내가 할 일이 있소. 나는 지금까지 돈을 모으는데는 성공을 했지만, 돈을 돈답게 써보지 못하고 이 자리까지 왔소. 1년만 더 살면 멋지게 쓰다가 죽겠소.” 결국 이 분이 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기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돈을 좀 벌다가 인생의 나머지 절반 정도는 벌어들인 물질을 잘 사용하는데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물질을 많이 달라고도 기도해야겠지만 그 물질에 성령께서 기름 부어주셔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에 잘 사용하도록 기도하기 바랍니다. 재물이 생명을 살리고 교회를 부흥시키며 인재를 키우는데 사용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청지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지나가는 일년 동안의 청지기적 삶을 결산하면서 구체적으로 선교나 구제 그리고 헌금 생활에 얼마나 신실했는가를 결산해야 할 시간입니다. 우리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면 헌금을 제일 먼저 줄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헌금의 헌신이 줄어들 때 제일 타격을 받게 될 영역이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나라의 선교의 영역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역사 속에는 이런 경제 위기를 직면하면서 오히려 재정적인 후퇴가 아닌 재정적인 헌신을 결단한 의외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작은 서점 사업을 하다가 경제 공황이 닥쳐 파산을 하고 약 10만불의 빚을 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무렵 그는 진지하게 기도하다가 은혜를 체험하고 나서 무엇보다 과거에 자신의 헌금 생활에 대한 불성실을 회개하고 자기 집을 팔고 빚 정리를 하고 다시 십일조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이 마당에 무슨 십일조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대한 빚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셨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기도하며 약품 연구를 하면서 약품 제조, 판매, 영업으로 바쁜 새 삶을 살아가며 얻어지는 수입의 십의1조를, 그리고 십의 2조를, 마침내 십의 3조를 드리기 시작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선교사들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기도와 헌신을 통해서 재기한지 3-4년 만에 한 세계적인 제약회사를 일으켜 세우게 됩니다. 그것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맨소래담 제약회사였습니다. 알버트 알렉산더 하이드(A.A.Hyde)박사의 스토리입니다. 그는 죽을 때 십의 9조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록을 남기는 성도가 됩니다. 무디 신학교의 총장을 지낸 조지 스위팅 박사는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죽을 때 우리가 묻게 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그의 나라를 위해 얼마나 드렸는가?가 될 것이라고.” 금년 한해 주의 나라와 의를 위해 우리는 구체적으로 얼마나 헌신하는 삶을 사실 수 있으셨습니까? 당신은 어떤 청지기로 한해를 사셨는지요? 당신의 영원한 나라의 투자 실적은 어떠하셨는지요? 기도 하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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